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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8화 — 돌아온 약방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22:41:44

백로진 약방 문턱은 한 치 높아져 있었다.

비가 들이치지 않게 길수가 덧댄 나무였다. 운설은 첫발부터 걸려 넘어질 뻔했고, 선우현이 허리를 받쳤다.

“우리 집 맞아요?”

“문턱이 주인을 몰라보는군.”

안에서 복례가 국자를 들고 뛰어나왔다.

“반년 만에 와 놓고 문턱 탓을 하네!”

국자가 선우현 어깨를 치기 전에 운설이 막았다. 다친 자리라고 하자 복례는 그를 부엌에 앉히고 찬물부터 길어 오라고 했다. 돌아온 검신에게 내린 첫 명이었다.

부엌 선반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 선우현은 물바가지를 찾는 데 한참 걸렸고, 단이 문 뒤에서 꺼내 주었다.

“아버지는 집도 몰라요?”

“집이 나 없는 동안 움직였다.”

“집은 안 움직였어요. 물건만 바뀌었지.”

선우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단은 의기양양하게 새 쌀독과 약초 말리는 곳을 하나씩 알려 줬다. 아버지가 지키러 돌아온 집이 아니라, 아버지도 다시 배워야 할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운설이 비운 침방은 여리에게 배운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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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8화 — 돌아온 약방

    백로진 약방 문턱은 한 치 높아져 있었다.비가 들이치지 않게 길수가 덧댄 나무였다. 운설은 첫발부터 걸려 넘어질 뻔했고, 선우현이 허리를 받쳤다.“우리 집 맞아요?”“문턱이 주인을 몰라보는군.”안에서 복례가 국자를 들고 뛰어나왔다.“반년 만에 와 놓고 문턱 탓을 하네!”국자가 선우현 어깨를 치기 전에 운설이 막았다. 다친 자리라고 하자 복례는 그를 부엌에 앉히고 찬물부터 길어 오라고 했다. 돌아온 검신에게 내린 첫 명이었다.부엌 선반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 선우현은 물바가지를 찾는 데 한참 걸렸고, 단이 문 뒤에서 꺼내 주었다.“아버지는 집도 몰라요?”“집이 나 없는 동안 움직였다.”“집은 안 움직였어요. 물건만 바뀌었지.”선우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단은 의기양양하게 새 쌀독과 약초 말리는 곳을 하나씩 알려 줬다. 아버지가 지키러 돌아온 집이 아니라, 아버지도 다시 배워야 할 집이었다.마을 사람들은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운설이 비운 침방은 여리에게 배운 의원 둘이 번갈아 썼고, 우물은 길수와 떡집 노파가 관리했다. 진료 장부에는 잘못 놓은 침과 고친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제가 없어도 잘했네요.”“없어서 한 거지.” 복례가 말했다. “있었으면 네가 다 했을 테니까.”운설은 서운한 얼굴을 했다가 웃었다. 돌아올 자리는 비어 있는 의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어 가다 한 칸 내어 주는 곳이었다.젊은 의원은 운설이 예전에 쓰던 약장을 셋으로 나눴다. 가운데 칸 하나를 비워 두었으나 운설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돌아오시면 어느 칸을 쓰실지 몰라서요.”운설은 가장 낮은 칸을 골랐다. 아이도 약 이름을 볼 수 있고, 앉아서 오래 일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자리였다. 높은 칸은 젊은 의원이 그대로 쓰게 했다.단은 뒷마당에서 또래 아이들과 눈 녹은 진흙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부모를 보자 달려오다가 손에 든 진흙을 내려다봤다.“안아도 돼요?”운설이 두 팔을 벌렸다.“물어봐 줘서 고마워.”진흙 묻은 몸이 품에 뛰어들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7화 — 자매의 무덤

    어머니 봉분에는 이름패가 둘 놓여 있었다.운설이 첫 사흘 동안 죽은 아이 둘의 이름을 찾아 가져온 패였다. 하나는 마도가 기억했고, 다른 하나는 왕가 옛 부엌 장부에서 발견했다. 빈 동그라미가 채령과 무진으로 채워졌다.혈비는 북쪽 배수로에서 찾은 소맥의 작은 신을 들고 왔다. 아비에게 뼈와 함께 돌려주고 남은 한 짝이었다. 소맥의 아비가 왕가가 기억하라고 맡겼다.두 자매는 서로 절하지 않았다. 봉분 앞에 나란히 앉아 각자 가지고 온 것을 어머니 수놓은 달무리 천 위에 놓았다.운설은 약패 첫 사흘을 소리 내 읽었다. 혈비는 밀지의 문을 열라는 줄을 읽었다. 좋은 줄만 고르지 않고 같은 목소리로 끝까지 나눠 읽었다.선우현과 사백은 들리지 않을 만큼 물러나 있었다. 사백이 물었다.“저 자리에 끼고 싶지 않습니까?”“많이.”“그런데 왜 여기 있습니까?”“운설이 부르면 갈 거다.”사백은 그 말을 곱씹었다. 혈비가 부르지 않아도 늘 앞서 달려가던 자신과 달랐다. 그는 활 없는 손으로 무덤길의 마른 가지를 치웠다.“어머니를 용서했어?” 혈비가 물었다.“아직 그 말을 정하지 않았어.”“미워하고?”“첫 사흘을 생각하면. 밀지를 보면 또 보고 싶고.”운설은 마른 풀을 뽑아 손가락으로 비볐다.“언니는?”“어머니가 밀지를 내게 닿게 하지 못한 게 원망스럽다. 그런데 내가 왕인을 깨지 않은 세월까지 어머니 탓으로 할 수는 없더군.”혈비는 왕의 옷을 입지 않았다. 짧은 푸른 소매 아래 밧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북쪽 길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왕이라 부른 적도, 우물 죄인이라 욕한 적도 있었다. 어느 이름도 막지 않았다고 했다.“하진은?”“겨울 궁을 떠났다.”“어디로?”“말해 주지 않았다.”혈비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도 찾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찾지 않는 것이 그 아이를 잃는 일과 다르다. 살아서 자기 길을 숨기겠다고 했으니까.”야란은 겨울 궁에 남아 지하 약방을 작은 병소로 바꾸는 일을 보고 있었다. 왕가 의원은 들이지 않았고, 빨래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6화 — 각자의 물길

    네 갈래 길 앞에 수레가 네 대 멈췄다.혈비는 북쪽 배수로로, 고윤은 갈대 나루로, 명주는 서쪽 약초길로 가야 했다. 담우가 갈 남쪽 끝에는 백로진이 있었다.누구도 먼저 작별을 말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겪고 살아남았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듯한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흑수촌에서 온 작은 배가 나루에 닿았다. 노분이 보낸 물항아리와 편지 한 장이 실려 있었다. 항아리에는 노칠 이름패를 단 뒤 처음 길은 흑수촌 우물물 한 병이 담겨 있었다.명주가 마개를 열었다. 붉은 겨자씨와 삭힌 무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가슴 안 정무가 두 번 두드렸다. 노칠이 찾던 집 냄새였다.노분은 글을 몰라 이웃 아이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오라비를 문턱에 달았다. 늦게 왔다고 욕하고, 그래도 왔다고 밥 한 그릇 놓았다. 마지막에는 명주의 뺨에 바를 풀 이름이 적혀 있었다.편지 뒷면에는 노칠이 어릴 때 냇가에서 넘어져 생긴 무릎 흉터와, 삭힌 무를 훔쳐 먹다 들킨 날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시신을 확인할 때 필요했던 표식이 이제는 오라비가 살았던 날을 돌려놓는 이야기가 되었다.명주는 정무에게 들려줘도 되는지 노분에게 묻지 못했다고 했다. 정무가 가슴 안에서 한 번 두드렸다. 듣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남의 가족 편지를 함께 몸에 산다는 이유로 가져가지 않았다.“오라버니가 돌아갔네요.” 담우가 말했다.“우리가 데려다준 거지, 제 몸에서 나온 물만 돌아간 건 아니야.”명주는 노분과 수레꾼, 관을 태운 사람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정무도 가슴 안에서 박자를 보탰다.고윤은 항아리 가까이 오지 않았다. 노칠을 그릇에 넣은 자기 손이 고향물까지 흐릴까 두려운 얼굴이었다.명주가 그에게 한 잔 떠 주었다.“받아도 되느냐?”“제가 주는 게 아니라 노분 어르신이 모두 나눠 마시라고 했어요.”고윤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물을 마시기 전 노칠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사죄는 덧붙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받아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감시인들이 고윤 수레의 쇠줄을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5화 — 돌아보지 않는 한 치

    연도하의 수레에는 깃발이 없었다.공동 소금길 사람들은 각자 자기 표식을 되찾았고, 그는 빈 수레 하나만 몰았다. 겨울 궁에 남은 마지막 장부를 무한으로 가져갈 참이었다.운설은 성문 밖까지 배웅했다. 선우현도 곁에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를 막지 않았다.“다음에는 어디로 갑니까?” 운설이 물었다.“길 식솔들이 부르는 곳으로. 내가 갈 수 있는 날까지.”“부르지 않으면요?”“내 작은 창고에서 욕먹으며 장부를 쓰겠소.”연도하가 웃었다. 예전의 화려한 겉옷도 비싼 말도 없었으나 눈빛은 오히려 가벼웠다.하란주는 수레 뒤에서 말편자를 살폈다. 작별이 길어져도 재촉하지 않았다. 운설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도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고 하면 싫어하겠죠?”“몹시.”“그럼 흑마장 말을 빌려줘서 고마워요.”“그건 받겠소.”하란주는 연도하와 같은 길을 가지만 그를 거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의 수레와 말은 다음 갈림에서 각자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그는 운설에게 작은 나무자 하나를 내밀었다. 한 치 표시에서 부러져 있었다.“이걸 왜 줘요?”“내가 그대 마음에서 한 치만 달라 했을 때 쓰던 자요. 돌려주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대 것이 아니었소.”운설은 받지 않았다.“당신 것이면 가져가요.”“그럼 부러뜨리겠소.”“그것도 당신이 정해요.”연도하는 자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수레 앞 작은 상자에 넣었다. 자기 욕망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남의 마음을 재는 데 다시 쓰지 않으려는 자리였다.“아직도 나를 사랑해요?”선우현의 손가락이 운설 손 안에서 아주 조금 굳었다. 연도하는 그 움직임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그렇소.”“그 마음 때문에 돌아오라고 하진 않을 거고?”“하지 않겠소.”“잊어 달라고도 안 해요.”“그것까지 그대 일이 되면 안 되니까.”연도하는 운설을 처음 본 밤을 말했다. 칼에 쫓기면서도 쓰러진 낯선 사람 맥을 먼저 짚던 손을 보고, 그 손이 자기에게 닿기를 바랐다고 했다.“그 마음 때문에 그대를 살린 적도 있고 위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4화 — 살아서 받는 벌

    형을 정하는 자리는 비어 있었다.대신 우물 유족과 황실 그릇 유족, 겨울 궁 평의가 각자 요구할 일을 가져왔다. 죽이라는 목소리도 남았고, 길을 모두 밝힐 때까지 살리자는 목소리도 있었다.혈비는 왕위를 잃었다. 그것으로 형을 끝내지 않았다. 아홉 우물에서 사라진 몸과 이름을 찾는 동안 겨울 궁의 곡식과 군사를 맡지 못하고, 어느 마을에서도 왕으로 대접받지 않기로 했다.평의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왕관을 다시 쓰지 못한다고 적으려 했다. 하진이 그 줄을 지웠다. 왕관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 죄를 다 치른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대신 찾은 이름마다 살아 있는 가족 앞에서 자기 몫을 말할 것을 넣었다. 유족이 만나기를 거절하면 문밖에 이름패만 두고 떠나야 했다. 용서를 받아 내기 위해 기다리지 못하게 했다.첫 길은 소맥의 뼈를 찾는 북쪽 배수로였다. 소맥의 아비가 동행하되 혈비를 용서할 의무가 없다고 적었다. 혈비는 그가 화를 내며 길을 바꾸어도 따라가겠다고 수결했다.“내가 지치면?” 그녀가 물었다.“쉬었다 갑니다.” 소맥의 아비가 말했다.“나를 위해?”“내 아들 뼈 찾으러 가는 길에 사람 하나 더 죽이기 싫어서.”혈비는 그 답을 왕의 은혜처럼 받지 않았다.사백은 동행을 청했다. 소맥의 아비가 먼저 반대했다. 왕의 호위가 따라오면 마을 사람들이 다시 입을 닫을 수 있다는 까닭이었다.사백은 활을 겨울 궁에 두고 길짐만 들겠다고 했다. 혈비는 자신 때문에 그가 또 삶을 바꾸지 말라 했지만 사백은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는 전하를 지키러 가는 게 아닙니다. 제 화살이 닿은 이름도 같은 북쪽에 있습니다.”두 사람은 목적지가 겹치는 동안만 함께 걷고, 갈림길에서 서로 허락을 묻지 않고 나뉘기로 했다.고윤은 열여덟 그릇의 길로 돌아갔다. 의술은 행하지 못하지만 잘못된 처방과 숨긴 장소를 말해야 했다. 첫 갈대 나루에서 오른쪽 귀를 잃은 목창수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이 시작이었다.“거기서 죽을 수도 있다.” 한겸이 말했다.“막아 달라고 하지 않겠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3화 — 한 권이 아닌 장부

    황실 군이 첫 사본을 빼앗았을 때 둘째가 성벽 밖으로 날아갔다.종이를 접은 새였다. 아이들이 지붕에서 수십 마리를 던졌고, 군사들은 칼로 종이새를 쫓았다. 이름은 진흙과 말발굽 사이에 떨어져도 읽혔다.둘째 날에는 수레 덮개에 글이 나타났다. 소금자루를 비운 천 안쪽에 장부를 베껴 둔 것이었다. 셋째 날에는 사공들이 배 밑창에 아홉 이름을 새겨 강을 내려갔다.넷째 날에는 처방을 외운 약초꾼들이 나타났다. 글을 빼앗기면 입으로 열두 숨과 첫 사흘을 전했다. 다섯째 날에는 이름을 노래로 부르는 아이들까지 생겼다. 가락은 마을마다 달라 황실 군이 한 노래를 금해도 다른 장단으로 살아났다.운설은 노래가 사람들의 고통을 놀이로 만들까 걱정했다. 하진에게 들려주자 그녀가 야란 손에 내 이름은 불러도 된다고 썼다. 다른 이름은 유족에게 하나씩 물었다. 소맥의 아비는 아들 이름 뒤에 죽은 날을 함께 부르는 조건으로 허락했다.황실 장수는 겨울 궁 원본을 모두 가져오라고 했다. 성문 평의는 내주었다. 불에 젖고 가장자리가 탄 한 권이었다.“이게 전부인가?”“원본은 이것입니다.” 궁녀가 답했다.“사본을 거둬라.”“우리 것이 아닙니다.”장수는 원본을 화로에 던졌다. 사람들은 막지 않았다. 종이가 검게 말리고 글씨가 사라지는 동안 성벽과 수레, 배에서 같은 이름을 읽었다.고윤이 불타는 장부 앞에 앉았다. 자기가 숫자로 만든 첫 기록이 재가 되자 얼굴이 흔들렸다.“아깝습니까?” 운설이 물었다.“내가 진실을 가진 사람인 척할 마지막 물건이 사라지는군.”“외워 둔 것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그래서 계속 말해야겠지.”고윤은 재 속에서 자기 수결만 집으려다 손을 거뒀다. 그것도 다른 이름과 함께 타도록 두었다.황실 군영에는 명을 거부하는 병사가 늘었다.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이름이 확인될 때까지 겨울 궁을 쏘지 않겠다고 창을 땅에 꽂았다. 장수는 셋을 매질했지만 넷째가 다시 창을 꽂았다.혈비의 옛 군사 가운데는 지금이 황실을 몰아낼 기회라며 야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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