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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Author: 류한나
고준석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돼. 몸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데 푹 쉬어야지.”

“괜찮아요. 안 힘들어요.”

고은서는 계속 작업을 하면서 답했다.

“은서야, 방금전에 승재가 왔다 갔는데 궁금한 거 없어?”

고은서는 아무런 흥취도 없어 보였다.

“저한테 알려주시려고 오셨잖아요.”

고준석은 고개를 저으며 오늘 곽승재랑 나눈 얘기에 관해 말했다.

그는 오늘 MQ 세금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전에 성씨 집안 도움으로 체결한 계약서에 MQ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할 시 상대방에게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고준석의 말을 듣자마자 고은서는 문뜩 전에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곽승재의 도움으로 많은 내용을 고치곤 했었는데 엄격한 규정들이 여전히 꽤 많이 존재했다.

고은서는 전에 이번 일로 곽승재를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가 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직접 찾아와서 주의를 줄 필요는 없었다.

“전화하면 되는 일을 가지고 왜 직접 찾아왔대요?”

고은서가 물었다.

“그러게. 전화하면 되는 일로 왜 직접 찾아왔을까?”

고준석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하실 말씀이 뭐예요? 저 곽승재랑 이미 이혼한 사이에요. 설마 다시 재혼시키려는 건 아니죠?”

고은서는 이내 고준석의 말에 담긴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왜 곽승재를 보고도 화내지 않으세요? 그렇게 잘 대해줄 필요 없잖아요.”고준석은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으면서 답했다.

“이혼했을 뿐이지 영원히 안 보고 지낼 원수 사이가 된 것도 아니잖아. 그날 네가 테라스에서 떨어질 때 승재도 같이 뛰어내렸어. 발목을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널 안고 의사부터 불렀다니까.”

고은서는 순간 의아해했다.

‘전에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다가온 게 날 따라 뛰어내려서였구나.’

“은서야, 승재가 전에 상처를 입히고 널 속상하게 만든 거 할아버지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너희 두 사람을 재결합시킬 생각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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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ugnay na kabanata

  • 어게인, 비긴   제431화

    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국성 부부가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유성준은 이 자리에 끼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넸다.떠나기 전 그는 고은서를 향해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곧 연락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고은서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 어떻게 은서와 승재의 이혼을 허락하실 수 있으세요!”유준성이 자리를 뜨자 고국성이 화가 나 외쳤다.“회사 사정이 어떤지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곽씨 일가라는 보호막마저 사라지면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버팁니까!”“맞아요. 아버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곽씨 일가와 이어지고 싶어 하시는지 아시잖아요.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좋은 손녀사위를 놓치시다니요!”단은숙도 화가 나 외쳤다.“외삼촌, 외숙모. 할아버지를 탓하지 마세요.”고은서가 참다못해 일어나 입을 열었다.“이혼은 제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결혼은 제 개인적인 문제이지 고씨 일가의 사업 수단이 아니에요!”“이런 철없는 것 같으니라고!”화가 난 고국성이 고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너무 오냐오냐하면서 자랐어! 지난번에 이혼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경고했었지! 이제는 네 할아버지까지 설득해서 이혼을 지지하게 만들어? 곽승재 어디가 부족해! 너 나중에 곽승재처럼 조건 좋은 남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왜 꼭 결혼해야 하죠? 제 스스로 살길을 찾아서 혼자 살면 안 되나요?”“너...!”“국성아, 그만 해라.”고준석이 엄숙하게 나섰다.“결혼 문제는 은서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미 이혼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비난하지 말거라. 앞으로 승재에게 찾아가 사업 도와달라고도 하지 마.”고국성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지만 아버지인 고준석이 입을 열었으니 마지못해 참았다.“은서야, 이혼하면서 위자료는 얼마나 받았니?”단은숙이 이혼 얘기를 뒤

  • 어게인, 비긴   제432화

    “터무니없는 소리!”고준석이 단은숙을 불러 세웠다.“이미 이혼한 상대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 일은 여기서 끝이야. 앞으로 그 누구도 곽씨 일가를 이용하려 들지 말거라!”고준석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만약 앞으로 너희 부부가 멋대로 행동하거나 이혼 문제로 은서를 비난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비록 나이가 들어 일선에서 물러났다지만 고준석의 위엄과 기세는 여전했다.MQ의 최대 주주가 여전히 고준석인 만큼 고국성 부부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다.그들은 고씨 가문을 나서면서도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은혜 시켜서 승재한테 접근해 보는 게 어떨까요?”단은숙이 제안했다.고국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게 될까?”“왜 안 돼요?”단은숙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은혜가 은서보다 어리고 생긴 것도 뒤처지지 않잖아요. 은서가 승재랑 결혼할 수 있었으면 은혜도 안 될 이유가 없죠.”“안 돼! 안 돼!”고국성은 아직 이성의 끈이 남아있었다.“고씨 가문에서 은서가 이혼해서 나왔는데 또 은혜를 들여보내자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가볍게 보겠어! 우리가 돈을 받고 딸을 판다고 할 거야!”“딸을 판다뇨? 당신 정말 곽승재처럼 좋은 사위를 잃고 싶어서 그래요?”단은숙이 말을 이었다.“비록 재혼이라도 해도 곽승재는 여전히 인기 많은 남편감이에요. 남에게 빼앗길 바에는 우리 딸이랑 이어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은혜가 정말 곽씨 일가에 들어가면 저희도 더 이상 아버님 눈치 볼 필요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질투하겠지만 우리 생활이 나아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잖아요.”단은숙은 말하면 할수록 자신이 생각한 방법이 좋다고 느꼈다.“그렇게 하기로 해요! 은혜한테는 제가 말할게요.”...저녁, 고은서는 고은혜의 연락을 받았다.“곽승재랑 이혼했어?”고은헤가 큰 소리로 물었다.‘미리 이혼 소식을 알려서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듣는 사람마다 이렇게 큰 반

  • 어게인, 비긴   제433화

    고은혜가 답했다.“성아연이 나를 보더니 당황하더라고.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돌아오긴 했어. 엄마가 서재에 들여다 놓으랬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따져 묻진 않았어.”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성아연이 이제 자유롭게 네 집을 드나들어?”“응. 나는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엄마 마음에 쏙 들게 행동한 모양이야. 엄마가 나보다 걔한테 더 잘해주는 것 같아.”고은혜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MQ가 누군가에 의해 세무 문제로 신고 된 일을 떠올렸다.‘성아연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 정말 성아연이 한 짓이라면 백유미의 지시를 받은 거겠지. 백유미가 독하긴 하네. 시시때때로 고씨 가문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네.’“고마워. 유용한 소식이었어.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고은혜와 통화를 마친 고은서가 잠시 생각하다 원지훈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오후 만나자고 했다.평소와 달리 기분이 좋지 않았던 원지훈은 고은서와 말할 때도 평소의 젠틀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고은서는 전화기 너머로 원지훈이 부하 직원을 다그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민시후에게 듣기로는 원지훈이 담당한 스마트폰 프로젝트가 실패 직전이라 현재 멘붕상태라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원지훈을 이용하기 좋은 기회였다.“지훈 씨, 바쁘면 내가 직접 회사에 갈게.”고은서가 차분히 말했다.원지훈이 그녀의 말에 응했다.통화를 마친 그녀의 입가에는 조소가 떠올랐다.‘백유미, 너도 이제 사냥개에게 물려봐야지.’...곽승재는 접대를 마치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는 도우미도 있었고 운전기사도 있었고 그의 부상을 걱정해 할머니가 남겨둔 의사도 있었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집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았다.이혼하던 날 밤, 그는 술집에서 나와 일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어차피 이 결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곽승재는 되돌리려고도 했지만 고은서가 극단적인 방법을 고수하니 그도 자존심을 구기고 억지로 매달릴 생각이 없었다.곽승재도 자존심이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곽승재는

  • 어게인, 비긴   제434화

    이미숙이 곽승재를 보고 서둘러 말했다.“죄송해요. 정리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도련님, 지금 쉬실 건가요? 내일 계속 정리할게요.”“정리할 필요 없어요.”곽승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두세요.”이미숙은 의아했지만 그의 말에 따랐다.“네. 도련님.”말을 마친 이미숙이 들고 있던 옷 몇 벌을 다시 옷장에 넣으려다가 실수로 종이봉투를 떨어뜨렸다. 안에는 보라색 상자가 살짝 드러났다.“이게 뭐예요?”곽승재가 상자를 보며 물었다.이미숙이 급히 주워 들며 답했다.“사모님께서 두세 달 전에 사신 거예요.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저한테도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더라고요. 정리하시면서 왜 안 챙기셨는지 모르겠네요. 도련님께서 잊으신 건 아닌지 여쭤보시는 게 어떠세요?”곽승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내밀어 봉투를 건네받아 상자를 꺼내 열었다.상자 안에는 다이아몬드 커프스 한 쌍이 담겨 있었다.고급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스타일로 곽승재가 평소 선호하는 디자인이었다.“사모님께서 도련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가 보네요.”뭔가 생각난 이미숙이 말을 이었다.“사모님께서 당시 매일 선물 고르러 다니셨어요. 손수 아로마 캔들도 만드셨어요. 특별한 날이라고 하시면서 도련님께 서프라이즈를 해드린다고...”“아주머니, 먼저 나가주세요.”곽승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네. 도련님.”이미숙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곽승재는 커프스를 들고 상자 바닥에 끼워져 있는 작은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승재 오빠, 벌써 만난 지 5주년이에요! 축하해요! 마치 어제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앞으로도 백 년, 천 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오빠를 사랑하는 은서가.]짧은 몇 마디였지만 곽승재의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고은서가 이 카드를 쓸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아마 달콤한 미소를 띠고 있었겠지. 내가 네 선물을 저버린 거네...’사실 그날 고은서는 아침 일찍 그에게 문자를 보내

  • 어게인, 비긴   제435화

    평소와 달리 진지한 유성준의 표정을 바라본 고은서도 이내 진지한 태도로 유성준을 마주했다.“MQ를 제보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고은서가 추측했다.“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리기 힘들어서 저랑 먼저 의논하시려는 거죠?”유성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력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내 이번 사건에 대해 고은서에게 설명을 시작했다.“제보 자료는 내부에서 나온 거야. 누군가가 일부러 중요한 데이터만 조작했어. 대단한 수법은 아니지만 타격이 커. MQ의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너무 분명해.”유성준이 말을 이었다.“관련 자료를 검토해 봤는데 고위층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야. 그래서 간단히 추려봤는데 아저씨랑 아주머니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아.”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크게 놀랐다.“오빠,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외삼촌이랑 외숙모에게 확인해 보셨어요?”유성준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얘기를 꺼내려고 했는데...”그녀의 이혼 소식으로 계획이 틀어진 것이었다.고은서가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유성준이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자책할 필요 없어. 현재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흥분한 상태라서 갑자기 얘기를 꺼내면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어. 며칠 후에 더 많은 증거를 찾고 나서 물어도 늦지 않아.”언제나 온화하고 배려심이 깊은 유성준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었다.고은서는 부담감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성준 오빠, 이번 일에 저도 의심 가는 사람이 있어요.”고은서는 성아연이 고국성의 서재에 들어갔던 일을 유성준에게 말했다.“향료 주문 건은 성아연 아버지가 중재한 거예요. 계약 당시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자 MQ가 계약을 위반하게 만들어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려는 것 같아요.”유성준이 깜짝 놀라며 키 포인트를 잡아냈다.“네 말은 처음부터 그 주문 건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걸 알았던 거야?”백유미와 연관되어 있어 간단히 설명할 수 없었던 고은서가 답했다.“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하잖아요. 뭔가

  • 어게인, 비긴   제436화

    고은서는 곽승재가 지난번에 한 말을 떠올렸다.“유성준은 해외에서도 꽤 잘 나갔어. 그런데 왜 갑자기 MQ에서 머물기를 선택했을 것 같아?”고은서는 당시 곽승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유성준의 따뜻한 눈빛을 보니 그녀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에이, 외할아버지가 오빠 초대했잖아요. 그래서 정길이 할아버지 체면을 봐서 고씨 가문을 돕기로 하신 거죠?”고은서가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유성준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다.“그건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야. 은서야, 처음 할아버지 따라 해성에서 너를 봤을 때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유성준이 고은서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몇 년 동안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통해 네 소식도 많이 들었어.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부러웠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감정을 마음 깊이 묻어두는 것뿐이었어. 지난번 너랑 할아버지가 해찬시에 왔을 때 널 다시 봤는데 널 향한 내 감정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졌더라고. 그래서 네 할아버지가 해성에 와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응한 거야.”“...”“네 곁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 네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자신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했어. 1년이 지나고 나면 너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어. 하지만 오늘 네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오래전부터 너한테 이 말 해주고 싶었어. 은서야, 좋아해.”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은서는 유성준의 고백을 듣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은서는 유성준이 자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몰래 좋아하고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갑자기 이런 말을 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고 내가 너무 급한 걸지도 몰라. 하지만 예전에는 기회가 없었고 이제는 희망이 생겼으니 너에게 내 감정을 바로 전하고 싶었어.”고은서가 얼른 답하려 했다.“오빠, 미안하지만...”“은서야, 바로 거절하지 말

  • 어게인, 비긴   제437화

    “유성준 씨, 할 말 있으면 내일 다시 하시죠. 저랑 은서는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합니다.”곽승재가 다시 한번 유성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우리 사이에 무슨 할 얘기가 더 남았어?”고은서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의 차가운 표정을 보며 곽승재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화를 누르고 손에 든 커프스와 파란 카드를 흔들었다.“날 위해 준비한 거지? 날 사랑한다고 한 것도 너잖아.”곽승재가 손에 든 물건은 고은서에게 낯설지 않았다.그것은 그녀가 곽승재와의 5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선물이었다.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몇 번이나 백화점을 다녀오며 곽승재를 위해 이 다이아몬드 커프스를 맞춤 제작했다.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카드를 썼고 마지막에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은서라고 적었다.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다.그저 곽승재와 완벽한 기념일을 보내고 싶었고 곽승재가 기뻐하며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곽승재는 그녀의 그런 마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그날이 무슨 날인 줄 알면서도 백유미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곽승재, 네가 이걸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제 쓰레기와 다를 바 없어. 지금 이걸 꺼내서 나한테 묻고 있는 게 우습지 않아?”고은서에게는 이미 전생의 일이었다.그날 그녀는 환생했다.곽승재가 지금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평생 잊고 있었을 것이다.비꼬는 고은서의 말에 곽승재의 안색이 변했다.간절했던 그의 마음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버렸다.곽승재가 고은서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잠옷을 입고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유난히 작고 여려 보이는 그녀는 낮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은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분명 그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유성준에게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유성준의 말을 들을 때도 인내심 넘치고 고개를 기울이며 듣는 게 온순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왜 나

  • 어게인, 비긴   제438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마친 곽승재가 고은서를 안은 채 자신의 차로 향해 걸어갔다.유성준이 막으려고 했지만 그때 곽승재의 기사 이준이 앞을 막아섰다.“성준 오빠, 먼저 돌아가세요.”고은서가 말했다.약간의 술기운이 있는 곽승재는 매우 언짢아 보였다.곽승재가 이준에게 명령하여 나서라고 한다면 유성준이 밀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고은서가 다시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연락해요.”그 말을 들은 유성준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계속 실랑이를 벌이면 고은서만 난처해질 뿐이었다.“은서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유성준은 곽승재의 싸늘한 시선을 무시했다.“내가 한 말 너무 부담 갖지 마. 원래대로 지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고은서가 뭐라 답하려던 찰나 곽승재가 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나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고은서가 화가 나 외쳤다.“곽승재! 이게 무슨 짓이야!”곽승재가 유성준의 일로 추궁할 거라 예상했던 고은서는 이미 어떻게 대꾸할지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하지만 곽승재는 차 문을 닫자마자 그녀의 얼굴을 감싸안았다.“너...”“은서야, 미안해.”곽승재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네가 그날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몰랐어. 앞으로 그 어떤 기념일이든, 그 어떤 명절이든 절대 널 혼자 두지 않을게.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원망하지 않으면 안 될까?”고은서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곽승재. 이미 다 끝났어.”그녀가 곽승재의 손을 밀쳐내며 말을 이었다.“이미 지나간 일이야. 이제 이혼도 했으니 더 이상 기념할 만한 날도 없어. 이제 함께할 명절도 더는 없어.”“아직 끝나지 않았어.”곽승재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고집스럽게 말했다.“은서야, 아직 나 사랑하잖아. 약속할게. 앞으로 더 많은 5년을 함께 보내자.”‘약속 같은 소리 하고 있네.’고은서는 짜증이 치밀었다.“널 사랑했던 적 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그녀는 곽승재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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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 어게인, 비긴   제1099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곽승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적절한 시기에 감시 카메라를 끊어놓도록 준비해두었다.하지만 여시은이 먼저 참지 못하고 로비의 카메라를 꺼버린 것이다.고은서가 감히 감시 카메라의 확인을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준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여시은 역시 감시 카메라를 조작할 것이라는 점까지 예측했다.“만약 여시은이 참고 끝까지 널 찾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어?”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개업식이 끝난 후 대형 스크린에 공개할 계획이었어.”곽승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네가 앞서 백스테이지 주위를 둘러본 것도 동영상을 공개할 준비를 했던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시은이 일부러 나를 물에 빠뜨리고 향수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쿠아까지 학대했어. 내가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리고 시은이가 인내심을 가졌다고 해도 난 개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지. 시은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테라스에서 쿠아의 죽음을 언급하며 나를 자극했고 다시 같은 수법을 쓸 참이었던 거지. 나는 그저 시은이가 파려던 함정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야.”곽승재는 고은서가 준비를 해왔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고육지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펼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실감 났다.고은서가 바닥에 넘어져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곽승재는 정말로 여시은의 소행일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여운 척 한 거 아니야. 백유미와 여시은이라는 고수들 덕분에 나도 한 수 배웠을 뿐이지.”백유미의 과거 행동을 떠올린 곽승재는 가슴을 죄는 듯한 자책감이 밀려왔다.곽승재는 진지하게 사과했다.“은서야, 미안해.”무심코 흘린 말에 곽승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고은서는 잠시 당황했다.“사과할 필요는 없어. 당신도 백유미 씨에게 속았을 뿐이잖아. 어쨌든 ‘목숨의 은인'

  • 어게인, 비긴   제1098화

    “시은아!”영상 속 장면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재훈은 걱정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리고 뒤이어 멀리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어서 따라가서 시은이를 보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 돼!”부하들이 여시은의 뒤를 쫓아 나간 뒤 여재훈은 스크린을 힐끗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제가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시은에게 직접 확인한 뒤 여은서 씨께 해명해 드리겠습니다.”고은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그곳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여 대표님, 제가 은서 씨를 모셔다드리겠습니다.”곽승재가 말했다.송민준 역시 함께 가겠다고 전했다.여재훈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개업식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킨 이상 누구라도 축하할 마음이 없을 터였다.고은서 일행이 떠나자 여재훈은 참석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며 홍보팀에 현장 수습을 지시했다.호텔 앞 광장에서 곽승재와 송민준의 운전기사들이 각각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송민준은 고은서를 배웅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면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번거로울 텐데 제가 은서 씨를 모시고 가겠습니다.”송민준은 자기가 고은서의 파트너로 왔기 때문에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득했다.곽승재는 송민준의 이런 친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고은서를 안아 들어 자신의 차에 태우고 싶었지만 고은서가 화를 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입을 오므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택권을 고은서에게 넘겼다.고은서는 당연히 송민준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오빠, 오늘은 고마웠어. 오늘 승재 오빠의 차를 타고 갈게. 어차피 길도 같으니까. 내일 다시 연락할게.”고은서의 반응에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곽승재는 고은서를 차에 태운 뒤 트렁크에서 깨끗한 외투를 꺼냈다.차 안에 앉자 곽승재는 고은서의 어깨

  • 어게인, 비긴   제1097화

    여시은은 고은서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갑자기 왜 또 농장 일을 다시 꺼내는 거지?’여시은은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억울하고 분했다.“은서야, 왜 나를 이렇게 모함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를 물에 빠뜨렸다고 그래? 네가 나를 밀었잖아! 내가 우리 아빠를 생각해서 참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또 나에게 뒤집어씌우다니!”여시은은 여재훈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저는 항상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것 같아요... 은서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 속상해요...”여시은의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에 여재훈은 점차 진지해졌고 고은서를 보며 물었다.“고은서 씨, 시은이가 은서 씨를 물에 빠뜨렸다는 증거라도 있어요?”“물론 있죠.”고은서는 이미 곽승재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송민준이 보낸 영상을 찾았다.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은서가 진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이때 곽승재가 제안했다.“여 대표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상을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보면 진실이 명백해질 테니 나중에 왜곡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미리 준비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은서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증거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여시은이 고은서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여시은은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에요! 이미 개업식 시간이 다 됐는데 계속 이러쿵저러쿵하며 일을 벌이다니! 고의로 우리 개업식을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아빠, 오늘 이분들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쫓아내는 게 낫겠어요!”“여시은 씨, 말씀이 참 지나치군요. 우리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송민준이 여재훈보다 먼저 입을 열

  • 어게인, 비긴   제1096화

    구경하는 사람들도 송민준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의 여자 파트너가 곽승재의 품에 안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송민준은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여시은 씨,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은서와 여시은 씨의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은서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아빠,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같은 편이라서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는 거예요!”여시은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여재훈은 눈물 글썽이는 딸을 바라보더니 온몸이 흐트러진 고은서를 향해 물었다.“고은서 씨,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고은서는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렸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여 대표님, 제가 뭘 말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시은이와 저는 각자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고은서는 로비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여기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요. 직원들을 시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진실도 드러나겠죠.”이 말을 듣자 여시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고은서가 여시은보다 먼저 바닥에 넘어졌는데 감시 카메라의 확인까지 제안하다니!‘설마 은서가 이 시간대에 감시 카메라를 꺼뒀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시은아, 너의 생각은 어때?”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시은에게 물었다.여시은은 분노를 꾹 참고는 여전히 억울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하지만 개업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감시 카메라는 확인하는 동안 내가 먼저 개업식을 진행하고 나중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게 어때?”“안 돼.”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단호한 표정이 담겨있었다.“이 사건은 반드시 바로 조사되어야 한다고 봐.”고은서는 다시 여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여 대표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가 시은이 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이런

  • 어게인, 비긴   제1095화

    고은서는 얼굴과 몸이 온통 와인으로 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와인은 그녀의 얼굴 결을 따라 드레스 위로 떨어졌고 머리카락에도 많이 튀었다. 그리고 젖은 앞머리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고은서를 더욱 가여워 보이게 했다.고은서는 놀란 듯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괜찮아요?”그 순간 곽승재와 송민준이 동시에 고은서를 향해 급히 다가왔다.곽승재가 송민준보다 한발 앞서 도착해 고은서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고은서는 몸을 살짝 떨면서 두려움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누군가 물티슈를 건네자 곽승재는 서둘러 고은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여시은은 텅 빈 와인 잔을 들고 테라스에서 고은서와 멀지 않은 곳에 떡하니 서 있었다.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평소 감정을 잘 숨기던 여시은도 고은서의 이런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사이 로비의 음악은 멈췄고 상황을 보려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은서야, 괜찮아? 어떻게 넘어진 거야?”여시은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은서의 앞에 다가가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하지만 고은서는 여시은을 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몸까지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곽승재는 고은서를 안정시키듯 감싸며 여시은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여시은 씨, 대체 무슨 일이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송민준이 곽승재보다 먼저 여시은에게 질문하고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고은서에게 걸쳐주려 했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곽승재가 재킷을 받아 고은서에게 걸쳐주었다.“시은아!”소식을 접한 여재훈이 급히 달려왔다.“아빠!”여재훈을 본 여시은은 든든한 빽이라도 생긴 듯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으윽...”여재훈이 여시은을 달래기도 전에 고은서가 타이밍 좋게 아픔을 참는 소리를 냈다.“왜요? 아파요?”고은서에게 재킷을 걸쳐주던 곽승재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다른 한 손으로 팔꿈치를 문지르는 동작을 했다.곽승재가 고은서의 팔을 살펴

  • 어게인, 비긴   제1094화

    이런 수법은 백유미도 쓴 적이 있었다.안타깝게도 여시은은 백유미처럼 곽승재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수작은 곽승재에게 통하지 않았다.아마 고은서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인지 여시은의 시선이 마침 고은서에게로 향했다.고은서는 입가의 비웃음을 다 감추지도 못한 채 여시은과 눈을 마주쳤다.여시은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고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여시은에게 잔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앞쪽 테라스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이런 식으로 도발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참지 못하고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역시나 고은서가 테라스에 도착지 얼마 되지 않아 뒤에서 여시은의 목소리를 들려왔다.“은서야, 왜 혼자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송 대표님은?”여시은은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있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다.고은서는 잔을 내려놓으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여시은 씨, 매일 이렇게 연기하느라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면 제가 여시은 씨처럼 건망증이 심한 줄 아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이런 태도를 보일 줄 몰랐는지 환했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은서야, 지난번에 아버지께서 우리 둘 사람을 불러 화해시켜줬잖아. 왜 아직도 화를 내고 있어?”여시은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슬픈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은서야,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쿠아가 사고를 당해서 이미 하늘나라로 갔어.”고은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쿠아가 죽었다고?’여시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쿠아가 연못에 빠져 사고를 당했어. 연못에 금붕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쿠아가가 놀면서 잡으려다가 빠진 모양이야. 내가 발견했을 때는 쿠아가 이미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였어. 내가 직접 건져 올렸지만 쿠아의 몸이 이미 굳어버린 거 있지. 눈도 뜨인 채로 털은 전부 젖어서 몸에 붙어 있었어. 정말 안됐지...”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여시은이 일부러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그리고 쿠아가 물고기를 잡다가

  • 어게인, 비긴   제1093화

    곽승재는 현재 판주 투자은행에 있지만 감히 그를 얕보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곽씨 가문의 장손이자 곽씨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판주 투자은행에 간 것도 일종의 시련으로 여겨질 뿐이다.앞으로의 곽씨 그룹은 여전히 곽승재가 이어받게 된다는 것도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인 곽승재는 평소처럼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체구에 빼어난 외모는 마치 이곳이 그의 무대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여시은과 여재훈 역시 그에게 다가가 친근하고 허물없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주변에서는 곧장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곽씨 가문과 여씨 가문이 혹시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니에요? 저렇게 친밀하게 대화하는 걸 보면 마치 한 가족 같잖아요.”“아직도 모르셨어요? 여씨 가문이 이번 투자은행의 개업을 순조롭게 하게 된 것도 곽 대표님이 뛰어다니며 큰 도움을 줬다잖아요!”“얼마 전까지 곽 대표님이 연예인과 스캔들 난 거 아니었어? 요즘은 소식이 뚝 끊겼던데... 아마도 정략결혼 얘기가 오가면서 그런 여자들은 정리한 모양이네.”“솔직히 곽 대표님과 여시은 씨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죠. 진짜 결혼하면 주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가늠이 안 가네요!”“그러게 말이야. 얼른 주식 좀 사둬야겠다...”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은서는 담담한 미소만 지었다.여시은이 곽승재와 결혼할 마음이 굉장히 확고한 모양이었다. 곽승재에게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여론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것에 한 치도 관심이 없었다. 오늘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KK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고은서는 홀로 로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찾아온 몇몇 동업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곽승재 역시 고은서를 발견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만 했다.하지만 그 모습을 여시은이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살짝 어두운 그림자가

  • 어게인, 비긴   제1092화

    여시은은 몇몇 귀부인들에게 고은서를 소개했다.고은서도 예의 바르게 그녀들에게 인사를 나눴다.“시은아, 이분이 바로 네가 말했던 요즘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고 관청에서 상까지 받은 그 친구야?”화려한 옷을 입은 한 귀부인이 물었다.“네, 언니. 은서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 제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아요. 우리 회사도 은서 회사처럼 잘 운영될 수만 있다면 너무 만족할 것 같아요!”여시은은 과장된 어조로 대답했다.“고은서 씨가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은 참 예쁘네.”이혜화로 불리는 사람이 이렇게 평가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니까. 자기 장점을 잘 파악하고 이용하다니! 우리 세대는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다른 한 귀부인이 감탄했다.고은서는 눈앞의 여자들의 말하고 있는 의도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성과가 얼굴 덕분이라는 얘기였다.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언니들이 이루신 지위와 성과에 비하면 제가 이 얼굴로 얻은 작은 성과는 비교도 안 되죠. 앞으로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언니들에게 많이 배워야겠어요.”고은서의 자기 비하와 아첨이 섞인 말을 들은 이혜화 일행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여시은이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들, 은서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말재주도 좋고! 제가 이렇게 훌륭한 분을 언니들에게 소개해 드리길 잘했죠?”고은서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 생각에 더 대단한 분은 시은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지만 시은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투자은행에서 오래 일하면서 크고 작은 만찬회도 많이 참석했지만 언니분들과 같은 귀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시은의 개업식에서 이렇게 많은 언니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다니 시은의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는걸요.”고은서는 살짝 한숨을 쉬며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시은이가 저를 부러워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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