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Author: 서은월
연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막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다시 외쳤다.

“아버지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강시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서방님, 오늘 연아가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조금만 더 놀게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주종현은 단호하게 잘랐다.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다시 망성각으로 돌아왔다. 불꽃놀이가 이미 끝나 인파도 한결 줄어든 뒤였다. 마부는 마차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마차에는 이미 누군가 타고 있었다.

안에서는 주온청은 송하윤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오라버니 뒤에 선 여인을 보자마자 날카롭게 꾸짖었다.

“감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함부로 돌아다니다니! 연아라도 잃어버렸으면 당신 같은 천한 목숨이 열이라도 갚을 수 있었겠습니까!”

강시아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연아가 이만큼 자랄 때까지 그녀에게서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송하윤은 창백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괜찮다. 무엇보다 연아의 안전이 중요하지.”

주온청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몸이 약한데! 방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적 때문에 놀라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라버니께서는 굳이 저자들을 찾으러 나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송하윤은 고개를 숙이며 그 손등을 살짝 다독였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고,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다.

“그리 말하지 말거라. 종현 오라버니 역시 강 마님과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그러신 것이니.”

주종현은 마차 안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대의 마차는 어디 있는 겐가?”

주온청이 먼저 마차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오라버니, 하윤 언니께서 놀라셨습니다. 송부는 또 저 남쪽에 있으니 이 늦은 시각에 가기 힘들지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직접 모셔다 드리세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주종현의 품에 안겨있는 연아를 덥석 받아 간 후 강시아의 품에 돌려주었다.

“셋째 아가씨께서 서방님과 함께 송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면 됩니다. 저는 아이만 데리고 천천히 돌아가겠습니다.”

주종현은 모녀를 한 번 돌아보고 곧 동생에게 명했다.

“온청, 네가 연아를…”

“좋습니다! 제가 연아를 꼭 데려다 드릴게요!”

주온청은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내며 대답했다. 주종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마차가 떠나간 뒤, 주온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가, 곧장 고개를 돌려 강시아 모녀를 바라보며 얼굴빛을 차갑게 바꾸었다.

“쓸데없는 마음은 접으세요. 하윤 언니와 저희 오라버니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지낸 사이라, 언젠가는 반드시 저희 집안의 정실로 들어올 분이십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대답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주온청은 코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으면 됐습니다. 연아가 당신 뱃속에서 나왔다 해서 그것만 믿고 제멋대로 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연아는 오라버니의 장녀일 뿐, 적녀가 아닙니다. 당신이 진정 그 아이를 위한다면 사사로운 욕심 따위는 버리세요. 훗날 당신 모녀의 삶은 하윤 언니의 손에 달려 있으니.”

강시아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턱을 살짝 기울여 연아의 귀 옆에 얼굴을 기대었다.

절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그저 아주 낮은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셋째 아가씨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감히 불순한 마음은 품지 않겠습니다.”

국공부에 도착했을 때, 연아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디작은 몸이 강시아의 어깨에 축 늘어졌기에 그녀는 애써 아이의 다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명옥이 다가와 아이를 받으려 했으나 그녀는 손을 저어 물렸다.

그녀의 팔에서는 벌써 힘이 빠져 있었지만 끝내 스스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훗날 도망칠 때 아이조차 안아 올리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방으로 돌아와 하인들을 물린 뒤에야 그녀는 아이 곁에 누울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딸을 데리고 국공부를 떠나려면 오래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오늘 연이를 데리고 흑시의 통행증을 알아보러 간 일만 해도 위험이 많았다.

명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난 생에 송하윤이 집안에 들어온 후 곧 사직하고 떠났다. 안뜰에 있는 허드렛일 소녀도 겉으론 아무 탈 없었지만 그녀 또한 믿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전이야 말로 모녀의 생존을 지켜줄 유일한 밑천이었다.

강시아의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소용돌이가 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방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종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면 연아가 깰 테니 밖에서 이야기하자.”

밤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고 달빛은 고르게 땅 위를 비추고 있었다.

강시아는 툇마루 난간에 기댄 채 앉았다. 달빛을 이렇게 가만히 바라본 게 얼마 만인지. 그 또한 연아를 품고 있던 시절, 잠 못 들 때 잠시 나와 앉아보곤 했을 뿐이었다.

주종현은 달빛에 젖은 그녀의 맑고 투명한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송 아가씨의 성품이 매우 온화하다고 하셨다. 훗날 그녀가 집안에 들어온다 해도 너와 연아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온화하다 하셨습니까? 만약 그녀가 온화하지 않다면 그래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주종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 더러 너 하나만을 위해 정실을 들이지 말라는 것이냐?”

강시아는 입술을 열었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종현은 언젠가 반드시 아내를 맞이할 것이다. 송하윤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가 과연 친딸이 아닌 아이를 너그러이 품어줄 수 있단 말인가?

국공부는 본래 첩과 자식이 여럿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국공부 안주인의 수하에서 도대체 몇 명의 목숨이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의 시혜에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 나았다!

지난 생에서 저지른 오류는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주종현의 미간이 더욱 깊이 구겨졌다.

“강시아, 송 아가씨는 현명하고 덕이 있으며 무엇보다 연아를 무척이나 아낀다. 그녀가 국공부에 와서 연아에게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은 적이 있더냐?”

강시아는 소리 없이 웃었다.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무릎을 굽혀 절을 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다.

“첩이 망언을 하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책망해 주시옵소서.”

주종현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 꽂힌 배꽃 은비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시아, 장차 정실이 들어온 뒤 일 년이 지나 아이가 있든 없든… 그때는 네 피임약을 끊게 하겠다. 다시 한 아이를 안겨 주마.”

“첩, 서방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번졌다.

은혜라니. 정녕 우스운 일이었다.

“어머니!”

강시아가 눈을 떴을 때, 연아의 뜨겁고 축축한 입술이 얼굴을 여기저기 마구 쪽쪽대고 있었다. 언제 이리로 기어 온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어머니, 또 여기로 와서 주무신 겁니까? 혹시 연아가 또 발길질해서 어머니를 걷어찼나요?”

연아는 뽀얀 뺨으로 그녀를 마구 비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의 머리칼은 어느새 흘러내려 흐트러져 있었다. 보드라운 머리카락 가닥이 통통한 뺨 옆에 달라붙어 흔들릴 때마다 얼굴로 흘러내렸고, 그럴 때면 그녀는 작은 손으로 능숙히 쓸어 올렸다.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니다. 우리 연아는 늘 얌전히 잘 자는 아이잖아.”

모녀는 침상 위에서 데굴데굴 뒹굴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명옥이 새 옷과 작은 목함을 들고 들어왔다.

“마님, 세자께서 보내신 물건이옵니다.”

그 말에 강시아의 목소리가 곧장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기 두거라.”

명옥이 물러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전 이백 냥이 들어 있었다!

열네 살에 국공부에 들어와 스물하나가 되기까지 꼬박 일곱 해 동안 모아도 오십 냥을 모으지 못했는데... 단 하루 만에 주종현과 그 우연한 호구 같은 두 사람에게서 무려 오백 냥에 달하는 돈이 그녀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강시아는 눈앞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 은표를 모조리 끌어모아 연아의 작은 호랑이 베개 속에 밀어 넣었다. 은전은 너무 무거우니 반드시 은표로 바꿔야 한다.

연아가 기어와 물었다.

“어머니, 은전이 그렇게 좋습니까?”

강시아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맞췄다.

“그럼, 당연히 좋지!”

연아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어머니와 함께 은전을 캐러 가겠습니다!”

은전을 캐러 간다고?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따라 대나무 숲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땅속에서 진짜로 은전이 파헤쳐져 나왔을 때, 그녀는 너무 놀라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있었구나. 연아, 넌 어떻게 이걸 알았느냐?”

연아는 쓴 죽순 가지를 들고 땅을 꾹꾹 찌르며 대답했다.

“아지마가 죽순을 캐다가 발견했습니다.”

아지마는 연아의 첫 유모였다.

강시아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아지마는 이미 이 은전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연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지마께서 이건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강시아의 가슴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지난 생에 유모가 갑자기 사직한 게 이 은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황급히 땅을 다시 덮어 원래 상태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옷자락과 손이 흙투성이가 된 걸 보고 죽순 두 개를 뽑아 품에 안았다.

“연아야, 잊지 말거라. 오늘은 은전이 아니라 죽순을 캐러 나온 것이다!”

연아는 영문을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명옥과 하 유모는 모녀의 흙투성이 몰골에 흠칫 놀랐다.

명옥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마님, 어찌 아가씨를 데리고 이렇게 함부로 다니시는 것이옵니까?”

강시아는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띠며 명옥을 힐끗 바라보았다.

“함부로? 세자께서도 한마디 꾸짖지 않으셨는데 네가 감히 먼저 주인을 꾸짖는단 말이냐?”

“노… 노비는, 노비는 다만 마님께서 꾸중을 들을까 염려되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명옥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원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노비이었고 국공부인이 직접 세자 댁으로 보내 붙인 시녀였다. 한 번에 신분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정작 하늘로 치솟은 이는 천하디도 천한 강시아였다. 결국 그녀는 세자의 명으로 이 여자를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강시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서 연아를 씻기겠다. 혹여 누가 오면 불러다오.”

겉으로 강시아는 명옥의 주인이었으나 실상은 처분권조차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빌미가 필요했다. 하 유모는 잠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연아를 품에 안고 살며시 물었다.

“아가씨, 마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죽순을 캐러 가신 것이옵니까?”

연아는 어머니의 당부를 기억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 유모는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아이가 땅에 은전이 파묻혔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내기라도 했다가는 화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요 며칠 동안 그녀는 안채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누가 그 은전을 묻었든 괜스레 연루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 유모가 한 번 더 떠보려는 순간, 강시아가 죽순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지마의 죽순탕이 제일 맛있지. 그치, 연아야?”

“네. 맞습니다!”

하 유모는 모녀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보며 속으로는 근심을 안은 채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뒤, 강시아가 연아를 씻기고 나오자 벌써 큰 마님을 모시는 고 유모가 와 있었다.

그녀는 큰 마님 곁에서 수십 년을 모신 노비로, 국공 어르신조차도 그녀에게 두어 치 정도 체면을 세워줄 정도였다. 그런 인물이 감히 세자의 첩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곧 그녀의 체면이 무너졌다는 소리와 똑같았다.

강시아는 고 유모의 살벌한 낯빛만 보고도 분명 명옥이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았음을 짐작했다. 지난 생에서는 연아와 함께 죽순을 캐러 나가지도 않았기에 고 유모를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고 유모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강 마님, 대단합니다! 세자 곁의 유일한 총애라더니. 이 늙은 것도 차 세 잔을 마셔야 겨우 마님의 얼굴을 볼 수 있군요.”

강시아는 태연히 미소를 머금고 맞받았다.

“고 유모, 차 한 잔 드시지요.”

“차?”

고 유모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제가 차 물통입니까! 마님께서 하도 고귀하셔서 늙은 노비는 이제 감당 못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연아가 꿈속에서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었다.

고 유모는 그 소리에 순간 얼어붙더니 부리나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시아는 연아를 다독이며 고 유모를 앉혔다.

“아이가 그저 꿈을 꾸는 것뿐입니다. 어제 서방님과 너무 늦게까지 놀았거든요.”

그녀는 은반지를 빼내 고 유모의 손에 쥐여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유모,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지요. 저는 서방님의 작은 첩실에 불과한데 어찌 감히 유모의 명망과 권세에 비기겠습니까? 웃으실 일이지만 이 작은 뜰 안에서도 연아 말고는 제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답니다. 유모께서 이토록 오래 기다리신 것도 다 제 불찰이지요.”

고 유모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마님을 원망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저에게도 맡은 바가 많아 마음이 급했을 뿐입니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치닫던 기세가 조금은 수그러든 듯 보였다. 애초에 세자 댁의 내실은 큰 마님조차 깊이 간섭하지 않는 곳인데 그녀가 관여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

고 유모는 문 뒤의 희미한 그림자를 발견하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세자의 집안에 단 하나뿐인 첩, 누군가는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어린 계집아이가 감히 그녀를 이용해 오르려 하다니!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유모께서 오신 것은, 혹시 태후 마마의 생신 잔치에 바칠 예물 때문입니까?”

사실 그녀의 자수 솜씨는 일찍이 상 상궁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상 상궁는 궁에서 물러난 후 영국공의 청으로 집안 아가씨들의 수를 가르치고 시집갈 때의 혼수를 손수 지어주던 인물이었다. 다만 그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난 생에 국공부에서 올린 예물은 바로 그녀가 만든 서수헌도(瑞兽献桃) 자수였다.

강시아의 말에 고 유모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Pinakabagong kabanata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30화

    큰 마님 처소의 시녀라 한들, 설령 총애를 조금 더 받는다 해도 앞길은 결국 두 갈래뿐이었다. 하나는 관리를 붙여 혼인해 그대로 늙은 시모 노릇을 하는 길. 또 다른 하나는 그녀처럼 세자의 첩이 되어 날마다 문 앞에 서서 세자의 부름을 기다리며 끝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설령 송 가의 아가씨가 아니더라도 다른 집 아가씨는 얼마든지 있었다. 주모가 선하든 그렇지 않든, 운명은 늘 남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아설, 너 아직 기억나? 네가 왜 나랑 함께 경성을 떠나기로 했는지.”뜬금없는 한마디에 아설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감탄하듯 말했다.“이상합니다. 경성에서의 일들이 전부 전생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장우 오라버니한테 속은 게 계기가 되었고 그 뒤엔 위심에 대해서도…”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언니! 저한테서 무슨 말을 끌어내려고 그런 것이죠!”아마도 위심이 나서서 도와줬을 때, 그 순간부터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아람은 웃었다.“끌어내긴 무슨. 네 눈이 벌써 위심한테 붙어 있었는데 내가 뭘 더 캐겠어. 그만 놀릴게. 다만 한 가지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 네가 위심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도 알고 위심 역시 너를 연모한다는 것도 알아. 그건 다 보이니까. 위심이 말만 꺼냈으면 주종현은 분명 너희 둘을 이어줬을 거야.”아람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은 숨을 내쉬었다.“한데 내 계획이 새어나갈까 봐 일부러 그렇게 말했어. 주종현이 위심을 승진시키고 관가 아가씨를 소개해 줄 거라고. 그래서 네가 마음을 접고 나랑 떠나도록 만든 거야. 내가 이기적이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쯤 위심과 혼례를 올렸을지도 몰라.”아설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말했다.“한데 지금이랑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만약 제가 경성에 있었다면 이런 큰 장사는 못 했겠죠.”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웃었다.“지금은 위심이 버는 그 푼돈으론 아예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지금 그녀가 1년에 받는 배당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9화

    “언니!”아설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무슨 일이야?”아람은 고개를 들었다. 아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눈빛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무슨 좋은 일이길래 그렇게 신이 났어?”“큰 장사가 들어왔어요!”아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십만 석이에요. 곡식 십만 석!”창고 하나가 통째로 비다시피 할 물량이었다.“이 거래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내년에는 이런 대형 창고를 두 채는 더 지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언니가 배를 샀잖아요. 수매든, 출하든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하지만 아람은 오히려 미간을 좁혔다. 장사가 커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소휘의 밑천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이 사람은 누가 소개한 거야?”아설은 고개를 저었다.“소개는 없어요.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아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 일은 아직 오 관사에게 알리지 말고 뒤에서 우리가 직접 접촉해야 해. 만약 성사되더라도 이 건은 상행 장부로 돌리지 마.”아설은 곧바로 뜻을 알아차렸다.“이 건은 따로 굴려서 큰 고객을 숨기겠다는 것이네요?”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언니, 성왕 전하를 떼어내려는 겁니까?”아람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지금은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지.”“살아남는다고요?”아설은 바깥일을 자주 뛰는 만큼 작은 기류 변화에도 민감해져 있었다.“언니,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겁니까?”아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만 성왕 전하의 욕심이 너무 커. 괜히 말해서 네가 불안해질까 봐 그동안 말하지 않았을 뿐이야. 왕야는 아 씨 상행을 발판 삼아 세력을 키우려 하고 있어. 곡식, 배, 약재, 소금까지… 다 손에 넣으려 해.”“소금이요?”아설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염매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니까.성왕은 정말 돈이 된다면 가릴 게 없는 사람이었다.더구나 계약 문서에는 이름도 올리지 않고 뒤에서 자금만 대고 이익만 챙기니 고되고 위험한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8화

    “석 포두께서는 지금 당직 중이신 걸로 압니다만, 현아에 계시지 않고 개인 일을 보시는 건 썩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네요.”석 포두의 몸이 굳었다.“그건... 맞습니다.”농민이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석 포두는 그를 밀어 밖으로 내보냈다.“구촌 어르신,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더 기다릴수록 값은 계속 떨어질 겁니다. 다들 상의해서 서둘러 파시지요.”나중에 곡식으로 물건을 바꿔야 할 지경이 되면 그땐 정말 헐값이 될 테니 말이다.구촌 어른은 굳게 닫힌 대문을 한 번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밖에서 기다리던 농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구촌 어르신, 어찌 됐습니까!”“방법이 없답니까?”구촌 어른은 고개를 저었다.“될 수 있는 건 다 해봤네. 우리 집 곡식은 어제 갔던 장 씨 상회에 넘길 생각이네. 곡가가 워낙 불안정하니 그대들은 각자 형편에 맞게 결정하시게.”그 틈에서 구경만 하던 복이 삼촌이 코웃음을 쳤다.“역시 돈 있는 것들이 더 야박하다니까. 다 똑같네. 우리 굶어 죽으라고 버티는 거지. 우리가 솥에 밥도 못 올릴 때쯤 헐값으로 땅까지 사들이려는 거라고.”귀가 얇은 몇몇 사람들의 분노가 단번에 불붙었다.“맞아! 저 여자들이랑 조 씨 집이랑 뭐가 다르다고!”“주부에 고발합시다!”정신이 좀 든 사람이 복이 삼촌을 돌아보며 말했다.“복이 삼촌 말도 웃기네요. 안 사면 다른 데 가서 팔면 되지 않습니까? 조 씨 집은 예전에 곡식을 가져가 놓고 돈을 안 주거나 덜 줬습니다. 지금은 곡식이 다 자기들 손에 있는데 뭘 고발한다는 겁니까? 강제로 못 팔게 됐다고 화풀이하는 겁니까?”복이 삼촌은 이미 벌금도 물었고 올해 농사도 망쳤다. 그 모든 게 다 자기 선택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부추겨 함께 난리를 치려 했다.사정을 꿰뚫어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곡식을 점검했다. 지금 팔면 큰돈은 못 벌어도 헛수고는 면할 수 있을 터.끝내 깨닫지 못한 소수만이 복이 삼촌 곁에 남았다.“복이 삼촌, 그럼 이제 어찌 합니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7화

    “그건 네가 그들보다 잘 살고 있기 때문이야.”단낭은 그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그럼 더 잘 살아야겠습니다. 아주 잘 살아서 숨넘어가게 만들어야겠어요.”“그래야지.”아람은 복동이를 받아안았다.“그런 인간들 때문에 식욕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 난 아직도 생선살 죽을 기다리고 있거든.”단낭은 아람이 자신을 달래려 일부러 저렇게 말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단 씨 집안일로 더는 아람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비영이 해결하지 못하면 그땐 자신이 단비영을 해결하면 될 일이다. 자기 집안 일로도 모자라 이제는 상단 마님 집안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이다.단낭이 남편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단비영은 주종현과 함께 건주로 떠났다.무슨 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녹봉이 두 냥이나 올랐다.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단 씨 집안이 더더욱 단비영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단 노파는 단비영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 근처에 올 담은 없었기에 길에서 몇 차례 단낭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단낭은 그때마다 매몰차게 뿌리쳤다.아무리 험한 말을 퍼붓고 화이시키겠다고 협박해도 단낭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그녀의 태도에 단 노파는 분통이 터져 허벅지를 쿵쿵 내리쳤다.깊은 가을이 지나자 날이 부쩍 쌀쌀해졌고 아이들은 눈에 띄게 훌쩍 자라 있었다.아람 상단의 곡물 창고는 가득 찼다. 버티며 팔지 않던 농가들은 곡가가 내려가고 나서야 팔지 못한 것을 깨닫고 뒤늦게 허둥대기 시작했다.아설이 이 소식을 전하자 몇 달 동안 참아왔던 아람은 마침내 속이 후련해졌다.“여인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더니.”아람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냥 네가 알아서 하거라. 지금까지 전부 네가 결정했잖아.”정현에 머문 지 반 년이 넘은 아설은 어느새 제법 큰 상단 주인다운 기세를 갖추고 있었다. 석 포두가 농민들을 데리고 찾아왔을 때, 아설은 단호하게 문전박대를 했다. 예전에 차라리 풀어버리겠다고 했던 쌀을 이제 와서 사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6화

    “형님,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아직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달래시네요. 제가 할게요. 저는 한 번에 둘이나 낳았거든요.”단낭은 왕수연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손을 뻗어 아이를 빼앗으려 들자 단낭은 깜짝 놀라 몸을 틀어 아이를 안은 채 물러섰다.“왜 여기 온 것입니까!”“제가 왜 왔냐고요?”왕수연이 콧방귀를 뀌었다.“형님께서는 몰래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혼자만 꿀꺽하시는 겁니까?”그녀는 목을 길게 빼고 안쪽을 훑어보았다.“상단 마님은 어디 계십니까?”단낭은 복동이를 달래며 오늘따라 새 옷감으로 단장한 올케를 곁눈질해 보았다. 곧 그녀의 입가에 조소가 스쳤다.“아까 상단 마님께서 직접 문을 열어주셨는데 못 봤습니까?”문밖에서는 아직도 단 노파의 귀신 울음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왕수연의 얼굴이 확 굳었다.“큰일 났네!”그녀는 몸을 돌려 급히 문쪽으로 달려갔다.단 노파는 평생 거친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아람 같은 여자가 떼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이 손 놓으세요! 안 그러면 사람을 부를 겁니까! 감히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이닥치는 겁니까?”아람은 이런 몰상식한 노파를 처음 봤다.“네가 먼저 날 밀쳤잖아. 오늘은 주인댁에 확실히 보여줄 거다!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일한단 말이냐!”단 노파는 아람의 다리를 악착같이 끌어안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내리면 자기도 삼천 문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 생각에 고함은 더 커져만 갔다.맞은편 집에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봉변을 당한 줄 안 것이다.“아람 마님, 강세오 대인을 불러드릴까요?”그때 왕수연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어머니! 어서 놓으세요!”그녀는 노파를 끌어당기며 급히 말했다.“이분이 바로 상단 마님입니다.”단 노파는 그제야 손을 풀었다.“아, 아아… 상단 마님이셨군요.”순식간에 얼굴에 웃음을 덕지덕지 붙였다.“이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아람은 얼굴을 굳힌 채 두 사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5화

    단비영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게다가 단낭이 얼마를 받든 그건 전부 그 사람 능력입니다.”그때, 문밖에서 냉소 섞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애나 보는 거였습니까? 그게 무슨 능력입니까? 여인이라면 다 하는 건데요.”단비영의 제수, 왕수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섰다.왕 노파가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전 또 큰아주버님께서 무슨 큰 재주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결국 자기 마누라한테 다 몰아준 거였네요.”그녀는 딸을 돌아보며 말했다.“수연아, 팔백 문이면 됐다. 그런 고생은 하지 말거라.”단비영은 예전엔 그나마 말이 통하던 어머니마저 이렇게 변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값은 마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사람을 뽑는 것도 그쪽입니다. 지금 여기서 저를 몰아붙여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상단 주인께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잡일꾼 하나, 녹봉은 팔백 문뿐이라고요. 내일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뽑겠답니다.”그는 더 이상 누구의 반응도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단낭은 아람을 마주하기가 몹시 민망했다. 남편은 효심만 앞서고 비바람 맞으며 번 돈은 고스란히 둘째 집안의 입으로 들어가니 말이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고작 집을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잊어버린 것일까?엉망진창인 집안 사정에 마님까지 끌어들이다니. 자기 아우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칫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자신이 무슨 낯으로 그녀를 본단 말인가?아람은 단낭이 이틀째 웃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아직도 그 일로 속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아직도 화났느냐? 그만 생각하거라. 잡일꾼치곤 팔백 문이 좀 센 건 맞지만 네가 삼천 문인데 제수는 팔백 문이잖아. 게다가 이틀이나 지났다. 그러니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단낭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가에 서운함이 어렸다.“송구합니다. 괜히 이런 일로 폐를 끼쳐서요.”아람은 단낭의 품에서 복동이를 받아 안았다.“어제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