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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 손님들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6 16:24:23

남궁가의 깃발은 궁문 앞에서 멎었다.

흑요 노파가 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지팡이도 없이, 왼귀 어두운 고개를 오른쪽으로 튼 채.

"아홉째 줄."

노파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는데 고갯길까지 갔다.

"남궁가의 창이 북문을 막았다. 그 북문이 이 문이다. 그날 밤 이 문에서 스물을 잃었다. 그 깃발은 — 이 문을 못 넘는다."

행렬이 침묵했다. 말 탄 가병들의 손이 창대를 쥐었다 놓았다 했다.

가마의 문이 열렸다.

남궁완은 혼자 내렸다. 눈길을 걸어 깃대 앞으로 가더니, 제 손으로 깃줄을 풀어 남궁가의 기를 내렸다. 개켜서, 두 팔에 받쳐 들고, 노파 앞으로 걸어왔다.

"창이 진 빚을 아는 집안이라 깃발을 두고 들어가요."

여인은 개킨 기를 흑요에게 내밀었다.

"맡아 두세요. 빚을 문서로 갚는 날 — 그날 돌려받으러 오죠."

흑요는 오래 그 기를 보았다. 받지도 물리치지도 않는 침묵이 길었다. 이윽고 노파는 몸을 반 돌려 문을 열어 주었다. 기는 받지 않았다.

"빚 갚는 걸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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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29화 — 여덟 살의 선택

    쇠사슬 소리에 혈비의 기억이 열렸다.여덟 살 겨울, 우물 아래 아이는 둘이었다. 야란은 열이 올라 벽에 기대 있었고, 다른 아이는 쇠사슬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왕가 의원 백도인이 혈비에게 푸른 약 한 그릇을 내밀었다.공주님이 하나를 고르십시오.“왜 나한테 골라 달라고 했지?”고윤이 답했다.“왕가 피가 선택해야 제물의 물길이 열린다는 믿음이 있었다.”“거짓이군.”“그래. 하지만 아이였던 너는 몰랐겠지.”혈비는 돌뚜껑 앞에 주저앉았다. 그날 야란은 자기 이름을 말했다. 다른 아이는 겁에 질려 입을 열지 못했다. 혈비는 이름을 아는 쪽을 가리켰다.가리키기 전 혈비는 약을 반으로 나누려 했다. 백도인이 그러면 둘 다 죽는다고 손등을 때렸다. 여덟 살 아이는 그 말을 시험할 수 없었다. 야란이 살려 달라고 말했고, 다른 아이는 쇠사슬만 더 세게 쥐었다.혈비는 이름을 말한 아이가 살고 싶어 한다고 여겼다. 침묵한 아이는 이미 포기했다고 멋대로 정했다. 어른들이 자기에게 넘긴 잔인한 선택을, 다시 말 못 한 아이에게 떠넘긴 셈이었다.“내가 야란을 골랐다.”야란은 놀라지 않았다. 스무 해 넘게 그 순간을 기억해 온 얼굴이었다.“제 입에 약을 넣고 푸른 새를 그려 주셨지요.”“다른 아이는?”“약관들이 아래 문으로 끌고 갔습니다.”혈비의 손톱이 돌바닥을 긁었다.“나는 네가 살고, 그 아이가 죽는 줄 알았다.”“저도 그랬습니다.”야란은 약을 받은 뒤 제 숨부터 세었다고 말했다. 하진이 끌려갈 때 손을 뻗지 않았고, 살아남았다는 안도 때문에 밤새 눈을 감았다.“저도 그 아이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공주님 죄만 세려고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그렇다고 네 죄가 되는 건 아니다.” 혈비가 말했다.“그 말은 제가 정합니다.”두 사람은 서로의 짐을 덜어 주겠다는 말로 또 빼앗지 않았다.“왜 그 이름을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지?”“공주님이 이름 없는 아이를 찾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불러 줘야만 기억할 거라면, 그 아이는 또 제 뒤에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28화 — 닫힌 왕가 우물

    겨울 궁의 붉은 문은 안에서 걸려 있었다.성벽 위 신료들은 황실 군이 가까이 왔으니 왕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혈비가 들어오면 삭월이 왕가의 죄를 인정한 꼴이 되고, 황실에 전쟁 구실을 준다는 말이었다.“내 궁에 내가 들어가겠다.”혈비의 목소리가 성벽을 울렸다. 사백이 왕패를 들어 올렸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야란이 수레 휘장을 열었다.“왕명으로 열 겁니까?”혈비는 손을 내렸다. 성문 앞에는 궁에서 쫓겨난 하인과 겨울 장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물었다.“월계단 아래 우물이 무엇에 쓰였는지 아는 자는 말해라.”처음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혈비가 왕좌에서 내려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말하면 용서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밭 한가운데 서서 기다렸다.늙은 빨래꾼이 먼저 손을 들었다.“밤마다 작은 옷이 아홉 벌씩 나왔습니다. 피와 푸른 약물이 묻었지요.”“왜 말하지 않았느냐?” 신료가 성벽 위에서 외쳤다.노파가 고개를 들었다.“말한 딸이 사라졌으니까.”그 뒤로 마부가 우물에 아이를 싣던 검은 수레를 보았다고 했고, 부엌데기는 한겨울에도 아홉 그릇의 죽을 쑤었다고 했다. 한 사람은 왕가가 병든 아이를 살린 곳이라고 믿는다며 우물을 열지 말라고 했다. 자기 아들이 그곳 약을 먹고 사흘 더 살았다는 까닭이었다.성벽 위 대신 하나가 왕가를 모욕하는 거짓말이라 외쳤다. 빨래꾼은 소매를 걷어 오래된 채찍 자국을 보였다. 피 묻은 옷을 태우지 않고 딸에게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맞은 상처였다.“내 딸은 그날 사라졌습니다. 대신 나리는 그때도 저 위에 있었지요.”대신이 얼굴을 숨겼다. 혈비는 사백에게 잡아 오라 하지 않았다. 성문이 열리면 사람들 앞에서 직접 답하라고만 했다.궁 안 젊은 병사들이 서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왕가를 지켜야 한다는 자와 자기 누이가 작은 옷을 빨았다는 자가 창자루를 맞댔다. 문밖 사람들은 그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야란이 그에게 물었다.“아들 이름이 무엇입니까?”“소맥.”재 속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27화 — 어머니의 손

    첫 화살은 수레가 아닌 앞길에 꽂혔다.멈추라는 경고였다. 혈비의 기병들이 활을 들었지만 야란의 수레가 먼저 옆길로 돌았다. 마을 나무꾼이 알려 준 폐사까지 반 리였다.사람들은 눈발 속에서 수레를 밀었다. 선우현은 뒤축에 어깨를 댔고 운설은 야란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 수레 위에서 열두 숨을 셌다. 황실 군은 쫓지 않았다. 세 갈래 횃불만 폐사를 에워싼 채 밤을 기다렸다.무너진 법당에는 지붕 절반이 남아 있었다. 사백과 흑요가 번갈아 바깥을 지켰다. 혈비는 야란과 같은 불가에 앉지 않고 문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운설은 어머니 약패를 온기 가까이 가져갔다. 옻을 녹이지 않으려고 손바닥 열만 썼다. 얼어 있던 막이 천천히 풀리자 긁혀 지운 글씨가 드러났다.첫 사흘은 왕가 명대로 약을 댐.운설의 손끝이 멎었다.다음 줄에는 넷째 날부터 열두 숨으로 되돌림이라 적혀 있었다. 달무리 부인은 처음부터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왕가 의원으로 처방을 따랐고, 세 아이의 맥이 무너지는 것을 본 뒤에야 거슬렀다.아래에는 첫 사흘 동안 죽은 아이 둘의 맥수가 적혀 있었다. 이름은 쓰지 못하고 빈 동그라미만 두 개였다. 운설은 어머니가 그 동그라미를 적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상상했다. 죄를 깨닫기 전의 손과, 깨달은 뒤 훔친 열쇠가 같은 손에 있었다.야란이 약패를 보며 말했다.“부인은 매번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왜요?”“그 말을 하면 제가 괜찮다고 답해야 할까 봐서였겠지요. 대신 다음 약을 바꾸고,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운설은 그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에 더 아팠다.“어머니도 했네.”혈비가 문가에서 고개를 들었다.“끝에는 살리려 했다.”“끝만 어머니로 남길 수는 없어.”운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렵게 되찾은 어머니와 짧게 나눈 날들이 약패의 첫 줄에 눌렸다. 그녀는 어머니가 악인이기를 바라지 않았고, 아무것도 몰랐던 선인이기를 더 바라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혈비가 다가오려 하자 운설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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