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물장수는 그날 밤으로 접혔다.인상서의 그림은 서툴렀으나 짚은 것은 정확했다. 검을 숨긴 걸음. 짐꾼답지 않은 어깨. 그림을 그리게 한 눈이 — 그림보다 무서웠다."성문의 그 눈이겠지." 혈비가 말했다. "물병을 시음시킨 것부터 낚시였는지도 모른다. 물지게는 여기까지다."물길은 노새가 이었다. 밤마다 성 밖의 물이 가죽 부대에 담겨 무두장이 골목으로 들었다. 물장수였던 사람은 폐가의 안채로 들었다.남남의 법도가 그렇게 끝났다. 위장이 좁아진 값으로 부부는 한 지붕을 도로 얻었다."두 푼." 밤에 그가 물 부대를 부리며 말했다. "밀린 물값이 두 푼이오.""쪽지값까지 넉 푼으로 칩시다.""연 상단주가 낮에 묻더군." 그가 마개를 닫으며 말했다. "내일도 의원을 빌릴 수 있느냐고.""환자가 있답니까.""그대 낯을 오래 보는 병인 듯하오."운설이 웃었다. "폐사 언덕의 당신과 같은 병이네요."그는 웃지 않았다.한 지붕의 밤은 오랜만이라 도리어 낯설었다. 반 보 밖의 숨소리가 돌아온 것만으로 몸의 어딘가가 풀렸는데, 풀린 자리가 아릿했다.등잔을 끄고도 두 사람은 한참을 남남처럼 누워 있었다. 성문에서부터 며칠 치 이어 온 버릇이 어둠 속에서도 안 풀렸던 것이다. 먼저 버릇을 깬 것은 그의 손이었다. 어둠을 더듬어 온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채웠다."남남은," 그가 낮게 말했다. "여기까지 하오."운설은 잡힌 손을 제 입가로 가져갔다. 낮 동안 물지게를 지던 손등에 입술을 한 번 눌렀다."밀린 물값입니다.""이자로는 모자라오."그의 웃는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돌아누우려는데 팔이 허리를 감아 먼저 끌어당겼다. 며칠을 보지 못한 눈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낯을 더듬었다. 눈썹, 뺨, 입술. 닿기 전마다 반 호흡씩 멎었다. 허락을 기다리는 버릇까지 그 사람다워서, 운설은 그의 옷깃을 잡아 남은 거리를 제 쪽에서 없앴다.입술이 닿자 성문 앞에서 삼킨 눈길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못 본 척한 날들의 몫만큼 입맞춤은 길었
사흘. 그 두 글자를 소매에 넣은 채, 운설은 의녀의 일부터 했다.매질은 형당의 격식대로였다. 죽지 않을 만큼, 한데 잊지 못할 만큼. 등의 상처는 겹으로 앉았고 왼 어깨는 예전에 칼을 받은 자리가 도로 상해 있었다. 별저의 밤 그를 꿰맨 손이, 옥의 침상에서 같은 자리를 다시 꿰맸다."침값이 밀리는군요." 한겸이 감시 병졸 들으라는 듯 실없이 말했다. "이 옥이 의원한테는 밭이겠소.""밭치고는 소출이 나쁩니다." 운설도 같은 결로 받았다. "다들 말라서요."침이 들어가는 사이사이, 약재 이름에 실어 은어가 오갔다. 당귀(當歸)는 돌아갈 길. 방풍(防風)은 바람막이. 감초는 — 감초였다. 젊은 감찰은 옥에 갇힌 반년 동안 옥리들의 입에서 주운 것들을 약재 목록처럼 정리해 두고 있었다. 향선 여덟 척. 물지기 서른둘. 단의 도면. 처분의 차례."이상한 것이 하나 있소." 마지막 침을 받으며 그가 목소리를 더 낮췄다. "사흘 전 가는눈이 다녀갔소. 옛 짝이 — 아무것도 안 물었소. 안부도, 죄도, 아무것도. 반 시진을 창살 밖에 서 있다가 갔소. 그게 제일 이상하오.""남궁 아씨는 무사하시오." 그가 하나를 더 물었다. 묻고 나서 제가 물은 것에 스스로 낯을 굳혔다. "— 연통 줄이 무사한지 물은 거요. 감찰의 물음이오.""줄도, 줄의 임자도 무사합니다."묻지 않는 감찰과, 묻고 나서 무르는 감찰. 성문에서 침 함을 열고도 닫아 준 눈의 셈을 운설은 아직 읽을 수 없었고, 읽히지 않는 패는 셈에서 제일 무거웠다.곁 칸으로 옮기는 데는 병졸의 하품 한 번이면 족했다.아버지는 창살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옥이 사람을 구기는 자리인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잿빛 수의 안의 등이 곧아서, 운설은 하마터면 의녀의 낯을 잃을 뻔했다."의원 왔습니다.""수고가 많소."운백천이 손목을 내밀었다. 열두 줄의 임자의 맥은 — 고요했다. 옥의 냉기에 상하고 곡기가 모자라 얕은데, 그 밑이 흔들리지 않았다. 다투기를 끝낸 맥이 아니라, 다툴 것을 정해 둔
늦게 온 값으로 들은 것은, 반년 치 어둠의 지도였다.간수문은 새 당주가 선 그날로 잠적했다고 했다. 실각한 전임이 갈 자리는 증인석 아니면 옥인데, 어두워진 법정의 증인석은 옥으로 가는 문이라 — 문을 피해 바닥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혼자는 아니다."노인이 등잔을 돌리자, 폐가의 안쪽 방에서 낯들이 나왔다. 늙은 서리 둘. 퇴물 형리 하나. 붓을 놓지 않은 젊은 서기 셋. 집법당이 어두워질 때 등을 돌린 사람들이, 지하에서 종이를 지키고 있었다. 얼음여울의 기록 사본과, 만군 서기들의 수결과, 휘월의 자백 등본이 — 기름 먹인 함 셋에 나뉘어 그 방에 있었다. 붓을 놓지 않은 값으로 셋 다 수배가 걸렸다고, 젊은 서기 하나가 남 말 하듯 웃었다."법이 위에서 죽으면 밑에서 사는 법이지." 간수문이 말했다. "종이는 안 죽었다. 다만 — 종이를 펼 단이 없다.""단은 저들이 세워 주지 않았습니까." 운설이 말했다. "물 위에요."좌중의 눈이 그녀에게 모였다. 늙은 당주의 눈이 제일 오래 머물렀다."처분의 단을 법정으로 뒤집자는 것이냐.""만인이 모이는 자리는 저들도 무르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 증인이 서고 종이가 펴지면 — 만 개의 귀가 재판정이 되지요. 얼음여울에서 한 번 그리 되는 것을 봤습니다.""새 당주는 얼음여울의 대월이 아니다." 간수문이 고개를 저었다. "그자는 형당의 인두다. 죄를 지지는 것이 평생 소임이던 자야. 한데 — 그래서 틈이 있다. 그자는 법을 어겨서 이기려 들지 않아. 법을 시켜서 이기려 들지. 처분에도 격식을 다 밟는다. 마지막 진술. 증인 재청. 다 살아 있는 절차다.""절차가 문이군." 혈비가 말했다."절차가 문이다. 한데 그 문은 좁고 — 저들의 향은 넓지."향. 그 한 글자에 방의 공기가 내려앉았다.잇는 법의 담보가 성안에서는 성치 않다는 것을, 그날 밤 일행은 셈으로 확인했다. 빌려줄 강의 임자가 혈비인데, 언니의 귀도 성에 든 순간부터 흐려지고 있었다. 흐려진 강은 소리를 빌려주는 힘도 흐렸다
낯을 드는 차례는 물처럼 느리게 다가왔다.앞에서 소금 장수가 통을 다 열어 보였고, 숯쟁이가 짐을 부렸다 다시 쌌다. 운설은 제 차례를 기다리며 숨의 결을 골랐다. 의녀의 숨. 장사치의 숨. 열여덟 해 백로진에서 살던 그 숨을 몸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업은 이는 무엇이냐.""폐병 환자입니다. 물의 도시 의원이 용하다 해서요."진눈이 때맞춰 기침을 했다. 연기가 반, 진짜가 반인 기침. 젊은 무사의 폐는 이런 자리에서만 쓸모 있는 병이라고 본인이 우겼었다.가는눈이 약 봇짐을 열게 했다.마른 약재 틈에서 침 함이 나왔다. 감찰의 손이 그 함을 열었다. 아홉 대의 은침이 — 손잡이 끝에 쌀알만 한 달이 차례로 새겨진, 초승에서 보름까지 차오르는 아홉 달이 — 겨울 볕에 희게 빛났다.세상에 한 벌뿐인 물건이었다. 대장간의 새벽마다 두드려 만든 손이 지금 열 사람 뒤에서 물지게를 지고 서 있었다."침이 곱군."가는눈이 말했다. 말은 침을 짚고, 눈은 그녀의 낯에 있었다. 가늘게 뜬 눈 안쪽에서 무언가가 셈을 하는 동안, 다리 밑의 물소리가 — 흐려진 귀에도 — 한 번 크게 뛰었다."설로상단에서 고용한 의원이오."연도하가 수레 앞에서 통행패를 내밀었다. 검은 모피는 벗고 장사치의 짙은 갈옷을 입었는데, 옷을 바꾸어도 사람들이 먼저 길을 비키는 것은 같았다."침도 곱고 의원도 곱지. 어느 쪽을 오래 보든 약재가 녹지는 않겠지만 — 뒤의 수레는 상하오."열 사람 뒤에서 나무가 우는 소리가 났다. 물지게의 멜대가 선우현의 손 안에서 한 번 조여진 소리였다."의원 침이 고와야 환자가 덜 아프지요."운설이 답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열여덟 해 전 이 사람들이 고른 그릇의 목소리는, 이런 문 앞에서도 의녀의 목소리였다.가는눈이 함을 닫았다."가라. — 물의 도시는 요즘 물이 사나우니, 의원은 벌이가 좋겠군."줄이 다시 흘렀다. 등 뒤에서 물장수의 차례가 오는 소리를 그녀는 듣지 않으려 애썼다. 물병 여섯을 다 열게 하는 소리. 한 병을
아버지가 왜 저 안에 있는가.답은 사수가 떼어 온 방(榜)에 있었다. 물 옥사의 담에 붙은 죄목의 방. 운백천, 북적과 내통하여 거짓 증언을 사고판 죄의 수괴 — 라고 적혀 있었다.증인으로 간 사람을 죄인으로 뒤집은 것이다."혼례 사흘 뒤였습니다." 진눈이 기억을 짚었다. "새벽에 서신 한 장 남기고 내려가셨지요."운설도 그 서신을 기억했다. 증인의 자리는 죄인의 자리 곁이다 — 열두 줄의 임자가 단 아래 서야 종이가 산다. 아버지는 제 발로 남쪽 법정을 찾아가 제 죄를 내놓았고, 법정이 어두워지자 제일 먼저 삼켜졌다. 참말을 하러 간 입부터 가둔 것이다.그 새벽 서신을 발견하고 뒤쫓으려던 그녀를 잡은 것은 혈비였다. 저 사람 평생에 처음으로 제 발로 고른 길이다 — 막는 것이 예가 아니지. 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열두 줄의 임자와, 열두 줄을 읽어야 했던 딸과, 열두 줄에 세상을 잃은 맏딸의 셈이 그 새벽에 잠깐 한자리에 있었다."죄인 둘을 한 단에 올릴 셈이에요." 남궁완이 말했다. "젊은 법과 늙은 죄를 나란히. 구경거리로는 — 그보다 좋은 상차림이 없죠."그리고 그 상 앞에 앉을 손님이 저라는 것을, 운설은 알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죄를 적던 젊은 감찰. 옥 두 칸이 통째로 그녀를 부르는 미끼였다.입성의 판을 짜기 직전, 남궁완이 사람 하나를 불렀다.문으로 들어온 것은 검은 모피를 걸친 긴 사내였다. 사백의 손이 활 가까이 갔고, 혈비의 눈썹이 한쪽 올라갔다. 사내는 그 경계를 다 보고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허리에 칼이 없는데도 칼을 빼앗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웃지 않은 입가에 웃기 직전의 기색이 머물렀다."설로상단주 연도하예요." 남궁완이 부채를 접었다. "북관 밖 여섯 마을로 약재를 대는 사람. 성문을 드나들 수 있는 약재 수레가 열세 대고요.""열세 대 가운데 세 대는 비었소." 연도하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조금 잠겨 있었다. "사람과 물지게를 숨길 만큼."그의 시선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운설에게 멎었다.
보고는 어부 마을의 빈 집에서 들었다. 무한 어귀의 물안개가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그물 냄새 밴 방이었다.겨울이 문턱을 넘고 있었다. 아침이면 그물에 살얼음이 앉았고, 물안개는 낮에도 걷히지 않았다. 안개 너머의 물의 도시는 지붕 끝만 희미했다. 일 년 전 처음 보던 미로가 이제는 통째로 — 김이 오르는 향로처럼 보였다.남궁완은 보름 새 여윈 낯으로 말을 이었다. 세가의 연금을 뒷문으로 빠져나와, 가마도 시비도 없이 혼자 어귀까지 내려온 여인이었다. 부채는 접힌 채 무릎에 있었다. 그 여인이 부채를 잊고 앉은 것을 운설은 처음 보았다."보름 전부터 물지기들이 우물을 돌아요. 정화 의식이라면서 — 흰 가루를 한 줌씩. 새 당주의 영입니다. 성민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마시고, 밥 짓고, 빨래하고. 몸에 탈이 없으니 다들 고마워하지요.""임자 있는 강한테만 듣는 약이니까." 휘월이 말했다. 노인의 낯이 등잔 빛에 깊게 패어 있었다. "양을 봐라. 상시로, 낮게. 성에 드는 순간부터 귀가 흐려지게 — 그리고 정한 날에 크게 한 번. 판이 보이는구나."판은 이랬다.요녀가 성안의 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이 먼저 풀렸다. 보름을 그 말이 자라, 이제 무한의 골목마다 물독에 부적이 붙었다. 그리고 집법당이 그 독을 씻어 준다는 연극이 우물마다 돌았다. 두려움을 심은 손이, 두려움을 걷어 주는 손 노릇까지 하는 것이다."처분의 단은 물 위에 세워요." 남궁완이 말했다. "폐막의 그 단을 — 그 자리에 다시. 동지에, 만인이 보는 앞에서.""대량 살포의 손은 벌써 성안에 있어요. 향선(香船)이라고 — 동지 물맞이에 향불 실은 배를 띄우는 풍속이 있죠. 그 배들이 올해는 유난히 많이 들어왔대요. 뱃바닥에 실린 것이 향만은 아닐 거고요.""초대장이군." 혈비가 말했다."예. 한겸의 목은 미끼고요. 요녀가 구하러 들면 — 성안의 물이 통째로 향로가 되는 거죠. 만인 앞에서 강이 날뛰고, 도시가 젖고, 그 자리에서 처단까지. 격문이 참말이 되는 무대예요."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