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강루인은 칼을 쥔 손에 힘을 더 주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쪽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언제부터 있었던 거죠?”지수현은 그녀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옮겨 바닥에 쓰러진 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술 취한 남자를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음...”일부러 뜸을 들이듯 길게 끌던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마 그쪽이 손을 쓰기 전부터였던 것 같은데.”강루인이 얼마나 잔인하게 행동했는지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평범한 여자라면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녀에게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고 남은 것은 오직 냉정함과 단호함뿐이었다.그런 강루인의 모습은 오히려 지수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못 본 거로 해 줄 수 있어요?”지수현은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더니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제 눈은 멀쩡하거든요.”강루인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그럼 신고할 건가요?”지수현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되물었다.“제가 신고하길 원해요?”강루인은 짧게 대답했다.“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대답에 지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여긴 벨라크가 아니라서 사형은 없어요.”강루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감옥에 가고 싶지도 않아요.”지수현은 두 팔을 교차한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럼 저한테 빌어봐요.”강루인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부탁할게요.”지수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지금 모습보다는 아까 칼을 들고 있던 그 모습이 더 마음에 드는데.”그런 강루인이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지수현이 빛을 등지고 서 있었기에 그녀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짓궂은 농담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럼에도 강루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그쪽은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지수현은
강루인이 지수현을 위로하기 위해 억지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그들을 만난 것은 그녀에게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그해 강루인은 주영도가 자신에게 넘겨준 재산을 모두 해외로 옮겼다.그녀는 혼자 해외에서 살아가게 되더라도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만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강루인이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모든 일을 알게 된 주영도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그녀의 계좌를 전부 막아버렸고 단 한 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했다.절망은 한순간에 몰려왔다.그 순간의 강루인은 정말 주영도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를 원망했다.그리고 바로 그때 지수현이 마치 구세주처럼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원래 지수현은 남의 일에 쉽게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를 데리고 출국한 것만으로도 이미 그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다.하지만 다시 마주한 강루인의 모습은 마치 거지와 다를 바 없었다.지수현은 그런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다른 이유는 없었다.그에게는 심한 결벽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온몸에서 찌든 냄새가 나는 강루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부모를 모두 잃고 당장이라도 삶을 포기할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무엇보다 지수현은 이전의 강루인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때의 그녀는 아무리 짓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몸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신음 한 번 내지 않았고 두 눈에는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타오르고 있었다.그런 강루인이 불과 사흘 만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렇게까지 살고자 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생기를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나타난 건지 지수현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하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치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출구를 찾고 있는 듯한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그렇게 지수현은 너무나 쉽게 주영도가 저지른 모든 일을 알게 되었
주영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앞으로도 회사의 이름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그 이유는 이제부터 그가 대대적인 정리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주이준 집안과 주용준 집안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정리 대상이 되었다.해고될 사람은 해고되었고 죄가 있는 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이사회에서 앞장서서 주영도를 몰아내려 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오영수를 시작으로 자신들이 회사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변두리로 밀려났다.권한을 빼앗긴 오영수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주선 그룹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아 온 원로였다.오영수는 선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갑수 세대와는 같은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그런 자신이 하루아침에 밀려나는 상황을 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들은 주세웅을 찾아가 따져 물으려 했다.하지만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그제야 오영수 일행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회사의 중심에 있다고 믿으며 기세등등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현재 주선 그룹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주영도였다.오영수 일행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책을 찾는 사이 주영도는 곧바로 사람들을 소집해 이사회를 열었다.여전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모였지만 이번 이사회의 분위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고 주영도를 향한 이사들의 태도 역시 정반대로 뒤바뀌어 있었다.주영도의 단호하고 거침없는 행보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이번 일은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었고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했다.회사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만큼 그들 역시 주선 그룹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결국 자연스럽게 주영도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주영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주영도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는 누구보다 냉정했고 쉽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성격도 아니었다.하지만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준 사람만큼은 절대 잊지 않았고 그들이 상처받는 일만큼은 원하지 않았다.그렇기에 주이준이 자신보다도 훨씬 더 악하고 혈연조차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만큼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일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그에게 가족이라는 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이익 앞에서 주이준은 혈연조차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주용준의 그 대담함과 무모함이 오히려 주이준에게 기회가 되었다.주용준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따랐기에 주이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순조롭게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양연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둘째 아주버님이 우리한테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어. ”주영도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며 차갑게 내뱉었다.“무식한 것들.”주이준 부부는 똑같이 어리석었다.그들은 남에게 이용당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뒤에서 돈만 셀 생각만 하고 있었다.양연희는 그의 말에 자극받은 듯 순간 고개를 치켜들더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주영도를 노려보며 말했다.“네 둘째 삼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왜 우리한테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건데? 주용준은 네 삼촌이야!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야? 어떻게 네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해놓고도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거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인정머리 없고 매정할 수 있어!”양연희는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그녀는 주이준의 인간답지 못한 행동에도 화가 났고 모든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한 주영도의 방관에도 분노가 치밀었다.주영도는 분명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이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이번
묵직하고 거침없는 손바닥이 주영도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박정금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대단한 아들이구나! 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너를 얼마나 아끼고 공들여 키웠는데. 그런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했는데도 넌 그저 고개 숙이고 숨어 있기만 했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잖아!”“그런데 인제 와서는 한 여자 때문에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핑계 삼아 움직이는 거야? 정말 대단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양심도 없고 인정도 없는 아들을 낳았을까!”주영도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목울대를 천천히 움직였다.“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닙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어요.”그는 주세웅이 세상을 떠난 뒤에 주이준과 맞설 생각이었다.자신이 낳은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박정금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주영도가 내린 차별적인 선택을 떠올릴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결국 그는 한 여자 때문에 자신을 낳아주고 마음을 다해 키워준 아버지를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역시 주세웅의 친손자답구나.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쩜 이렇게 똑같이 이기적일 수가 있어? 어떻게 네 아버지보다 그 여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니? 살아 있는 강루인을 위해서는 복수할 생각을 하면서 정작 돌아가신 네 아버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거야?”“정말 잘하는 짓이다. 그래, 아주 잘났어!”감정이 극에 달한 박정금에게 남은 주영도를 향한 마음은 서운함과 차가운 실망뿐이었다.남편이 세상을 떠난 그 몇 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고 낮에는 남겨진 아들을 돌보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버텨야 했다.그때의 고통이 다시 떠오르자 박정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그녀는 주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다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물론 그 안에는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영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주선 그룹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먼저 소속사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어 회사 경영진이 조직 폭력과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주영도의 둘째 삼촌인 주이준까지 사건에 휘말렸다.큰 병을 앓고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주세웅은 집안을 뒤흔들어 놓은 주영도를 바라보며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주영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주세웅의 목구멍에서는 낡은 기계가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주이준은 네 둘째 삼촌이야! 너희는 한 가족이라고!”주영도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 아버지는 그 사람의 형이고 저는 그 사람의 친조카입니다.”주갑수를 공격했을 때 주이준 역시 그들이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다.그의 말에 주세웅은 순간 힘이 빠진 듯했다.흐릿했던 두 눈은 생기를 잃고 회백색으로 가라앉았고 온몸에 힘이 갑자기 빠져나간 사람처럼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영도야, 너 그때 나랑 약속했잖아.”주영도는 차분하게 받아쳤다.“그 약속을 먼저 어긴 사람은 할아버지입니다.”그는 주세웅이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주씨 가문의 내부 평화를 유지하겠다고 분명 약속했었다.주세웅은 또다시 아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먼저 떠나는 비극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끝까지 손에 쥔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그는 언젠가 또다시 가족끼리 서로 물고 뜯는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하지만 주세웅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사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강한 자만 살아남기를 원했다면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맹수가 상대를 쓰러뜨린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살아남은 자는 더욱 강해지고 사나워질 뿐이다.좁은 우리 안에서 더 이상 분노를 쏟아낼 상대가 없어진다면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우리 밖을 향하게 된다.그리고 그 판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