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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Author: 높은 하늘
“남들이 하는 말에 그렇게 쉽게 휘둘리지 말라고.”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준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놀라움이 어린 표정이었다. 준현이 마치 자신의 편을 드는 듯한 말을 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곱씹어 볼 틈도 없이, 준현은 차가운 표정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자신을 하녀 취급받게 두지 마. 이 집에서의 위치는 진씨 가문의 며느리니까.”

지아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네, 아주버님.”

긴장한 탓에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작고 희미했다.

준현은 다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 거리는 지아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을 만큼 가까웠고,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준현의 시선은 너무도 차가웠다. 마치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그녀가 애써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괜찮아?”

준현이 물었다.

짧은 한마디였다. 다정한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 질문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아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지만, 살짝 부어오른 눈은 그녀 앞에 선 남자를 속일 수 없었다.

준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표정에서는 좀처럼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울었구나.”

질문이 아니라 확신에 찬 단정이었다.

실제로 지아는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괜히 잘못 대답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그 사이에도 준현은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뒤에는 아주 희미한 관심이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준현이 다시 말을 이으려던 순간, 집 밖에서 들려온 서영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을 깨뜨렸다.

“여보, 어서 출발해요! 이러다 하랑이 늦겠어!”

목소리는 집 안까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지아는 준현의 단단한 턱선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치 방금 하려던 말을 억지로 삼켜 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거실을 걸어 나갔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준현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지아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치 지금껏 가슴을 짓누르던 무언가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처럼, 그녀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그날 저녁, 가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 식탁에 모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가 달랐다.

지아의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녀의 부재는 숟가락과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에서도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이 가족은 모두 하나같이 차갑고 무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밝고 명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예외라면 지아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다른 가족들만큼 말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수현아, 네 아내는 어디 있니?”

명희가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현은 어머니의 차가운 목소리에 살짝 움찔했다.

“아마 먼저 먹었을 거예요, 어머니.”

“아마?”

명희는 의심스럽다는 듯 되물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네.”

수현은 짧게 대답한 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식사를 계속했다.

“넌 남편이라는 애가 참 물러터졌구나.”

명희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독기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이 순간은 언제나 수현이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저런 식으로 말을 꺼낼 때마다 그의 배는 긴장으로 단단히 굳어 버렸다.

말 자체가 아프게 꽂히는 것도 이유였지만,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두 형이 자신이 언제나 어머니 눈에는 부족한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침묵의 증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관심은 늘 형들에게 더 많이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결혼생활마저 실패작 취급을 받으며, 그 책임이 전부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지아 같은 아내를 둔 것까지도 말이다.

어머니의 눈에 지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였다. 배움도 부족했고, 그래서 형수들에게 하녀처럼 부려지는 일도 잦았다.

그녀는 언제나 순종적이었고, 늘 침묵했다.

그 모습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내를 둔 두 형과 비교될 때마다 수현을 더욱 초라하고 창피하게 만들었다.

수현은 식탁 위에 놓인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하얗게 도드라졌다.

짜증 섞인 표정을 숨기려 했지만, 명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넌 네 가정의 가장이야.”

명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내 하나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다니. 네 형들을 좀 본받아라.”

이름이 언급된 두 형, 준현과 도현은 잠시 동생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반면 형수들인 서영과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민감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언제나 그랬듯, 숨을 죽인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수현의 턱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네, 어머니.”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15분 뒤, 저녁 식사가 끝났다.

가족들은 하나둘씩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반나절 동안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수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방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시선은 곧장 지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었다.

수현의 발걸음은 무겁고 단호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아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던졌다.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콰직!

“오, 오빠...!”

지아는 화들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눈이 크게 뜨였고 숨이 턱 막혔다.

“세상에… 왜 그래?”

그녀는 거의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눈빛은 어두웠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노가 가득 담긴 그 시선 때문에 방 안의 공기마저 숨 막힐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더니 지아의 무릎 위로 툭 던졌다.

“그 남자를 만나.”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임신할 때까지 그 남자랑 함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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