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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시아주버니를 정부로 두기로 했다.
작가: 스루삐

프롤로그

작가: 스루삐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2 12:00:17

오지 않을 것 같던 결혼식 날이 밝았다. 밤새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거울 속 굳은 얼굴을 애써 지우며 오늘 치러야 할 끔찍한 의식을 떠올렸다.

​

남편이 될 프레데릭은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식 날이 밝도록 그의 맨얼굴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

‘설마 본인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가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의 등장이 이 새하얗게 꾸며진 결혼식장에 뚝 떨어진 오물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

“소백작님, 이제 식장으로 가시죠.”

“그래, 가야지.”

​

리라의 도움을 받으며 공작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이 결혼이 벨테레브 측에서도 감추고 싶은 일이라는 건 분명했다.

회랑을 빠져나오자 리라가 뒤로 젖혀두었던 면사포를 덮어 주었다.

​

“소백작님, 식장이 좀 소란스럽네요. 꼭 무슨 일이 터진 것처럼요.”

​

면사포가 드리우기 전 보았던 상황이 영 달갑지 않았다. 여기저기 팔짱을 낀 채 숙덕거리는 사용인들과 텅텅 비어 있는 하객석. 그나마 자리한 하객들의 분위기도 영 께름칙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분 나쁜 웅성거림이 면사포 안에 맴돌았다.

​

아무리 세가 죽었다고는 하나 하트먼과 벨테레브의 결합이었다. 그런 자리에 황실의 귀빈조차 자리하지 않았다. 앙다문 입안이 썼다.

​

벨테레브에서 이 결혼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과 별개로 내게도 그리 내키는 결혼은 아니었다. 내 전 약혼자의 동생과 결혼하는 모습을 만인 앞에 보여주는 게 유쾌할 리 없으니까.

​

“무슨 일이 터졌으면 좀 어때. 결혼식도 못 하게 화려하게 터지면 더 좋지.”

​

말이 씨가 된 것처럼 그날에 터진 사건은 아주 화려했다.

​

식장에 신부가 모습을 드러냈건만 여기저기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

“…… 둘째 공자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괴물이 8마리나 나왔다던데 경계로 파견된 것이 맞습니까?”

​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도 몰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수치심과 분노가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

경계 밖으로 무려 여덟 마리의 괴물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경계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

엄연히 서남부 평야에서 생긴 하트먼의 일인데도 그 사실을 결혼식장 한복판에서 황실도, 벨테레브도 아닌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알게 되다니.

​

“설마, 저 악독한 여인에게서 도망이라도 친 것은 아닐는지…….”

“그럼 대체 언제쯤 식이 진행된단 말입니까!”

​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용인들 사이에서 결혼식 사회자가 앞으로 나와 하객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

“다들 아시겠지만 프레데릭 벨테레브 공자께서 경계 파견 지휘관이 된 관계로 급하게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

괴물을 상대해본 기사단은 오로지 하트먼 뿐이었다. 그런데도 하트먼에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감히, 내 영지의 일을!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나를 이런 우스꽝스러운 인형 놀이에 묶어두고 하트먼의 기세를 꺾어 제멋대로 휘두르려 하다니. 당장에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찢고 대평야로 말을 달리고 싶은 생각이 넘실거렸다.

​

이 굴욕을, 이 치욕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나의 하트먼은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내게 이 수치를 안겨준 모든 이들을 남김없이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

면사포 너머로 내 검을 찾는 눈길이 분주해졌다. 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사회자의 낭랑한 선언이 나를 다시금 이 빌어먹을 인형극의 식장 한가운데로 멱살 잡듯 끌어내렸다.

​

“오늘 결혼식은 모든 절차를 건너뛰고 반지 교환과 성혼 선언 후 종료할 예정입니다. 신랑을 대신할 대리인께서는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끼익하고 의자가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뚜벅이는 구두 소리가 버진로드에 오르고 프레데릭의 빈자리를 대신할 이가 다가와 눈앞에 섰다. 익숙한 초콜릿 향이 면사포 안으로 훅 끼쳐왔다.

​

“!!”

​

쿵.

​

익숙하고 농염한 그 향기에 심장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완벽했던 내 인생의 유일한 흠결이었던 사내. 그와 파혼한 지 겨우 석 달.

​

대리인이라면 으레 프레데릭의 부친인 벨테레브 공작이 자리했어야 했다.

​

​한데, 어째서 그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인지.

​

당혹스러운 시선의 끝.

​

무겁게 뚜벅이는 구두 소리, 면사포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낸 까만 구두, 길게 뻗은 탄탄한 다리와 압도적인 체격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올리던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찬란하게 부서지는 금발과 심해를 퍼 올린 듯한 파란 눈동자.

​

긴 속눈썹을 내리깐 채로 무심하게 손을 뻗어 온 이는 내 남편이 될 자의 쌍둥이 형이자 나의 전 약혼자, 리하르트 벨테레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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