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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사형집행관 하은재(3)

作者: 초록 개미
last update 公開日: 2026-08-17 00:01:11

사형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단 하나였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은재는 그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분명 그가 죽어가던 소녀에게도 살려 달라는 애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외면했다.

그래서일까. 이제 와 제 목숨을 구걸하는 그 목소리는 은재에게 헛웃음조차 아까울 만큼 공허하게 들렸다.

순간, 은재는 주저 없이 사형수의 목덜미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빨이 피부를 찢고 들어가자, 목 깊숙이 숨은 급소가 강하게 떨렸다.

은재가 단번에 물기 위해선 목뼈와 경동맥, 주변의 연골을 한 번에 으깨야 했다.

짧은 파열음과 함께 피가 뜨겁게 분출했고, 은재는 그 붉은 흐름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사형수는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했다. 은재는 깊게 들이쉰 숨을 내쉬며 피 묻은 손을 털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어 안전 지대로 몸을 옮긴 그는 맞은편 관찰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첫 번째 사형수 때와 동일하게 의사가 공식적인 사망 판정을 내렸다. 교도관들이 들것을 밀고 들어와 차갑게 식은 시신을 조심스레 실어 나갔고,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들것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이 남았다.

이로써 두 번째 사형 집행이 끝났다. 은재는 작은 숨을 내쉬며 머릿속을 스치는 혼란을 정리했다.

혼란스럽고 사냥 본능으로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씩 가라앉으며, 그의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 후로 또 세 명의 사형수들이 은재의 손에 의해 차례로 숨을 거두었다.

다섯 명 모두의 사형이 마무리되자, 혹여라도 신생 뱀파이어로 되살아나는 일을 막기 위해 마지막 절차가 진행되었다.

의료진이 물러나자 은재는 직접 사형수들의 심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준비해둔 은제 말뚝을 하나씩, 깊고 정확하게 심장부에 박아 넣었다. 짧은 금속음과 함께 말뚝이 뼈를 밀어내며 고정되었다.

처치가 끝난 시신들은 그대로 화장장으로 옮겨졌고, 화염이 닿자마자 피부와 살은 순식간에 수축하며 검게 타올랐다. 이윽고 다섯 명의 사형수들은 산산이 흩날릴 수밖에 없는, 한 줌의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일과 은재, 인간 헌터들, 교도관들, 그리고 의료진까지—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화장실의 두꺼운 방탄 유리 앞에 서 있었다.

불길이 타오르며 시신들이 서서히 재로 변해가는 순간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불꽃이 이따금 튀며 금속 틀이 뜨겁게 울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누구도 숨을 크게 쉬지 않았고,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사형의 끝이 아니라, ‘되살아남’이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마지막 절차였기 때문이다.

정적은 길고 깊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사형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그 어떤 누구도 단 한 마디조차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은재의 사형 집행관으로서의 임무는 일단락되었다.

주기가 지나면 또다시 그의 이름으로 사형 집행 일정이 잡히겠지만, 최소한 지금 당장은 아니다.

은재는 곧 돌아올 일상과 그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낼 안전하고 평온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굳은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무거운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리 사형수들이라 해도, ‘사람을 해친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가벼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익숙해지지도, 편해지지도 않는 일이었다.

한 줌의 재로 남은 사형수들은 무연고 묘역에 조용히 묻혔다.

해일과 은재는 마지막 삽이 흙을 덮는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둘은 천천히 걸음을 돌려 교도소 밖으로 나섰다.

해일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자 곧 차 안에는 묵직한 침묵이 자리잡았다. 엔진 소리와 도로 위 타이어의 마찰음만이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은재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의 잔상들을 조용히 지워내고 있었고, 해일은 조수석에 앉은 은재의 기운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해일은 운전을 하며 한 숨을 쉬듯 은재를 향해 이야기를 꺼냈다.

“은재야.. 오늘 정말 수고했다. 고생도 많았고.”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지만, 특유의 허스키함이 묘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은재는 그 울림이 좋았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입가가 저절로 풀리며 미소가 번졌다.

“형~ 오늘 끝까지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은재는 고개를 조금 돌려 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래도 완전히 내 페이스를 찾아서 다행이야.”

그 말에는 가벼운 안도와, 해일에게만 보여주는 은재 특유의 친근함이 섞여 있었다. 긴 하루 끝에서야 비로소 내뱉을 수 있는 말투였다.

“그래. 페이스를 찾았다니 다행이다.”

해일은 짧게 대답한 뒤, 은재 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오늘은 혈청 커피는 먹지 말고 쉬어. 알았지? 몸 아직 완전히 풀린 것도 아니고.”

그의 말투는 훈계처럼 들릴 수 있었지만, 은재는 그 안에 묻어 있는 진심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은재야. 일단 집 앞에 내려 줄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해일은 무심히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폐하께 오늘 일에 대해 보고드려야 해. 보고 끝나면 나도 바로 들어갈 테니까 쉬고 있어.”

“알았어, 형! 오늘은 나도 피곤해서... 진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아.”

은재는 어깨를 한번 굴리며 피식 웃어 보였다.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그 속엔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차는 조용히 도심 외곽으로 빠져나가 두 사람의 거주지에 도착했다. 해일이 차를 멈추자 은재는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면서도 그는 해일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형, 조심히 다녀와. 보고 끝나면 바로 집으로 들어와. 알았지?”

말을 남기고 은재는 그대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차 문이 닫히고, 은재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해일은 잠시 은재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돌려 왕궁—이현명이 있는 궁으로 조용히 차를 몰았다.

궁에 도착한 해일은 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걸음을 옮겼다.

밝지 않은 실내 조명 아래에서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익숙한 복도를 지나 이현명이 있는 집무실 앞에 이르자, 문 앞을 지키던 뱀파이어 경비가 즉시 자세를 고쳐 세웠다.

해일은 그 앞에서 멈춰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를 뵙고 싶습니다. 오늘 사형 집행에 관한 보고가 있습니다.”

경비는 잠시 해일을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략 알고 있었기에, 해일의 얼굴에 남아 있는 피로를 읽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해일 심판관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경비는 문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이현명에게 알리러 갔다. 해일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복도는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고, 커다란 창문 밖의 달빛이 차갑게 흘러내렸다.

그 순간 해일은 오늘 하루의 무게가 다시 어깨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익숙한 듯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오늘의 보고는 반드시 해야 할 일, 그리고 은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리고 경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께서 들어오시라 하십니다.”

해일은 이현명이 있는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앞에 서자 고개를 숙여 보였다. 권좌 위에 앉아 있는 이현명이 그의 표정과 몸짓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폐하, 오늘 하은재 사형 집행 건에 대해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해일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지만, 온몸에 긴장이 묻어 있었다.

이현명은 권좌에서 내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함이 온몸에 묻어 있었지만, 그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은재가 오늘 사형 집행관으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음을 확인한 듯한 안정감이었다.

“그래, 보고하라.”

짧지만 왕으로서의 단호한 목소리에 해일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폐하, 오늘 사형 집행은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잘 마무리 되었고, 사형수들의 심장에 은말뚝을 박아 화장까지 잘 마쳤습니다.”

해일의 보고에 이현명은 만족한 듯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 외 다른 보고는 없는 것이냐?”

해일은 별다른 보고 사항이 없었기에 잠시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왕을 올려다보았다.

“따로 보고드릴 일은 없습니다. 오늘 사형 집행에 관한 내용은 보고서로 작성하여 올리겠습니다.”

이현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등받이에서 몸을 조금 일으켜 해일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해일아..... 혹.... 너, 사랑하는 아내의 환생자는 아직 찾고 있는 것이냐?”

순간, 해일의 몸이 약간 굳었다. 그의 눈이 크게 뜨이며 깜짝 놀라 이현명을 올려다보았다.

조용했던 집무실 안에는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보고서와 명령으로만 채워진 이 공간에, 사적인 질문 한 마디가 불시에 들어온 것이다.

“찾고는 있으나, 아직 특별히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폐하.”

해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온몸의 세포가 다시 깨어나 뛰는 듯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멈췄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손으로 사냥해야 했던 그날의 감각.

수세기 가까이 뱀파이어로 살아온 동안, 해일은 그 죄책감과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환생한 아내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의 보고가 끝난 지금,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 속에서도 그 감각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계속 찌르고 있었다. 해일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이현명은 자리에서 몸을 조금 숙이고, 크게 흔들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부하 해일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몇 달 전, 그는 고위 관료 뱀파이어로부터 해일의 아내가 환생하여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받았다.

아내가 어디에 거주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떤 부모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지까지—상세한 정보가 모두 포함된 보고였다.

이현명은 해일이 오랜 세월 동안 환생한 아내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집념과 죄책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환생한 아내가 바로 루비 아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왕으로서, 그리고 해일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현명은 이 사실을 해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의 삶과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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