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은선과 경희는 저택을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저택 앞마당에는 흰색 알파드 한 대가 반듯하게 주차되어 있었고, 엔진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차는 두 사람이 올라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경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차를 힐끗 바라보다가 은선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이거 큰 도련님 차야? 새로 사신 건가?”은선은 짧게 어깨를 으쓱했다.“잘 모르겠어. 어쨌든 이걸 타라고 하셨으니 타면 되지.”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경희의 팔을 살며시 잡아당겼다.“됐고, 어서 가자.”두 사람이 다가가자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눈앞에 고급스러운 실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 사람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호화로운 내부를 바라보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두 사람은 가장 뒷좌석을 골라 나란히 앉았으며, 가운데 좌석은 일부러 비워 두었다. 수현이 함께 타게 될 경우를 생각해 그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둔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이 저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밖으로 나온 그의 시선은 곧장 흰색 알파드에 꽂혔고, 입가에는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올라간 삐딱한 웃음이 걸렸다.‘이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새 차까지 샀네.’그러나 수현은 알파드에 올라타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선은 앞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막내 도련님은 뒤에서 따라오실 모양이네.”경희는 작게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잘됐네. 나도 막내 사모님을 상처 입힌 남자와 한 차를 타고 싶지는 않거든.”은선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덧붙였다.“그러게. 그럴 줄 알았으면 아까 가운데 자리에 앉을 걸 그랬어.”“그러게 말이야.”마침내 흰색 알파드가 출발해 저택을 빠져나갔다. 거대한 대문이 그 뒤에서 천천히 닫히는 가운데, 차는 저택을 벗어나 도로 위로 나아갔다.몇 초 뒤에는 수현의 차도 출발해 그 뒤를 따라붙었고, 두 차량은 일정한 거
“그래도 괜찮죠, 아주버님?”지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 손으로 준현의 셔츠 자락을 꼭 움켜쥔 채 손가락을 떨고 있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처럼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물론이지.”준현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제야 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차피 새로운 사람을 구할 생각도 없어. 나도 이미 그 두 분에게 익숙해져 있어. 어떻게 일하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지아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이모님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이제는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는 걸요.”“좋아.”준현은 확고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두 분께 연락할게. 아, 맞다.”그는 잠시 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여기로 가져오고 싶은 물건은 뭐가 있지?”“꼭 필요한 것들만 가져오면 돼요.”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네덜란드에서 사 줬던 목걸이 있잖아요. 아직 침실 옷장 안에 그대로 있어요. 그때 샀던 옷도 아직 입지 않은 게 많고요. 왜냐하면…”“왜냐하면 뭐?”준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지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 작게 웃었다.“안 맞아요. 입기도 전에 임신해 버려서 배가 너무 많이 나왔거든요.”준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여기로 출발하기 전에 두 분께 전부 챙겨 달라고 할게.”“아, 맞다.”지아가 얼른 덧붙였다.“제 한복도 잊지 마세요. 예전에 아주버님이 가족 행사 때 입으라고 맞춤으로 만들어 줬던 거요.”준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나중에 몸이 다시 날씬해지면 입으려고요.”지아는 나직이 말하더니 이내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그리고 할아버지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시면요.”준현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짓눌리는 듯했지만,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뭐라고?”지호에게서 그 소식을 들은 수현은 깜짝 놀랐다. 지호는 사무실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전화를
명희는 왼쪽 가슴을 타고 번져 나가는 통증을 느끼며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 숨은 가쁘게 헐떡였고, 흐릿했던 시야도 조금씩 선명해졌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위쪽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어머니?”도현이 당황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긴장한 표정의 지호가 서 있었다.명희는 작게 기침하더니 갑자기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그러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를 정도로 강하게 도현의 팔을 움켜잡았다.“준현이…”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흐느꼈다.“준현이가 떠났어, 도현아… 준현이가 이 집을… 떠나 버렸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어머니, 우선 진정하세요. 방금 기절하셨다가 이제 막 정신을 차리셨잖아요.”“진정하라고?”명희는 작게 웃더니 이내 울부짖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맏아들이 이 집을 나가 버렸는데 이 어미가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니, 응? 도현아, 너는 준현이 동생이잖아! 당장 형을 다시 데려와!”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조금 전 침대 옆 협탁에 미리 준비해 둔 생수 한 잔을 집어 들었다.“어머니, 우선 물부터 드세요.”그는 나지막하게 말하며 물잔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명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물은 안 마실 거다. 목은 마르지도 않아! 난 그저 준현이가 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 천박한 계집과 함께 살도록 내버려 두지 마!”지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시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어머니, 제발… 우선 숨부터 고르세요. 심장이…”“입 다물어!”명희는 지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네가 자식을 잃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기나 해?”지호는 숨이 목구멍에 걸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명희는 다
“안 돼요!”지아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는 갈라졌고, 두 손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배를 감싸며 뱃속의 아이들을 보호하려 했다.“저는 아이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말씀까지 하실 수가 있어요?”명희는 조금의 연민도 없이 지아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익숙한 여자의 눈빛이었다.“너와 수현이는 이제 더 이상 부부가 아니다.”그녀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내가 준현이와 네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한, 네가 이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명희는 가슴 앞에서 팔짱을 꼈다.“아무도 너에게 이런 혼란을 일으키라고 강요하지 않았어. 네가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니. 그런데 이제 그에 따른 결과가 닥치니까, 그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거야?”“아주버님…”지아는 준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는 간절한 희망이 어려 있었지만, 동시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연약함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준현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맴돌던 결정을 마침내 굳히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어머니께서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신다면.”그는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해.”지아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명희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렸다. 자신이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얼굴에 뚜렷하게 드러났다.“우리도 여기서 나갈 거야. 짐 챙겨.”준현이 말을 이었다.그러자 명희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맏아들을 날카롭게 돌아보았다.“준현아, 그게 무슨 뜻이니?”준현은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어머니께서는 지아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잖아요. 그렇다는 건 어머니께서 지아가 낳을 아이들 역시 진심으로 받아들이신 적이 없다는 뜻이겠죠.”명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아를 내쫓고 싶으시다면, 그 아
지아가 보낸 이혼 소장이 수현의 손에 도착한 지 2주가 지나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마침내 법적으로 공식적인 종지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혼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준현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 하나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들은 여전히 법적으로 수현의 친생자로 등록되어 있었다.생물학적으로 그 태아들의 몸속에 누구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준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법은 본능이나 소유욕이 향하는 방향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그 사실 때문에 준현은 밤마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수현의 이름이 아이들과 나란히 언급될 때마다 가슴이 누군가에게 짓눌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친동생인 수현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법원에 공식적으로 친생자 부인 절차를 밟아라, 수현.”준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가웠고, 마치 일부러 칼날을 천천히 밀어 넣는 듯한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겠어. 무엇이든.”수현은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비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맏형의 얼굴을 훑어보았는데, 그의 눈빛에는 상대를 업신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이제 와서야 그 생각이 난 겁니까?”그는 가볍게 물었다. 너무나도 가벼운 말투였다. 이토록 심각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왜 처음부터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데요?”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아와 잠자리를 갖기 전에 먼저 아이들을 형님 자식으로 인정받게 했어야죠.”수현은 더욱 잔인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그랬다면 그 아이들은 처음부터 형님 이름으로 정당한 자식이 되었을 텐데… 그런데 안타깝게도…”그는 작게 혀를 찼다.“형님은 너무 경솔했어요. 아니면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너무 멍청했던 걸지도요.”준현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관자놀이의 근육도 뚜렷하게 팽팽해졌다.단 1초. 정말 단
수현은 위엄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집무용 책상 위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그의 앞에 놓인 갈색 서류철은 이미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마치 그의 얼굴을 거듭해서 후려치는 것처럼 뼈아프게 다가왔다. 맞은편에는 변호사가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으며, 그의 표정에는 진지함과 직업적인 냉철함이 어려 있었다.“아내분께서 제출하신 증거는 매우 완벽합니다.”변호사가 무미건조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사건의 경과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서류와 증인, CCTV 영상까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이번 소송은 결코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수현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내 입장이 얼마나 불리한 거지?”“상당히 불리합니다.”변호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불륜을 입증하는 증거가 CCTV 영상부터 증인 진술까지 상세하게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을 반박하기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추가로 제시된 몇 가지 사항입니다.”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또 무슨 사항이 있는데?”“아내분의 가족인 혼수상태 환자를 적절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옮긴 일입니다. 해당 행위는 권한 남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변호사가 설명했다.“그리고…”변호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적절한 표현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아내분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라고 요구하신 일도 있습니다. 그 발언은 서면 증거와 증인 진술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부분은 의뢰인께 매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수현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내가 부인한다면?”“반대 증거도 없이 부인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대표님의 입장만 더욱 불리해질 뿐입니다.”변호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현재 대표님께서 내세울 수 있는 논리로는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수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내던지듯 기대었다.“이제는 무슨 수를 써야 할지조차 모르겠군.”그는 자신에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