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아침 7시.출근을 위해 완벽하게 차려입은 두 사람이 아이의 요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밤새 부모의 피를 말리던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사처럼 무해하고 투명한 얼굴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잘 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눈이 부시게 예뻐서, 출근하려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가 않았다.스윽ㅡ.그때 요스케가 요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유진의 가녀린 허리를 뒤에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화이트 셔츠 너머로 요스케의 단단한 가슴이 유진의 등 뒤로 터질 듯이 밀착해 왔다.그는 자신의 턱이 유진의 어깨 위에 기댔다.그러자 라벤더 향취와 사내 특유의 아침 온기를 뿜어나왔다.“우리 딸한테 미안하네…… 근데 왜 애는 날 완전 쏙 빼닮아서 나왔지? 엄마 닮았으면 얼마나 좋아.”“원래 딸은 아빠를 똑 닮아서 나온다던데요?”유진이 그의 커다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덤덤하게 대꾸했다.“그래? 그럼…… 아들을 낳으면 너를 쏙 빼닮은 놈이 나온다는 거야?”요스케의 은밀하고도 뇌쇄적인 저음이 유진의 귀밑 살결을 간지럽혔다.은근슬쩍 둘째 계획을 밀어붙이는 포식자의 수작.유진은 일부러 아는 척 하지 않았다.“아마도……? 확률이 그렇다니까요.”“근데 넌 어렸을 때 누구 닮았었는데?”요스케가 넌지시 묻는 순간,유진의 머릿속으로 친구들의 목소리가 훅 찌르듯 들어왔다.“너희 커플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그런가…… 진짜 친남매 같아. 문기선배랑 너, 얼굴부터 분위기까지 완전 똑 닮았어, 판박이야.”쿵.찰나의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서글프도록 그리운 이름,그의 잔상이 아침 햇살 속에서 스르륵 피어오르자,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일시적으로 칠흑 같은 명암을 띠며 흔들렸다.유진은 이내 잡념을 털어내듯, 자신을 안고 있는 요스케의 우람한 팔을 제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아… 엄마요. 난 엄마랑 판박이였어요.”유진이 애써 목소리 톤을 올리며 미소 짓자,요스케는 그녀의 찰나의 그늘을 눈치채지 못한 채, 유진의 귓바퀴를 입술로 살짝 머
백일의 기적은 도대체 언제 일어나는 걸까?벌써 150일째, 밤낮이 바뀌었다.낮과 밤이 완벽하게 전복되어 버린 대가는 참혹했다.샌프란시스코의 고요한 교외 주택가.거실의 벽시계가 서늘한 소리를 내며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유진의 품에 안겨 있는 딸아이는 여전히 새벽을 닮은 진한 회색 눈망울을 말똥말똥하게 빛내고 있었다.피로로 인해 전신이 사정없이 메말라가는 감각 속에서.유진은 한숨을 몰아쉬며 아이의 포동포동한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딸…… 진짜 너무한다. 엄마 아빠는 내일 아침 8시에 칼같이 출근해야 하는데, 넌 대체 누굴 닮아서 이 시간에 에너지가 폭발하는 거야?”“이러니까 낮에 상주하는 보모는 이 녀석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순하고 천사 같은 아기가 없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지. 낮에는 아주 세상 모르고 잠만 자니까 말야.”요스케가 화이트 셔츠의 단추를 가슴팍까지 풀어헤친 채, 작은 분유병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밤의 포식자였던 그의 깊은 회색 눈동자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의 명암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안 되겠다. 애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한 번 더 돌고 올까요?”유진이 지친 기색으로 소파에 기대며 제안하자, 요스케는 아이의 앙증맞은 손가락을 제 투박한 손으로 감싸 쥐며 낮게 허스키한 음성을 깔아내렸다.“아무래도 이 녀석, 우리랑 놀려고 기다리는 것 같아. 그래서 낮에는 충전하듯 자고, 우리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타이밍 좋게 깨어나는 거지. 딸……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지 엄마 닮아 가지고 밀당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유진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툭 튀어나왔다.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일지도 몰랐다.오직 밤 시간에만 온전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부모를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본능적힌 애달픈 구원일 테니까.“들어가서 자. 너. 내일 아침에 논문 심의 발표 있다며.”“그러지 말고. 애 데리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요.”“그거 위험하다던데…”
에에엥ㅡㅡ……!사막의 전장보다 더 치열하고 혹독한 육아의 전장 한가운데,기계적인 아기 모니터의 알람음이 침실의 묵중한 공기를 사정없이 갈랐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요스케의 거대한 몸이 뚝, 하고 침대 바깥의 차가운 방바닥 위로 볼품없이 떨어져 버렸다.“……아윽.”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요스케는 비몽사몽 간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방바닥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사흘 밤낮을 이어지는 경영회의와 그리고 밤마다 이어지는 가혹한 육아 피로에 짓눌린 그의 수려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요스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방금 전 제 옆구리를 정확하게 명중시켜 침대 바깥으로 자신을 가차 없이 차서 떨어트린 장본인, 자신의 아내 서유진을 극도로 억울하고 볼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진…… 오늘 밤은 분명 너 차례잖아.”포식자의 위엄은커녕,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웅얼거리는 요스케의 억울한 음성이 침실에 울렸다.하지만 유진은 그의 볼멘소리를 완벽하게 못 들은 척, 이불을 턱끝까지 바짝 끌어올린 채 미동도 없이 잠만 잤다.2년간, 수단 사막에서 생존과 사투로 단단해진 정신력은 이제 밤마다 남편을 침대 밑으로 걷어차는 생존 육아 내공으로 진화해 있었다.에에엥ㅡㅡ! 에에엥ㅡㅡ!!그 사이, 침대 머리맡의 아기 모니터에서는 다시 한번 경보음처럼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정없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유진은 여전히 베개에 고개를 파묻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요스케는 기어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천하를 쥐고 흔들던 남자는 이제 가운 대신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안방을 나가 옆방의 아기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스르륵ㅡ.“아…….”아기방 문이 열리자마자 방 안을 가득 채우며 피어오르는 지독하고도 묵직한 똥 냄새.요스케는 문을 잡은 채 그대로 자리에 단단히 얼어붙으며 처참하게 절망했다.침대 요람 안에서 자신의 핏줄이자 자신의 새로운 우주가 된 자신의 딸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그를 향해 천진난만하게 울어대고 있었다.“……너는
“아……! 읏…… 흐으윽……!”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조산 미숙아 상태라, 태아의 신경 자극을 우려해 전신을 마비시켜 줄 무통주사(Epidural)조차 맞을 수 없었다.날것의 통증이 유진의 가녀린 전신을 가차 없이 짓찧었다.환자복 단추 사이로 드러난 백색 쇄골 위로 식은땀이 하얗게 흘러내려 침구를 붉은 열꽃처럼 적셔갔다.유진의 처절하게 부서지는 신음 소리에,구석에 있던 요스케는 완전히 멘붕이 와서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어, 어떡해…… 유진아! 내가 대신 아플 수도 없고…… 어떡하지? 의사! 간호사!”술까지 잔뜩 취한 채,거대한 덩치로 제자리를 뱅뱅 돌던 요스케는, 급기야 불안함을 달래려 제 왼손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뺐다 꼈다 하며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투둑.그때, 술기운에 감각이 둔해진 그의 두터운 손가락 사이로 영롱하게 반짝이던 결혼반지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탱그르르르ㅡ. 또각.“엇… 반지…!”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열음과 함께,반지는 가차 없이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가장 깊숙한 구석 암전의 틈새 속으로 쏙 사라져 버렸다.순간, 기적처럼 유진의 진통이 뚝 멈췄다.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찾아온 이 허무맹랑한 상황.식은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하얀 얼굴을 천천히 돌린 유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요스케를 빤히 바라보았다.황금빛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서렸다.“아니… 그게… 반지가… 손에서 미끄러져서…”“하… 진짜.”사고뭉치 대형견.저 빌딩만한 체구로 침대 밑바닥에 기어들어 갔다가는,그물에 걸린 미꾸라지처럼 그대로 끼어서 영원히 못 나올 게 뻔했다.유진은 잠시 허리를 감싸 안으며, 진통이 멈춘 틈을 타 무거운 나신을 침대 아래로 움직였다.“비켜요, 내가 찾을 테니까.”유진은 환자복 자락을 늘어뜨린 채, 바닥으로 직접 엎드려 기어갔다.침대 밑 창백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가느다란 손가락을 집어넣어,기어이 요스케가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끄집어냈다.유진의 하얀 손바닥 위에서 플래티넘
화아아아악ㅡ.하얀 욕실 벽면 위로 뜨거운 스팀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밤 11시.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물줄기 아래서,전신을 적시던 유진은 순간 아래에서 무언가 쿨럭 하고 터져 내리는 이물감에 고개를 숙였다.백색 타일 바닥 위로 투명한 양수가, 온수와 뒤섞여 투명한 연분홍빛 궤적을 그리며 흘러내렸다.순간 하얗고 거대한 만삭의 아랫배 속에서 이미 진통의 서막이 꿈틀거렸다.하필 지금 집에는 오직 혼자였다.유진은 물기가 흥건한 손으로 휴대폰을 낚아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뚜르르르ㅡ. 뚜르르르ㅡ.신호음만 무심하게 허공을 가를 뿐,수화기 너머에서는 단 한 자락의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아직 35주 밖에 안됐는데… 유진은 걱정부터 들었다.아무리 자신이 전문의여도 소용없었다.실전은 완전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하… 진짜 도움 안되는 남자.’유진은 급하게 속옷과 여러 옷을 대충 여행가방에 던져 넣었다.이미 진통이 시작됐다.하지만 미국 외곽의 교외지역에서 이 늦은 시간에 택시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유진은 캐리어 손잡이를 힘겹게 붙잡고 운전석에 몸을 던졌다.부르릉ㅡ!차량에 시동이 걸리고,유진은 핸들을 꽉 쥔 채 자신의 아랫배를 향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우리 딸… 제발 엄마 좀 살려줘. 조금만 엄마 뱃속에서 놀고 있어. 빨리 나올 생각 하지 말고… 빨리 나와봐야 별거 없거든. 그니까… 알지. 거기서 조금만 더 놀아… 착하지?’불안감에 황금빛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유진은 기어이 액셀을 밟아 칠흑 같은 도로를 뚫고 산부인과를 향해 폭주했다.2시간 후,유진은 이미 가운을 탈의하고, 하얀 환자복 한 장만 걸친 채 침대 헤드에 상체를 간신히 기대고 있었다.쾅ㅡ!노크도 없이, 병실 철문이 박살 날 듯 거칠게 열렸다.그리고 190cm가 넘는 거대한 실루엣이 헐레벌떡 안으로 등판했다.그와 동시에 백색 조명 아래 가라앉아 있던 병실 공기 속으로,지독하리만치 무겁고 역한 냄새가 훅 끼어들었다.술냄새.
그는 한손으로 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며 한동안 그녀를 안고만 있었다.그의 목덜미에서 풍겨오는 지독하게 뇌쇄적인 라벤더 향.“하아…… 하아…….”그의 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귀밑 연약한 살결을 간지럽혔다.가슴 너머로 요스케의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 소리가 그대로 느껴졌다.그는 유진을 원망하지도, 왜 임신 사실을 숨기고 도망치려 했냐고 탓하지도 않았다.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유진은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놓아 줄 수 없었다. 절대로. 다시는.처음부터 그게 자신의 운명이었다.그녀의 첫 키스도 처음도 결국 자신과 함께 한 이유가 겨우 착각일 수 없었다.아니, 솔직히 이제는 상관없었다.운명이든 아니든,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할 공동 책임이 생겼다.그때 유진이 커다랗게 눈을 뜨며 쏘아 붙였다.“어떻게 알았어요? 여기에 어떻게 온 거냐고요?”요스케가 어색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윤선호.”배신자. 이 자식을 진짜.생각도 못했다.최소한 내 편은 못 들어줘도 내 비밀은 지켜줄 거라 믿었는데……하나 남은 친구에게 기어이 뒤통수를 맞았다.“당신과 상관없는 일이에요.”“알아. 나도 아무 것도 상관없어. 네가 날 밀어내든. 네가 날 죽인다고 해도. 난 네 옆에 있어야겠어. 여전히 이혼을 원하면 그것도 할 거야. 대신 내 아이가 크는 건, 네 옆에서 볼게. 그냥 공동 양육자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거라도 하게 해줘.”천하의 그가 완벽하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녀에게 매달렸다.“잠깐만 요. 우리 이혼 서류…… 또 처리 안된 거에요?”요스케가 정신없이 쏟아낸 말에서 걸린 한마디에 유진은 얼굴이 하애졌다.순간 요스케의 잘생긴 얼굴이 민망하게 굳어버렸다.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뒷목을 긁적였다.“그게…… 서류를 제출하려는데 정말 딱 그 타이밍에 윤선호에게 연락이 와서… 어차피 아기 나오면 아기 출생신고며… 아무래도 혼인상태여야… 쉽기도 하고…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