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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Author: 류한나
그러나 고은서는 웃으면서 곧 눈물을 흘렸다.

전생에 정신병원에서 맞고, 욕을 먹고, 시달렸던 화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를 책임졌던 간병인은 아주 건장해서 단번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그녀를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식사인 묽은 죽도 단번에 엎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약을 먹기를 거부할 때는 그녀의 입을 틀어쥐고 억지로 약을 먹였다.

고은서는 정신병원에서 곽승재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간병인을 시켜 괴롭힌 건 줄로 알았다.

그런데 전생의 그 악마 같은 여자는 다름 아닌 백유미의 친척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전생에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살아갔던 건 전부 백유미의 짓이었다.

자신이 받았던 학대와 위암으로 인한 고통을 떠올린 고은서는 지금 당장 백유미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백유미는 어떻게 그렇게 악랄할 수 있었던 걸까?

곽승재의 사랑을 그렇게 듬뿍 받았으면서 말이다.

곽승재는 백유미를 위해 고은서를 정신병원에 보내기까지 했는데 백유미는 왜 그녀를 가만두지 못하고 괴롭힌 걸까?

곽승재는 바닥에 쓰러진 고은서를 바라봤다.

비록 고은서가 먼저 음성통화를 할 거라고 했지만 곽승재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그녀를 따라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고은서가 백유미의 목을 조르는 게 보였다.

엉망으로 흩어진 과일 사이에 누워있는 고은서는 공허한 눈빛으로 마치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나른하게 바닥에 누워있었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치 아주 괴롭고 비참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그녀의 작은 얼굴에서 끝없는 증오와 원망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곽승재는 그녀의 미친 짓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승재...”

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려고 할 때 백유미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고은서 때문에 목이 빨개진 백유미를 본 곽승재는 넋이 나가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얼른 가서 약상자 가져오세요.”

여자는 서둘러 약상자를 찾으러 갔다.

곽승재는 백유미를 부축해 앉은 뒤 고은서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고은서의 팔을 잡아당겼다.

“일어나.”

고은서는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녀의 팔을 잡았을 때는 마치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곽승재는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은서, 사과하러 온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런 미친 짓을 한 거야?”

곽승재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고은서는 그제야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생기고 몸에도 서서히 힘이 생겼다.

곽승재는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곽승재, 나랑 이혼하고 나면 백유미랑 만날 거야?”

고은서가 물었다.

그녀의 쉰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곽승재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리면서 되물었다.

“그것 때문에 백유미를 죽이려고 한 거야?”

“약상자 찾았어요!”

곽승재는 고은서를 부축해 일으킬 생각이었지만 고은서는 차갑게 그를 밀어냈다.

고은서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옷의 주름을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떠났다.

“윽...”

곽승재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은서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때 마침 백유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어쨌든 고은서가 저지른 일이니 곽승재는 걸음을 멈추었다.

“병원에 가볼 거야?”

백유미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찮긴. 조금만 더 심하게 다쳤으면 꿰매야 할 뻔했어!”

둥근 얼굴의 여자가 옆에서 지혈해 주면서 물었다.

“조금 전 그 여자는 누구야? 왜 들어오자마자 널 괴롭히는 거니?”

백유미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

“절 조금 오해한 것 같아요.”

“오해는 무슨! 유미 넌 너무 착해. 이렇게 괴롭힘당했는데도 그 사람 편을 드는 거야? 내 말대로 해. 신고해서 잡아넣어!”

곽승재의 미간이 살짝 찌푸린 걸 눈치챈 백유미가 둥근 얼굴의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주머니, 먼저 돌아가세요. 내일 다시 얘기해요.”

여자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미야, 푹 쉬어. 저녁에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하고.”

여자가 떠나자 곽승재가 백유미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은서가 왜 네 목을 졸라?”

그는 고은서와 음성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이상한 인기척은 듣지 못했다.

백유미는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승재야, 설마 점심때 있었던 일로... 고은서 씨를 질책했던 거야?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은서 씨는 조금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그냥 화풀이하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화가 풀리면 괜찮을 거야.”

백유미의 뜻은 명확했다. 고은서가 곽승재의 질책을 참지 못한 탓에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곽승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고은서의 반응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 건지는 말할 수 없었다.

곽승재는 미간을 구겼고 백유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재야, 난 괜찮아. 얼른 가서 은서 씨 살펴봐. 늦은 시간에 무슨 일 날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곽승재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의사 불러줄 테니까 검사받아. 오늘 일은 보상해 줄게.”

말을 마친 뒤 곽승재는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백유미는 어두워진 얼굴로 문을 잠갔다.

고은서가 이렇게 지나친 일을 했는데 곽승재는 고은서를 질책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대신해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백유미가 원하는 건 보상이 아닌데 말이다.

비록 백유미는 고은서의 반응을 예상하였지만 어쩐지 최근 들어 고은서가 많이 달라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고은서는 몇 번만 자극해도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그날 건물에서 뛰어내린 뒤 정신을 차리고서도 고은서는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곽승재더러 같이 밥을 먹으러 가라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뒤로는 그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늘 아침, 고은서는 심지어 매섭게 쏘아붙이며 그녀를 조롱했다.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똑똑해질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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