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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한마음
‘욕심이 없는 아이라… 재미없네.’

손기욱은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임탕은 진작에 준비되어 있었다. 연경은 자신이 과분한 요구를 꺼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주저없이 쓴 탕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매화당을 나온 후에야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았다.

그러나 얼마 못가 매화당의 시종이 쫓아왔다.

“연경아, 이건 나으리께서 네게 내리신 포상이야.”

연경이 거절할 새도 없이 그 시종은 연경의 손에 주머니 하나를 쥐여주고는 자리를 떴다.

묵직한 것이 어림짐작해도 은화 열 냥은 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개 시종의 몸값이 고작 이 정도라니, 억울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걸 받지 않으면 오히려 손기욱은 그녀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녀는 돈주머니를 챙기고 비틀거리며 금수원으로 돌아왔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연경은 옷매무시를 정돈한 후에 송지운의 아침 시중을 들었다.

신혼부부인 손유민과 송지운은 금슬이 꽤 좋은 편이었다. 손유민의 옷 시중을 드는 것 같이 사소한 일마저 송지운은 직접 했다.

연경은 그저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손유민의 시선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시종들 중에서도 연경은 꽤 어여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입술 연지를 따로 바르지 않아도 탐스럽게 빨간 입술, 그리고 가녀린 목덜미는 사내의 보호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부군의 시선을 의식한 송지운은 조용히 연경의 앞으로 가서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할머니께 문안드리러 가시지요.”

족보를 따지면 손기욱이 두 사람의 양부이긴 하나,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매일 아침 문안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늘 하던 것처럼 매일 노부인의 처소를 찾아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노후작께서는 손유민을 손기욱의 양자로 들이면서 그를 세자로 삼으려 하셨다. 그러나 손기욱이 멀쩡하니 살아서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손기욱은 손유민의 양자의 신분을 묵인하기는 했으나, 그는 아직 장성하니 조만간 혼인하고 자식을 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손유민은 당연히 세자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그리하여 손유민과 송지운 부부의 처지는 다소 난처해졌다. 오직 노후작과 노부인을 극진히 모시는 것만이 이 무안 후작부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길이었다.

손유민이 세수를 하는 틈을 타, 송지운은 연경을 따로 불러서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연경에게 경고했다.

“앞으로 도련님께서 기침하실 때 방으로 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연경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답했다.

“예, 작은 마님.”

송지운 부부가 떠난 후에야 연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청초한 눈망울에 담긴 것은 사무치는 증오였다.

한달 전, 손기욱이 후작 작위를 물려받던 그날, 송지운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비녀가 호수에 빠졌다며 연경을 시켜 호수에 들어가 비녀를 찾게 했다. 때는 늦가을이었고 차디찬 호수 물에 밤새 몸을 담그고 있은 탓에 연경은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다가 의식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다.

전생에도 송지운은 자꾸만 손유민의 시선을 받는 연경을 경계했다. 회임한 이후에는 자신의 입지를 더 단단히 하기 위해 제 손으로 연경을 부군의 방에 밀어 넣었다.

그때부터 지옥의 시작이었다.

연경은 매번 손유민의 시중을 들고 난 이후면 송지운에게 불려가서 과정을 세세하게 진술해야 했다. 숨겨도 안 되고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송지운은 그녀가 사실을 말할 때까지 집요하게 추궁하고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진실을 듣고 난 이후에는 기분이 나쁘다며 종종 연경에게 혹독한 매질을 해댔다. 연경을 멍투성이로 만들고 열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본 이후에야 송지운은 직성이 풀렸다.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떠올리면 연경은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유민은 겉보기엔 다정다감해 보이지만 속은 악마와 다름없었다. 세월이 지나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자 그는 바로 그녀를 노리개처럼 다른 사내에게 던져주었다.

어느 날 그는 연경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밤을 보냈다. 관저로 돌아온 날, 그녀를 보는 송지운의 시선이 유난히 이상했고 그날 그녀는 송지운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그날로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연경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번 생에는 이용만 당하다 개죽음을 당하진 않을 거야!’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날이 다가오기 전에 손유민 부부의 속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했다.

초조하고 숨 막히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성을 다해 송지운의 시중을 들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날 밤, 연경은 밤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갔다가 귀가하는 손유민의 마중을 나갔다.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연경을 끌고 가산 뒤쪽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연경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자신을 놓아달라 애원했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손기욱이 소리가 들리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이런 사소한 일을 상관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 했다.

“도련님,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이러시면 안 돼요! 작은 마님께서 소인을 죽일 거란 말입니다!”

찬바람을 타고 들려온 익숙한 흐느낌에 결국 손기욱은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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