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느슨해졌던 넥타이를 거칠게 한 번 더 풀어내린 태호가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문을 닫아준 뒤 조수석에 오른 도윤은 룸미러를 통해 슬쩍 뒤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꽤 오래 걸렸다. 그런데 돌아온 상사의 얼굴만 봐서는 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그저 피곤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부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윤세림 씨는 괜찮으십니까, 실제로 묻고 싶은 말은 조용히 삼켰다. “어, 향수 냄새 때문에 대가리 너무 아프네.” “…….” 도윤은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냥 별일 없었다고 믿는 편이 제 심신 안정에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호가 창밖을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도윤아, 애기 어디 있냐.” 태호는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미간을 좁혔다. “아직 회사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예.” “그럼 그쪽으로 가.” 향수를 덕지덕지 바른 세림 때문에 기분이 단단히 잡쳤다. 코끝에 눌러붙은 독한 냄새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쯤 되니 지안에게서 은은하게 나는 달큰한 복숭아 향이라도 맡아야 울렁거리는 속이 좀 진정될 것 같았다.*** 윤준표의 집무실은 지안의 방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넓은 공간 곳곳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의 가구와 장식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금장이 박힌 장식장에 유명 작가의 그림, 큼직한 대리석 테
세림이 내민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지안과 또래 친구들이 함께 찍혀 있었다. 남녀가 뒤섞여 서로 어깨를 걸치고 있었고, 한가운데 선 지안은 머리를 높게 묶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태호의 시선은 사진 속 지안에게 머물렀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앳된 모습이었다. 그때가 떠올라 입매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태호가 사진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않자 세림은 그걸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이런 말씀까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세림은 망설이는 척 잠깐 뜸을 들인 뒤 사진 속 남자들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여기 있는 남자애들이랑 거의 다 사귀었어요.” “…….” 태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집어 들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사진 끝을 끼운 채 잠깐 내려다보던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사진 속 얼굴들을 훑었다. “정식으로 사귄 애도 있고, 그냥 필요할 때만 만난 애들도 있고.” 이죽거리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 세림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어요. 서로 외로울 때 만나고, 필요 없어지면 또 끝내고…… 뭐 그런 관계로. 제가 굳이 더 자세히 설명 안 드려도 아시죠? 무슨 뜻인지.” 태호는 사진 너머로 세림을 비스듬히 바라봤다. 저걸 굳이 챙겨와 제 앞에 내미는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 오히려 우스울 지경이었다. 뭘 얼마나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지안에 대해서라면 이미 필요한 조사는 전부 끝낸 뒤였다. 과거에 누구와 어울렸고,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까지 모르는 게 거의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지안이 알게 된
이틀 뒤, 수요일 오후. 차 안에서는 도윤의 업무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태호는 뒷좌석에 기대앉아 결재 서류를 훑었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도윤은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오전 회의에서 올라온 내용을 차례로 정리했다. “성북 재개발 현장은 보상 협의가 거의 마무리됐습니다. 다만 상가 세 곳이 아직 합의가 안 돼서 철거 일정은 일주일 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무팀 붙여. 괜히 밀어붙이지 말고.” “예. 그리고 태강시티 2차 분양률은 어제 기준 팔십칠 퍼센트입니다. 이번 주 안으로 구십 퍼센트 넘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서류 한 장을 넘기며 무심하게 물었다. “미분양 물량은.” “대형 평형 위주입니다. 마케팅 쪽에서 조건 조정안 올려놨고, 오늘 저녁까지 검토해서…….” “도윤아.” 말이 중간에서 끊기자 도윤이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 “예.” 태호는 방금까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느닷없이 손목을 들어 보였다. “네가 보기에 이 시계 어때.” 도윤은 순간 대답을 잊었다. 갑자기 시계는 왜. 제가 모시는 상사는 평소 잡담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 안에서 오가는 말이라고 해봐야 업무 보고나 지시가 대부분이었고, 사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일은 손에 꼽았다. 더구나 손목에 찬 시계도 평소 차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수많은 시계 중 하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품평을 요구하니 질문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윤은 잠깐 시계를 살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제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챈 듯했다. 지안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 그의 가슴팍에 볼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오늘 한결이 보고 왔어요.” 태호도 한결이를 기억했다. 혜성병원에서 지안의 손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나중에 결혼할 거라고 떠들던 조그만 꼬맹이였다. “많이 안 좋대요.” 지안은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며칠 전부터 숨 쉬는 걸 힘들어하고,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졌다는 것. 어쩌면 재수술마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까지.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제일 답답해요.” 돈이면 웬만한 건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필요하면 사고, 부족하면 채우면 됐다. 그런데 한결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고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지안을 유난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태호는 지안의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괜찮을 거야.” 짧고 담백한, 꼭 그를 닮은 위로라 좋았다. 지안은 그의 가슴팍에 볼을 살짝 비비듯 움직인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태호의 손은 머리칼 사이를 느슨하게 훑었다. “너 원래 애들 좋아해?” “네?” “재단 만든 것도 그렇고. 후원하는 쪽 보면 거의 애들이던데.” “음…… 딱히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그런데 왜 어린이 후원으로 잡았어. 보통 재단이면 문화나 예술 쪽으로 많이 가지 않나.” &ldquo
“한결이 상태는 어때요?” “며칠 전부터 숨 쉬는 걸 많이 힘들어해요. 밤에도 자꾸 깨고요. 선생님은 일단 검사를 조금 더 해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재수술 얘기도 나온 거예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내년에 학교는 꼭 보내고 싶었는데…….” 지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전에 했던 수술 경과가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내년에는 무리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또래보다 한참 작고 마른 아이였지만, 워낙 붙임성이 좋아 학교에 가면 금세 친구들도 많이 사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는 게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검사 결과 나오면 저한테도 꼭 알려주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고요.” “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소아병동에 들어서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옅게 코끝을 스쳤다. 복도 한쪽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작은 장식들과 트리가 놓여 있었다. 지안은 병실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낮게 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침대에 기대앉아 있던 한결이가 반가운 얼굴로 지안을 맞았다.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지만, 한결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동글하던 볼살이 눈에 띄게 빠져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환자복 소매 밖으로 나온 손목도 전보다 훨씬 가늘어 보였다. 지안은 순간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삼킨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 한결이, 누나 보고 싶었어?” “응. 엄청.” “얼마나?” 한결이가 팔을 크게 벌리려다 링거 줄이 걸리자 한쪽 팔만 어설프게 펼쳤다. “이만큼.” “그것밖에 안 돼?” “아니야. 더 큰데 이거 때문에 못 해.” 제 팔에 꽂힌 링거를 억울하다는 듯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지안이 옅게 웃으며 작은 손을 감싸 쥐자,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꼭 말아쥐었다. “한결아, 저기 봐봐. 누나가 선물 엄청 많이 사 왔지.” 뒤쪽에 있던 민준이 쇼핑백을 하나씩 내려놓자 한결이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리본이 달린 상자가 침대 옆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 따라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거 다 내 거야?” “응. 산타가 준 거래.” “거짓말.” “왜 거짓말이야.” “엄마가 산타는 다섯 밤 더 자야 온다고 했어.” 제법 단호한 대답에 지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맞아. 아직 크리스마스는 좀 남았네. 그럼 이건 누나가 주는 선물!” “우와!” 선물을 하나씩 뜯어볼 때마다 반응은 점점 커졌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장난감이 가장 마음에 든 듯 상자를 열자마자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는 한참을 내려놓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지안도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민준이 한결이 곁으로 다가가 장난감 포장을 마저 뜯어주었다. 능숙하게 놀아주는 걸 보니 평소 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