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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웨딩 스튜디오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16:33:30

『오늘 일정: 목요일 오후, 결혼사진 상담』

경비는 손전등을 내리고, 정전 때문에 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도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인사만 하고 주차장으로 먼저 나갔다. 차에 타서 거울을 보니 이헌은 경비와 함께 계단 문 앞에 서 있었다.

◈

이틀 뒤 오후, 스튜디오 문 앞에서 나는 문을 잡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켰다. 경란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가려는데 가방 끈이 손잡이에 걸렸다. 끈을 빼는 동안 직원이 다가와 문을 받쳐 줬다.

“상담 예약하셨을까요?”

“강주원 이름으로 했어요.”

내 대답이 끝나기 전에 경란이 코트를 벗었다.

“전화한 사람이 나예요. 아들은 조금 늦고요.”

직원은 예약표를 확인하고 안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주원에게 보낸 도착 문자는 아직 읽지 않은 채였다.

상담실에는 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경란이 가운데 앉아 가방을 옆자리에 올렸다. 나는 남은 의자를 당겼다.

테이블 위에는 앨범과 천 견본이 있었다. 벽에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고 선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사진보다 액자 아래 들뜬 뒷종이를 먼저 봤다.

“차는 뭘로 드릴까요?”

“나는 따뜻한 물. 이 애도 같은 걸로 줘요.”

가방을 무릎에 놓았다. 직원이 내 앞에 있던 커피 안내를 거뒀다.

“신랑님 오시면 함께 보실까요?”

“먼저 하죠.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

경란이 앨범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가방 위에 얹었다.

직원이 첫 장을 폈다. 창가에 선 신부 사진이었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밝은 실내 촬영이고요. 신부님께서는 이런 분위기와 정원 촬영 중에 어느 쪽을…….”

“실내로 해요. 바깥은 날씨 맞추기 번거롭고.”

경란이 다음 장을 넘겼다.

“배경은 이게 낫겠네요. 너무 빈 곳은 사진이 허전해.”

직원의 펜이 예약표 위에서 움직였다. 나는 사진을 더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장이 넘어가면서 모서리가 손등에 닿았다.

“신부님은 평소에 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

“많이 찍지는 않아요.”

“그러시면 움직이는 동작이 있는 구성이 편하실 수 있어요. 걸어오시거나, 서로 보고 웃으시는…….”

“이 집은 정면 사진이 괜찮던데. 주원이 얼굴도 그쪽이 잘 나와요.”

경란이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직원은 펜 끝을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릎에 놓인 가방을 내려다봤다. 앞주머니가 벌어져 접지칼 끝이 보였다. 안으로 밀어 넣고 잠금쇠를 눌렀다.

“제가 고를 건 뭐가 있나요?”

경란이 나를 봤다.

“보고 있잖니.”

“말씀하시기 전에 골라야 하는지 몰라서요.”

직원이 앨범을 조금 내 쪽으로 밀었다. 경란은 페이지 사이에 끼워 둔 종이를 뽑지 않았다.

“입어 보면 또 달라. 일단 괜찮은 걸 추리는 거야.”

나는 앨범을 당기지 않았다. 직원이 넘겨 준 장에는 긴 소매가 달린 드레스가 있었다. 손목까지 천이 내려오는 디자인이었다.

“이건 움직이기 편한가요?”

“팔을 드는 데는 조금 제한이 있어요. 촬영용은 몸에 맞춰 고정해서요.”

“그럼 소매가 짧은 쪽을 보고 싶어요.”

직원이 다른 앨범을 찾으려고 일어났다. 경란이 천 견본 위에 손을 얹었다.

“어깨 드러나는 건 안 돼요. 어른들 보실 사진이니까.”

“소매가 짧다고 어깨가 다 보이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보고 정하자고.”

직원은 펼쳐 놓았던 예약표를 옆으로 옮겼다. 빈칸이 여러 개였는데 이미 적힌 글씨도 많았다. 내가 말한 짧은 소매는 아직 적히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앨범을 더 들고 들어왔다. 명찰 아래에 수습이라고 적혀 있었다. 팔에 쌓인 앨범이 턱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여기 놓을까요?”

“옆 테이블에 놓아 줘.”

상담하던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 직원은 테이블 끝에 앨범을 내려놓다가 맨 아래 것을 놓쳤다.

책등이 바닥에 먼저 닿았다. 벌어진 표지가 의자 다리에 걸렸고, 뒤표지 모서리가 접혔다.

“죄송합니다.”

막내 직원이 허리를 숙였다. 앨범을 주워 펼치려는 손을 내가 막았다.

“잠깐만요. 지금 펴면 덧댄 종이가 찢어져요.”

직원의 손이 멎었다. 경란은 자기 물잔을 테이블 안쪽으로 옮겼다.

나는 의자를 빼고 앨범을 받았다. 뒤표지에 입힌 천은 멀쩡했다. 안쪽 면지를 붙인 풀만 벌어져 있었다. 모서리를 세게 누르면 판지까지 꺾일 자리였다.

“어디에 놓으면 될까요?”

막내 직원이 옆 테이블에서 안내판을 치웠다.

“여기요. 정말 죄송합니다.”

“손 다친 데는 없어요?”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럼 됐어요. 안쪽부터 볼게요.”

나는 가방에서 도구를 감싼 천을 꺼냈다. 접지칼을 꺼내자 막내 직원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거뒀다.

“칼인가요?”

“뼈로 만든 도구예요. 날은 없어요.”

흰 접지칼을 손바닥 위에 놓아 보여 줬다. 직원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앨범 밑에 천을 깔았다. 벌어진 면지를 억지로 붙이지 않고 표지 안쪽에 접지칼을 댔다. 꺾인 결을 따라 조금씩 밀어 펴자 모서리가 내려갔다.

막내 직원이 내 옆에서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여기 잡아 주실래요? 바닥에서 들리지 않게요.”

“이렇게요?”

“네. 힘은 조금만 주세요.”

나는 모서리를 한 번 더 살폈다. 천이 당겨진 쪽을 풀어 주고 마른 종이를 덧댔다.

“새것으로 바꿔 드릴게요.”

상담하던 직원이 말했다. 막내 직원의 어깨가 올라갔다.

“바꾸실 정도는 아니에요. 풀을 다시 붙이면 쓰실 수 있어요. 오늘은 이 상태로 덮어서 눌러 두세요.”

“무거운 책을 올리면 될까요?”

“다른 앨범도 괜찮아요. 모서리에만 무게가 실리지 않게 해 주세요.”

막내 직원이 비어 있는 상자를 가져오려다 멈췄다. 나는 옆에 쌓인 앨범을 가리켰다.

“저걸 덮어 두면 돼요.”

함께 앨범을 올렸다. 직원이 손을 뗀 뒤에도 나는 옆면을 확인했다. 들뜬 곳은 더 벌어지지 않았다.

“됐다.”

천에 접지칼을 문질러 가방에 넣었다. 막내 직원이 자기 명찰을 만지며 말했다.

“중요한 상담인데 제가 시간을…….”

“앨범도 같이 봤잖아요.”

나는 표지의 천을 가리켰다.

“이 색은 손때가 덜 보이겠네요.”

“네. 많이 고르세요.”

그제야 직원이 앨범에서 눈을 뗐다. 나는 의자로 돌아갔다. 경란이 물잔을 내려놓고 내 가방을 봤다.

“그런 걸 늘 가지고 다니니?”

“일할 때 쓰니까요.”

“오늘은 일하러 온 게 아니잖아.”

나는 가방 덮개를 닫았다.

“떨어졌다고 못 본 척할 수는 없어서요.”

경란은 대꾸하지 않고 펼쳐진 사진을 봤다. 상담하던 직원이 새 앨범을 내 앞에 놓았다.

“이쪽에 소매 있는 디자인이 있어요.”

나는 앨범을 받았다. 짧은 소매가 달린 드레스 옆에 표시용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막내 직원이 문을 나서기 전에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손을 작게 들어 보이고 사진으로 눈을 내렸다.

“이걸 입어 보고 싶어요.”

직원이 표시를 옮겼다. 경란은 사진을 한동안 보더니 옆 장을 짚었다.

“이것도 같이 준비해 줘요. 막상 입으면 이쪽이 나을 거야.”

긴 소매였다. 직원은 두 장 사이에 같은 색 종이를 끼웠다.

“피팅 때 두 벌 다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고른 사진 위에도 표시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표시를 확인하고 나서 손을 뗐다.

다음은 촬영 장소였다. 흰 벽 앞, 창가, 계단 사진이 차례로 나왔다. 경란은 계단 사진에서 앨범을 멈췄다.

“이건 꼭 넣어요. 가족사진도 여기서 찍을 수 있죠?”

“가능합니다. 다만 촬영 당일에는 신랑 신부님 위주로 진행해서 가족 촬영은 별도 시간을…….”

“시간은 맞출게요.”

나는 계단 아래에 놓인 의자를 봤다.

“회장님이 오시면 앉아서 찍으실 자리도 있나요?”

경란의 손이 앨범 위에 멎었다.

“왜?”

“오래 서 계시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나는 사진 속 의자를 짚었다.

“이 의자는 등받이가 낮네요. 다른 것도 있으면 보고 싶어요.”

직원이 별도로 접힌 사진을 꺼냈다.

“팔걸이 있는 의자도 있습니다. 어르신 오시면 계단 대신 이 자리에서 촬영하셔도 되고요.”

경란은 사진을 받아 테이블 끝에 놓았다.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요. 우선 둘 사진부터 정하죠.”

내가 꺼낸 의자 사진은 앨범 밑에 반쯤 가려졌다. 나는 종이가 구겨지지 않게 빼서 옆에 놓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주원의 문자였다.

『회의 길어져요. 어머니랑 먼저 보고 있어요.』

화면을 보던 경란이 손을 내밀었다.

“뭐래?”

나는 휴대폰을 돌려 보여 줬다. 경란이 자기 가방에서 전화를 꺼냈다.

“아직 회사니?”

나는 앨범 위에 놓인 손을 거뒀다. 경란의 목소리가 상담실 안에 들렸다.

“지금 네 사진 고르는데 네가 없으면 어떻게 해.”

수화기에서 주원의 목소리가 짧게 새어 나왔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옷은 내가 골랐고. 네가 확인할 게 있대. 어깨나 소매 같은 거.”

직원이 조심스럽게 예약표를 들어 보였다. 나는 빈칸을 봤다. 신랑 정장 대여 여부와 치수 확인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치수는 본인이 오셔야 정확해서요. 오늘은 평소 입으시는 크기만 알아도 됩니다.”

경란이 직원 말을 전화로 옮겼다. 그러다 입을 다물고 시계를 봤다.

“거기 누구 있니?”

나는 펼쳐 둔 앨범을 덮었다. 표지를 눌렀던 손가락 끝에 천의 결이 닿았다.

“그럼 좀 보내. 확인만 하면 돼.”

경란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이 옆으로 비켜 줬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복도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휴대폰에 답을 적었다.

『오늘 오실 수는 있어요?』

전송한 뒤 가방 위에 놓았다. 곧 화면이 켜졌다.

『어려울 것 같아요. 괜히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요. 어머니한테도 말했어요.』

나는 답장을 더 쓰지 않았다. 직원이 내 앞에 예약표를 놓았다.

“신부님 연락처 확인 부탁드릴게요. 변경 사항은 이쪽으로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번호를 확인하고 펜을 받았다. 서명할 칸 옆에 촬영 구성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실내, 계단, 창가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정원은 아예 못 쓰나요?”

“사용하실 수 있어요. 옥상에 작은 촬영 공간이 있습니다. 지금 보시겠어요?”

나는 문을 봤다. 경란은 아직 복도에 있었다.

“상담이 끝나면요.”

“네. 신부님 원하시는 쪽도 적어 둘게요.”

직원이 정원 옆에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펜을 멈췄다. 경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건 빼요. 옷 끌고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일이에요.”

직원이 펜을 내렸다. 나는 예약표를 내 쪽으로 당겼다.

“구경만 하고 정할게요.”

“사진으로 다 봤잖니.”

“제가 서 있을 자리는 보고 싶어요.”

경란이 의자에 앉았다. 옆자리에 둔 가방을 무릎으로 옮기며 말했다.

“오늘 결정할 건 정하고. 사람 하나 올 테니까.”

나는 예약표의 빈칸을 내려다봤다. 기다리는 사람 이름을 묻기 전에 직원이 정장 사진을 펼쳤다. 경란은 검은색 재킷을 골랐다.

“주원이는 이게 나아요. 장식은 빼고.”

직원이 표시를 하는 동안 나는 물을 마셨다. 물은 식어 있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가 지나갔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경란은 사진 속 재킷 소매를 손끝으로 짚었다.

“길이는 당일에 다시 봐 주는 거죠?”

“네. 피팅하실 때 맞춰 드립니다.”

나는 예약표 아래에 내 연락처를 적었다. 이름을 쓰려는데 문밖에서 노크가 들렸다.

직원이 일어나기도 전에 문손잡이가 내려갔다.

고개를 든 나는 펜 끝을 종이에서 떼지 못했다.

이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트 앞섶이 열려 있었고 넥타이는 반듯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목소리만 들었어도 알아봤을 사람이 내 맞은편에 섰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헌의 시선이 내 손에서 얼굴로 올라왔다.

“주원이 못 온답니다. 형수님 심부름입니다.”

(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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