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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مؤلف: 서은월
연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막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다시 외쳤다.

“아버지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강시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서방님, 오늘 연아가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조금만 더 놀게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주종현은 단호하게 잘랐다.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다시 망성각으로 돌아왔다. 불꽃놀이가 이미 끝나 인파도 한결 줄어든 뒤였다. 마부는 마차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마차에는 이미 누군가 타고 있었다.

안에서는 주온청은 송하윤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오라버니 뒤에 선 여인을 보자마자 날카롭게 꾸짖었다.

“감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함부로 돌아다니다니! 연아라도 잃어버렸으면 당신 같은 천한 목숨이 열이라도 갚을 수 있었겠습니까!”

강시아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연아가 이만큼 자랄 때까지 그녀에게서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송하윤은 창백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괜찮다. 무엇보다 연아의 안전이 중요하지.”

주온청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몸이 약한데! 방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적 때문에 놀라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라버니께서는 굳이 저자들을 찾으러 나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송하윤은 고개를 숙이며 그 손등을 살짝 다독였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고,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다.

“그리 말하지 말거라. 종현 오라버니 역시 강 마님과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그러신 것이니.”

주종현은 마차 안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대의 마차는 어디 있는 겐가?”

주온청이 먼저 마차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오라버니, 하윤 언니께서 놀라셨습니다. 송부는 또 저 남쪽에 있으니 이 늦은 시각에 가기 힘들지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직접 모셔다 드리세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주종현의 품에 안겨있는 연아를 덥석 받아 간 후 강시아의 품에 돌려주었다.

“셋째 아가씨께서 서방님과 함께 송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면 됩니다. 저는 아이만 데리고 천천히 돌아가겠습니다.”

주종현은 모녀를 한 번 돌아보고 곧 동생에게 명했다.

“온청, 네가 연아를…”

“좋습니다! 제가 연아를 꼭 데려다 드릴게요!”

주온청은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내며 대답했다. 주종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마차가 떠나간 뒤, 주온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가, 곧장 고개를 돌려 강시아 모녀를 바라보며 얼굴빛을 차갑게 바꾸었다.

“쓸데없는 마음은 접으세요. 하윤 언니와 저희 오라버니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지낸 사이라, 언젠가는 반드시 저희 집안의 정실로 들어올 분이십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대답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주온청은 코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으면 됐습니다. 연아가 당신 뱃속에서 나왔다 해서 그것만 믿고 제멋대로 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연아는 오라버니의 장녀일 뿐, 적녀가 아닙니다. 당신이 진정 그 아이를 위한다면 사사로운 욕심 따위는 버리세요. 훗날 당신 모녀의 삶은 하윤 언니의 손에 달려 있으니.”

강시아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턱을 살짝 기울여 연아의 귀 옆에 얼굴을 기대었다.

절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그저 아주 낮은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셋째 아가씨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감히 불순한 마음은 품지 않겠습니다.”

국공부에 도착했을 때, 연아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디작은 몸이 강시아의 어깨에 축 늘어졌기에 그녀는 애써 아이의 다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명옥이 다가와 아이를 받으려 했으나 그녀는 손을 저어 물렸다.

그녀의 팔에서는 벌써 힘이 빠져 있었지만 끝내 스스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훗날 도망칠 때 아이조차 안아 올리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방으로 돌아와 하인들을 물린 뒤에야 그녀는 아이 곁에 누울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딸을 데리고 국공부를 떠나려면 오래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오늘 연이를 데리고 흑시의 통행증을 알아보러 간 일만 해도 위험이 많았다.

명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난 생에 송하윤이 집안에 들어온 후 곧 사직하고 떠났다. 안뜰에 있는 허드렛일 소녀도 겉으론 아무 탈 없었지만 그녀 또한 믿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전이야 말로 모녀의 생존을 지켜줄 유일한 밑천이었다.

강시아의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소용돌이가 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방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종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면 연아가 깰 테니 밖에서 이야기하자.”

밤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고 달빛은 고르게 땅 위를 비추고 있었다.

강시아는 툇마루 난간에 기댄 채 앉았다. 달빛을 이렇게 가만히 바라본 게 얼마 만인지. 그 또한 연아를 품고 있던 시절, 잠 못 들 때 잠시 나와 앉아보곤 했을 뿐이었다.

주종현은 달빛에 젖은 그녀의 맑고 투명한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송 아가씨의 성품이 매우 온화하다고 하셨다. 훗날 그녀가 집안에 들어온다 해도 너와 연아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온화하다 하셨습니까? 만약 그녀가 온화하지 않다면 그래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주종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 더러 너 하나만을 위해 정실을 들이지 말라는 것이냐?”

강시아는 입술을 열었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종현은 언젠가 반드시 아내를 맞이할 것이다. 송하윤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가 과연 친딸이 아닌 아이를 너그러이 품어줄 수 있단 말인가?

국공부는 본래 첩과 자식이 여럿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국공부 안주인의 수하에서 도대체 몇 명의 목숨이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의 시혜에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 나았다!

지난 생에서 저지른 오류는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주종현의 미간이 더욱 깊이 구겨졌다.

“강시아, 송 아가씨는 현명하고 덕이 있으며 무엇보다 연아를 무척이나 아낀다. 그녀가 국공부에 와서 연아에게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은 적이 있더냐?”

강시아는 소리 없이 웃었다.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무릎을 굽혀 절을 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다.

“첩이 망언을 하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책망해 주시옵소서.”

주종현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 꽂힌 배꽃 은비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시아, 장차 정실이 들어온 뒤 일 년이 지나 아이가 있든 없든… 그때는 네 피임약을 끊게 하겠다. 다시 한 아이를 안겨 주마.”

“첩, 서방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번졌다.

은혜라니. 정녕 우스운 일이었다.

“어머니!”

강시아가 눈을 떴을 때, 연아의 뜨겁고 축축한 입술이 얼굴을 여기저기 마구 쪽쪽대고 있었다. 언제 이리로 기어 온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어머니, 또 여기로 와서 주무신 겁니까? 혹시 연아가 또 발길질해서 어머니를 걷어찼나요?”

연아는 뽀얀 뺨으로 그녀를 마구 비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의 머리칼은 어느새 흘러내려 흐트러져 있었다. 보드라운 머리카락 가닥이 통통한 뺨 옆에 달라붙어 흔들릴 때마다 얼굴로 흘러내렸고, 그럴 때면 그녀는 작은 손으로 능숙히 쓸어 올렸다.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니다. 우리 연아는 늘 얌전히 잘 자는 아이잖아.”

모녀는 침상 위에서 데굴데굴 뒹굴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명옥이 새 옷과 작은 목함을 들고 들어왔다.

“마님, 세자께서 보내신 물건이옵니다.”

그 말에 강시아의 목소리가 곧장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기 두거라.”

명옥이 물러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전 이백 냥이 들어 있었다!

열네 살에 국공부에 들어와 스물하나가 되기까지 꼬박 일곱 해 동안 모아도 오십 냥을 모으지 못했는데... 단 하루 만에 주종현과 그 우연한 호구 같은 두 사람에게서 무려 오백 냥에 달하는 돈이 그녀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강시아는 눈앞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 은표를 모조리 끌어모아 연아의 작은 호랑이 베개 속에 밀어 넣었다. 은전은 너무 무거우니 반드시 은표로 바꿔야 한다.

연아가 기어와 물었다.

“어머니, 은전이 그렇게 좋습니까?”

강시아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맞췄다.

“그럼, 당연히 좋지!”

연아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어머니와 함께 은전을 캐러 가겠습니다!”

은전을 캐러 간다고?

강시아는 웃으며 아이를 따라 대나무 숲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땅속에서 진짜로 은전이 파헤쳐져 나왔을 때, 그녀는 너무 놀라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있었구나. 연아, 넌 어떻게 이걸 알았느냐?”

연아는 쓴 죽순 가지를 들고 땅을 꾹꾹 찌르며 대답했다.

“아지마가 죽순을 캐다가 발견했습니다.”

아지마는 연아의 첫 유모였다.

강시아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아지마는 이미 이 은전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연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지마께서 이건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강시아의 가슴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지난 생에 유모가 갑자기 사직한 게 이 은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황급히 땅을 다시 덮어 원래 상태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옷자락과 손이 흙투성이가 된 걸 보고 죽순 두 개를 뽑아 품에 안았다.

“연아야, 잊지 말거라. 오늘은 은전이 아니라 죽순을 캐러 나온 것이다!”

연아는 영문을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명옥과 하 유모는 모녀의 흙투성이 몰골에 흠칫 놀랐다.

명옥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마님, 어찌 아가씨를 데리고 이렇게 함부로 다니시는 것이옵니까?”

강시아는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띠며 명옥을 힐끗 바라보았다.

“함부로? 세자께서도 한마디 꾸짖지 않으셨는데 네가 감히 먼저 주인을 꾸짖는단 말이냐?”

“노… 노비는, 노비는 다만 마님께서 꾸중을 들을까 염려되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명옥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원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노비이었고 국공부인이 직접 세자 댁으로 보내 붙인 시녀였다. 한 번에 신분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정작 하늘로 치솟은 이는 천하디도 천한 강시아였다. 결국 그녀는 세자의 명으로 이 여자를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강시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서 연아를 씻기겠다. 혹여 누가 오면 불러다오.”

겉으로 강시아는 명옥의 주인이었으나 실상은 처분권조차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빌미가 필요했다. 하 유모는 잠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연아를 품에 안고 살며시 물었다.

“아가씨, 마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죽순을 캐러 가신 것이옵니까?”

연아는 어머니의 당부를 기억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 유모는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아이가 땅에 은전이 파묻혔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내기라도 했다가는 화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요 며칠 동안 그녀는 안채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누가 그 은전을 묻었든 괜스레 연루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 유모가 한 번 더 떠보려는 순간, 강시아가 죽순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지마의 죽순탕이 제일 맛있지. 그치, 연아야?”

“네. 맞습니다!”

하 유모는 모녀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보며 속으로는 근심을 안은 채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뒤, 강시아가 연아를 씻기고 나오자 벌써 큰 마님을 모시는 고 유모가 와 있었다.

그녀는 큰 마님 곁에서 수십 년을 모신 노비로, 국공 어르신조차도 그녀에게 두어 치 정도 체면을 세워줄 정도였다. 그런 인물이 감히 세자의 첩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곧 그녀의 체면이 무너졌다는 소리와 똑같았다.

강시아는 고 유모의 살벌한 낯빛만 보고도 분명 명옥이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았음을 짐작했다. 지난 생에서는 연아와 함께 죽순을 캐러 나가지도 않았기에 고 유모를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고 유모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강 마님, 대단합니다! 세자 곁의 유일한 총애라더니. 이 늙은 것도 차 세 잔을 마셔야 겨우 마님의 얼굴을 볼 수 있군요.”

강시아는 태연히 미소를 머금고 맞받았다.

“고 유모, 차 한 잔 드시지요.”

“차?”

고 유모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제가 차 물통입니까! 마님께서 하도 고귀하셔서 늙은 노비는 이제 감당 못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연아가 꿈속에서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었다.

고 유모는 그 소리에 순간 얼어붙더니 부리나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시아는 연아를 다독이며 고 유모를 앉혔다.

“아이가 그저 꿈을 꾸는 것뿐입니다. 어제 서방님과 너무 늦게까지 놀았거든요.”

그녀는 은반지를 빼내 고 유모의 손에 쥐여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유모,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지요. 저는 서방님의 작은 첩실에 불과한데 어찌 감히 유모의 명망과 권세에 비기겠습니까? 웃으실 일이지만 이 작은 뜰 안에서도 연아 말고는 제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답니다. 유모께서 이토록 오래 기다리신 것도 다 제 불찰이지요.”

고 유모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마님을 원망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저에게도 맡은 바가 많아 마음이 급했을 뿐입니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치닫던 기세가 조금은 수그러든 듯 보였다. 애초에 세자 댁의 내실은 큰 마님조차 깊이 간섭하지 않는 곳인데 그녀가 관여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

고 유모는 문 뒤의 희미한 그림자를 발견하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세자의 집안에 단 하나뿐인 첩, 누군가는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어린 계집아이가 감히 그녀를 이용해 오르려 하다니!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유모께서 오신 것은, 혹시 태후 마마의 생신 잔치에 바칠 예물 때문입니까?”

사실 그녀의 자수 솜씨는 일찍이 상 상궁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상 상궁는 궁에서 물러난 후 영국공의 청으로 집안 아가씨들의 수를 가르치고 시집갈 때의 혼수를 손수 지어주던 인물이었다. 다만 그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난 생에 국공부에서 올린 예물은 바로 그녀가 만든 서수헌도(瑞兽献桃) 자수였다.

강시아의 말에 고 유모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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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때때로 궁인들의 손을 붙잡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끝없이 늘어놓곤 했다.어느 때는 선제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다가, 또 어느 때는 전각 밖을 가리키며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빈비들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이듬해 겨울, 큰 눈이 한차례 내린 뒤, 일 년 넘게 정신이 흐릿하던 그 태황태후는 잠든 사이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어린 황제가 즉위하고, 백관들이 조하를 올렸다.개선한 주종현은 반란을 평정하고 나라를 안정시킨 공으로, 파격적으로 ‘상산왕’에 봉해졌다. 식읍 만 호, 세습이 허락된 작위였다.위심은 빛나는 전공을 세워 서북대영으로 들어가, 교위에서 시작해 마침내 병권을 쥔 진정한 장수가 되었다.맹서강은 스스로 청하여 국자감에 들어가 좨주가 되었다.“오라버니, 굳이 이 길을 택하실 이유가 있으십니까?”맹시은은 소박한 유생 복장을 한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그의 공과 재능이라면 내각에 들어가 재상이 되고 공후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였다.하지만 맹서강은 그저 온화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맑고도 단단했다.“조정에서 사람들과 다투기보다는, 대성조의 앞날을 위해 분별력 있는 선비를 몇 명이라도 더 길러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시은아, 저것을 보거라.”그는 창밖을 가리켰다. 햇살 아래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저것이야말로 대성조의 근간이다.”맹시은은 오라버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그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어렵게 지켜낸 이 가정과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순식간에 흘러갔다.*영안 7년.그해, 용포가 몸에 맞지 않던 어린 황제는 어느덧 열아홉의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그는 정사를 부지런히 돌보고 백성을 사랑했으며 간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주종현과 맹서강을 비롯한 원로 대신들의 보좌 아래, 대성조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조정 신하들이 유일하게 근심하는 것은 황후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다는 점이었다.후궁을 간택하라는 상소가 어전 위에 산처럼 쌓였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63화

    그 칙령은 손에 닿는 순간 서늘했지만, 그 무게는 천근을 넘는 듯했다.맹시은은 그것을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힘이 들어간 탓에 손마디가 희미하게 하얗게 질렸다.이것은 단순한 사면의 표식이 아니었다. 두 대의 제왕이, 두 번의 생을 건너 건네온 무거운 사명이었다.*건청궁을 나서자, 여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궁벽 밖은 여전히 수레와 인파가 뒤섞이고, 삶의 온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방금 전 전각 안에서 왕조의 앞날을 좌우하던 그 비밀스러운 대화가 마치 숨 막히는 한바탕 꿈에 불과했던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주종현과 하훈이 군을 이끌고 출정하던 날은, 하늘이 높고 구름이 맑게 걷힌 가을날이었다.맹시은은 성문까지 나가 배웅하지 않았다. 그저 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검은 갑옷의 기병들이 물결처럼 이어져 변방을 향해 흘러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을 뿐이다.“돌아오세요. 저도, 아이들도 모두 기다리고 있을게요.”봉화가 사방에서 치솟고, 전쟁의 불길이 들판을 삼켜갔다.경성과 우주는 수많은 산과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전황을 알리는 보고서는 눈발처럼 날아들었다. 어떤 날은 승전 소식으로, 글자마다 기세와 환희가 넘쳤고 어떤 날은 팽팽히 맞선 전황과 참혹한 소식이 전해져 그 한 줄 한 줄마다 피와 불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추위가 지나고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연아는 또 한 뼘 자라 있었고, 복동이도 이제 누이를 따라 국자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다만 이 말썽꾸러기는 누구를 닮았는지, 글씨는 비뚤비뚤하고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잤으며 밥 먹을 때만 제일 또렷했다.맹시은은 두 아이를 정성껏 돌보았고 광대한 진국공부와 새로 세워진 상산왕부까지 빈틈없이 다스렸다.그녀는 그렇게 주종현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뒷받침을 만들어 나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62화

    그리고 어째서 그토록 주종현과 맹 가를 신임하고 중용했는지. 그 이유가 이제야 분명해졌다.그 역시, 전생의 기억을 품은 채 돌아온 사람이었던 것이다.“짐은 지난 생에 참으로 어리석은 군주였다.”황제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회한과 고통이 깃들어 있었다.“짐은 태후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였고, 간신을 믿고 충신을 멀리했다. 그 결과 외적이 침입하고, 번왕들이 난을 일으켰으며, 끝내는 나라가 무너지고 가문이 멸망했다. 짐은 이 대성조의 강산이 불길 속에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짐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늘이 가엾이 여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짐은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막 즉위하던 열한 해 전으로 돌아오게 되었지. 그리고 이 생에서는, 결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짐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숨결 또한 점점 가늘어졌다.“소휘는 이미 끝이 보인다. 조정의 독종들도 거의 다 뿌리 뽑았다. 헌데 짐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소림, 그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다. 조정은 겉보기엔 평온하지만, 억눌린 야심들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지.”황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려앉을수록, 맹시은의 가슴도 서서히 가라앉았다.그제야 오늘 자신을 부른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짐은 그대 부부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짐을 대신해 이 대성조의 강산을 지켜다오. 소림을 보필하여, 진정한 명군으로 키워다오.”황제의 목소리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간청이 담겨 있었다.“맹시은, 짐도 안다.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가족이 함께 앉아 따뜻한 등불 아래 지내는 평온한 나날이라는 것을. 허나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면, 가정이 어찌 온전히 설 수 있겠느냐.”나라가 무너지면, 가정 또한 무너진다. 그 한마디가 바늘처럼 맹시은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렇다. 전생의 자신이야말로, 그 말의 가장 생생한 증거가 아니었던가.이번 생에서 그녀는 어렵게,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가정을 손에 넣었다.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61화

    “다 확인했느냐?”“모두 확인했습니다, 대인. 신기영의 이 교위(李校尉)와 이곳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한 상태입니다.”“좋다.”어둠 속에서, 주종현의 눈빛은 밤보다도 더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그물을 거둬라.”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사방에 매복해 있던 금군이 산을 내려오는 맹수처럼 순식간에 역참을 포위했다.안에 있던 자들은 미처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전부 제압되었다.현장 증거와 인물, 모두 빠짐없이 붙잡혔다.소휘가 보낸 심복들, 그리고 접선을 위해 나온 신기영의 이 교위까지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했다.심문 결과는 예상보다도 훨씬 충격적이었다.번왕 소휘는 사병을 몰래 양성하고 신기영과 결탁하여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증거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그 소식이 궁으로 전해지자, 황제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천둥 같은 기세로 내려진 한 장의 성지가 곧장 진국공부로 전달되었다.영국공 세자 주종현, 그리고 하 가의 장자 하훈에게 명하여 즉시 병사를 이끌고 변방으로 나아가 반역자 소휘를 토벌하라는 명이었다.폭풍이 몰려오기 직전의 고요함처럼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여름이 깊어갈수록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졌다. 그리고 황제의 몸은 그와 반대로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궁 안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늘 같았다. 그저 가벼운 감기일 뿐, 별일 없다는 말뿐이었다.하지만 태의원의 원판은 거의 매일 궁에 머물렀다. 그 일로 예민한 대신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그날 맹시은은 뜻밖의 전교를 받았다. 그녀 혼자서 즉시 입궁하라는 황제의 명이었다.왜 하필 그녀였을까? 외조부를 불러 국사를 논하는 것도 아니고, 주종현을 불러 중책을 맡기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자신 같은 내택의 부인을 굳이 부른 것인가.의문을 가득 안은 채, 맹시은은 황궁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건청궁 안은 짙은 약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그 쓴내는 마치 궁의 기둥 하나, 들보 하나마다 스며든 듯 무겁고 답답하게 가라앉아 있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36화

    “네가 여전히 이토록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다니 이 일은 내가 결정하마! 여 각로의 손녀 여서린이 아직 상중이니 얼른 들여오거라.”주종현의 표정은 이미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여서린을 또 하나의 송하윤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시다면 원하시는 대로 해보십시오.”그는 소매를 거칠게 뿌리치고 국공을 지나 작은 뜰 쪽으로 성큼 걸어가 버렸다.“네 이놈! 패륜아 같으니라고!”국공은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이 턱 막혀 넘어갈 지경이었다.“입궁 준비를 하거라! 내가 직접 어명을 청해 올 것이니! 과연 어명도 감히 어길 수 있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23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행렬이 하나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길게 늘어선 행렬은 천천히 화주를 벗어났다.주종현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가 연아를 잘못 알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만천이 다가와 말했다.“세자 저하, 이미 하루나 지체했습니다. 이제 떠나셔야 합니다.”주종현의 눈꺼풀이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몸을 돌려 말을 타고는 반대 방향으로 그대로 내달렸다.작은 마차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시를 한참 벗어나고 나서야 연아는 붉어진 얼굴을 들고 아람을 바라보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27화

    “저는 장사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산적이 날뛰면 제가 들여온 물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잖아요.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저 일 테고 그러면 당연히 우주의 관원들에게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요.”문희가 물었다.“그래서 무슨 장사를 하고 싶은 겁니까?”아람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모르겠어요.”겨우 소일거리 같은 장사로는 안 된다. 그런 시시콜콜한 수입으로는 열 번 되살아난다 해도 이만 냥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두 사람이 약방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른 체구의 아이 하나가 투덜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이렇게 큰 야생 산삼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20화

    “듣자 하니, 주 자사가 전마 수량을 허위 보고하고 조정에서 내려온 마료값을 과하게 빼돌렸다고들 하더군요.”아람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나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도 아닌데…”그녀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가 다시 물었다.“주종현이 적발한 건가?”전마 때문에 화주에 온 것이라고 했으니 실은 부정부패를 잡으러 온 것이었나?아설이 답했다.“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문희 언니 말로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제일 좋다네요. 지금 백성들도 난리입니다. 주 자사처럼 생긴 사람이 그런 탐관오리였다니, 정말 숨길 줄 아는 재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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