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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주차장 2층

Autor: Jino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18 16:34:47

『오늘 일정: 수요일 밤, 집 근처 공영주차장』

이헌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 셔츠 끝을 누르던 엄지가 내려갔다. 손을 놓으려 하자 이헌이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나는 손목에서 손바닥으로 손을 옮겼다.

“대답 안 하셨어요.”

“들었어요.”

“듣기만 하실 거예요?”

이헌이 우리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맞닿았지만 깍지를 끼지는 않았다.

“피하지 않겠다는 말, 없던 걸로 못 하겠습니다.”

“없던 걸로 하라고 안 할 거예요.”

“나중에 마음이 달라지면 말해 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헌의 손가락이 내 손을 감쌌다. 오른손 검지에 붙인 밴드는 건드리지 않았다.

앞유리 너머에서 화물차가 움직였다. 전조등이 차 안을 비췄다가 지나갔다. 나는 손을 빼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렸다.

“가야겠어요.”

“네.”

대답하고도 이헌은 잠깐 그대로 있었다. 내가 먼저 손을 놓고 안전띠를 맸다. 이헌이 거치대의 종이컵을 들었다.

“남았어요?”

“조금요.”

“식었을 텐데.”

“마실 수 있어요.”

나는 남은 율무차를 마셨다. 컵 바닥에 붙은 가루를 보다가 내려놓았다. 이헌은 빈 컵을 겹쳐 차 안의 봉투에 넣었다.

차가 국도로 나갔다.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주원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이헌을 봤다.

“지금 할게요.”

이헌이 소리를 낮췄다. 길을 안내하던 목소리가 작아졌다.

주원은 신호가 한참 간 뒤에 받았다.

“나경 씨,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오늘 실장님하고 갈월 추모공원에 다녀왔어요. 맡기신 시집 표지를 확인할 사진이 있어서요.”

“삼촌이랑?”

“네. 어머님 사진에 책이 찍혀 있었어요.”

이헌은 앞을 보고 운전했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 조금 더 붙였다.

“그 책 아직 안 고쳤어?”

“확인할 게 남았었어요. 이제 표지 작업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난 또 집에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네.”

주원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잠깐만, 하고 말했다.

“그 얘기 하려고 전화했어?”

“다른 데서 들으시기 전에 말씀드리려고요.”

“알았어. 추운데 고생했네. 들어가서 쉬어.”

통화가 끝난 화면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이헌이 갈림길에서 방향지시등을 켰다.

“말했어요.”

“네.”

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주원이 더 묻지 않은 말을 내가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

집 근처 골목 입구에는 짐을 내리는 차가 서 있었다. 뒤에서 오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나는 앞쪽의 주차장 표지를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 주세요. 걸어가면 금방이에요.”

이헌이 공영주차장 입구로 차를 돌렸다. 차단기 앞에서 표를 뽑자 관리실 창문이 열렸다.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크게 났다.

“위로 올라가요. 아래는 자리 없어요.”

관리 아저씨가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이헌이 고개를 숙이고 차를 움직였다.

2층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계단과 가까운 쪽에 차를 댔다. 시동을 끄자 라디오 소리가 열린 창을 통해 올라왔다. 진행자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안전띠를 풀었다. 이헌도 풀었지만 문은 열지 않았다.

계단 앞에서 손수레를 밀던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왔다. 수레 위에 종이 상자가 쌓여 있었다. 맨 위 상자의 테이프가 떨어져 덮개가 자꾸 벌어졌다.

나는 문을 열고 내렸다.

“잠깐만요.”

아저씨가 수레를 세웠다.

“왜요?”

“밑에 상자가 젖었어요. 저대로 올리면 꺼질 수 있어요.”

나는 가방을 어깨에 걸고 상자 옆면을 가리켰다. 바닥까지 내려온 물 자국이 보였다. 이헌이 반대편에서 내려 다가왔다.

“어디로 옮기십니까.”

“저기 창고까지만. 얼마 안 가요.”

“아래 것부터 들게요.”

이헌이 위의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덮개를 접어 안으로 끼우고 아저씨가 잡기 편하게 돌려놓았다. 이헌이 젖은 상자 밑으로 손을 넣었다.

계단 옆 창고까지 옮기는 동안 아저씨는 문을 잡고 서 있었다.

“이거 혼자 들다가는 다 쏟을 뻔했네.”

상자를 내려놓은 이헌의 손가락에 종이 조각이 붙었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손 닦으세요.”

“고마워요.”

아저씨가 창고 불을 끄고 나왔다.

“두 분 천천히 나가요. 정산기 안 되면 아래로 오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가 계단을 내려가자 구두에 묻은 물기를 바닥에 문질렀다. 이헌이 빈 휴지를 접어 쥐었다.

차로 돌아오던 중 관리실에서 웃음소리가 다시 났다.

“라디오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내 말에 이헌이 계단 쪽을 봤다.

“아래에선 우리 말이 안 들리겠어요.”

나는 차 문에 손을 얹었다가 이헌을 돌아봤다.

“그럼 여기서 마저 해요.”

◈

다시 차에 탔지만 안전띠는 매지 않았다. 가방을 뒷좌석으로 옮기고 이헌 쪽으로 앉았다.

“아까 하다 만 말이 있어요.”

이헌이 휴지를 봉투에 넣었다.

“들어요.”

나는 코트 안으로 손을 넣어 반지를 꺼냈다. 실을 잡아당기자 목 뒤가 당겼다. 반지를 손바닥에 내려놓고 실을 느슨하게 했다.

“이걸 당장 돌려주지는 못해요.”

이헌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물렀다.

“약혼해서 상환을 미룬 거니까요. 제가 싫다고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직 공장 일도 못 정리하셨어요.”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대로 결혼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나는 반지를 쥐었다가 손을 폈다. 손바닥에 테두리 자국이 남았다.

“끝낼 방법은 제가 찾아볼 거예요. 대출 서류도 아버지한테 다시 보여 달라고 할 거고요.”

“혼자 결정하기 전에 저한테도 알려 줘요.”

“실장님이 대신 결정하실 거면 안 알려 드려요.”

“같이 확인하려는 겁니다.”

나는 이헌을 봤다. 이헌은 말을 보태지 않고 기다렸다.

“그럼 보여 드릴게요. 제가 보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요.”

“네.”

반지를 옷 안에 넣었다. 실이 코트 단추에 걸려 손으로 풀어야 했다. 이헌이 손을 들었다가 내가 푸는 것을 보고 내렸다.

“주원 씨한테는…….”

나는 단추에서 뺀 실을 손끝으로 눌렀다.

“오늘 어디 다녀왔는지만 말했어요.”

“들었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닌데요.”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양손을 무릎에 올렸다.

“이렇게 앉아 있는 걸 알면, 아까처럼 쉬라고 하지는 않겠죠.”

“그럴 겁니다.”

이헌은 주원이 괜찮아할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다음 말을 꺼냈다.

“주원 씨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제 몫이에요. 실장님이 시키신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윤나경 씨 몫으로만 두지도 않을 겁니다.”

“알아요. 그래도 제가 고른 거예요.”

라디오에서 광고가 나왔다. 빠르게 이어지는 목소리 사이로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을 멈췄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 지나갔다. 이헌이 먼저 움직이지 않아서 나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래층에서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야 손을 폈다.

“이런 거겠네요.”

내가 말했다.

“누가 지나가면 말을 멈추고, 아는 사람이면 떨어지고.”

“그럴 수 있어요.”

“실장님은 할 수 있어요?”

이헌이 내 얼굴을 봤다.

“놓치기 싫어서 하는 일인데, 사람들 앞에서는 모르는 척해야 하는 거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헌은 운전대 아래에 둔 손을 폈다가 무릎으로 옮겼다.

“쉬울 것 같지는 않아요.”

나는 코트 소매 끝을 내렸다. 조금 전 잡았던 손목이 소매에 가려졌다.

“저도요.”

“그래도 윤나경 씨가 원하면 지킬게요.”

나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약혼식 연회장에 서 있던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려다가 그만뒀다. 지금 확인할 말부터 해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해요. 약혼을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네.”

“대신 서로한테는 거짓말하지 말아요.”

이헌이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말 못 하는 일이 있으면, 못 한다고 해 주세요. 확인이 안 됐으면 확인 중이라고 하시고요.”

“그렇게 할게요.”

“저를 위해서 그랬다고 나중에 설명하는 건 싫어요.”

“먼저 물을게요.”

나는 무릎 위에서 밴드 끝을 눌렀다. 이번에도 붙지 않았다.

“저도요. 혼자 괜찮은 척하고 넘어가지 않을게요.”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헌이 손바닥을 펴서 받았다.

우리 손은 기어 옆에 놓였다. 위에서 보면 가려지지 않는 자리였다. 나는 손을 조금 당겨 내 무릎 가까이 옮겼다.

이헌은 따라오는 만큼만 팔을 뻗었다.

◈

“손가락은 다시 붙여야겠어요.”

이헌이 말했다.

나는 밴드를 내려다봤다. 한쪽이 말려 올라가 상처 끝이 보였다.

“집에 가서 갈면 돼요.”

“가방에 여분 없어요?”

“작업실에 뒀어요. 오늘은 칼 쓸 일 없어서.”

이헌이 잡은 손을 놓았다. 나는 손가락을 굽혀 보다가 가방 앞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찾았다. 접어 둔 종이와 영수증만 나왔다.

“없네요.”

이헌이 내 손에서 영수증을 받아 가방에 넣어 줬다. 나는 밴드를 더 건드리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관리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주차요금을 묻고 있었다. 대답은 라디오 소리에 묻혀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리죠?”

내가 묻자 이헌이 계단 쪽을 봤다.

“네.”

나는 상체를 조금 기울였다.

“이 정도로 말하면요?”

“들려요.”

낮춘 목소리였다. 이헌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나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가까이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헌이 나를 봤다. 조수석 등받이에 얹었던 손을 내리고 내 손 옆에 놓았다.

“집에 가야 하는데.”

내가 말했다.

“데려다줄게요.”

“문 앞까지 오시면 안 돼요.”

“여기서 인사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놓고도 가방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헌의 코트 깃에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창고에서 상자를 나르다 묻은 조각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떼어 냈다. 손끝에 붙은 조각을 내려다보다 휴지 봉투에 넣었다.

이헌은 내가 물러날 자리를 비워 둔 채 기다렸다.

나는 손을 거두지 않고 코트 깃 아래에 가볍게 댔다. 이헌이 내 손을 보고 다시 눈을 들었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헌이 가까이 왔다. 입술이 닿기 전에 잠깐 멈춰서 나는 남은 거리를 좁혔다.

입맞춤은 짧았다. 이헌의 손이 내 손등에 닿았고, 나는 코트 깃에서 손을 뗐다.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바로 등을 펴지 못했다.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났다. 나는 그제야 좌석에 등을 붙였다.

이헌이 내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내가 먼저 손바닥을 펴자 손가락을 감쌌다.

“이제 진짜 가요.”

내가 말했다.

“네.”

그런데도 손을 놓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가져오고 끈을 어깨에 걸었다. 코트 안의 반지가 움직였다. 실을 옷깃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문손잡이를 잡았다.

“도착하면 알려 주세요.”

“집에 들어가면 연락해 줘요.”

“문자할게요.”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잡이를 당겼다.

문이 열리며 찬 공기가 들어왔다. 한쪽 발을 바닥에 내리는데 맞은편 차 앞유리에 빛이 번쩍했다.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맞은편 차 안에서 플래시가 한 번 터졌다.

이헌이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차는 곧바로 뒤로 빠졌다. 나는 문 가장자리를 잡고 일어섰다.

전조등이 켜져 차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이헌이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차가 통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열린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내려가는 길목에서 뒷등이 한 번 켜졌다. 차는 멈추지 않고 아래층으로 빠져나갔다.

(20화 끝 ·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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