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나른하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무진의 안마로 신경이 풀리며 온몸이 노곤하니 졸렸다.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던 성연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무진에게 물었다.“무진 씨 상처는 어때요?”귀국한 후 무진은 일이 많아졌다.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성연은 매일 무진이 사골국 마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생각해 보니 한동안 무진에게 몸 상태를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무진은 손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거의 다 나았어.”성연은 썩 신뢰하지 않았다.무진은 요즘 과부하에 걸릴 정도로 일이 많았다.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날마다 쌓였다.이런 상황에서는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딜 것이 분명.성연은 원래 행동파였다.무진에게 속아 넘어 가느니 직접 보는 게 낫지.성연은 무진이 반응할 틈을 아예 주지 않았다.무진의 손을 꽉 잡은 채 소매를 끌어올렸다.성연은 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무진은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상처 부위 전체를 다 만져본 후 비로소 무진이 잘 회복되었음을 확인했다.“손대지 마.”거의 20여 년을 외롭게 지냈던 무진이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자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다.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명확했다.평소 그가 자랑하던 강한 의지도 성연 앞에서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깊이 빠져 있었다.자신이 무진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성연은 아직 잘 몰랐다.그래서 무진의 말을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든 생각은 무진이 자신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구나였다.그러니 미간을 찡그린 성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좋지 않을 밖에.“왜요? 나는 만지지도 못해요?”무진이 손대지 못하게 하자 기어코 손대려 하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그것도 모자라 아예 옷 자락을 젖히고 무진의 복근을 쓰다듬었다.매일 운동을 하는 무진이다 보니 복부에는 얄팍한 복근이 자리잡고 있었다.퍽 단단하게 만져지는 것이 감촉
잠시 멍하니 있던 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의 눈을 마주보았다.동시에 머리 밑의 느낌이 좀 이상한 것 같았다.성연은 뒤늦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성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재빨리 무진의 다리 위에 뉘였던 몸을 일으키며 손을 떼고는 도망치듯 뛰어갔다.‘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성연의 뒷모습을 보며 무진이 한숨을 쉬었다.곧바로 욕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욕실에서 나왔을 때 피부에는 찬기운이 가득했다.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생각했다.‘도대체 언제쯤 다 자랄지…….’조만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하루하루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느라진즉 피곤했던 성연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 아무 생각없이 잠이 들었다.무진이 얼마나 냉가슴만 끙끙 앓고 있는지 알 리가 전혀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토론대회의 날이 되었다.학교는 이번 시합을 강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다.학생들이 참관하는 데에도 동의했다.이번 대회의 관객들은 거진 모두 북성남고 학생들이었다.성연은 북성남고에서 늘 화제를 일으키는 인물이었으니까.그녀가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서 시끌벅적했다.동시에 모두 성연의 능력이 어떤지 보고 싶어했다.이번 토론대회가 비교적 중요하다고 생각한 학교는 강당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특별히 학생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강당 전체가 빼곡히 찬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성연은 아직도 교실에 앉아 있었다.대회는 아직 시작 전이었다. 성연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충분히 준비했지만 상대방의 수준이 어떤 지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전술에 따라 방법을 강구할 밖에.성연은 자료를 한 번 볼 생각이었다.선생님들이 준비를 위해 나가자 수업하는 반은 없었다. 학교의 온 교실들이 시끌시끌했다.잠시 자료를 보고 있던 성연은 누가 팔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짝인 주연정이 자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주연정에 대해 성연이 가진 인상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아주 단
교무주임부터 교장까지 앞으로 나가 인사말을 했다.“우리 북성남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여러분의 기세가 아주 대단하군요.”북성제일고의 교사도 손을 내밀어 교장과 악수했다.“북성남고도 만만치 않은 걸요. 이번 참가자 중에 다크호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다크호스까지는 아니지만,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있기는 합니다만.”교장이 겸손하게 받았다.“그럼 이번에 우리 북성제일고도 최선을 다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연속 우승의 신화가 깨지겠는데요?”북성제일고 교사의 말에서 다소 불을 지르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났다.어찌 되었든 북성남고가 우승을 차지한 지 한참이나 되었으니.그냥 지나치지 못한 북성남고의 교사 한 명이 입을 열려고 하자 교장이 막았다.교장은 큰소리로 장담하지 않은 채 약간 유보적인 자세로 말했다.“이번 대회가 아주 볼 만하겠습니다. 지켜보도록 하지요.”북성제일고 교사는 눈가에 미치지 않는 억지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북성제일고 사람들이 왔을 때 성연과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미리 알려주었다.이때 성연과 참가 선수들은 교장과 교사들 뒤편에 서 있던 참이었다.맞은편의 교사가 성연과 남고 쪽 대표들을 한 번 쭉 훑었다.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북성남고 쪽 이번 대회 참가자들 모두 낯선 얼굴들 같았다. 예전에 얼굴을 익혔던 그 몇 명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진짜 전세를 뒤집을 기회가 있을라고?’생각은 생각일 뿐. 북성제일고의 교사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양쪽 학생들이 서로 인사하게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북성남고의 주 토론자인 성연이 앞으로 나서 팀을 인솔하며 북성제일고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북성제일고의 주 토론자는 남학생이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각진 얼굴이었지만 풋풋한 소년미를 풍기며 아주 멋있게 생겼다.“안녕, 정우석이라고 해.” 남학생이 다가와 손을 내밀며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성연도 손을 내밀어 그의 손에 살짝 닿았다 뗐다. 성연 역시 담담한 음성으로 인사했다.“안녕, 송성연이야.”소개하는
전반전이 끝날 때 정우석이 먼저 성연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그는 감탄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송성연, 너무 멋졌어. 후반전 토론이 기대되기 시작했어.”성연도 정우석에게 칭찬했다. 그는 확실히 대단했다.하마터면 막아내지 못할 뻔했을 정도로.대등한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는 건 당연지사.그래서 성연은 정우석에 대해 존중할 만한 상대라고 평가했다.성연이 웃으며 칭찬을 받았다.“고마워. 너도 대단하더라.”성연이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음을 알아차린 정우석이 그 틈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나에게 너희 학교 구경 좀 시켜 줄래?”지금은 점심 시간. 북성제일고 사람들도 모두 여기에서 점심을 먹는다. 전반전이 끝난 후 휴식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후반전은 오후가 되어야 시작될 터이고.마침 식당에 가려던 성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우석에게 길을 안내했다.“그래.”미소를 지은 정우석이 성연의 뒤를 따라 갔다.나머지 참가자들도 이 기회에 서로 짝을 지어 이동했다. 상대편 선수라는 사실은 서로의 친선 도모에 하등 문제되지 않았다.모두 청소년들이었다. 다들 잘 노는 성격들인지 곧 친해져서 하나가 되었다.북성남고는 경치가 뛰어났다.건물도 아주 예뻤다.북성남고가 귀족학교라 불리는 것도 허명이 아니었다.학교 외부적인 명에 있어서 북성제일고는 당연히 북성남고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군중 속에서 모두 북성제일고 학생들의 부러움에 찬 음성들이 가득했다.“너네 북성남고 너무 멋있는 거 아니니? 교복도 진짜 예쁘다. 촌스러운 우리 교복과 달리 말이야.”북성남고의 교복은 영국풍 교복의 표준이다. 남학생은 바지, 여학생은 스커트의 양장 차림으로 교복 컬러도 아주 예뻤다. 또 북성남고의 상징 로고인 왕관이 새겨져 아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반면 북성제일고의 교복은 확실히 평범했다.모두 모두 긴 바지와 반팔 디자인에 통일된 파란색으로 남학생 여학생의 구별이 없었다.역시 비교 대상이 없었다면 상처도 없었을 터.이때 북
토론에 참가할 정도의 학생이니 말재간이 뛰어났다.성연이 북성남고에 온 이래 일어난 각종 사건들을 생생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첫 번째는 소문난 열등생에서 공신으로의 반전.그야말로 텔레비전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다.이 사건은 상대 학교의 학생들에게까지 찬탄을 불러일으켰다.“거야 말로 진정한 고수 아니야? 송성연, 너 정말 대단하다.”“그래, 시간이 있으면 너에게 제대로 배우고 싶다.”“내 말이. 토론만 잘하는 게 아니라 다방면으로 뛰어나네. 북성남고에는 진짜 인재가 많구나.”모두들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 성연은 좀 쑥스러웠다.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던 성연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이 아이들의 감정은 솔직하고 순수했다.모두 성연에게 호감을 가진 게 보였다.서로 이야기하는 사이에 식당에 도착했다.북성제일고와 북성남고의 아이들은 이미 친해져 거리낌이 없었다.조금 전 토론장에서 내보였던 적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이 시각, 교사 식당.북성제일고 교사와 북성남고 교사가 뜻하지 않게 한 자리에 만났다.모두 조금 전 각 팀을 이끌던 선생님들이다.만나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그들 대화의 중심은 당연히 방금 전의 토론 시합을 벗어나지 못했다.“북성남고는 올해 입이 아주 매섭더군요. 그런 에이스가 있으면서 막판에 가서야 내놓다니, 쯧쯧.”북성제일고의 교사가 그 자리에서 탄식했다.“당연하지요, 안 그러면 어떻게 북성제일고와 맞섭니까?” 조금 전 토론 시합에서 보여준 북성남고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북성남고의 교사는 은근히 뻐기는 투로 말했다.이건 북성남고 역사 이래 가장 뛰어난 활약이었다.“북성남고의 송성연 학생, 정말 대단하던데요. 좋은 싹인 것 같습니다. 그처럼 교묘한 측면에서 토론할 수 있는 학생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대단해요. 대단해.”북성제일고는 여러 해 동안 우승을 가져간 학
성연은 북성제일고 아이들과 함께 앉아 점심을 먹었다.정우석은 성연의 맞은편에 앉았다.공교롭게도 정우석 역시 수학올림피아드 이야기를 꺼냈다.“송성연, 조금 있으면 수학올림피아드가 열리는데, 너도 참가할 거니?”진지하게 상대할 만한 맞수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정우석이 성연에게 물었다.성연과 다시 한번 맞붙어 보기를 희망하면서.성연이 손을 휘이 저었다.“난 관심 없어.”토론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성연은 이미 지쳤다.‘올림피아드까지 참가해서 나더러 피곤에 절어 죽으라고?’ 사실 이것들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가장 주요한 이유는 사실 성연은 대회에 참석하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무척 단순한 이유다.대회 참가자 명단 안에 포함되어 있던 정우석은 성연의 대답에 좀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작년에도 다른 학우 한 명과 같이 북성제일고를 대표해서 출전했었다.북성제일고에는 더 많은 우등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성적이 비슷하니 별 차이가 없었다.그리고 정우석도 그 중의 하나였다.그는 송성연이라는 이 상대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실력 있는 상대와 싸워야 재미가 있는 법.성연과 함께 북성남고 대표로 토론 시합에 참가한 학생이 옆에서 듣고 있더니 성연을 향해 말했다.“아마 나중에 선생님이 성연이 너를 불러서 이 일을 말씀하실 것 같은데? 너는 신경 쓰고 싶지 않겠지만 그렇게는 안될 것 같다.”‘북성남고에서 송성연 같이 뛰어난 인재를 찾기는 어렵지.’‘완전 만능 천재라니까.’‘북성남고의 선생님들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리가 없지.’당연히 송성연을 끌어다 내보낼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북성남고에 승산이란 전혀 없으니까.귀찮게 느껴진 성연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렸다. 지금 더 후회스러웠다. 선생님께 토론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한 일이.하나를 하니 또 다른 일들이 생긴다. 다음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대고 거절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지금은 이미 참가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테고.’‘일단 토론대회 이 일부터 해치
토론대회 일정을 알고 있던 무진도 성연이를 보러 왔다.성연이가 말한 것이 아니라 교장이 그에게 일정을 알렸던 것이다.아침에는 중요한 다국적 회의가 있어서 올 수가 없었다. 대신 오후 후반전이 막 시작되던 즈음에 무진이 2층 귀빈석에 등장했다.테이블 위에는 교장이 미리 준비해 둔 다과가 놓여 있었다.무진의 옆에 서 있던 손건호가 물었다.“보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바로 준비해 오겠습니다.”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조용히 해.”손건호가 즉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자기 보스의 시선이 곧바로 어린 사모님에게 향하는 게 보였다. 뚫어질 듯 사모님만 바라보는 시선을 숨기지도 않았다.손건호는 입꼬리를 늘어뜨렸다. 할 수만 있다면 보스 강무진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은 보고싶지 않았다.‘나보다 괴로운 사람은 없을 거야.’북성남고의 강당은 1,2층으로 나뉘어 있었다.감상하기엔 2층이 최고였다.평소에는 보통 잘 개방하지 않다가 귀빈이 올 때만 교장이 2층으로 모셨다.모두 강당 1층에 안자 있었고 아무도 무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성연조차도 무진이 온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토론이 새롭게 시작되었다.역시 피를 튀기는 싸움이었다.지고 싶지 않은 정우석이 성연을 자극했고, 승부욕이 끓어오른 성연 또한 연관된 전공은 싹 다 꺼내 휘둘렀다.정우석 쪽은 이미 대답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음이 눈에 보였다.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성연이 기세를 더욱 끌어올려 정우석을 말문을 막아버렸다.브레이크 타임에 모두 잠시 멈추고 물을 마셨다.후반전에서 한 세트를 따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정우석은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전반전에는 숨겨두었던 실력까지 모두 드러내 보였다.하지만 송성연은 정말이지 너무 강력한 적수인지라 반박의 여지가 전혀 안 보였다.정우석은 북성제일고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다.그런 그가 지금 이런 지경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북성제일고의 학생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꿈 아니야? 아니 네가 내 뺨을 한 대 때려 볼래?”
그 중에서도 북성남고의 함성이 가장 우렁찼다.북성제일고 학생들 역시 결과에 승복하고 박수를 쳤다.이번 시합은 정말 멋졌다.학우들은 성연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성연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이미 수많은 버전으로 학생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었다.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직접 본 것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송성연, 정말 ‘공신’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북성남고의 교사들도 감격해 마지 않았다.이번에 송성연을 선발한 건 역시 훌륭한 선택이었다.북성남고는 토론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북성제일고에 무참히 밟히며 패배했었다. 그러다 이제 드디어 이겨서 북성남고의 위세를 떨칠 수 있게 된 터였다.성연도 경기가 끝난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끝났어.’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모든 기대를 자신에게 걸고 있는 상황에서 성연이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어쨌든 이겼다. 이 결과가 성연은 아주 만족스러웠다.무대 아래에서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듯한 가운데 정우석이 성연에게 다가와 요청했다.“송성연, 나랑 톡하지 않을래? 앞으로 흥미가 있는 것들에 대해 같이 토론할 수 있게.”톡을 요청하러 온 정우석은 좀 불안한 마음이었다.성연이 다른 여자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거절당할까 떨기는 처음이었다.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우석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자신만 아니었다면 전국 고등학교에서 토론으로 정우석을 이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추측했다.‘정우석이 재수가 없었던 거지.’또한 정우석이라는 아이 자체가 싫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성연이 승낙하자 기쁨의 빛으로 눈을 반짝이며 정우석이 곧장 핸드폰을 꺼냈다.성연이 폰번호를 불러주자 정우석이 바로 저장하고는 채팅방을 개설했다.정우석의 입꼬리가 계속 위로 올라가며 말투에도 웃음기가 묻어났다.“걱정 마. 보통 때는 너를 방해하지 않을게.”성연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
이전에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쳤던 두 사람은 조직에서의 실력도 막상막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한 차례 맞붙는 모습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주 격렬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부분은 전혀 없었다.“아빠!” 두 사람이 싸우고 있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아이가 온통 눈물 범벅인 얼굴로 무진에게 달려왔다.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무진에게 달려갔다.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무진의 가슴을 뒤흔들었다.무진이 고개를 숙이고 두 아이를 바라보자, 익숙한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아빠, 저 아줌마가 아빠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우리가 싫어요?”작은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흐느끼는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공주의 모습이었다.사무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여동생처럼 펑펑 울지는 않아도 줄곧 눈물이 눈가에 맺혀 있었다.사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빠는 정말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무진은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나를 아버지라고 부른 두 아이가 송성연 씨 아이였어.’ ‘게다가 이번에 송성연 씨를 만났을 때도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며칠 동안 이어진 장면들이 지금 마치 파노라마처럼 무진의 머릿속을 빠르게 맴돌았다.“아빠, 사진이는 아주 말을 잘 들어요. 우리가 말을 잘 들으면, 아빠가 우리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다시 고개를 든 사진의 눈에는 어느새 다시 눈물이 맺혀 있었다.작고 하얀 두 손을 천천히 펼치면서 무진이 안아 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아이의 이런 모습을 본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내밀고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무 말없이.여전히 성연에게 붙잡혀 있던 예민주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다른 한쪽에서 손건호는 여전히 서한기와 뒤엉킨 채 막상막하인 상태였다.
성연은 그저 비웃기만 하면서 핏발선 눈으로 무겁게 무진을 쏘아보았다.“지금 저 여자를 두둔하는 건가요?”미간을 찌푸린 채 성연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는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조용히 남자를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대화로 하자는 거야? 완전히 도발하는 거지!’그러나 지금 완전히 통제불능 상태인 성연에게는 무진의 눈빛이 그렇게만 보였다.심지어 다시 이전의 두통이 반복되었다. ‘아주 뚜렷하고 강렬한 느낌이야.’‘매번 이 여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전에 없던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무진이 멍하니 있을 때, 줄곧 주의하지 않았던 예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진 오빠, 빨리 구해줘요!”무진은 그제서야 비로소 예민주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예민주의 두 볼이 빨갛게 부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손건호, 아직도 거기에 서서 뭐 하는 거야?”남자는 차갑게 지시하면서 셩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네!” 지시를 받았지만 손건호는 여전히 다소 망설였다. 결국 자신이 상대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무도 익숙했던 성연이기 때문이다.지금은 마치 어떤 이유 때문에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했다.이런 느낌에 손건호는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나는 결국 보스의 수하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송성연 씨, 예민주 씨를 놓아주십시오.”성연의 앞에 다가간 손건호는 성연을 직시하지도 못한 채 공허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여전히 예민주의 멱살을 꽉 쥔 채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손건호,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끼어들지 마.”그 말을 듣자, 손건호는 마치 망치에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러나 그저 잠시만 그랬을 뿐. 손건호의 눈빛은 이미 빠르게 수습되었다.“송성연 씨, 죄송합니다만 이게 제 일입니다.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이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손건호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말을 마친 손건호가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