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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서은월
“태후 마마의 생신이 머지않았는데, 온 경성이 다 아는 일을 제가 어찌 몰랐겠습니까? 며칠을 애써 궁리하다가 그럴듯한 계책을 하나 떠올리긴 했으나…”

고 유모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마님, 부디 거리낌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큰 마님께서도 이번 생신은 지극히 중대한 날이라 하셨습니다!”

“다만, 제법 많은 은전이 들어야 하니… 감히 입을 열었다가 괜한 불쾌만 사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을 뿐입니다.”

고 유모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숨김없이 말씀드리자면, 큰 마님께서 이미 분명하게 이르셨습니다. 돈 쓰는 건 두렵지 않으니 남들과 똑같아서는 안 된다고요. 그리고 만약 국공부에서 내지 못한다면 큰 마님께서 사비라도 내시겠답니다. 마님은 그저 큰 마님께 아뢰기만 하시면 됩니다.”

강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안을 챙겨 들고 곧장 유모와 함께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안쪽 방에 있는 명옥을 돌아보며 일렀다.

“명옥아, 내가 고 유모와 함께 다녀올 테니, 부디 연아를 잘 살펴주거라.”

강시아는 서둘러 완성된 화고를 품에 안고 고 유모를 따라 뜰을 나섰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 즈음, 뒤편 자기 뜰 쪽으로 시선을 흘렸는데, 강시아의 입가에는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번져 있었다.

큰 마님의 처소는 집안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어 작년에도 새로 단장한 곳이었다. 그곳은 강시아의 손바닥만 한 뜰과는 감히 견줄 바가 못 되었다.

작은 정자 옆에서는 배나무 한 그루가 한창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강시아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바라보자 고 유모가 설명을 덧붙였다.

“저것은 작년에 세자께서 옮겨오게 하신 나무랍니다. 두어 해는 지나야 뿌리를 붙잡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금세 꽃을 피웠지요.”

강시아가 담담히 웃으며 응했다.

“제 작은 뜰에도 심어 두었으나 아쉽게도 뿌리내리진 못했습니다.”

그 나무 또한 주종현이 손수 사람을 시켜 심게 한 것이었다.

큰 마님은 마침 작은 불당에서 경을 읊고 있었고, 강시아는 문밖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고 유모가 먼저 들어가 강시아가 오랫동안 발걸음하지 못한 사정을 대신 아뢰자, 큰 마님은 목탁을 두드리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늙은 것아, 언제부터 남의 변명까지 네가 대신해 준 것이냐?”

고 유모가 부축하듯 큰 마님을 일으키며 웃었다.

“큰 마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아랫것들이 다소 태만히 굴었는데 강 마님께서는 성정이 유약하다 보니 누르지 못하셨던 것이옵니다.”

큰 마님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그 아이 성품이라면 오직 하윤이의 손길 아래에서나 겨우 숨통이 트이겠지. 어서 들여보내거라.”

강시아는 준비한 도안을 정성껏 펼쳐 보였다. 모두 지난 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완성한 것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서수헌도’라 불린 도안은 본래 누군가가 그녀를 모함하기 위해 내놓은 계책이어서, 그녀가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공적은 끝내 남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큰 마님, 아직 미숙한 생각을 몇 가지 그려 보았으니 부디 살펴 주시옵소서.”

큰 마님의 눈길은 단번에 서수헌도에 닿았다.

“이 그림은 어떤 구상을 하고 그린 것이냐?”

강시아가 공손히 답했다.

“이는 제가 백마사 장경동에서 본 벽화를 참조하여 그린 것입니다. 빛깔이 찬란하여 마치 서수가 속세로 내려온 듯하였지요. 만일 수예로 옮겨 담으려면 반드시 여주에서 나는 설잠사를 써야 하고 또 서수의 눈동자는 일명 화룡점정이라 하니 그 눈만큼은 묵취옥으로 장식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큰 마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리하도록 하거라. 만약 이번 예물이 태후의 눈에 들면 너에게도 상을 내려주겠다.”

강시아는 놀란 척하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얼굴을 연기했다.

“큰 마님의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막 몸을 일으키며 입가의 웃음을 거두기도 전에 국공부인 조 씨가 방으로 들어섰다.

“어머님, 태후의 생신 예물을 어찌하여 국공부인이 제가 아닌 계실의 첩실과 의논하시는 겁니까?”

강시아는 서둘러 예를 올리고 물러섰다.

하지만 큰 마님의 눈빛은 이미 차갑게 식은 뒤였다.

“후궁의 일은 번다하니, 굳이 네가 관여치 않아도 된다.”

조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예물이 국공부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 아니면 송 가를 위해 마련된 것인지 그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행동하지 말거라!”

큰 마님의 음성은 얼음 같았다.

국공부인과 큰 마님의 불화는 집안 안팎에 오래도록 알려진 사실이었다. 특히 세자 주종현의 혼사 문제에서 큰 마님은 송하윤을 지목했으나 조 씨는 태부가의 손녀를 원했었다. 결과는 뻔했다. 조 씨가 패한 것이다.

자기 아들조차 뜻대로 하지 못한 울분이 오래도록 쌓여 있었는데, 태후의 예물 문제에서 큰 마님이 조 씨를 제쳐두고 강시아 같은 첩실을 찾은 일을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어머님, 이제 집안 살림은 제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태후의 예물에 제가 한마디 보태는 것이 그리 방자한 일입니까? 차라리 저 중궁 열쇠를 회수하셔서 앞으로의 살림은 어머님의 손자며느리가 될 송하윤에게 맡기심이 더 낫겠습니다.”

양편이 맞부딪치며 막 언성이 높아지려는 순간, 강시아는 눈치껏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곧 고 유모가 뒤따라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마님, 잠깐만요! 이것은 큰 마님께서 내리신 은전입니다. 부족하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강시아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갖고 싶었으나 지금은 취할 때가 아니었다. 길게 낚싯줄을 드리워야 큰 고기를 낚는 법.

“유모께서 갖고 계시지요. 제가 목록을 써 드릴 테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사람을 시켜 보내 주시면 되겠습니다.”

고 유모는 그녀가 눈치 있게 굴자 순순히 주머니를 거두어 주었다.

“그러시다면 좋습니다. 마님은 목록을 써 주시고, 저는 즉시 사람을 내보내도록 하죠.”

강시아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유모께서는 어서 돌아가십시오. 큰 마님께서는 연세도 많으신데 괜한 언쟁으로 인해 몸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고 유모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마님께서도 바로 그 점을 우려하셔서 일부러 저를 보내어 마님을 찾으신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소문나지 않도록 조심하시려는 것이죠.”

그러자 강시아가 슬며시 물었다.

“혹시 뜰의 계집아이들 중 누군가 입이 가벼워 밖으로 흘린 것은 아닐까요?”

고 유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큰 마님께서 제게 말씀하실 때, 방 안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말을 잇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큰 마님의 뜰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강시아의 방에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을 배반하는 못된 년이 숨어 있던 것이었다!

강시아는 고 유모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보자 이미 자신이 의도한 바가 이루어졌음을 알아차렸다.

“유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고 유모가 정신을 차리며 입가를 억지로 당겼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님께서는 어서 돌아가시지요.”

그녀가 뜰로 돌아오니 명옥이는 연아와 함께 공깃돌 모양의 주머니를 던지며 놀고 있었다. 그녀는 강시아를 힐끔 곁눈질하더니 연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연아야, 너의 어머님께서 돌아오셨구나. 네 어머님은 대체 어디에 놀러 가셨기에 너를 데리고 가지도 않았단 말이냐?”

연아는 쏜살같이 달려와 어머니 품에 안겼다.

“어머니!”

강시아는 허리를 굽혀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큰 마님께 문안을 드리러 다녀온 것이다. 고 유모께서 연아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시더구나. 아마 다음에는 연아에게 호두사탕이라도 사다 주실 게다.”

모녀는 기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명옥만은 그 자리에 남아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찌 된 일인가? 이토록 중요한 일을 큰 마님께서는 작은 마님을 제쳐두고 곧장 강시아에게 맡기다니. 작은 마님께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 반드시 그녀를 탓했을 것이다.

하 유모가 갓 지어낸 죽순탕을 내놓을 무렵, 고 유모가 사람을 시켜 목록을 받아 갔다. 강시아는 아예 죽순탕의 절반을 나누어 시녀에게 들려 보냈다.

“이것을 고 유모께 드려 맛 좀 보시라 하거라.”

고 유모는 빛깔 고운 탕을 받아 한 모금 맛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강 마님께서 나에게 따로 부탁할 것이 있는 것 같구나.”

어린 시녀는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렸다.

“곁에서 시중드는 계집아이 하나가 행실이 올곧지 않다. 더구나 그 아이는 본래 작은 마님께서 세자 댁에 억지로 들여보낸 자가 아니더냐. 뒤늦게 강 마님 곁으로 옮겨 붙었을 뿐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고 유모와 명옥의 부모는 옛 벗이었으나 이미 오래전 장원으로 내쳐졌다. 그러니 그들은 아마도 이 딸 하나에 기대어 입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 유모께서는 강 마님을 도우려 하십니까?”

고 유모는 죽순탕 한 사발을 덜어 시녀 앞으로 밀어주었다.

“돕는다. 왜 안 돕겠느냐?”

저녁 무렵, 고 유모가 사 온 색실이 도착했다. 한 상자 가득 불빛 아래서 찬란히 빛나는 고운 색실이었다. 강시아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수틀에 걸쳐 보다가 눈썹을 좁혔다.

“어라, 이 몇 타래는 색이 다르구나. 분명 상점 주인이 유모를 속인 게야. 유모께서 잘 모르시는 줄 알고 슬그머니 바꿔 넣은 것이 틀림없어. 명옥, 이 실을 가져가 고 유모께 사정을 아뢰거라.”

명옥은 내키지 않는 듯 실꾸러미를 들고 떠났으나 그날 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고 유모가 또다시 직접 찾아왔다. 새로운 색실과 낯선 시녀 하나를 데리고 말이다.

“이 아이는 큰 마님께서 특별히 강 마님께 붙여드린 시녀입니다.”

새로 온 시녀 설강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시녀 설강, 마님께 문안드리옵니다.”

강시아는 딸아이를 불렀다.

“연아야, 이분은 설강 언니란다. 앞으로는 이 언니가 네 곁에서 놀아주실 게다.”

연아는 곧장 설강의 손을 잡아끌며 자신의 토끼 연을 보여주겠다며 떠났다.

그제야 고 유모가 말을 이었다.

“마님, 안심하세요. 설강은 큰 마님 곁에 있는 시녀 중 가장 믿음직한 아이입니다.”

강시아는 명옥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설강이라면 당연히 믿지요. 다만 큰 마님께서 귀히 쓰시던 아이를 제게 내어주셨으니 부끄럽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고 유모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님께서는 그저 편히 계시면 됩니다.”

그러고는 어제 거두어 갔던 돈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큰 마님께서는 실을 잘 알지 못하시니 괜히 헛걸음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니 이 돈은 마님께서 직접 지니시는 것이 옳겠습니다.”

강시아는 잔잔히 웃었다. 아직 이 고기는 미끼로 낚기에는 너무 작았다.

“차라리 설강에게 맡기세요. 큰 마님께서 가장 믿음직하다 하셨으니 제가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러고는 딸아이와 놀고 있는 설강을 불러왔다.

고 유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돈주머니를 설강에게 건네며 일렀다.

“이제 네가 강 마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곧 강 마님의 사람이 된 것이다. 주인을 잘 모시는 것이 네 본분임을 잊지 말거라.”

설강이 공손히 답했다.

“잊지 않겠사옵니다.”

그렇게 이튿날, 강시아는 설강을 데리고 새 색실을 사러 나갔다. 마차에 앉아 그녀는 설강의 좌우를 살피는 눈길을 못 본 체했다.

원래 지난 생에서 큰 마님은 특별히 설강을 주종현 곁에 붙여주려 했었지만, 결국 큰 마님 소유의 서점에서 고된 필사로 연명하던 한 가난한 서생과 눈이 맞아 버렸다. 그러나 송하윤이 들어온 뒤, 설강은 큰 마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주종현의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외가에서 몰래 ‘밀회’를 하던 현장을 송하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물론 설강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고 강시아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변고가 닥치기 전날, 설강이 직접 그녀에게 말했었다. 그 서생이 곧 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마지막으로 그의 배웅을 나가겠노라고. 그런데 설강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송하윤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 그 길목을 막아섰던 것이다.

이번 생에서 명옥은 이미 곁에서 사라졌으니 큰 마님이 먼저 설강을 그녀 곁에 붙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강시아는 자수를 맡긴 뒤, 한참 실을 고르다가 설강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덕흥루가 멀지 않더구나. 수고스럽겠지만 연아에게 줄 밤 과자를 좀 사다 주렴.”

“그리고 여기서 지불할 돈은 내가 따로 내지 않겠다. 네가 돌아오면 계산하거라.”

설강은 깜짝 놀라 강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손끝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강시아는 못 본 체하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젯밤 연아와 약속을 했다. 덕흥루는 언제나 붐벼 혹여 밤 과자를 사지 못하면 아이가 실망할 게다.”

설강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사옵니다. 지금 다녀오겠사옵니다.”

강시아는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곧장 길을 건넜다. 상사절 그날, 끝내 묻지 못한 통행증의 마차 행을 찾아야 했다. 점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아, 지난번 그 마님이시군요.”

강시아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통행증 한 장에 얼마이냐?”

그러자 점원이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입을 열었다.

“한 장에 오십 냥입니다.”

“그리 비싸단 말이냐?!”

강시아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약 요 며칠 새 조금의 은전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통행증 한 장조차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점원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하지 않고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비싼 데는 비싼 까닭이 있지요. 마님께서 원하신다면 저희가 성 밖의 상단과도 연락을 드려 마님을 원하시는 곳까지 모셔드릴 수 있습니다.”

강시아가 담담히 물었다.

“통행증은 언제쯤 뗄 수 있느냐?”

“태후 마마의 생신이 머지않았습니다. 더구나 인접한 나라의 사신들까지 조공을 들고 오니 성문은 삼엄히 봉쇄될 터이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무리 빨라야 석 달 뒤에나 가능하실 겁니다.”

강시아는 망설임 없이 오십 냥을 꺼내 놓았다.

“좋다. 이것은 계약금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찾으러 오마.”

석 달 뒤라. 바로 지난 생 주종현이 송하윤을 부인으로 맞아들인 그날이었다.

어쩌면 이것 또한 하늘이 정한 운명일지 모른다.

차마행을 나서던 그녀는 마침 달려오는 말과 지나쳤다. 말 등 위에 앉은 이는 주종현이었고 그의 뒤에는 송하윤이 태연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종현 오라버니, 저기 있는 분은 강 마님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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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강은 약을 다 먹여 안정을 시킨 뒤에야 비로소 연아를 앞으로 내보냈다. 작은 아이는 곧장 어미의 품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아버지의 팔에 의해 가로막혔다. 아이는 안달 난 채로 두 다리를 허공에서 급히 버둥거렸다.그러자 주종현이 단호하게 말했다.“너희 어미는 몸이 아직 성치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연아는 울상을 지으며 올려다보았다. 벌써 오랜 세월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한 터라 억울함이 눈망울에 가득 담겨 있었다. 주종현은 딸을 품에 안아 침상 곁에 눕히며 이르렀다.“여기서만 조용히 머물거라.”아이는 감히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대신 토실토실한 작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가락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강시아는 두 팔로 딸을 꼭 끌어안아 여린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다행이구나. 그동안 누구도 널 학대하지 않았구나.”그 지난 나날 속에서 그녀는 자주 아득한 환영에 시달렸다. 때로는 아직 초주에서 소녀였던 시절로, 때로는 전생에서 다시금 죽음을 맞이하던 시절로. 마치 아직도 연아가 송하윤의 손아귀에서 고통받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지금, 아이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는 순간에야 그녀는 비로소 실감했다.아직 늦지 않았음을. 아직 살아갈 길이 남아 있음을 말이다. 연아 또한 태어나서 이토록 오랫동안 어미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간신히 만난 지금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싫어, 싫어!”하 유모가 품에 안아 데려가려 하자 작은 아이는 두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결코 놓으려 하지 않았다. 강시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그래도 위험 속에 딸을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연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며칠만 지나면 어미가 다시 널 데리러 갈게. 알겠지?”“싫습니다!”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주종현은 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품에 안아 들어 올렸다.“연아, 네가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7화

    처방전에는 태를 안정시키는 약재가 몇 가지나 들어 있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 사실을 입 밖에 내고 나서야 상 유모는 부랴부랴 입을 틀어막았다. 세자조차도 이를 감추려 애쓰는데 자신이 여기서 창호지를 찢듯 폭로하다니. 이건 죽을 길을 스스로 찾는 짓이 아닌가!그녀는 움츠린 목을 움찔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심한 듯,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떴다.“위심, 고작 이런 일에 우리가 둘씩이나 달라붙어야 하느냐?”멀지 않은 지붕 위에는 위심 외에도 한 사람이 더 숨어 있었다.위심이 대꾸조차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계속 추적하려는 순간, 저 멀리 큰 나무 뒤에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사람은 바로 국공부에 오래 기거해 온 막료였다. 그는 국공 어르신의 신임을 깊이 얻고 있지만, 말수가 매우 적어 위심은 그저 그를 밥값이나 아슬아슬하게 챙기는 자쯤으로 여겼다.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바로 송이당이 몰래 심어둔 심복이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국공 어르신 곁에까지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수완이 있는 자일 것이다.다행인 건 세자와 국공 어르신은 본래 한길이 아니어서 집안에서는 결코 정사를 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위심은 옆에 있던 이를 툭 치며 속삭였다.“너는 설강을 따라붙어라. 난 저 자를 쫓겠다.”상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다.“도대체 의리라는 게 있는 것이냐! 공로는 네가 독차지하면 난 세자 앞에서 무슨 낯으로 서라는 것이냐!”분통이 치밀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를 악물고 설강의 뒤를 밟을 수밖에. 혹여 또 다른 심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위심은 만천보다 무예가 뛰어나지 않았으나 경공만큼은 누구보다 앞섰다.그러므로 늘 이런 미행의 일은 그의 차지가 되었고, 우연히 공을 세우는 일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세자 곁에 오래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그는 그림자처럼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지붕 위를 고양이처럼 스쳐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6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든 회상은 전부 여섯 살 이후, 오라비와 아버지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던 나날들 뿐이었다.아버지는 학식이 깊은 만큼 몸도 무척이나 허약했다. 마을 아이들이 모두 그의 무릎 앞에 앉아 글을 배우며 내는 푼돈은 고스란히 약 항아리에 들어갔지만 끝내 그의 목숨을 건져내진 못했다.오라비는 어디를 가든 늘 그녀를 업고 다녔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언제나 먼저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설령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녀는 그것이 괴롭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강시아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 온 그 바람이 이제는 뿌리째 돋아나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서방님을 뵙고 싶습니다! 서방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바깥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눈물이 범람하듯 터져 나와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그러다 문가에서 갑자기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밀리자 황금빛 저녁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주종현의 눈에 비친 강시아는 속옷만 걸친 채 맨발로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피부는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온몸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앙상해져 있었다. 손목에는 여전히 무거운 팔찌가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헐렁하게 매달려 꼭 잘못 산 물건처럼 보였다.위심은 말없이 물러나 문밖을 지켰다.주종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저들이 네게 밥을 주지 않았단 말이냐?”한참 만에 나직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첩은 감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먹는다면… 다시는 연아를 볼 수 없을까 두려워서요.”“그럴 리 없다.”주종현은 낮게 한숨 같은 숨결을 흘렸다. 그는 몸을 굽혀 그녀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그 순간, 팔에 안긴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음을 뚜렷이 느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5화

    송하윤은 이미 이성이 흐려져 있었다. 그런데 영국공부의 대문 모퉁이를 돌기 직전 그녀의 마차가 가로막혀 버렸고, 잠시 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차일이 거칠게 젖혀졌다.송이당이 분노를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송하윤, 내가 한 말이 우습더냐!”송하윤은 그제야 두려움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오라버니, 저….”송이당의 눈 밑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미 이틀 밤낮을 한숨도 자지 못했고, 조정 일만으로도 산더미 같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이제 여동생마저 이렇듯 철없이 사고를 내려고 드니 그의 인내는 이미 바닥에 닿아 있었다.송하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이렇게 무력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오라버니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오라버니, 저는 정말 더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늘 느껴집니다. 주종현은 저에게서 멀리 달아나고 있어요. 그의 몸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매여 있는데 그 끈의 다른 끝은 강시아에게 있고, 그녀가 그를 점점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같습니다.”송이당은 울컥 붉어진 여동생의 눈동자를 오래 바라보다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하윤아, 설령 오늘 당장 강시아가 죽는다 한들, 훗날은 어찌할 것이냐? 너는 송 가의 딸이다. 주종현의 모친은 원래부터 우리 집안과 화합하지 못했다. 네가 들어간 뒤, 그가 다시 다른 여인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느냐? 지금조차 참지 못하고 안달나 하는데, 훗날 시모의 집요한 압박을 마주한다면 너는 시모의 목도 칠 것이냐?”송하윤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먼 앞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눈앞의 가시를 뽑아내는 것뿐이었다.“한데 아직 제가 문도 넘지 않았는데 강시아는 벌써 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며 도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식으로 들어간 뒤면 그녀 곁에는 조 씨가 있을 겁니다. 그때면 저는 진정 홀로 버려진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라버니, 강시아는 훗날 들어올 그 어떤 첩들과도 다릅니다. 그녀는 이미 아이까지 낳았고 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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