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호텔 문 앞에서 키스를 퍼붓는 태호의 목에 두 팔을 두른 채 지안은 간신히 몸을 버티고 있었다.
방 안까지 들어갈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태호는 갈급했다. 맞닿은 숨결까지 전부 삼켜버릴 것처럼 거칠게 몰아붙이는 탓에 지안은 정신을 차릴 틈조차 없었다.
간신히 그의 어깨를 붙잡아 밀어내자 태호가 그제야 살짝 힘을 풀었다.
“방에 들어가요.”
지안이 가쁜 숨을 몰아내쉬며 말했다.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지안을 붙잡고 있었는지 깨달은 듯 태호의 시선이 잠깐 주변을 훑었다.
태호는 지안을 번쩍 안아 들고 복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상층 스위트룸답게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널찍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긴 통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조금 전 레스토랑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불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바로 침실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통창 옆에
이틀 뒤, 수요일 오후. 차 안에서는 도윤의 업무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태호는 뒷좌석에 기대앉아 결재 서류를 훑었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도윤은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오전 회의에서 올라온 내용을 차례로 정리했다. “성북 재개발 현장은 보상 협의가 거의 마무리됐습니다. 다만 상가 세 곳이 아직 합의가 안 돼서 철거 일정은 일주일 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무팀 붙여. 괜히 밀어붙이지 말고.” “예. 그리고 태강시티 2차 분양률은 어제 기준 팔십칠 퍼센트입니다. 이번 주 안으로 구십 퍼센트 넘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서류 한 장을 넘기며 무심하게 물었다. “미분양 물량은.” “대형 평형 위주입니다. 마케팅 쪽에서 조건 조정안 올려놨고, 오늘 저녁까지 검토해서…….” “도윤아.” 말이 중간에서 끊기자 도윤이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 “예.” 태호는 방금까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느닷없이 손목을 들어 보였다. “네가 보기에 이 시계 어때.” 도윤은 순간 대답을 잊었다. 갑자기 시계는 왜. 제가 모시는 상사는 평소 잡담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 안에서 오가는 말이라고 해봐야 업무 보고나 지시가 대부분이었고, 사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일은 손에 꼽았다. 더구나 손목에 찬 시계도 평소 차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수많은 시계 중 하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품평을 요구하니 질문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윤은 잠깐 시계를 살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제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챈 듯했다. 지안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 그의 가슴팍에 볼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오늘 한결이 보고 왔어요.” 태호도 한결이를 기억했다. 혜성병원에서 지안의 손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나중에 결혼할 거라고 떠들던 조그만 꼬맹이였다. “많이 안 좋대요.” 지안은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며칠 전부터 숨 쉬는 걸 힘들어하고,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졌다는 것. 어쩌면 재수술마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까지.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제일 답답해요.” 돈이면 웬만한 건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필요하면 사고, 부족하면 채우면 됐다. 그런데 한결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고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지안을 유난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태호는 지안의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괜찮을 거야.” 짧고 담백한, 꼭 그를 닮은 위로라 좋았다. 지안은 그의 가슴팍에 볼을 살짝 비비듯 움직인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태호의 손은 머리칼 사이를 느슨하게 훑었다. “너 원래 애들 좋아해?” “네?” “재단 만든 것도 그렇고. 후원하는 쪽 보면 거의 애들이던데.” “음…… 딱히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그런데 왜 어린이 후원으로 잡았어. 보통 재단이면 문화나 예술 쪽으로 많이 가지 않나.” &ldquo
“한결이 상태는 어때요?” “며칠 전부터 숨 쉬는 걸 많이 힘들어해요. 밤에도 자꾸 깨고요. 선생님은 일단 검사를 조금 더 해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재수술 얘기도 나온 거예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내년에 학교는 꼭 보내고 싶었는데…….” 지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전에 했던 수술 경과가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내년에는 무리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또래보다 한참 작고 마른 아이였지만, 워낙 붙임성이 좋아 학교에 가면 금세 친구들도 많이 사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는 게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검사 결과 나오면 저한테도 꼭 알려주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고요.” “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소아병동에 들어서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옅게 코끝을 스쳤다. 복도 한쪽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작은 장식들과 트리가 놓여 있었다. 지안은 병실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낮게 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침대에 기대앉아 있던 한결이가 반가운 얼굴로 지안을 맞았다.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지만, 한결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동글하던 볼살이 눈에 띄게 빠져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환자복 소매 밖으로 나온 손목도 전보다 훨씬 가늘어 보였다. 지안은 순간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삼킨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 한결이, 누나 보고 싶었어?” “응. 엄청.” “얼마나?” 한결이가 팔을 크게 벌리려다 링거 줄이 걸리자 한쪽 팔만 어설프게 펼쳤다. “이만큼.” “그것밖에 안 돼?” “아니야. 더 큰데 이거 때문에 못 해.” 제 팔에 꽂힌 링거를 억울하다는 듯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지안이 옅게 웃으며 작은 손을 감싸 쥐자,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꼭 말아쥐었다. “한결아, 저기 봐봐. 누나가 선물 엄청 많이 사 왔지.” 뒤쪽에 있던 민준이 쇼핑백을 하나씩 내려놓자 한결이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리본이 달린 상자가 침대 옆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 따라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거 다 내 거야?” “응. 산타가 준 거래.” “거짓말.” “왜 거짓말이야.” “엄마가 산타는 다섯 밤 더 자야 온다고 했어.” 제법 단호한 대답에 지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맞아. 아직 크리스마스는 좀 남았네. 그럼 이건 누나가 주는 선물!” “우와!” 선물을 하나씩 뜯어볼 때마다 반응은 점점 커졌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장난감이 가장 마음에 든 듯 상자를 열자마자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는 한참을 내려놓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지안도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민준이 한결이 곁으로 다가가 장난감 포장을 마저 뜯어주었다. 능숙하게 놀아주는 걸 보니 평소 조카
“네, 이사님.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직원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시계 상자를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사님.” “네, 고마워요.” 지안은 쇼핑백을 받아 들고 부티크를 나섰다. 막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반대편에서 빠르게 다가오던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아! 뭐야?” 가만히 있던 자신에게 먼저 부딪힌 건 상대였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부터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는 윤세림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경쟁사인 서한백화점까지 와서 쇼핑하는 게 저도 민망한 모양이었다. “한영백화점 손녀딸이, 서한백화점엔 무슨 일이야?” 지안은 서한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듯 꾹꾹 힘을 주며 말했다. “뭐야, 너였어?" 지안을 보자 화들짝 놀란 세림의 눈이 커졌다. 사실 이번 시즌 한영백화점에는 입고되지 않은 해외 브랜드 신상품이 서한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사람들 눈을 피해 찾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하필 여기서 서지안을 마주치다니. "그, 그냥 한번 둘러본 거야. 조사 차. 별거 없네.” 지안은 세림의 양손을 가득 채운 쇼핑백을 한번 훑어보더니, 뻔한 거짓말쯤은 모른 척 넘어가주겠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 잘 둘러보고 가라. 이왕이면 더 사주면 좋고.” 세림의 시선이 지안이 들고 있는 쇼핑백에 머물렀다. 남성 시계 부티크에서 나온 걸 보니 누구 줄 선물인지는 뻔했다. 서로 선물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된 건지, 괜히 속이 더 뒤틀렸다. “야, 서지안!” "왜." 돌아서던 지안이 귀찮다는 듯 고개만 돌려 세림을 바라봤다. “너 얼굴 좀 예쁘장하고 몸매 좋으니까 뭐라도 되는 줄 알지? 남자들 원래 다 그래. 그냥 자기 욕구 풀려고 그러는 거야.” 그녀의 큰 목소리에 주변에서도 하나둘 힐끔거렸지만 세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 호텔에서 강태호랑 올라가는 거 봤거든. 괜히 혼
이후 국내 주요 계열사의 매출 현황과 다음 분기 사업 계획까지 차례로 보고된 뒤에야 회의가 마무리됐다. 서정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윤준표가 재빨리 뒤를 따라나섰다. “매형, 내 방에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요.” 회의실을 벗어나자 호칭부터 자연스럽게 바꾸며 한층 살갑게 말을 붙였다. 서정욱은 곁에 있던 비서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요즘 미국 쪽은 어때? 많이 바쁘지, 괜찮아?” 그는 대답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현재 서한은 미국 시장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미 주요 계열사의 매출에서도 미국 쪽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 데다, 신규 사업 역시 대부분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자연히 서정욱이 미국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고 국내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일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 회사 안에서는 서정욱이 조만간 국내 경영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미국 쪽이 워낙 바쁘니까. 매형이 한국까지 일일이 신경 쓸 틈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아하하, 그렇지. 우리 회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어. 내가 괜히 끼어들었네. 쏘리 쏘리.” 윤준표는 웃으며 슬쩍 서정욱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불쾌해 보이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요즘 서지안 너무 기어오르더라. 너무 풀어주는 거 아닌가 몰라.” 윤준표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 서정욱이 다리를 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문득 얼마 전 강태호를 만나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 사람의 사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