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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김신걸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던져놓았다.

그의 거대한 몸에 딱 붙는 검정 와이셔츠 때문인지, 옷을 다 입고 있어도 야한 느낌이 들었다.

와이셔츠 안에 그의 실루엣이 어떤지, 그가 침대에서 얼마나 야성적인지…….

원유희는 2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원유희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김신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로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원유희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군.”

김신걸은 하인에게 미리 준비된 음식을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중년의 남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김 선생님. 해물 짬뽕을 준비해 왔습니다.”

집사 해림이 두 손을 모은 채 한편으로 물러났다.

원유희는 ‘해물’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배고프다며. 이리 와서 먹어.”

김신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해산물 못 먹어. 알레르기가 있어서.”

원유희는 해산물을 먹으면 목구멍이 붓고 입술이 간지럽다.

어릴 때, 알레르기를 모르고 먹었다가 기도가 막혀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 성의를 무시하겠다고?”

원유희는 김신걸의 말투에서 그가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해물 짬뽕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걸 먹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원유희는 뒷걸음질 쳤다.

김신걸이 원유희를 잡아끌어 탁자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럼 보기라도 해.”

원유희는 탁자에 부딪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핸드백이 떨어지자 그 안에 있던 핸드폰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원유희는 무릎이 아픈 것도 잊고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

김신걸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고, 원유희는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떨어질 때 충격 때문인지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있었다.

김신걸은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보았다.

핸드폰에 푸른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본 원유희는 놀라서 다급히 김신걸에게 다가갔다.

“고모한테 전화가 올까 봐 핸드폰을 꺼뒀어…….”

원유희는 김신걸이 자신의 고모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밀번호.”

김신걸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원유희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입력할게.”

원유희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어 한 손으로 화면을 가리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김신걸은 그런 그녀가 우습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더니 탁자에 있던 짬뽕 그릇을 집어던졌다.

“쨍그랑!”

짬뽕 국물은 사방으로 튀었고 김신걸이 뒤돌아있는 틈을 타 원유희가 대문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저 여자를 잡아!”

겁에 질린 원유희의 두 다리는 누구보다 빨랐고 로비를 가로질러 나오다가 모퉁이에서 나온 경호원들을 보고 기겁해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하이힐을 벗기에는 경호원이 금방 그녀를 낚아챌 것 같았다.

“으악!”

원유희는 계단에서 굴렀고 계단 위에 김신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그녀는 이마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든 원유희는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칭칭 붕대가 감긴 이마를 만지자 찌릿한 통증이 들었다.

*

동이 트자 원유희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옷 속으로 집어넣고는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문을 굳게 닫은 후 핸드폰을 켜서 안에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정보를 모두 삭제했다.

‘이럴 줄 알고 노트북에 모든 정보를 백업해 뒀지.’

그녀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영희 이모에게 문자를 남겼다.

[전화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이들 걱정하지 않게 안심시켜 주시고요. 상황 마무리되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사모님,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걱정 마세요.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 잘 돌봐주세요.]

원유희는 영희 이모와의 문자도 모두 지우고 욕실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폈다.

그녀는 이곳이 김신걸의 저택 내부임을 깨닫고 출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녀는 핸드백은 내버려 두고 핸드폰만 챙겨서 계단 아래 출구로 향했다. 하지만 문이 굳게 잠겨있어 그녀는 다른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뒤에 경호원이 나타났고 그녀를 제지했다.

“날 내보내줘요!”

“김 선생님께서 아가씨를 잘 모시라고 했습니다.”

“하……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죠?”

“모릅니다.”

원유희는 한시라도 빨리 김신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원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고모, 전에 김신걸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그가 나타난 거예요?”

원유희는 김신걸이 제성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몰라! 만약 내가 신걸이 제성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너한테 말해줬겠지.”

원유희는 고모의 말을 믿었다. 고모 성격상 원유희에게 김신걸이 제성에 있다고 알려줬을 것이다.

‘몇 년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김신걸이 고모와 고모부의 결혼기념일에 나타난 이유가 뭐지? 가족이 보고 싶어서……? 그건 불가능한데……’

고모는 김신걸뿐 아니라 김 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과 연을 끊고 살았다.

원유희는 계단에서 구를 때 깨진 이마가 욱신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김신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설마 김신걸이 내가 연회장에 올 줄 미리 알고 덫을 놓은 건가?’

원유희는 덫에 걸린 쥐가 된 기분이었다.

여보세요? 유희야 듣고 있니? 너 별일 없지? 전화도 안 받고…… 고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괜찮아요. 귀국한 기념으로 옛 친구들 좀 만났어요. 술 마시느라 핸드폰을 못 봤네요. 고모 미안해요.

원유희는 거짓말을 둘러대며 김신걸의 저택에서 도망칠 궁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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