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천천히.
목욕탕 탈의실. 평상 위의 오답노트. 이건 베끼는 거 아님. 철컥, 하는 소리. 두 팔을 벌리고 선 가을. 회색 외투. 이음매가 없는. 허리의 열쇠 꾸러미. 사슬. 자물쇠 세 개. 입만 웃는 얼굴. 이우진 씨, 하고 내 이름을 되뇌던 목소리. 곧 여기가 제 이름이 될 테니까요.
해인은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불량 보고서를 듣는 사람처럼. 다 듣고 나서야 물었다.
"그 애는. 괜찮아?"
"괜찮대. 그 사람 짧대. 자기 입으로 그랬대."
"짧다는 게 뭔데."
"오래 못 있는다는 거야. 아마. 삼 분쯤 있다가 갔어. 자꾸 손목을 봤어. 시계도 없는데."
해인이 스톱워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 초에서 멈춘 숫자를.
"당신은 그 사람보다 오래 있었어?"
"응. 십오 분쯤."
"그럼 당신이 막아 줄 수는 없어? 다음에 또 오
검색 결과는 수억 개였다.Emma. 그 한 단어로.배우, 가수, 소설 속 주인공, 태풍 이름, 가게 이름, 아기 이름 순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짓는 여자아이 이름 중 하나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일등이었다고.나는 화면을 내렸다. 한참. 끝이 없었다.해인이 옆 의자에서 책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엠마?""응.""그 영어 공책 주인 딸?""응. 엠마네. 내가 그렇게 불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라서. 엠마의 엄마인지 아빠인지."해인이 책을 덮었다."그 사람 찾으려고?""……응."해인이 나를 보았다. 무언가 물으려다 말고, 의자를 당겨 화면 가까이 앉았다."엠마만 쳐서 어떻게 찾아. 세상에 엠마가 몇 명인데. 아는 거 다 말해 봐. 그 공책에 뭐가 있었는지."나는 기억나는 대로 말했다. 해인이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번호를 매겨서.시카고 근처. 운전 중이었다. 머릿속에 천둥. 돌아보니 뒷자리 카 시트의 엠마가 없었다. 엠마는 예닐곱 살. 앞니가 빠졌다고 자랑하던. 처음 며칠은 차 안에서 기다렸다. 나흘째 주유소 편의점에서 과자를 먹고 5달러를 놓았다. 매일 아침 엠마 사진을 봤다.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빌딩 계단을 사흘 동안 올랐다. 미시간 호수가 유리처럼 굳어 있었다. 백사십이 일째부터 스페인어를 배웠다. 엠마가 선생님이었다. 엠마 없는 엠마 선생님."스페인어."해인이 그 줄에 밑줄을 그었다."깨어나서 스페인어를 했을 수도 있잖아. 당신처럼. 당신은 깨어나서 외국어 중얼거렸다며. 원장 선생님이.""응.""그럼 그 사람도 깨어나서 이상한 말을 했을 거야. 누가 봤을 거고. 차 안이었으면 구급대원이라도."해인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천천히.목욕탕 탈의실. 평상 위의 오답노트. 이건 베끼는 거 아님. 철컥, 하는 소리. 두 팔을 벌리고 선 가을. 회색 외투. 이음매가 없는. 허리의 열쇠 꾸러미. 사슬. 자물쇠 세 개. 입만 웃는 얼굴. 이우진 씨, 하고 내 이름을 되뇌던 목소리. 곧 여기가 제 이름이 될 테니까요.해인은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불량 보고서를 듣는 사람처럼. 다 듣고 나서야 물었다."그 애는. 괜찮아?""괜찮대. 그 사람 짧대. 자기 입으로 그랬대.""짧다는 게 뭔데.""오래 못 있는다는 거야. 아마. 삼 분쯤 있다가 갔어. 자꾸 손목을 봤어. 시계도 없는데."해인이 스톱워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 초에서 멈춘 숫자를."당신은 그 사람보다 오래 있었어?""응. 십오 분쯤.""그럼 당신이 막아 줄 수는 없어? 다음에 또 오면."나는 대답을 찾았다. 오래."……나는 막힐 때만 가. 언제 갈지 나도 몰라. 그 사람은 또 올 거야. 내가 없는 날에. 가을이 쪽 시간으로 몇 달에 한 번 가는 사람이 뭘 막아.""……""그리고 거기 있어도. 나는 그 애 대신 뭘 해 줄 수가 없어. 오늘도 그랬어. 가을이가 막아섰어. 나는 옆에 섰어. 그게 다였어."해인이 한참 나를 보았다."옆에 섰네.""응.""그럼 된 거 아니야?"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된 건지 몰랐다. 그 사람은 사라졌다. 자물쇠도. 그런데 내가 막아서가 아니었다. 그 사람 시간이 짧아서였다.해인이 책을 집었다. 펴지 않았다."그 사람도 당신처럼 어딘가에서 쓰러졌다 깨는 사람일까. 이 초씩.""……모르겠어."
엔터를 누르지 못했다.검색창에 한 단어가 떠 있었다. Emma. 커서가 그 끝에서 깜빡였다. 켜졌다가, 꺼졌다가.누르면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안 나올 것이다.엠마네는 나갔다. 확실했다. 공책의 마지막 장이 반듯했으니까. 그런데 나갔다는 것과 여기 있다는 것은 달랐다. 이쪽 세상 어딘가에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몇 분 쓰러졌다가 깨어나서, 카 시트의 엠마를 안고.만약 없으면.그러면 나 혼자였다. 돌아온 사람은. 사 년을 들고 이쪽으로 건너온 사람은. 도서관 벽의 금을 기억하는 사람은.만약 있으면.그 사람은 무엇을 들고 왔을까. 나처럼 이름 세 개를 매일 쓸까. 수도꼭지를 조금 풀어 둘까. 아내에게 말했을까.어느 쪽이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무서웠다. 둘 다 알고 싶었다.나 말고도, 있을까.해인이 옆 의자에서 책장을 넘겼다. 아까 또 막혀,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니었는데. 아니라고 한 지 오 분도 안 되어서, 나는 그 한 단어 앞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노트북 화면을 반쯤 덮었다. 해인이 아직 몰랐으면 했다. 누구를 찾는지. 찾지 못하면, 해인에게 없는 사람을 하나 더 얹는 일이었다."……해인아."해인이 책을 내렸다."막히는 것 같아."해인이 나를 보았다. 아까는 아니라며,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묻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었다. 스톱워치. 엄지를 올렸다."가도 돼. 여기 있을게."나무 사물함. 평상. 고개를 돌린 채 멈춘 선풍기. 바나나우유 냉장고.목욕탕 여탕 탈의실이었다. 양쪽 벽의 거울이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평상 위에 도시락 가방이 놓여 있었다. 연분홍 누빔. 지퍼가 닫힌. 그 옆에 오답노트 한 권.
목욕탕은 시장 뒷골목에 있었다.낡은 삼 층 건물. 입구 위에 붉은 온천 표시. 굴뚝. 유리문에 금색 글씨로 영업시간. 새벽 다섯 시부터.가을이 문을 밀었다. 딸랑, 하고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소리가 몇 걸음 앞에서 삼켜졌다.카운터에 아무도 없었다. 작은 창구 너머에 수건이 개어져 쌓여 있었다. 그 옆에 요금표. 어른, 어린이. 그 아래 누군가 볼펜으로 적어 둔 메모. 사장님 오늘 병원, 열쇠는 서랍."여기 사장님은 엄마 계모임 친구예요. 제가 어릴 때 엄마랑 맨날 왔어요. 일요일마다."가을이 카운터 창구 안의 수건 더미를 보았다."엄마는 일요일에만 가게를 오후에 열었어요. 오전엔 저 데리고 여기 왔어요. 탕에 넣어 놓고, 불리고, 때 밀고. 엄마 손이 엄청 세요. 이태리타월로 등을 밀면 제가 아프다고 소리 질렀어요. 그럼 엄마가 그랬어요. 가만있어라, 다 벗겨지면 새 사람 된다."가을이 웃었다. 코로."초등학교 졸업하고는 안 왔어요. 혼자 씻는다고. 엄마가 좀 서운해했어요."가을은 카운터 앞을 지나며 창구 너머 수건 한 장을 집었다. 계산대에 동전 하나를 놓았다. 반듯하게."지난주에 씻으러 왔어요. 생수 들고. 탕 물은 안 흐르니까. 아저씨 공책에 욕조에 생수 부어서 씻었다고 써 있어서. 그러다 탈의실에서 거울을 봤어요. 양쪽 벽에. 어릴 때는 몰랐어요. 거울이 마주 보고 있는 줄. 엄마 등만 봤으니까."가을이 잠깐 말을 멈췄다."……엄마 등이 넓었어요. 그땐."가을이 카운터 옆 복도를 따라 걸었다. 여탕, 남탕. 가을이 멈췄다. 나를 돌아보았다."……거울은 여탕 탈의실에 있어요.""아.""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아요. 근데 좀 이상하죠."가을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시장이었다.반투명한 지붕. 형광등. 공중에 굳은 생선 가게의 물줄기. 어묵 냄비 위에 멈춘 김.그리고 통로 끝에서 흐르는 김.나는 그 김을 따라 걸었다. 천천히. 이제는 길을 알았다.돼지국밥 가게 앞. 가마솥 하나에서 김이 올라가고 있었다. 가을은 솥 앞에 없었다. 가게 안쪽,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도마를 올려놓고 대파를 썰고 있었다. 탁, 탁, 탁. 붉은 앞치마. 걷어 올린 카디건 소매.칼질이 서툴렀다. 대파가 제각각의 두께로 잘렸다. 가을은 그걸 한 번 들여다보고,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을 따로 모았다. 그리고 다시 썰었다.가게 벽의 못에 도시락 가방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 못이 하나 더 박혀 있었다. 거기 오답노트가 걸려 있었다. 끈을 달아서. 표지에 매직으로 크게. 5.가을이 고개를 들었다."우진 아저씨."칼을 내려놓았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허리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오셨어요. 요즘 자주 오시네요.""……그런가요.""저번엔 교문에 십 초 오셨죠? 쪽지 위치가 조금 틀어져 있었어요. 제가 붙인 거랑."나는 웃었다. 가을은 그걸 확인한 것이다. 돌아와서, 교문 기둥의 쪽지가 몇 밀리 틀어진 걸."바람도 없는데 틀어져 있으면, 누가 온 거잖아요.""……내가 손댄 기억이 없는데.""그럼 읽다가 숨 쉬셨나 보죠. 아저씨 숨은 흐르니까."가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솥으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김이 피어올랐다. 흘러서."아직 십 분은 더 끓여야 돼요. 한 바퀴 도실래요?""한 바퀴요?""시장이요.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가을이 앞치마를 입은 채로 가게를 나섰다. 도시락 가방은 못에 걸어 둔 채로. 처음이
노란 포스트잇이었다.서재 문 손잡이 바로 위, 문짝 한가운데에. 네 귀퉁이를 꾹꾹 눌러서. 해인이 냉장고에 붙이던 것과 같은 크기.동글동글한 글씨.— 믿는 건 모르겠어.— 근데 당신이 사 년을 혼자 있었다면, 이제 혼자 있지 마.그 아래 줄을 한 칸 띄우고, 번호를 매겨서.— 1. 서재 문은 닫지 않는다.— 2. 막히는 것 같으면 부른다. 옆방이니까.— 3. 다녀오면 다녀왔다고 말한다.— (진짜임)나는 복도에 서서 그 포스트잇을 오래 보았다.복도 끝 안방에서 해인이 서아를 재우는 소리가 들렸다. 곰 세 마리. 해인의 음정은 늘 조금 낮았다. 서아가 으쓱 으쓱 부분에서 깔깔 웃었다. 열이 내린 지 하루 만에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막히는 것 같으면 부른다.막힘은 예고하고 오지 않았다. 식탁에서, 서재에서, 결승선 뒤에서, 서아의 침대 옆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붙들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그런데 그 어느 순간 전에, 붙들고 있는 시간이 있었다. 분명히. 서른세 번째 장 앞에서 한참. 서아 손가락을 쥔 채로 한참. 그 한참 동안 나는 늘 혼자였다. 문이 열려 있어도.해인은 그 한참을 달라고 했다.나는 포스트잇을 떼지 않았다. 손끝으로 네 귀퉁이를 한 번 더 눌렀다. 잘 붙어 있는지. 확인.그리고 서재 책상에서 포스트잇을 한 장 꺼냈다. 각진 글씨로 적었다. 꾹꾹 눌러서.— 1. 알겠습니다.— 2. 알겠습니다. (막히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미안합니다.)— 3. 알겠습니다.— (확인)해인의 포스트잇 바로 아래에 붙였다. 노란 것 두 장이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