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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한마음
연경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두 발이 땅에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었다.

손기욱이 천천히 다가왔다.

송지운은 다급히 달려와서 예를 행하고는 그의 시선을 가리며 말했다.

“아… 아버지, 혹시 이 아이가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나요?”

그녀는 자신보다 열 살 많은 계부를 잠깐 바라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손기욱은 경성에서도 괴짜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 후작가의 세자로서 가만히 있어도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청해서 전장에 나간 사람이었다. 처음 그가 돌아왔을 때는 덥수룩한 수염에 검게 탄 피부 때문에 아버지라고 불러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그런데 두 달 요양하고 수염을 깎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릴 줄이야!

금사를 수놓은 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서는 엄청난 위압감이 풍기고 있었다. 송지운은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손기욱이 연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아이는 네 시종이냐?”

“예.”

“내가 방금 벗어 놓은 두루마기는 내일 매화당으로 가져오너라.”

매화당은 손기욱의 처소였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 가버렸다.

송지운은 의심의 눈초리로 연경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버님이 왜 너한테 두루마기를 가져오라는 거지?”

연경은 손에 땀을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작은 마님, 소인이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으리를 뵈었사옵니다. 나으리께서 두루마기가 더럽혀지셨다 하시며 소인더러 곁에서 수발을 들라 분부하셨나이다….”

화원을 나가던 손기욱은 걸음을 멈추고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송지운은 그를 등지고 있어 그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결국 연경은 처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송지운의 처소 앞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다음 날, 매화당 시종이 그녀를 데리러 와서야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다.

연경은 손기욱의 두루마기를 곱게 개어 챙기고 절뚝거리며 매화당을 찾아갔다.

손기욱은 정원에서 장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주변의 나뭇잎들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어제 보였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장창을 내린 손기욱이 그녀를 방으로 불렀다.

시종들이 물러가고 방에는 손기욱과 연경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연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예를 행한 뒤에 두 손으로 두루마기를 받쳐 올렸다.

“소인이 어제 두루마기를… 깨… 깨끗하게 씻었으니 돌려드릴게요.”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느냐?”

연경은 화들짝 놀라며 무릎을 꿇고 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손기욱은 불쾌한 듯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무안 후작부는 하인들을 강압적으로 굴리는 가문이 아니다. 툭하면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어.”

연경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들어보거라.”

그녀는 흠칫하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어제 일은….”

그가 운을 떼자 연경은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손기욱의 양며느리를 모시는 시종으로, 만약 그가 이대로 그녀를 자신의 처소로 들인다면 안 좋은 소문이 들릴 것은 뻔했다.

연경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어제 그런 선택을 한 이상, 물러설 퇴로는 없었다.

사실, 어젯밤 그녀가 그곳을 지나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손기욱이 약에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몰래 의원을 불러 도와준 뒤 그의 감사하는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길 속셈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벌어지며, 그녀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이런 변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연경은 처음부터 손기욱에게 의지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서두를 수 없는 일이었다. 귀하신 후작 나으리께서 어제 있었던 황당한 일 때문에 책임을 지고자 양며느리한테서 시종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낱 시종에 불과하니 그에게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나으리!”

그래서 연경은 우회전법을 쓰기로 했다.

“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인은 그저 우연히 나으리를 만나 더럽혀진 두루마기를 주워드렸을 뿐입니다.”

손기욱은 본분을 지키는 그녀의 행동이 꽤나 만족스러워 한참이나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따로 원하는 게 있느냐?”

단호한 어투는 마치 그녀가 입만 열면 뭐든 들어주겠다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연경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에게… 피임탕 한 그릇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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