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ir

3.

Autor: 스루삐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2 13:47:44

나는 노련하게 표정을 숨기고 3황자에게 말했다.

“고작 연애 상담을 위해 백작저에 오신 거라면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겠군요.”

3황자가 리하르트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거나 수잔나와의 참사를 탓할 생각이라면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수잔나야말로 내 약혼을 파기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이였다.

황자씩이나 되는 놈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트먼의 소백작을 찾다니. 하트먼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3황자는 멍청하거나 사랑에 눈이 먼 얼간이쯤 되겠다.

자리를 뜨려는 찰나 예상 밖에도 황자는 또다시 엉뚱한 말을 해왔다.

“아니요. 나는 영애를 도우려 합니다. 소공작에게 위자료를 뜯어내실 생각 아닙니까? 그 액수를 무조건 더 높여 책정해 주지요. 그래야 내 얄팍한 질투심도 조금 해소가 될 테니까요.”

“베링 자작 영애를 마음에 두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리하르트와 제가 파혼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집니다. 리하르트와 베링 영애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요.”

“베링 영애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공작 부인의 자리라면 기꺼이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소백작의 파혼에 개입하면 황실에서 어찌 나올지 너무 뻔히 보여서 말입니다.”

이제야 본론이다. 지겨울 정도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이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에게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지금 제게 ‘계약 약혼’이라도 청하시는 건가요?”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베링 영애가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를 대비해 제 옆자리는 비워둘 생각입니다. 물론, 부황의 명대로 소백작께 청혼서는 보내야겠지요. 그러니 소백작께서 제 청혼서를 아주 요란하게 거절해 주십시오. 피차 원치 않는 혼약에 묶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

그 당돌하고 뻔뻔한 대답에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눈앞에 버젓이 앉아있는 이 에스텔 하트먼을! 원치 않는 혼약이라도 이해관계만 맞는다면 받아들일 계산적인 사람으로 몰아가 제 사랑이 세기의 사랑인 양 포장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교묘한 심리전에서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체스판 위에서 놀아나는 멍청한 폰이 되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해가 안 되네요. 고작 자작 영애에게 그리 미련을 갖는 것도, 그 영애에게 공작 부인 자리를 쥐여 주고자 이 하트먼의 소백작을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것도……."

서늘해진 말투에 해럴드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수잔나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도 거짓은 아닙니다. 허나 내 목적이 오직 사랑뿐이겠습니까? 피차 피할수 없는 입장이라면,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완벽한 공범이 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소백작께서는 성가신 파혼 기간을 없앨 든든한 황실의 뒷배가 필요하고, 나는 부황의 눈을 속일 그럴싸한 방패막이가 필요하지요. 이보다 완벽한 이해관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해럴드가 자세를 고쳐 곧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올곧은 시선이 아이러니하게도 뱀같은 황제의 피가 제 몸에도 흐른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리하르트에게 타격을 주진 못하더라도 손해는 아니다.

“제 답은 파혼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에 따라 달라지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

차갑게 거래에 응하고 응접실을 나가려는 찰나 해럴드가 알 수 없는 한 마디를 툭 뱉었다.

“소백작, 설마 그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

대관절 이건 또 무슨.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일까.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은 불쾌감이 밀려왔다.

응접실을 나왔음에도 귓가에 달라붙은 그 찝찝한 한마디가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었다.

해럴드에게 내가 만든 무대를 양보할지언정 그의 체스판 위에 말이 되는 것은 사양이다. 그러니 촘촘한 그물을 쳐 놓을 것이다.

“로레나! 백합, 호위를 강화해야겠어. 혹시라도 백합이 이상 행동을 보이거든 내 앞으로 데려와달라 해줘.”

“예? 그런 의뢰를 받을까요?”

제국 정보 길드의 정점에는 슈페러가 있었다. 지난 5년간 내 잡다한 일들을 도운 것이 바로 슈페러였다. 거기엔 합법적인 것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목줄을 쥔 동업자가 이런 의뢰를 거절할 리 없었다.

“슈페러가 내 의뢰를 안받은 적이 있었나? 걱정하지마.”

* * *

사교계의 기류가 급변했다.

벨테레브 소공작의 난잡한 사생활에 지쳐 하트먼이 파혼을 청했다는 가십은 온 제국을 휩쓸었다.

“어머! 그럼 이제 벨테레브 소공작은 자유인 건가요?”

“……영애? 영애도 벨테레브 소공작께 마음을 품으셨어요? 세상에! 파혼한다는데 어째 소공작께서는 인기가 더 많아지는 것 같네요.”

그의 전 약혼녀가 바로 뒤에 있다는 건 알고 떠들어 대는 것인지.

하트먼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황실부터도 파혼장이 접수되자 당장 낯빛을 바꿨으니 어련할까.

해럴드를 만나고 온 뒤부터 황실 보물창고에 잠자던 보석과 그림, 세공품들이 백작저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 하나도 백작저 안으로 들여선 안돼. 모두 되돌려보내.”

그러나 그것들이 백작저 안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모두 이면 거래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 속을 알수없는 3황자는 또 예상치 못한 짓을 벌였다. 해럴드가 백작가에 직접 찾아왔다.

‘해럴드 이놈은 황자가 직접 백작가에 방문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꽃다발을 들고 해맑게 웃고있는 해럴드를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전에 약조한 내용과 사뭇 다르군요. 황자 전하께서 직접 백작저까지 행차하시면 제가 무슨 수로 청혼을 거절하겠습니까.”

“하핫. 반드시 거절해 주십시오. 저는 그저 부탁이 있어 온 것뿐이니까요.”

“아무래도 데자호르 남작께서 계약에 관한 교육은 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황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데자호르 남작을 들먹였다. 스승까지 싸잡아 욕했으니 해럴드 속이 아주 엉망일 것이다.

해럴드와의 거래는 추가 요청을 상정한 적이 없다. 물론 자존심을 긁어 면박을 주려는 것도 있었다. 날선 공격에도 해럴드는 그저 겸연쩍게 웃어넘겼다.

“마음 약한 영애가 그 말을 들었다면 눈물을 흘렸겠네요. 어려운 건 아닙니다. 오늘 제가 청혼 선물로 가져온 것을 따로 보관해 달라는 청이니까요.”

해럴드가 직접 행차한 상황에서 선물을 보관해 달라 말했다는 건! 그 물건이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해럴드는 제 몸보다 큰 물건을 선뜻 열어 보여주었다. 수천개의 백합 모양 크리스털 조각이 원형으로 달려있는 샹들리에였다.

백합은 곧 수잔나였다. 제국의 그 누구라도 샹들리에를 보는 순간 그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가 리하르트와 엮여 평판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황태자 자리에 오를 해럴드가 이 샹들리에를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스캔들이 될 게 분명했다.

“대체 제게 어떤 대가를 치르시려고⋯⋯. 뭐, 좋습니다. 황자님의 거래에 응한 만큼 그 청 또한 들어드리죠. 다만 제 조건도 확실히 처리해 주셔야 할 겁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황자의 청대로 청혼 선물로 가장한 그의 비밀 물건을 연회장 지하실에 들였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물건이건 간에 황자놈의 비밀 물건을 보관하고 있으니 추후 좋은 협상카드가 될 것이다.

해럴드의 방문은 하트먼과 황실의 결속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파혼의 책임이 리하르트와 염문을 뿌린 수잔나 베링에게 있다는 결론을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리하르트와 수잔나의 관계도 완전히 파탄 났다. 어쩌면 3황자가 진정으로 원한 그림이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뱀같은 황제의 피가 어디 가진 않았다니까.”

* * *

해럴드가 파혼에 개입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파혼의 책임이 전적으로 리하르트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그를 유책 혼약자로 지정했다. 그 덕에 벨테레브에서는 소송을 청할 수 없게 되었다. 송사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파혼 대기 기간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거래를 했으니 당연한 대가였다. 그러나 더 마음에 드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백작가에서 요청한 위자료와 함께 리하르트의 ‘진심 어린 사과’까지 명했다는 것!

새로운 약혼 상대로 황자들을 들이밀어 보려는 황실의 뻔한 수와 이면 거래가 이룬 쾌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리하르트가 그 ‘진심 어린 사과’를 하러 오는 날이 되었다.

큰 이벤트를 앞두고 공교롭게도 농작물이 원인 모를 이유로 말라 죽었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기사단을 대동하고 가는 것이라 원칙대로라면 기사단장인 내가 나서야 했다. 그러나 이번엔 아버지가 직접 기사단을 이끌게 되었다.

“아버지, 영지 시찰은 조금 더 미루어도 되지 않습니까. 제가 가도 충분할 텐데요.”

“좀이 쑤셔 그런 것이다.”

미소띤 얼굴로 포옹을 나눈 아버지의 얼굴이 무언가를 떠올린듯 섬뜩하게 변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여기 남아있다간 네가 손을 쓰기도 전에 그 소공작 놈의 숨통을 끊어놓고야 말 테니 가야지. 온전히 네 방식대로 즐길 수 있게 이 아비가 자리를 비켜주마.”

“하,하. 아버지, 농담도 차암.”

농담이 아닌것 같아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아버지는 다시 빙긋 웃어 보이셨다.

“수확을 마친 상황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녀오마.”

아버지는 배웅을 받으며 서남부 평야로 향했다. 서늘한 바람이 어깨를 스쳐 갔다. 마치 거대한 태풍을 예고하는 것처럼.

* * *

​“리라, 알지?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써야 해. 꽉 조여. 아주 탄탄하게! 특히 맨살 보이는 데 없게 꽁꽁 싸매고!”

“어이구, 아가씨! 이참에 그냥 갈비뼈를 뽑아 달라 하시지. 더 조이면 내장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겠어요!”

숨통이 턱턱 막혔다. 그러나 이쯤은 참아야 제대로 한 방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수잔나 봤지? 그 빈약한 가슴으로 젖꼭지만 겨우 가린 것 같은 옷 입고 나온 거!”

“에이, 아니던데요? 리하르트 소공작 놈이 벗긴 거지 원래는 그런 옷 아니었어요. 아가씨도 비슷한 옷이 몇 개나 있는걸요?”

리라는 가끔가다 이렇게 뼈를 때리곤 했다. 쓸데없이 진실을 파헤치니 괜히 심술이 났다.

“너는 내 옷이나 잘 살피지 다른 영애 옷은 뭐 하러 살펴보고 그러니? 참나! 어쨌든 나는 무조건 그거랑은 반대로 꽁꽁 싸매서 살색이라곤 한 군데도 안 보이게 해!”

쉬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가벼운 성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찌는 듯한 한여름에 겨울옷을 꺼내 입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한 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나는 까만색 장갑을 손에 끼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응접실로 향했다.

“못된 망아지 오늘 버릇 좀 고쳐보자.”

Continúa leyendo este libro gratis
Escanea el código para descargar la App

Último capítulo

  • 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3.

    나는 노련하게 표정을 숨기고 3황자에게 말했다.​“고작 연애 상담을 위해 백작저에 오신 거라면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겠군요.”​3황자가 리하르트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거나 수잔나와의 참사를 탓할 생각이라면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수잔나야말로 내 약혼을 파기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이였다.황자씩이나 되는 놈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트먼의 소백작을 찾다니. 하트먼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3황자는 멍청하거나 사랑에 눈이 먼 얼간이쯤 되겠다.​자리를 뜨려는 찰나 예상 밖에도 황자는 또다시 엉뚱한 말을 해왔다.​“아니요. 나는 영애를 도우려 합니다. 소공작에게 위자료를 뜯어내실 생각 아닙니까? 그 액수를 무조건 더 높여 책정해 주지요. 그래야 내 얄팍한 질투심도 조금 해소가 될 테니까요.”“베링 자작 영애를 마음에 두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리하르트와 제가 파혼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집니다. 리하르트와 베링 영애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요.”“베링 영애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공작 부인의 자리라면 기꺼이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소백작의 파혼에 개입하면 황실에서 어찌 나올지 너무 뻔히 보여서 말입니다.”​이제야 본론이다. 지겨울 정도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이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에게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그래서, 지금 제게 ‘계약 약혼’이라도 청하시는 건가요?”“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베링 영애가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를 대비해 제 옆자리는 비워둘 생각입니다. 물론, 부황의 명대로 소백작께 청혼서는 보내야겠지요. 그러니 소백작께서 제 청혼서를 아주 요란하게 거절해 주십시오. 피차 원치 않는 혼약에 묶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당돌하고 뻔뻔한 대답에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눈앞에 버젓이 앉아있는 이 에스텔 하트먼을! 원치 않는 혼약이라도 이해관계만 맞는다면 받아들일 계산적인 사람으로 몰아가 제 사랑이 세기의 사랑인 양 포장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교

  • 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2.

    황성과 벨테레브의 경계에 있는 작은 오두막. 내게 유일하게 친우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프레드! 네 생각엔 리하르트가 제정신인 거 같니? 약혼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입을 맞추고 끌어 안더라니까! 내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던 놈이 말이야.”​심드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프레드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당신도 그 여자처럼 리하르트가 안아주길 바랐습니까?”​그가 서늘한 눈빛으로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내 입에서 리하르트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면 프레드는 이렇게 딱딱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나는 일부러 얼굴을 잔뜩 구기고 말했다.​“실성했니? 이젠 염증이 나서 줘도 싫어. 그 불결한 바람기에 신물이 난다고. 근데 이제 그것도 끝이야. 나 곧 파혼해.”​당당하게 파혼에 관해 이야기하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갑작스레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속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정말입니까? 파혼하면 어떡하시려고요? 더 나은 혼처라도 있습니까?”“왜 없겠어. 나 하트먼이야. 재력이라면 제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데 어디든 다 환영이지. 여차하면 리하르트 약 좀 오르라고 그 쌍둥이 동생한테 시집가 버리지 뭐.“​홧김에 뱉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리하르트의 동생'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프레드의 미간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손에 쥔 나무 컵 손잡이가 빠직거리며 깨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인지. 그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둘이 형제이잖습니까. 백작님이 허락 안 하실 겁니다. 거기다가 프레데릭은 리하르트랑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던데…….아시잖습니까. 공작가의 저주요.”​헛소문에 흔들리지 않는 그가 갑자기 항간에 떠도는 공작가의 저주에 관해 언급했다. 별일이었다.​“저주? 너는 그게 진짜라고 믿어?”“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이상하게도 프레드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공작가의 저주는 제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낭설이었다. 손이 귀한 벨테레

  • 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1.

    [3개월 전.]​위태롭게 흔들리는 현의 트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수잔나의 손이 꼭 비브라토를 만들어내는 연주자의 손 같았다.​레이스로 치장한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나는 수잔나를 노려보고 있었다.​“절약은 훌륭한 미덕이지요. 허나 온몸에 값비싼 보석을 휘감은 채 옷감만 줄인 꼴이라니. 진정으로 검소함을 실천하는 영애들에 대한 크나큰 실례 아니겠습니까?”​내가 수잔나의 옷차림을 지적하자 근처에서 구경하던 부인들마저 은근슬쩍 몸에 걸친 보석을 가리기 시작했다.​어이없게도 수잔나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이미 숱한 귀족 부인들이 애용하던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이름도 잘 모르는 어린 영애 하나가 나서서 수잔나의 어깨를 툭 쳤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참견이었다.​“영애 가슴팍에 달고 있는 그 보석이 어떤 것인지는 아십니까? 하나는 하트먼 백작 영애가, 다른 하나는 그녀의 약혼자 벨테레브 소공작이 나눠 가졌답니다. 하트먼 백작 영애의 열여덟 번째 생일 연회에서요.”​수잔나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성년식에 나눠 가진 보석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수잔나는 이목을 더 끌어보려는 심산인지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하트먼 백작 영애!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아직도 모르십니까? 지난밤 당신과 밤을 지새운 사내가 누구인지.”“그, 그 무슨! 저는 어제!”​그녀의 가슴팍에 블루 다이아가 반짝 거렸다. 잠깐이나마 통제하지 못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스산하게 퍼진 살기에 흠칫 놀란 수잔나는 뒷걸음질 쳤다.​조심하려 했건만 검을 다루지 않는 이들에게 내 살기가 협박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실로 그럴만한 사유였다.​블루 다이아의 의미를 안다면 결코 가슴팍에 달고 있을 수 없었다.​나는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 레이스 부채의 끝으로 수잔나의 가슴팍에 달린 보석을 톡 건드렸다.​겨우 레이스 부채

  • 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프롤로그

    오지 않을 것 같던 결혼식 날이 밝았다. 밤새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거울 속 굳은 얼굴을 애써 지우며 오늘 치러야 할 끔찍한 의식을 떠올렸다.​남편이 될 프레데릭은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식 날이 밝도록 그의 맨얼굴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설마 본인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가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의 등장이 이 새하얗게 꾸며진 결혼식장에 뚝 떨어진 오물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소백작님, 이제 식장으로 가시죠.” “그래, 가야지.”​리라의 도움을 받으며 공작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이 결혼이 벨테레브 측에서도 감추고 싶은 일이라는 건 분명했다.회랑을 빠져나오자 리라가 뒤로 젖혀두었던 면사포를 덮어 주었다.​“소백작님, 식장이 좀 소란스럽네요. 꼭 무슨 일이 터진 것처럼요.”​면사포가 드리우기 전 보았던 상황이 영 달갑지 않았다. 여기저기 팔짱을 낀 채 숙덕거리는 사용인들과 텅텅 비어 있는 하객석. 그나마 자리한 하객들의 분위기도 영 께름칙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분 나쁜 웅성거림이 면사포 안에 맴돌았다.​아무리 세가 죽었다고는 하나 하트먼과 벨테레브의 결합이었다. 그런 자리에 황실의 귀빈조차 자리하지 않았다. 앙다문 입안이 썼다.​벨테레브에서 이 결혼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과 별개로 내게도 그리 내키는 결혼은 아니었다. 내 전 약혼자의 동생과 결혼하는 모습을 만인 앞에 보여주는 게 유쾌할 리 없으니까.​“무슨 일이 터졌으면 좀 어때. 결혼식도 못 하게 화려하게 터지면 더 좋지.”​말이 씨가 된 것처럼 그날에 터진 사건은 아주 화려했다.​식장에 신부가 모습을 드러냈건만 여기저기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둘째 공자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괴물이 8마리나 나왔다던데 경계로 파견된 것이 맞습니까?”​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도 몰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Más capítulos
Explora y lee buenas novelas gratis
Acceso gratuito a una gran cantidad de buenas novelas en la app GoodNovel. Descarga los libros que te gusten y léelos donde y cuando quieras.
Lee libros gratis en la app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