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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Author: KaiKitto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29 23:02:04

비노르카 조나 시점

“어디서 감히!”

그가 고함을 치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서 흠칫 놀라 팔짝 튈 뻔했다.

정말이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죽이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이곳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 적어도 여기보다는 나은 곳으로 달아나기 위해 몇 걸음 더 발을 떼려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도망쳐야 했다. 머리로는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몸도 정신도 전부 마비되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렸다.

“씨발!!! 비노르카, 내가 지난번에 한 말 벌써 잊었어?”

그가 날카롭게 따져 물었다. 그가 내뱉은 서슬 퍼런 말의 열기가 감각을 잃은 내 몸 안으로 들끓며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가 전에 했던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지난 3년간 단 하루도, 단 한 밤도 그날의 일을 잊은 적이 없으니까.

10년 전 나를 입양했을 때보다도 이 괴물이 내 평온을 더 철저히 짓밟아 놓았던 바로 그날.

3년 전의 나는 세상물정을 몰랐을언정 순진하게 당하고만 있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가 단테를 거부한 첫 순간이었다.

“언젠가 넌 나한테 빌게 될 거야.”

그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남긴 말은 그뿐이었다.

그 후 그는 아무런 언뜸도 없이 패거리를 떠났고,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다른 호의나 밥 한 한 끼조차 구걸하지 않은 채 오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버텨 왔다.

“대답해. 당장!”

“아악!”

등 뒤에서 무언가 거칠게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뒤편이 어떤 지경이 되었는지 뒤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일 것이 분명했다.

두려움과 불안이 온몸을 감싸 안으며 심장 박동을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나 봐, 비노르카. 지난번에도 분명 말했지. 이런 태도로 계속 나오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 못 진다고 경고했을 텐데.”

단테는 뒷말을 흐렸다.

‘못 하겠어.’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3년 전에 중간에 그만뒀던 일을 오늘 끝낼 생각이야. 선택은 네가 해. 하지만 결정은 내가 내린다.”

그는 가라앉은 거친 목소리로 경고를 읊조리며 은근히 위협을 가했다.

내 숨통은 점차 얇아져 갔고, 그의 압도적인 명령조의 어조 앞에 온몸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겨우 움직여 보니 그가 어지럽혀 놓은 난장판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과 접시들이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고, 그는 이미 뒤집혀 있던 식탁을 아예 두 동강으로 부숴 놓은 상태였다.

그가 내 목에 저런 짓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만으로도 혈압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그가 자기한테서 눈 떼지 말라고 명령한 거 잊었어?’ 양심이 나를 다그쳤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를 꿰뚫어 볼 듯 쏘아보는 그의 시선.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벌써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 착하지, 비노르카. 이게 바로 너야. 그리고 잊지 마, 넌 네 부모가 지은 죄를 갚으려고 여기 있는 거라는걸. 네 부모는 너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그 죄를 너한테 다 떠넘기고 미련 없이 죽어 버린 거라고.”

그는 악의에 찬 말을 독처럼 내뱉었다.

증오로 가득 찬 그의 말이 내 가슴을 깊숙이 찔러 가슴이 아프게 피를 흘리는 듯했다. 내 부모님은 그가 말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증오와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단테의 부모님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을 때 나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실패하셨고, 단테 역시 그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다. 부모를 잃은 건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부모님을 잃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는 한,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미워하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어 주셨다.

단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부모님은 그가 깎아내리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왜 내가 짓지도 않은 죄를 贖罪(속죄)해야 하는 걸까? 만약 내가 그의 부모님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라고 원망하면 어쩔 건데?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던 그때의 일들이 아직도 똑똑히 기억났다. 하지만 당시 십대였던 단테는 지금까지도 나에 대해 단 한 뼘의 동정심조차 품지 않고 있었다.

“제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중에 나는 애원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 괴물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내가 견딜 수 있는 이상으로 가슴을 파고들어 아프게 했다.

“아파? 그래야지, 애야. 하지만 난 눈물은 질색이야. 그 지독한 울상 좀 치워. 당장 그쳐.”

그가 위협하듯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얼굴을 타고 흘렀다.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감정을 마음대로 껐다 켤 수 있는 로봇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을 생각조차 없는 거지, 맞지?”

단테는 내게 불복종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팔짱을 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도발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통제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가 바라는 만족감을 주지 않기 위해 옷소매로 거칠고 빠르게 눈물을 닦아 냈다.

나는 이 남자와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려 애써 왔다. 도대체 왜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이토록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 그에게는 아무런 이유 없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가고 싶어요.”

애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다잡으려 애쓰며 말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목소리는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떨려 나왔다.

“어디를 가겠다는 거야? 여긴 내 집이고, 잊지 마, 넌 내 허락 없이는 그 어디도 갈 수 없어. 그 사실 하나만큼은 아주 확실해, 비노르카 조나 양.”

그는 구두 밑창으로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짓밟으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그가 다가오자 온몸이 사정없이 떨려 왔다.

그가 내 허리를 낚아챘다. 나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쳤고, 거칠어진 숨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혼란에 빠져들었다.

“거봐, 비노르카. 네 이런 태도, 내 품 안에서 벌벌 떠는 모습이 날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알아? 하지만 넌 너무 버릇없이 굴었어. 내 철부지 토끼를 길들이는 방법쯤은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지.”

그가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온몸의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토끼야, 왜 이렇게 굴어? 처음엔 온갖 것에 비명을 지르더니, 이젠 부끄러워하는 거야? 별로 재미없는데. 정말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고 싶으면,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 보는 건 어때, 꼬마 토끼야?”

단테가 중얼거리며 귓볼에 입술을 살짝 문질렀다.

내 손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어깨로 향했다. 그를 단단히 잡으면서도,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움찔거리는 내 반응에 깊은 비참함이 밀려왔다.

‘잊지 마, 그는 네 의붓오빠야.’

복부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야릇한 소름과 함께 양심의 가책이 뇌리를 스쳤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그가 귓볼을 빨아들이자 차가운 침이 느껴졌다. 그의 손길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나를 자극했다.

내가 그와 그의 스킨십을 아무리 경멸한다 해도, 그가 내게 손을 대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전혀 꿈꿔본 적 없는 엄청난 감각이 몰려왔다. 그 감각은 나를 번민하게 만들었고, 그의 손길을 더 갈망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것 같아, 토끼야?”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마치 머리가 거꾸로 도는 듯한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의 혀가 귓볼을 부드럽게 핥아 올리자, 나는 애타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네가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비노르카. 나에 대해 생각해 봐. 우리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말이야.”

그의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닿으며 유혹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내 몸은 생각과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마치 내 몸이 나 몰래 제멋대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전혀 제어할 수 없었다.

“안 돼요…”

머릿속을 침범하는 거친 생각들을 누르고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나를 배신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손길을 갈구하며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왜 안 돼, 비노르카? 너도 이걸 원하고 있잖아.”

욕망이 넘쳐흐르는 목소리로 그가 낮게 속삭였다.

“안 돼요! 그만해요!”

그의 악력에서 벗어나려 소리쳤지만, 그는 내 허리를 더욱 세게 감싸쥘 뿐이었다.

“쉿… 거부하지 마, 비노르카. 그냥 맡겨 버려.”

목덜미에 내뱉는 그의 숨결에 등줄기를 따라 오싹한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의 품 안에 갇혀 버렸다.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전쟁이 나를 갈갈이 찢어놓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금기된 관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경고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치명적인 끌림은 거부할 수 없었다. 매 순간 나를 절벽 끝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감정의 춤이었다.

“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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