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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조용한 계절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9 11:00:00

십일월 셋째 목요일 아침, 회사 로비의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수능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나는 화면을 보았다. 어느 고등학교 교문 앞. 새벽부터 선 후배들이 현수막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선배님 대박. 수험생들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부모들이 그 등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화면 속 사람들의 입에서. 그리고 흩어졌다.

기자가 말했다. 올해도 수능 한파가 찾아왔다고. 입실 마감은 여덟 시 십 분이라고.

여덟 시 십 분.

가을의 시계는 여덟 시 칠 분에 멈춰 있었다. 입실 마감 삼 분 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탔다. 나는 타지 않고 화면을 보았다. 교문이 닫히는 장면. 늦은 수험생 하나가 뛰어오고, 경찰관이 교문을 잡아 주는.

가을은 몇 년의 수능을 봤어야 했을까.

수험표에는 연도가 적혀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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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뒷면   137화. 10시 3분

    — 서아아침에 거실에 나가 보니 담요가 소파 위에 개어져 있었다.네 귀퉁이를 맞춰서. 반으로, 또 반으로. 모서리가 소파 팔걸이랑 나란하게.아빠다.방을 나올 때 문 바깥쪽에 뭐가 붙어 있었다. 노란 포스트잇. 눈높이에. 각진 글씨. 볼펜을 꾹꾹 눌러 쓴.담요 고마워.그게 다였다. 이름도 없었다. 괄호도 없었다. 아빠는 괄호를 안 쓴다. 엄마 거라서.나는 그걸 뗐다. 구기려고 했다. 손바닥 안에서 반쯤 구겨졌다. 그러다 멈췄다. 펴서 반으로 접었다. 교복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버릴 데가 없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식탁에 아빠가 앉아 있었다. 셔츠를 입고. 칼라가 반듯했다. 엄마가 다려 준 거다. 엄마는 셔츠를 칼라부터 다린다. 그것도 책에 있다.내 자리에 사과 접시가 있었다. 일곱 조각.나는 앉아서 한 조각을 먹었다. 아빠는 커피를 마셨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도 안 했다. 엄마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식탁 위에 커피 잔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반 잔.아빠가 그걸 마셨다.나는 일어났다. 가방을 멨다. 현관으로 갔다."다녀와."아빠가 식탁에서 말했다. 등 뒤에서.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신발을 신었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왼쪽을 벗었다. 다시 신었다. 찍찍이가 아니라 끈이라서, 끈을 다시 묶어야 했다. 짜증 났다. 왜 벗었는지 모르겠다.알면서.현관 옆 벽에 전신 거울이 있다. 신발 신을 때 보라고 엄마가 달았다. 나는 끈을 묶다가 거울을 봤다.거울 속에 식탁이 비쳤다. 아빠가 비쳤다. 아빠가 나를 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를.아빠 입술이 움직였다.하나. 둘. 셋.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다녀올게, 는 안 했다.

  • 세상의 뒷면   136화. 싸움

    — 서아아침에 식탁 위에 내 시험지가 있었다.앞면이 위로. 모서리가 식탁 모서리랑 딱 맞게. 1밀리도 안 틀리게.아빠다. 엄마는 이렇게 못 놓는다. 엄마가 놓으면 삐뚤다. 커피 잔 자국이 하나쯤 찍혀 있다.나는 시험지를 집었다. 뒤집었다. 귀퉁이의 연필 글씨가 그대로 있었다. 보이는데 안 한 거임. (진짜임)봤을까.모서리를 저렇게 맞춰 놓는 사람이면, 들었다가 내려놨다는 뜻이다. 들었으면 뒷면이 보였을 거다.모르겠다. 아빠는 식탁에 없었다. 벌써 출근했다. 엄마가 커피를 반 잔 마시면서 나를 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시험지를 반으로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학교 쓰레기통에 버렸다. 교실 뒤 재활용 칸에. 종이는 종이니까.그 뒤로 이 주 동안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했다.아빠는 매일 다녀왔어, 했다. 나는 매일 응, 했다. 엄마는 저녁마다 뭘 물었다. 점심 뭐 나왔어. 학원 선생님 바뀌었어. 짝은 잘 있어. 나는 대답했다. 짧게. 식탁은 조용했다. 조용한 게 싸우는 것보다 시끄러웠다.그 이 주 중에 하루, 밤 열한 시쯤 엄마가 내 방 문을 열었다. 노크는 했다. 대답은 안 기다렸다."아이스크림."그 한마디였다. 나는 학원 숙제를 펴 놓고 안 하고 있었다. 엄마는 벌써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따라 나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가 말했다."아빠 얘기 안 할게.""……응."진짜로 안 했다. 둘 다. 단지 편의점까지 가는 동안 엄마는 회사 얘기를 했다. 옆 팀 과장이 회의 중에 방귀를 뀌었는데 아무도 모른 척했다고. 모른 척하는 게 제일 웃겼다고. 나는 웃지 않으려다 웃었다. 편의점에서 엄마는 제일 비싼 거 두 개를 골랐다. 영수증은 안 받았다.돌아오는

  • 세상의 뒷면   135화. 수학

    — 우진자고 있지 않았다.기차가 대전을 지나고 나서부터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해인의 머리가 어깨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창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 레일의 이음매가 머리뼈로 올라왔다. 덜컥, 덜컥. 세지 않으려고 했다. 조금 셌다.터널에 들어갔을 때 눈을 떴다. 버릇이었다. 까만 창에 기차 안이 비치면, 셋을 센다.그 창에 서아가 있었다.통로 건너편. 무릎 위에 문제집. 샤프를 쥐고 있었다. 문제집의 맨 뒷장. 서아의 눈이 한 문제 위에 머물렀다. 짧게. 사십 초쯤.그리고 샤프가 움직였다. 한 번. 숫자 하나를 쓰는 길이.서아가 뒷장의 답을 넘겨 보았다. 입술이 아주 조금 비뚤어졌다. 웃은 건지 화난 건지 모를 모양으로.샤프를 거꾸로 들었다. 지웠다. 꼼꼼하게. 지우개 가루를 손바닥으로 모아 통로에 털었다. 문제집을 덮었다.나는 눈을 감았다.터널이 끝났다. 창이 밝아졌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자는 척했다. 서울역에서 해인이 나를 흔들어 깨울 때까지.서아가 창 속의 나를 봤는지는 모른다.그날 본 게 하나 더 있다.점심때 가을의 가게에서. 서아가 수저통으로 손을 뻗을 때 교복 아닌 긴소매 티셔츠 소매가 올라갔다. 왼쪽 손목에 은색이 있었다.할아버지의 시계.초침이 돌고 있었다.생일 다음 날부터 나는 서아의 손목을 보지 않았다. 보면 물어보고 싶어질 테니까. 차고 다니냐고. 감았냐고. 서아는 너무 아저씨 같다고 했다. 서랍에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누군가 감고 있었다. 매일. 하루를 못 가는 시계가 연휴 첫날 점심에 돌고 있었으니까.서아는 내 시선을 느끼기 전에 소매를 끌어내렸다. 나는 국밥을 떴다. 눈이 잠깐 감겼다. 맛 때문이라고 해인은 생각했을 것이다. 해인이 식탁 밑으로 내 발을 찼다.

  • 세상의 뒷면   134화. 부산

    — 서아오월 연휴 첫날, 우리는 새벽 기차를 탔다.아빠가 창가, 엄마가 그 옆, 나는 통로 건너편. 엄마는 출발하자마자 아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나는 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볼륨은 반만. 다 올리면 엄마가 깬다. 엄마는 자면서도 내 이어폰 소리를 듣는다.아빠는 아무것도 안 했다. 책도 안 읽고 휴대폰도 안 봤다. 창밖만 봤다.아빠는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지나가는 전봇대. 논에 물 대는 경운기. 멀리서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 날개. 아빠는 그런 걸 끝까지 본다. 창밖의 무언가가 시야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조금씩 돌린다.그러다 터널에 들어갔다.창이 까맣게 됐다. 까만 창은 거울이 된다. 기차 안이 비쳤다. 아빠 얼굴, 엄마 머리, 통로 건너 나.아빠 입술이 움직였다.하나. 둘. 셋.터널을 나왔다. 초록색 산이 확 들어왔다. 아빠 입술이 멈췄다.다음 터널. 하나, 둘, 셋.나는 세 번째 터널부터 창을 안 봤다. 아빠 입술을 봤다. 터널마다 셌다. 대전 지나서 터널이 많아졌다. 아빠는 한 번도 안 빼먹었다.그런 사람이다. 저 사람은.가을 이모네 가게는 골목 안에 있다.큰길에서 꺾어 들어가, 철물점과 세탁소 사이. 간판 글씨가 반쯤 벗겨졌다. 돼지국밥. 그 두 단어만 남아 있다. 이모는 간판을 새로 안 한다. 엄마가 하던 거라서.가게 앞에 가마솥이 둘. 김이 올라갔다. 골목 위로, 전깃줄 사이로. 냄새가 먼저 우리한테 왔다. 뼈 냄새. 파 냄새."서아 왔나!"계산대에서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가을 이모의 엄마. 우리는 국밥 할머니라고 부른다. 흰머리 섞인 파마머리. 목소리가 골목 끝까지 간다."아이고 니 또 컸나!""안 컸어요. 161에서 멈췄어요

  • 세상의 뒷면   133화. 할아버지 시계

    — 서아사월 십이일 아침, 식탁에 미역국이 있었다.엄마 미역국은 싱겁다. 십칠 년째. 엄마는 국을 못 끓인다. 된장국은 짜고 미역국은 싱겁다. 그 중간이 없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땐 할머니가 끓여서 보내 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엄마가 끓인다. 매년 싱겁게."간 봤어?""봤어. 딱 좋아."엄마는 매년 딱 좋다고 한다. 나는 소금을 조금 넣었다. 엄마는 못 본 척했다."열일곱이네. 우리 딸."엄마가 내 머리를 헝클었다. 나는 고개를 뺐다."며칠 됐는지 알아? 태어나서."엄마가 아빠를 보며 물었다. 일부러. 아빠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눈이 잠깐 위로 갔다. 계산하는 눈이다. 나는 그 눈을 안다."육천이백구 일.""세지 마."내가 말했다. 아빠가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웃었다. 소리 내서."윤년 넣었어?""넣었어. 네 번.""거봐. 저 사람은 저래."나는 미역국을 떴다. 싱거웠다. 소금을 넣었는데도.아빠는 식탁 끝에서 시계를 감았다. 하나, 둘, 셋. 입술만 움직이면서. 스무 번. 그리고 초침을 봤다. 끝까지. 초침이 12에 닿았다."돈다. 확인."나는 식빵을 입에 물고 현관으로 갔다. 신발을 신다가 한 짝을 벗었다. 다시 신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가끔 그런다. 한 짝을 벗었다 신는 거.그게 뭔지도 안다. 책 몇 쪽인지까지.모르는 척하고 문을 열었다.단지 입구 벚나무가 다 피어 있었다.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반쯤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가지 끝까지 하얬다. 바람이 없는데도 한 장씩 떨어졌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려오는 것 같았다. 천천히, 옆으로 조금씩 미끄러지면서.나는 그 밑을 지나가면서 위

  • 세상의 뒷면   132화. 모임

    — 우진토요일 밤 열 시.노트북 화면이 열한 칸으로 나뉘었다.나는 서재에 앉아 있었다. 문은 반쯤 열어 두었다. 오래전 해인이 붙인 노란 포스트잇은 이제 없다. 떨어진 지 오래다. 규칙은 남았다.거실에서 해인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서아 방은 조용했다. 문 밑으로 불빛만 가늘게.화면의 칸마다 사람이 있었다.왼쪽 위, 시카고. 토요일 아침 여덟 시. 하얀 찬장이 있는 부엌. 대니얼이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World's Okayest Dad. 손잡이 옆이 조금 깨졌다. 턱수염이 거의 하얗게 셌다."Morning, Woojin. Evening, I mean.""Evening."그 옆 칸, 부산. 가게 뒷방. 벽에 걸린 앞치마들. 가을이 목에 수건을 두른 채 하품을 참고 있었다. 서른하나. 머리를 짧게 잘랐다. 턱선에 닿게."우진 아저씨. 저 열한 시 되면 잘 거라예. 새벽 네 시에 불 올려야 돼서.""알아요.""알면서 매번 열 시에 잡지예.""시카고가 아침이라서요.""시카고가 문제네."대니얼이 우리말은 모르면서 자기 도시 이름은 알아듣고 머그잔을 들어 보였다. 가을이 웃었다.아래 칸들. 노르웨이의 바닷가 마을에서 늙은 어부가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앉아 있었다. 멕시코의 간호사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병원 휴게실에서 들어왔다. 캐나다의 대학생, 필리핀의 버스 기사, 아르헨티나의 할아버지. 칸마다 아래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 이름들은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그 사람들 거라서.그리고 오른쪽 맨 아래 칸.창호지 문. 낮은 탁자. 백발을 뒤로 단정하게 묶은 할머니가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화면이 조금 기울어 있었다. 손녀가 맞춰 주고 간 모양이었다."우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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