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화

Author: 한마음
연경은 주저하며 한발 앞으로 다가갔다.

손기욱의 싸늘한 시선에서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연경은 하는 수없이 입술을 깨물고 그에게 다가갔다.

여인의 은은한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손기욱의 눈에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속눈썹과 빨갛게 상기된 볼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손기욱은 재빨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무심한듯 물었다.

“아직도 아프냐?”

온기 한점 느껴지지 않는 그의 말투에 연경은 손으로 목덜미를 매만지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이 은혜… 꼭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내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깃을 풀어헤쳤다.

가녀린 목덜미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손기욱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녀석이 네 목을 비틀었어?”

연경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친 후, 다급히 옷깃을 여몄다.

놀란 고양이처럼 경계를 바짝 세우는 그녀의 모습에 손기욱은 조용히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

“어디 더 다친 데는 없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백옥병이었다.

연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에게 말했다.

“소인은 워낙 맷집이 좋아서….”

사내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

“맷집이 좋아서 좀 건드렸다고 손자국이 나나?”

연경은 아직도 얼얼한 목덜미를 매만지며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나으리, 믿어주십시오. 소인은 도련님을 홀린 적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소인을 동굴로 끌고 들어간 것입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그래.”

손기욱은 담담히 대꾸하고는 약병을 그녀의 앞으로 건넸다.

연경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스치듯 잠깐 닿았던 사내의 손길에서 따뜻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녀는 흠칫하고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그를 매혹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만큼 그가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전생의 손기욱은 전장에서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벤 사람으로서 경성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전혀 살기와 위압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번은 육황자와 크게 싸웠다가 황자를 때려눕힌 적이 있었는데 전장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결국 황제의 꾸중 몇 마디 듣고 마무리된 적도 있었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면 연경은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태세로 말했다.

“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손기욱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싸늘히 말했다.

“내 말했지 않느냐.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지 말라고.”

연경은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손기욱은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아주었다.

너무 가녀리고 말랑해서 조금만 손에 힘을 주면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기욱은 그녀가 중심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 때문에 예전에 다쳤던 오른팔에서 뻐근함이 느껴졌다.

그는 왼손으로 어깨를 주물렀지만 뻐근함은 전혀 사라지지 않자, 짜증스럽게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름이 뭐지?”

“소인, 연경이라 합니다.”

연경은 그가 조금은 자신에게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하고 어깨를 주무르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깨가 불편하십니까? 소인이 주물러드리겠습니다.”

순간 방 안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손기욱은 온기 한점 없는 냉랭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연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서 풍기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기욱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는 금수원의 시종이다. 이런 일은 네가 할 일이 아니야.”

연경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만 나가보거라.”

냉담한 어투에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방을 나갔다.

‘내가 너무 성급했어.’

조금 전 충동적으로 한 말 때문에 며칠 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시녀의 생존수칙   제620화

    연경은 자신 또한 회임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지금의 신분에 그런 이야기를 얹는 것은 결코 체면에 맞지 않았고 굳이 입에 올릴 일도 아니었다.면을 다 먹고 나서야 풍 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너는 내가 위씨 노부인과 인연을 잇기를 바라는 것이냐?”“어머니는 원하세요?”연경의 눈에 담긴 간절함을 보자 풍 씨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인연을 맺자꾸나.”하지만 연경은 그녀가 진심에서 우러나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정을 하나하나 숨김없이 풀어놓았다.“외조모의 몸이 상한 것도 조 씨의 독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 오지 않으셨다면 오늘까지도 견디지 못하셨을 거예요. 풍 가의 할머님은 마음씨 고운 분이셔서 어머니와 외삼촌의 효를 받으셨지만 외조모 또한 참으로 가여운 분입니다.”풍 씨는 어느새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분도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사셨단 말이냐?”“조 씨와 외조부께서 사람답지 않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반평생을 그렇게 외롭게 살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인생은 짧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미련을 남기지 않으셨으면 하고 외조모 또한 그러시지 않기를 바라요.”미련을 남기지 말라…풍 씨는 요즘 들어 자연을 느끼며 편안히 지냈다. 분명 평온한 삶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비어 있는 듯했다.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족한 것은 정이었다.아이들은 이미 그녀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녀는 어디를 가든 홀로였다.“어머니와 외조모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러니 인연을 잇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풍 가의 할머님을 떠나보내셨는데 친어머니마저 미련을 안고 세상을 떠나게 하실 겁니까? 외조모는 몸도 편치 않으세요.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연경의 낮은 한숨에 풍 씨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연경도 곧바로 뒤따라 위씨 노부인이 쉬고 있던 요사채로 향했

  • 시녀의 생존수칙   제619화

    연경이 돌아서서 위씨 노부인을 부축하려 하자 노부인은 황급히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눈물을 훔쳤다.“할머니?”연경은 일부러 오기 전에 약탕을 한 그릇 먹여 드리고 왔기에 아직 서로를 알아보기도 전에 이토록 감정이 북받친 모습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위씨 노부인은 목이 메어 말했다.“나는 괜찮다.”연경은 위씨 노부인을 부축한 채 풍 씨 쪽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풍 씨는 연경 곁에 선 노부인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분이 바로 자신의 생모임을 깨닫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이리저리 흩뜨렸다.연경은 그녀 앞에 서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풍 아주머니, 오랜만이에요. 요즘 여기저기 다니며 마음을 달랜다고 들었는데 조금은 편안해지셨습니까?”풍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수건만 꼼지락거리며 답했다.“아, 아… 아주 좋습니다.”위씨 노부인은 그녀가 끝내 고개조차 들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연이가 아는 이를 만난 모양이니 너희끼리 이야기하거라. 나는 요사채에 가서 잠시 쉬어야겠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다리는 마치 납을 부은 듯 무거워 한 발짝도 떼기 어려웠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위씨 노부인은 한씨 어멈 몇 사람의 부축을 받아서야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만 보아도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조차 벅차 보였다.그제야 풍 씨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위씨 노부인의 등을 바라보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아직 끼니를 못했는데, 둘째 아씨께서 저와 함께 조금 먹어 줄 수 있겠습니까?”연경은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풍 씨는 그녀를 데리고 가장 한적한 요사채로 향했고 몇몇 시녀들이 밖을 지켰다.사방에 사람이 없자, 풍 씨는 낮게 타박했다.“일부러 노부인을 데려온 것이냐?”연경은 그녀의 팔을 끌어안았다.“어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요즘은 마음이 좀 편안해지셨습니까?”“그래.”딸은 역시 효심이 깊었다. 풍 씨는 요즘처럼 눈을 뜨면 꽃을 감상하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 생

  • 시녀의 생존수칙   제618화

    “나으리의 후원에 입덧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서부의 태의들은 손기욱과 친분이 깊지 않았고 서주행 또한 서부에 머물지 않았기에 그의 내택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손기욱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본후는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다. 내택은 비어 있는데 어찌하여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두 명의 서 태의는 다시 한 번 미간을 좁혔다.“드물긴 하나, 이런 기이한 증상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인이 회임하면 남편이 대신 입덧을 하는 경우입니다. 극히 드문 일로 대개는 사내가 아내를 지나치게 염려할 때 생긴다 하더군요. 혹은 여인이 회임한 뒤의 정서 변화나 음식 취향이 남편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고요.”그 말을 듣는 순간, 손기욱의 가슴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가 이토록 토해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란 말인가?모든 의심은 그 순간 입가의 웃음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눌러도 가라앉지 않았다.서 태의들은 말을 잇다 말고 손기욱이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나으리께서는 아직 혼인하지 않으셨으니 그 경우는 아니겠지요. 아무래도 요즘 심사가 복잡하시고 혼사를 앞두어 마음을 쓰신 탓일 듯합니다.”독이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다.손기욱은 담담하게 말했다.“본후는 스물나흘 뒤에 혼인을 치른다. 내일부터 청첩을 서부로 보내겠다.”청첩은 모두 그가 직접 쓴 것이었다.서 태의들은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손기욱은 기꺼이 그 인사를 받았고 서부를 나서는 발걸음은 유난히 가볍고 힘찼다.무안 후작부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연경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그녀의 몸을 걱정하느라 며칠째 얼마나 심하게 토했는지, 몸이 한 바퀴는 야위었다며 한껏 가엾은 말투로 적었다. 한바탕 약함을 드러낸 뒤 그는 잠시 고심하다가 앞으로 맞닥뜨릴 여러 어려움 또한 솔직히 적어 내려갔다.‘만약 네가 이런 불안 속에 함께하는 것이 싫다면 이 혼인은 물릴 수 있다. 한데 나와 함께 고락을 나누고자 한다면 앞으로는 생사도 함께하고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함께늙어가자꾸나

  • 시녀의 생존수칙   제617화

    반왕(叛王)이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기욱은 진작에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그는 전쟁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고 생령(生灵)이 도탄에 빠지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런 재앙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다만 혼인을 미루겠다는 생각은 잠깐 스쳤을 뿐, 그는 곧바로 그 생각을 털어냈다.연경은 이미 아이를 가졌다. 데려와 혼인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앞날이 순탄할 리 없었다.게다가 연경은 그를 너무도 깊이 사랑했다. 그토록 신중하고 목숨을 아끼는 아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신 가를 상대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혼인을 미룬다면 분명 홧김에라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손기욱의 가슴을 짓누르던 근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연경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조 내관은 신기하게도 무안 후작의 얼굴에 마침내 웃음이 떠오른 것을 보았다. 다만 그 시선은 성지에 가 있지 않고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압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웃다니.조 내관의 두피가 서늘해졌다.“손 지휘사?”“좋네.”짧은 한 마디였다. 그 말에 조 내관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고 물러날 때의 걸음걸이마저 한결 가벼워졌다.그제야 노후작은 바닥에서 일어났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들은 무릎도 꿇지 않았는데 늙은 자신만 절을 올렸으니 말이다.“아직 조정에 태자도 세워지지 않았는데 어찌 네가 태자태사가 되었느냐? 태자가 누군지 알고는 있느냐?”노후작은 좌우의 하인들을 물리고 성급히 물었다.손기욱은 잠시 침묵하다가 소연을 떠올렸다.“제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선황후의 아들이실 겁니다.”소연이 후작부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미 그런 추측을 하고 있었다.소 씨 가문은 선황후의 친정이었고 황제와의 정 또한 깊었다. 황제가 예전에 혼인을 주선하려 했을 때도 분명 소 씨 가문

  • 시녀의 생존수칙   제616화

    그는 견딜 자신이 있으니 차라리 그 고통을 자신이 대신 겪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온통 그런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 차자 구토는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급기야 오늘은 고기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혀 올라왔다.그는 문득 자신이 독을 맞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이런 증상은 전에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여덟 가지 죄목 가운데 탐오수뢰(貪污受賄: 자신의 지위나 권한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는 이미 벗겨냈다.결당영사(結黨營私: 도당을 조직해 사리사욕을 꾀하는 것)의 죄목은 유왕 일파와 얽힌 것이었으나 이번 생에서는 연경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유왕 세력과 선을 분명히 그었으니 이 죄 역시 성립될 수 없었다.사사로이 법을 어기고 군주를 기만했다는 죄는 신 가가 앞장서 탄핵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연경이 승주에서 계책을 써 신 가를 묶어 두었으니 이 또한 쉽게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설마 신 가가 앙심을 품고 그에게 독을 쓴 것일까?손기욱은 기루에 드나드는 사람도 아니었고 금위군 지휘사 자리를 내려놓은 뒤로는 그에게 빌붙던 이들 또한 뿔뿔이 흩어졌다. 몇몇과 기밀을 논의할 때를 제외하면 늘 후작부에서만 먹고 마셨다.그렇다면 신출귀몰하게 독을 쓰고도 부의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손기욱은 원래 쓸데없는 상상을 늘어놓는 성정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조태복에게 말을 준비시켜 서주행의 집으로 향하려 했다.그러나 아직 문을 나서기도 전에, 황제 곁에서 가장 신임받는 조 내관이 성지를 들고 찾아왔다.그 소식을 듣자 노후작은 서둘러 향안을 차리고 손기욱을 데리고 공손히 성지를 맞이했다.“하늘의 명을 받아 폐하께서 이를 전하노니. 무안 후작 손기욱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과 재주를 고루 갖추었으며…”한참을 치켜세운 뒤, 성지는 손기욱을 금위군 지휘사로 복직시키고 더불어 태자태사 직을 겸임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태자태사는 삼공의 으뜸 자리였다. 비록 실권은 없고 태자의 학문과 품성을 가르치는

  • 시녀의 생존수칙   제615화

    첫 번째 상자는 차마 더 들여다볼 수가 없어 연경은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눈앞에 펼쳐진 광채에 그녀의 동공이 놀라 수축했다. 그 안에는 혼례 때 입을 봉관과 하피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고 눈부시게 화려하면서도 정교했다. 머리관에 박힌 구슬들은 찬란하게 빛났고 그 아래 가지런히 접혀 있는 짙은 녹색의 혼례복은 은은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치맛자락에 수놓인 문양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했고 대부분 금실로 수놓아져 있어 몸에 걸치면 얼마나 귀하고 장중할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연경은 부드럽게 손끝으로 혼례복의 결을 쓰다듬으며 감탄하고 있을 때, 밖에서 위씨 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째서 다들 밖에만 있는 것이냐? 무슨 보물이 들어왔길래 아무도 못 보게 막아 놓았느냐?”연경은 숨이 가빠져 일어나 문을 열었다.“할머니, 강씨 어멈은 가셨나요?”“그래 갔다. 지난번에 납채할 때 혼례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지 않느냐? 오늘 한꺼번에 보내왔으니 입어 보고 맞지 않는 데가 있으면 살펴보라 하더구나.”연경은 얼굴이 붉어져 위씨 노부인을 안으로 모셨다.이 순간, 그녀는 비로소 혼례를 앞둔 처녀의 설렘을 또렷이 느꼈다.위씨 노부인은 열린 상자를 보고 그 안의 봉관과 하피를 한눈에 훑어본 뒤 눈썹을 찌푸렸다.“이건 극사로 짠 것이로구나? 이런 혼례복 한 벌을 마련하려면 적어도 반 년은 족히 걸렸을 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게냐?”“반 년이요?”연경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렇다면 그녀를 매화당으로 들이던 무렵부터, 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가슴속이 시큰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그는 겉으로는 호방하고 오만해 보였지만 뒤에서는 언제나 이렇게 세심하게 모든 일을 챙겼다.여섯 째 송 도련님이 다리를 다쳤을 때도 그녀가 걱정하는 걸 알고는 아무 말 없이 방법을 궁리해 무안 후부로 불러 직접 치료하게 했고 또 그녀 어머니의 일 또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으며 크고 작은 일까지 하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