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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지난이
곧이어 나는 고민재와 소여름에게 양쪽 팔을 붙잡힌 채, 마치 죽은 개처럼 질질 끌려 스위트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복도 끝자락에는 열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뒷짐을 진 채 버티고 서서 압도적인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 앞에 선 우두머리 남자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나는 단숨에 그의 정체를 알아챘다.

진범준이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내게 문을 열어줄 주제도 못 되던 변두리 말단 경호원이었건만, 내가 집을 나와 방황하던 몇 년 사이에 아빠의 총애를 받는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

고민재와 소여름은 방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태도를 온데간데없이 거두고는 그 자리에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아첨꾼의 미소를 장착했다.

“실장님, 말씀하신 사람 데려왔습니다.”

진범준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무심하게 훑었다.

얼음물에 담금질한 칼날처럼 섬뜩한 그의 눈빛이 이윽고 차갑게 내 위로 떨어졌다.

“하 회장님의 규칙, 다들 알고 있겠지? 바치는 여자는 몸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거.”

고민재는 허리를 땅바닥에 닿을 듯 굽힌 채 굽신대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다마다요! 무조건 깨끗하고 말도 아주 잘 듣습니다!”

진범준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침 오늘 하 회장님 기분이 언짢으셔서 화풀이할 장난감이 필요하던 참이긴 해. 다만 이 여자가 제대로 비위를 못 맞추면, 너희 둘도 같이 생매장될 줄 알아.”

고민재는 흠칫 놀라며 나를 거칠게 앞으로 밀쳐냈다.

“벙어리야? 실장님께 직접 대답 안 해!”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비웃음을 삼켰다.

“너희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격노한 고민재가 손등으로 내 뺨을 자비 없이 후려쳤다.

“이 빌어먹을 년이! 똑바로 대답하라니까 어디서 잘난 체야!”

나는 따귀를 맞고 몇 걸음 비틀거리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쿵 찧고 말았다.

가뜩이나 천 쪼가리에 불과했던 슬립마저 찢어지며 몰골이 말이 아니게 망가졌다.

고민재가 이를 갈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쓸모없는 년! 감히 실장님 앞에서 건방을 떨어?”

마치 한 편의 우스운 연극을 관람하듯 이 소동을 냉랭하게 지켜보던 진범준이 이윽고 다시 입을 뗐다.

“회장님은 말 안 듣는 것들을 제일 싫어해. 회장님 앞에서 객기 부리던 년은 뼛가루가 되어 벌써 악어 밥으로 뿌려진 지 오래야.”

고민재와 소여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질리더니 일순간 숨소리조차 멎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빠는 엄마를 도발했던 그년을 토막 내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여자라는 존재에게 지독한 애증을 품고 온갖 잔혹하고 변태적인 방식으로 짓밟아왔다.

그 끔찍한 악취미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눈가에 억누를 수 없는 광기와 흥분이 서렸다.

나의 이상한 반응은 진범준의 예리한 눈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그가 살짝 눈을 가늘게 뜨자, 눈빛에 묘한 흥미가 스쳤다.

“제법 간 큰 년이야. 보통 여자들은 악어 밥이 된다는 말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는데.”

그는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제법 마음에 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밤 회장님 심기가 단단히 뒤틀리셔서 마침 화풀이할 기 센 노리개가 필요하시던 참이었는데, 겁도 없이 덤비는 네 성깔이 오히려 하 회장님 입맛에 맞을 수도 있겠어. 회장님께서 오늘 밤 제대로 기분만 푸신다면, 우리 같은 아랫것들한테도 제법 짭짤한 보상이 떨어지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고민재의 두 눈에 순식간에 탐욕스러운 빛이 번쩍였다.

내가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정말 진범준의 마음에 들었다고 착각한 모양인지, 고민재는 금세 기세등등해졌다.

그는 거칠게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강제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두피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단 한 번의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실장님, 이 얼굴에 이 몸매면 하 회장님께서도 분명 흡족해하실 겁니다!”

고민재는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더니 어떻게든 진범준에게 연줄을 대보려는 듯 넌지시 물었다.

“실장님, 주제넘은 질문인 건 알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 회장님께서 오늘 밤 유독 기분이 안 좋으신 이유가 뭡니까? 듣자 하니 회장님께서 첫사랑을 찾고 계시다던데,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미인이길래 그러는 거죠?”

“슬쩍 힌트라도 주시면, 저희가 다음부터 회장님 취향에 딱 맞는 여자를 골라서 바칠까 해서요...”

그 순간, 고민재를 바라보는 진범준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식었다. 마치 싸늘한 시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회장님의 사생활을 네 따위 쓰레기가 감히 어디서 캐물으려 들어?”

고민재의 낯빛이 단숨에 흙빛으로 변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제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공포와 찔리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분풀이하듯 다시 내게 화풀이를 했다.

퍽!

그의 발길이 내 아랫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뱃속이 뒤틀리고 내장이 꼬이는 듯한 끔찍한 통증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바닥에 웅크렸다.

“천박한 년! 당장 안으로 안 기어들어 가고 뭐 해? 방에 들어가면 발정 난 암캐처럼 바닥을 기고 꼬리를 흔들어서라도 하 회장님 기분을 풀어드려!”

거친 손길에 떠밀린 나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을 꾹 참아내며 차가운 문틀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방금 고민재가 물었었다. 하진석은 대체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거냐고.

나는 속으로 소리 없이 비웃었다.

‘설상가상이라 그렇겠지.’

5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바로 이 날, 나는 그의 면전에 대고 평생 대가 끊길 거라며 악에 받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정말 그 저주가 먹힌 것인지 그가 밖에서 만나온 수많은 여자 중 그 누구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유일한 혈육인 딸년은 눈엣가시처럼 엇나가 버렸고 하필 오늘은 죽은 본처의 기일이니 그의 심기가 멀쩡할 리 만무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의 기분을 풀어주겠답시고, 친딸인 나를 창녀 취급하며 제 아비의 침대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는 꼴이라니.

‘하진석,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이 문이 열리고 나를 마주했을 때, 당신이 내게 대체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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