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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서은월
연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막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다시 외쳤다.

“아버지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강시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서방님, 오늘 연아가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조금만 더 놀게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주종현은 단호하게 잘랐다.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다시 망성각으로 돌아왔다. 불꽃놀이가 이미 끝나 인파도 한결 줄어든 뒤였다. 마부는 마차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마차에는 이미 누군가 타고 있었다.

안에서는 주온청은 송하윤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오라버니 뒤에 선 여인을 보자마자 날카롭게 꾸짖었다.

“감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함부로 돌아다니다니! 연아라도 잃어버렸으면 당신 같은 천한 목숨이 열이라도 갚을 수 있었겠습니까!”

강시아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연아가 이만큼 자랄 때까지 그녀에게서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송하윤은 창백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괜찮다. 무엇보다 연아의 안전이 중요하지.”

주온청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몸이 약한데! 방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적 때문에 놀라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라버니께서는 굳이 저자들을 찾으러 나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송하윤은 고개를 숙이며 그 손등을 살짝 다독였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고,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다.

“그리 말하지 말거라. 종현 오라버니 역시 강 마님과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그러신 것이니.”

주종현은 마차 안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대의 마차는 어디 있는 겐가?”

주온청이 먼저 마차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오라버니, 하윤 언니께서 놀라셨습니다. 송부는 또 저 남쪽에 있으니 이 늦은 시각에 가기 힘들지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직접 모셔다 드리세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주종현의 품에 안겨있는 연아를 덥석 받아 간 후 강시아의 품에 돌려주었다.

“셋째 아가씨께서 서방님과 함께 송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면 됩니다. 저는 아이만 데리고 천천히 돌아가겠습니다.”

주종현은 모녀를 한 번 돌아보고 곧 동생에게 명했다.

“온청, 네가 연아를…”

“좋습니다! 제가 연아를 꼭 데려다 드릴게요!”

주온청은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내며 대답했다. 주종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마차가 떠나간 뒤, 주온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가, 곧장 고개를 돌려 강시아 모녀를 바라보며 얼굴빛을 차갑게 바꾸었다.

“쓸데없는 마음은 접으세요. 하윤 언니와 저희 오라버니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지낸 사이라, 언젠가는 반드시 저희 집안의 정실로 들어올 분이십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대답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주온청은 코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으면 됐습니다. 연아가 당신 뱃속에서 나왔다 해서 그것만 믿고 제멋대로 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연아는 오라버니의 장녀일 뿐, 적녀가 아닙니다. 당신이 진정 그 아이를 위한다면 사사로운 욕심 따위는 버리세요. 훗날 당신 모녀의 삶은 하윤 언니의 손에 달려 있으니.”

강시아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턱을 살짝 기울여 연아의 귀 옆에 얼굴을 기대었다.

절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그저 아주 낮은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셋째 아가씨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감히 불순한 마음은 품지 않겠습니다.”

국공부에 도착했을 때, 연아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디작은 몸이 강시아의 어깨에 축 늘어졌기에 그녀는 애써 아이의 다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명옥이 다가와 아이를 받으려 했으나 그녀는 손을 저어 물렸다.

그녀의 팔에서는 벌써 힘이 빠져 있었지만 끝내 스스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훗날 도망칠 때 아이조차 안아 올리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방으로 돌아와 하인들을 물린 뒤에야 그녀는 아이 곁에 누울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딸을 데리고 국공부를 떠나려면 오래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오늘 연이를 데리고 흑시의 통행증을 알아보러 간 일만 해도 위험이 많았다.

명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난 생에 송하윤이 집안에 들어온 후 곧 사직하고 떠났다. 안뜰에 있는 허드렛일 소녀도 겉으론 아무 탈 없었지만 그녀 또한 믿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전이야 말로 모녀의 생존을 지켜줄 유일한 밑천이었다.

강시아의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소용돌이가 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방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종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면 연아가 깰 테니 밖에서 이야기하자.”

밤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고 달빛은 고르게 땅 위를 비추고 있었다.

강시아는 툇마루 난간에 기댄 채 앉았다. 달빛을 이렇게 가만히 바라본 게 얼마 만인지. 그 또한 연아를 품고 있던 시절, 잠 못 들 때 잠시 나와 앉아보곤 했을 뿐이었다.

주종현은 달빛에 젖은 그녀의 맑고 투명한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송 아가씨의 성품이 매우 온화하다고 하셨다. 훗날 그녀가 집안에 들어온다 해도 너와 연아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온화하다 하셨습니까? 만약 그녀가 온화하지 않다면 그래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주종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 더러 너 하나만을 위해 정실을 들이지 말라는 것이냐?”

강시아는 입술을 열었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종현은 언젠가 반드시 아내를 맞이할 것이다. 송하윤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가 과연 친딸이 아닌 아이를 너그러이 품어줄 수 있단 말인가?

국공부는 본래 첩과 자식이 여럿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국공부 안주인의 수하에서 도대체 몇 명의 목숨이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의 시혜에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 나았다!

지난 생에서 저지른 오류는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주종현의 미간이 더욱 깊이 구겨졌다.

“강시아, 송 아가씨는 현명하고 덕이 있으며 무엇보다 연아를 무척이나 아낀다. 그녀가 국공부에 와서 연아에게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은 적이 있더냐?”

강시아는 소리 없이 웃었다.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무릎을 굽혀 절을 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다.

“첩이 망언을 하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책망해 주시옵소서.”

주종현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 꽂힌 배꽃 은비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시아, 장차 정실이 들어온 뒤 일 년이 지나 아이가 있든 없든… 그때는 네 피임약을 끊게 하겠다. 다시 한 아이를 안겨 주마.”

“첩, 서방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번졌다.

은혜라니. 정녕 우스운 일이었다.

“어머니!”

강시아가 눈을 떴을 때, 연아의 뜨겁고 축축한 입술이 얼굴을 여기저기 마구 쪽쪽대고 있었다. 언제 이리로 기어 온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어머니, 또 여기로 와서 주무신 겁니까? 혹시 연아가 또 발길질해서 어머니를 걷어찼나요?”

연아는 뽀얀 뺨으로 그녀를 마구 비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의 머리칼은 어느새 흘러내려 흐트러져 있었다. 보드라운 머리카락 가닥이 통통한 뺨 옆에 달라붙어 흔들릴 때마다 얼굴로 흘러내렸고, 그럴 때면 그녀는 작은 손으로 능숙히 쓸어 올렸다.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니다. 우리 연아는 늘 얌전히 잘 자는 아이잖아.”

모녀는 침상 위에서 데굴데굴 뒹굴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명옥이 새 옷과 작은 목함을 들고 들어왔다.

“마님, 세자께서 보내신 물건이옵니다.”

그 말에 강시아의 목소리가 곧장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기 두거라.”

명옥이 물러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전 이백 냥이 들어 있었다!

열네 살에 국공부에 들어와 스물하나가 되기까지 꼬박 일곱 해 동안 모아도 오십 냥을 모으지 못했는데... 단 하루 만에 주종현과 그 우연한 호구 같은 두 사람에게서 무려 오백 냥에 달하는 돈이 그녀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강시아는 눈앞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 은표를 모조리 끌어모아 연아의 작은 호랑이 베개 속에 밀어 넣었다. 은전은 너무 무거우니 반드시 은표로 바꿔야 한다.

연아가 기어와 물었다.

“어머니, 은전이 그렇게 좋습니까?”

강시아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맞췄다.

“그럼, 당연히 좋지!”

연아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어머니와 함께 은전을 캐러 가겠습니다!”

은전을 캐러 간다고?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따라 대나무 숲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땅속에서 진짜로 은전이 파헤쳐져 나왔을 때, 그녀는 너무 놀라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있었구나. 연아, 넌 어떻게 이걸 알았느냐?”

연아는 쓴 죽순 가지를 들고 땅을 꾹꾹 찌르며 대답했다.

“아지마가 죽순을 캐다가 발견했습니다.”

아지마는 연아의 첫 유모였다.

강시아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아지마는 이미 이 은전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연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지마께서 이건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강시아의 가슴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지난 생에 유모가 갑자기 사직한 게 이 은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황급히 땅을 다시 덮어 원래 상태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옷자락과 손이 흙투성이가 된 걸 보고 죽순 두 개를 뽑아 품에 안았다.

“연아야, 잊지 말거라. 오늘은 은전이 아니라 죽순을 캐러 나온 것이다!”

연아는 영문을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명옥과 하 유모는 모녀의 흙투성이 몰골에 흠칫 놀랐다.

명옥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마님, 어찌 아가씨를 데리고 이렇게 함부로 다니시는 것이옵니까?”

강시아는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띠며 명옥을 힐끗 바라보았다.

“함부로? 세자께서도 한마디 꾸짖지 않으셨는데 네가 감히 먼저 주인을 꾸짖는단 말이냐?”

“노… 노비는, 노비는 다만 마님께서 꾸중을 들을까 염려되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명옥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원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노비이었고 국공부인이 직접 세자 댁으로 보내 붙인 시녀였다. 한 번에 신분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정작 하늘로 치솟은 이는 천하디도 천한 강시아였다. 결국 그녀는 세자의 명으로 이 여자를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강시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서 연아를 씻기겠다. 혹여 누가 오면 불러다오.”

겉으로 강시아는 명옥의 주인이었으나 실상은 처분권조차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빌미가 필요했다. 하 유모는 잠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연아를 품에 안고 살며시 물었다.

“아가씨, 마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죽순을 캐러 가신 것이옵니까?”

연아는 어머니의 당부를 기억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 유모는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아이가 땅에 은전이 파묻혔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내기라도 했다가는 화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요 며칠 동안 그녀는 안채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누가 그 은전을 묻었든 괜스레 연루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 유모가 한 번 더 떠보려는 순간, 강시아가 죽순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지마의 죽순탕이 제일 맛있지. 그치, 연아야?”

“네. 맞습니다!”

하 유모는 모녀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보며 속으로는 근심을 안은 채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뒤, 강시아가 연아를 씻기고 나오자 벌써 큰 마님을 모시는 고 유모가 와 있었다.

그녀는 큰 마님 곁에서 수십 년을 모신 노비로, 국공 어르신조차도 그녀에게 두어 치 정도 체면을 세워줄 정도였다. 그런 인물이 감히 세자의 첩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곧 그녀의 체면이 무너졌다는 소리와 똑같았다.

강시아는 고 유모의 살벌한 낯빛만 보고도 분명 명옥이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았음을 짐작했다. 지난 생에서는 연아와 함께 죽순을 캐러 나가지도 않았기에 고 유모를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고 유모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강 마님, 대단합니다! 세자 곁의 유일한 총애라더니. 이 늙은 것도 차 세 잔을 마셔야 겨우 마님의 얼굴을 볼 수 있군요.”

강시아는 태연히 미소를 머금고 맞받았다.

“고 유모, 차 한 잔 드시지요.”

“차?”

고 유모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제가 차 물통입니까! 마님께서 하도 고귀하셔서 늙은 노비는 이제 감당 못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연아가 꿈속에서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었다.

고 유모는 그 소리에 순간 얼어붙더니 부리나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시아는 연아를 다독이며 고 유모를 앉혔다.

“아이가 그저 꿈을 꾸는 것뿐입니다. 어제 서방님과 너무 늦게까지 놀았거든요.”

그녀는 은반지를 빼내 고 유모의 손에 쥐여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유모,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지요. 저는 서방님의 작은 첩실에 불과한데 어찌 감히 유모의 명망과 권세에 비기겠습니까? 웃으실 일이지만 이 작은 뜰 안에서도 연아 말고는 제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답니다. 유모께서 이토록 오래 기다리신 것도 다 제 불찰이지요.”

고 유모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마님을 원망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저에게도 맡은 바가 많아 마음이 급했을 뿐입니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치닫던 기세가 조금은 수그러든 듯 보였다. 애초에 세자 댁의 내실은 큰 마님조차 깊이 간섭하지 않는 곳인데 그녀가 관여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

고 유모는 문 뒤의 희미한 그림자를 발견하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세자의 집안에 단 하나뿐인 첩, 누군가는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어린 계집아이가 감히 그녀를 이용해 오르려 하다니!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유모께서 오신 것은, 혹시 태후 마마의 생신 잔치에 바칠 예물 때문입니까?”

사실 그녀의 자수 솜씨는 일찍이 상 상궁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상 상궁는 궁에서 물러난 후 영국공의 청으로 집안 아가씨들의 수를 가르치고 시집갈 때의 혼수를 손수 지어주던 인물이었다. 다만 그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난 생에 국공부에서 올린 예물은 바로 그녀가 만든 서수헌도(瑞兽献桃) 자수였다.

강시아의 말에 고 유모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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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종현이 말했다.“책망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물어본 것뿐이다.”그제야 계소만은 마음을 놓았다.“몇 번 되지 않습니다.”“한 번은… 강 누님께서는 자기 같은 여인은 사기당할 까 두렵다며 진주를 옥보루에 맡겨 위탁 판매해 달라 부탁했습니다.”“진주를 위탁 판매했다고?”주종현의 미간이 좁게 찌푸려졌다.계소만은 기억을 더듬으며 덧붙였다.“태후의 생신 연회 전 일이었습니다.”주종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 연무장에 가서 만천을 찾아오너라.”“예.”계소만이 나가고서야 주종현은 곁에 놓인 자수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노잣돈을 벌기 위해 이런 위험한 일까지 했다는 말이냐?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떠나려 한 것이냐?”그는 텅 빈 뜰을 바라보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강시아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다.첫눈에 보았을 때부터 그랬다.집안의 희망을 짊어진 장자로서 그는 할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영국공부의 장래를 떠받들겠다고 다짐했다.아버지가 늘 그를 꾸짖던 시절, 그는 강시아를 만났다. 그의 신분조차 알지 못했던 강시아는 단번에 그의 눈 속에 깃든 피로를 알아보았다. 나이가 어렸던 그는 뜻밖에도 그 작은 소녀에게서 마음이 놓이는 안도감을 찾게 된 것이다.두 번째로 만난 것은 그 이듬해였다. 그때는 멀리서도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그녀 또한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듯했지만 그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피해 버렸다.그해 연회에서 강시아는 그의 사촌 형님의 눈에 띄었고 형님이 농담조로 데려가겠다 하자 그도 농담처럼 이를 막아섰다.그러나 그날 밤, 옷을 전해주러 가던 길에 강시아는 술을 마시려던 형님과 마주쳤고 이미 그녀에게 눈독 들이고 있던 형님은 결국 약을 먹이고 말았다.이를 눈치챈 그는 곧장 강시아를 데리고 나왔지만 약의 힘은 어마어마했으며 그 일로 인해 강시아가 아이를 갖게 되자 그는 결단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02화

    경성.주종현이 막 집으로 돌아오자 콩뼈가 대문 밖까지 달려 나와 그를 반겼다.강시아 일행이 없는 지금, 콩뼈는 그와 함께 지내며 매일 오후마다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주종현은 꼬리를 흔들며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작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너도 이렇게 날 기다리는데… 그녀는 왜 이틀도 기다려주지 못했을까?”콩뼈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발치에서 두어 바퀴를 돌더니 몸을 붙여오며 끙끙 소리를 냈다.마치 왜 자기를 데려가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듯했다.그때, 향 유모가 다가와 아뢰었다.“세자 저하, 작은 마님께서 오시랍니다.”고 유모가 그 모습을 보고는 급히 말을 보탰다.“큰 마님께서 세자를 뵙고 싶어하시옵니다.”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주종현은 콩뼈를 데리고 곧장 작은 뜰로 향했다.“요즘 일이 많아 찾아뵙기 어려울 것 같구나.”“세자 저하…”고 유모가 뒤따라오려 하자 향 유모가 길을 막아섰다.“고 유모, 세자께서 바쁘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고 유모는 향 유모를 한번 바라보더니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 큰 마님의 뜰로 걸어갔다.이 일은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큰 마님은 송하윤을 영국공부로 데려와 주종현에게 받아들이라고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 씨뿐 아니라 영국공마저 크게 노했다. 지금 송 가는 진흙탕이었고 규수라면 경성에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송하윤을 고집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큰 마님은 아들과 며느리가 말을 듣지 않자 둘을 건너뛰고 곧장 손자에게로 향했다. 요구도 낮아져 정실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부탁했다. 이에 조 씨는 분을 삭이지 못해 거의 피를 토할 기세로 화를 냈다. 큰 마님이 송 가를 돕겠다며 손자까지 희생시키려 한다는 생각에 그녀 역시 눈에 불을 켜고 며느릿감을 물색하는 중이었다.정작 당사자인 아들은 집안을 피해 다니며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결국 주종현은 자신의 거처를 아예 작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01화

    “당신은 연아를 안기 힘들 테니 제가 안을게요.”아설은 연아를 문희에게 건네고서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저… 저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아람은 그녀를 끌어안고 달래 주었다.“미안하다, 설아.”만약 자신이 그녀들을 데리고 행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산적을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아설은 그를 꽉 껴안으며 울먹였다.“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큰 수염쟁이가 언니를 목 졸라 죽일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그녀는 옆방에 갇혀 있었다. 문은 걸쇠로 잠겨 있었기에 벽에 난 작은 구멍으로 겨우 옆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급하고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속을 태우며 지켜보는 것뿐이었다.아람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괜찮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야.”문희가 나섰다.“전하의 행렬과 함께라면 다른 건 몰라도 목숨 걱정은 없습니다.”아람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결국 입술만 다물고 아설의 어깨를 다독였다.“문희 아가씨 말이 맞다. 전하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으니 더는 이런 위험은 없을 것이다.”마차가 성 안으로 들어섰을 때, 동쪽 하늘이 희끗하게 밝아오고 있었다.행관 밖 마차 행렬은 모두 정비되어 있었고 당기봉을 제외한 관리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주목이던 시영은 당분간 자사의 직무를 대리하고 있었는지 가장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틀 내내 공포에 떨었는데 성왕이 떠난다는 소식에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젯밤 누군가 주목부에 잠입하는 바람에 그는 부인과 함께 침상 아래에 숨어 날이 밝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졸음을 참느라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억지로 하품을 삼키고 있었다. 그가 눈물을 훔치던 순간, 성왕이 행관에서 걸어나왔다.잠시 멈칫하더니 시영은 얼른 달려가 말했다.“전하께서 이렇게 빨리 떠나시다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역시 조정 관리답게 대사는 술술 흘러나왔고 소매 끝에는 진짜 눈물까지 번져 있었다. 그 뒤의 관리들 역시 당황하여 서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00화

    아정모는 원래 맹 노장군 휘하의 한 작은 장수일 뿐이었다. 그러나 맹 가의 아가씨인 맹청련과 서로 마음을 품고 있었다.맹 노장군은 경중의 명문세가의 아들을 사윗감으로 정했기에 맹 아가씨와 아 장군 두 사람은 사랑을 위해 혼례를 버리고 도망쳤었던 것이다.아정모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그의 얼굴빛 역시 점점 더 험악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오래전 지나간 장면들이 잔상처럼 스쳐갔다.소휘는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씩 웃었다.“본왕이 하나 알려주지. 그 아이…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맹 노장군도 지금껏 찾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이야.”아정모의 동공이 떨렸다.“살아… 있다고요?”소휘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아 장군이 이 깊은 산에 숨어 지내면 그 아들은 결국 맹 노장군 손에 들어가고 말 것이지.”그 순간 아정모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탁자 위의 장계를 황급히 펼쳤다.“강세오....”그의 눈가가 붉어지며 흔들렸다.“세오…!”“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소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본왕의 사람도 이어진 흔적을 놓쳤다. 전해지길 그는 올해 과거에 응시한다 하더군. 과거까지 두어 달 남았으니 그때면 경성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아정모는 이제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지금 당장 경성으로 가겠습니다!”소휘가 그를 가로막았다.“아 장군, 급히 나서면 안 된다. 지금 경성으로 달려가는 것은 곧 맹 노장군에게자신이 살아있다 고하는 것이 아니겠느냐?”“허! 저는 그를 무서워한 적이 없습니다!”“장군께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참고 살아오셨건만 이 잠시를 참지 못할리는 없겠지요.”아정모는 어금니를 악물었다.“성왕 전하께선 어떤 계책이 있기에 그러는 것입니까?”소휘는 가볍게 웃었다.“장군, 조급해 하지 말거라. 장군이 본왕을 따라 우주로 들어와 장군이 되어 준다면 본왕 역시 장군의 아들을 상처 하나 없이 돌려주겠다.”아정모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전하의 봉지가 우주인가 보군요. 거 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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