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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심유진의 사무실은 호텔 입구가 있는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가 올라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층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호텔 입구에 경찰차 한 대가 서있었다. 몇 분 후 두 명의 경찰이 조건웅의 부모님을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뜻밖에도 두 사람은 아무런 반항도, 심지어 억척스러운 악다구니도 없이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프런트 직원인 소미에게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글쎄 허 대표님께서 4억으로 그 두 사람 목숨을 사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에 잔뜩 겁을 먹은 두 사람이 경찰이 오자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기필코 경찰과 함께 가겠다고 우겨서 경찰의 보호하에 나갔어요.”

소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심 매니저님이 그때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겁먹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정말로 웃겼다니깐요.”

심유진은 웃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벌인 소동은 그들 스스로의 얼굴을 깎았을 뿐만 아니라 심유진의 얼굴도 처참하게 깎아내렸다. 어쨌든 외부인의 눈에 그 두 사람은 그녀의 시부모님들이었다.

**

예상했던 대로 점심이 되기도 전에 심유진은 총지배인에게 직접 ‘소환’ 당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머리를 푹 수그렸다. 그렇게 그녀는 당장 자신에게 닥칠 ‘폭풍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총지배인은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휴가 며칠 더 필요하지는 않아?”

놀란 심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혹시 그의 몸에 귀신이라도 씐 건 아닌가 하는 의심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전에는 그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당장 욕부터 하던 그였다.

그녀의 의심을 알아차린 듯한 총지배인이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예전의 그 엄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심유진은 어쩐지 안심이 들었다.

“비록 오늘 일은 심 매니저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심 매니저로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심유진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3일 드리겠습니다. 그 사이에 사적인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세요. 다시는 이런 일로 직장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다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연말 보너스는 없을 겁니다.”

심유진은 심장이 철렁였다. 그녀가 다급히 총지배인을 향해 보증했다.

“제 문제는 최대한 빠르게 해결짓도록 하겠습니다.”

심유진이 총지배인의 사무실을 나가자 병풍 뒤에 마련된 대기석에 한참을 앉아있던 허태준이 걸어 나왔다.

총지배인이 곧바로 미소 지으며 그를 불렀다.

“허 대표님.”

허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맞은켠에 앉았다.

“대표님이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심 매니저한테는 당분간 휴가를 줬고요.”

총지배인이 말했다.

“들었습니다.”

허태준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말투 역시 덤덤하기만 했다.

“한 가지 더.”

순간 그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총지배인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말씀하세요.”

“서우연더러 오늘 당장 체크아웃하라고 하세요. 모든 로열 호텔에서 그녀를 블랙리스트 명단에 넣고 다시는 이 호텔로 발도 못 들이게 하라고 전달하세요.”

“그건……”

총지배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서우연 씨의 방은 제작진 쪽에서 예약한 거라서요. 이번에 그쪽 제작진들이 우리 호텔에 예약한 사람들 중에 제법 큰 인물들이 많습니다. 저는 혹시 서우연 씨를 체크아웃 시키면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체크아웃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그럼 그 사람들도 함께 체크아웃 시키던가요.”

허태준은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은 한층 더 싸늘하게 굳어졌을 뿐이었다.

“그 정도 손해를 로열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총지배인은 그의 기세에 눌리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당장 지시하겠습니다.”

**

공연한 휴일을 3일이나 받았지만 심유진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조건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시간 돼? 잠깐 만나.”

조건웅이 답했다.

“좋아. 마침 나도 당신한테 볼 일 있었어.”

그는 마치 억지로 분노를 참고 있는 사람처럼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이미 몇 시간이 흐른 뒤였으니 그의 부모님은 이미 그에게 아까 일을 고발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세시 반에 S 대학 병원 옆에 있는 ‘주아 카페’로 와.”

조건웅은 제멋대로 시간과 장소를 전달하고 심유진의 답을 듣지도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심유진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만 아니었다면 조건웅의 이런 태도를 겪고 절대 약속 장소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후 세시 반, 그녀는 정확히 약속 시간에 ‘주아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크지 않았다. 테이블도 열몇 개 정도 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대학병원 근처의 가게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는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었다. 심유진이 사람을 찾고 있다고 설명하자 직원이 그녀를 정확히 조건웅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심유진이 예상했던 것처럼 조건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도착한 모습을 보고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볼 뿐이었다.

심유진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천천히 자리에 앉아 직원이 건네는 메뉴판을 받았다.

“레몬티 한잔 부탁드립니다. 고마워요.”

그녀가 직원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순간 직원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더니 황홀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조건웅의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아직 이혼 서류에 도장도 찍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남자를 꼬시고 다녀?”

그는 마치 심유진이 천인공노할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표독스럽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심유진은 그 모습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단 난 다른 남자를 꼬신 적이 없어. 그리고 내가 꼬셨다고 한들……”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눈빛이 점점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조건웅 너한테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조건웅이 그 말에 바로 얼어붙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티가 날 정도로 어색하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이혼하고 싶다며? 여기 ‘이혼 협의서’에 사인만 하면 내일 당장 법원에 가서 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 줄게.”

눈앞에 놓인 서류를 본 심유진은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남편과 우정아의 불륜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았다. 그가 우정아를 병원에 데려다준 후 바로 변호사를 찾았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정식적인 ‘이혼 협의서’를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그는 진즉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기다렸어?”

심유진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조건웅이 당황한 듯이 물었다.

“뭘?”

“이혼 말이야.”

심유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건웅은 찔리는 게 있는 듯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제 와서 그걸 물어 무슨 의미가 있는데?”

“하.”

심유진은 피식 웃고 그가 건넨 ‘이혼 협의서’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협의 중점은 재산 분할이었다. 조건웅은 법률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혼인 기간에 생긴 재산은 정확히 반으로 나눌 것을 요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유진 역시 이의 없었다.

두 사람의 수입은 비슷했기에 반으로 나누면 서로 자기 재산을 나눠가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무도 상대방의 이득을 더 취할 수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집은?”

협의서를 다 읽었지만 그 어느 부분에서도 집에 관한 내용을 거론하지 않고 있었다.

“집은 어떻게 나눌 생각인데?”

그 집은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난 뒤 산 것이었다. 조건웅의 돈으로는 전부 주식을 샀었기에 수중에 남아있는 돈이 없었다. 심유진은 자신이 몇 년간 살았던 방 하나 거실 하나로 이루어졌던 집을 팔아 계약금을 물었었다. 조건웅은 남은 대출금을 문다는 조건하에 집문서에 그녀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 년간 그는 그 돈을 한 푼도 낸 적이 없었다.

지금껏 그 집은 온전히 그녀 혼자의 힘으로 대출금을 갚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녀의 소유여야 마땅했다. 백보 양보해서 조건웅한테 어느 정도의 돈을 주고 그더러 집문서에 새겨진 그의 이름을 지우는 게 그녀의 한계였다.

“나누긴 뭘 나눠?”

조건웅이 그녀에게 되물었다. 어쩐지 그의 표정에서 우쭐함이 느껴졌다.

“심유진 너 똑똑히 기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집은 너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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