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후 성연도 개학할 때가 되어서 수업을 재개했다.개학 첫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숙제를 베껴 쓰고 있었다.성연을 본 주연정은 아주 기뻐하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성연아, 왔어? 겨울방학 숙제는 어떻게 됐어?”“내가 요점을 좀 골라서 했어.”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겨울방학 숙제를 통째로 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그러나 성연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과목의 숙제를 모두 조금씩 했다.하지만 모두 요점을 골라서 한 것이다.앞에 있던 친구가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주연정, 성연이는 성적만 해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오히려 너 자신을 걱정해야 해. 방금 너는 나한테 겨울방학 숙제를 다 못 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이윤하는 성질이 정말 좋지 않아. 그 여자가 너의 껍질을 벗기지 않도록 조심해.”이 말을 들은 성연은 주연정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너는 겨울방학 숙제를 다 하지 못했어?”주연정은 입술을 오므렸다.“내가 반을 했는데, 그 뒤로는 설을 지냈잖아? 우리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는데,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서 그냥 즐겁게 놀았어.”성연이 그녀에게 과외를 할 때 엄했기에, 주연정은 지금 성연에 대해서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마치 진정한 선생님이 그의 앞에 있는 것과 같았다.연정은 좀 무서웠다.“그래서 숙제를 잊은 거야?” 성연은 말투가 차분했지만, 주연정은 왠지 성연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얼른 설명했다.“미안해,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는 잊지 않았어. 어젯밤에도 나는 스스로 하다가 정말 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할 수가 없었어.”주연정은 울상을 지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근심스러운지는 말할 것도 없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이따가 정말 늦지 않도록 빨리 숙제를 해.” 성연이 말했다.주연정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성연아, 너 화 안 났지.”성연은 다소 놀랐다.“너는 왜
왕씨 가문 쪽에서는, 왕대관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후 줄곧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녀는 다과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평소에 사기 아까웠던 비싼 디저트들을 그녀는 보러 갔고, 집안을 환하게 꾸몄다.설을 쇠는 동안에, 그녀는 또 애초에 광고했던 그 부잣집 부인들에게 가서 자기가 강씨 집안의 노마님과 친하다고 자랑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말하지 말라고 했다.모두들 믿지 않았다. 강씨 집안의 노마님이, 어떻게 왕대관의 모친과 같은 작은 회사를 알 수 있겠는가?왕대관의 모친이 허풍만 떠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모두 믿지 않았다.그러나 왕대관의 모친은 페이스북에 강씨 집안의 사진을 올렸다.그것은 그날 그녀가 강씨 가문에 갔을 때 정원과 입구를 찍은 사진들이다.눈치가 있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짜 강씨 가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강씨 집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왕대관의 모친이 그래도 수완이 좀 있었다.북성에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누가 강씨 집안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평소에 왕대관의 모친에게 눈빛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녀가 다과회를 조직한다는 것을 알자 잇달아 찾아와서, 왕대관의 모친에게 초대장을 달라고 했다.물론 모두 강씨 가문의 노마님을 향해 간 것이고 왕대관의 모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어쩔순 없지만, 그래도 강씨 가문의 노마님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왕대관의 모친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녀의 허영심을 크게 만족시켰다.‘이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봐.’‘평소에 콧대 높은 이 사람들은 줄곧 사람을 깔보았지.’‘지금은, 그런데 하나같이 내게 아부하러 오지 않아?’‘정말 저들의 예전 모습을 찍어서 봐야 하는 건데.’진미선도 따라서 다과회를 꾸몄다.왕대관의 모친, 시어머니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진미선은 좋지 않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의 위치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녁을 먹을 때 왕대관의 모친은 진미선에게 이 일을 말했다.어차피 그녀는 말을 다 풀어놓았기에, 바로 문제를 진미선에게 던진 것이다.진미선은 시어머니가 직접 초대할 걸로 여겼는데, 뜻밖에도 자신에게 가서 설득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왕대관의 모친은 이미 말을 그렇게 크게 떠벌렸는데, 만약 그녀가 사람을 청하지 못한다면 큰 일이 아니겠는가?진미선은 약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잠시 후에 왕대관과 상의하려고 했다.‘어쨌든 성연이가 꼭 내 체면을 세워준다고 할 수는 없어.’그녀의 표정을 본 왕대관의 모친이 눈썹을 찌푸렸다.“왜? 싫어?”진미선은 그녀의 이 음침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손을 휘저었다.“어머니, 싫다는 게 아니라요.”“그럼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구를 보는 거야? 내가 너한테 억울한 말을 하라고 했어? 다과회는 네가 하자고 하지 않았어? 아니면 네가 일부러 나를 속인 거야? 응? 너는 고의로 우리 왕씨 가문이 잘 되는 걸 바라지 않는 거지, 그렇지?” 왕대관의 모친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미선을 쏘아보았다.‘진미선에게 이런 딱지를 씌웠으니, 쟤는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해.’다만 진미선은 좀 억울한 마음이었다.‘시어머니는 전혀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어서,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갑자기 입맛이 없어진 진미선은, 밥을 먹은 뒤에 배부르다고 말하고 방에 가서 쉬었다.왕대관의 모친은 며느리의 태도에 또 한바탕 화가 났다.그녀는 왕대관을 향해서 바로 말했다.“쟤 태도가 어떤지 봐? 내가 쟤를 밥을 적게 먹였어, 아니면 옷을 적게 입혔어? 쟤한테 가서 말을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달갑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어. 앞으로 우리 왕씨 가문이 발전하면, 쟤 몫도 있지 않겠어? 이렇게 나이가 많은 나도 여전히 걱정하는데, 내가 누구를 위해서 그런 거야?”모친이 화가 난 것을 본 왕대관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어머니,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서 그런 거지요. 하지만 지금 임신 중이니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
성연은 진미선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듣자 바로 비웃었다.“그 시어머니 정말 뻔뻔스럽네.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당신들이 관계를 맺는 도구야? 내가 정말 충고하지만 내 한계점을 건드리지 마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진미선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녀의 일이야.’‘앞서 진미선은 그동안 얼마나 당당한 듯이 지켜보았지만, 왕씨 가족들 앞에서는 메추라기처럼 찌질했어.’‘이런 가정이 정말 진미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성연은 전혀 알 수 없었다.진미선은 그녀의 말에 난처해졌다.그러나 만약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돌아간 후에 시어머니는 절대 자신을 좋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성연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성연이 피했다.진미선은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성연아, 나 좀 도와줘. 나 왕씨 집안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그들에게 쓸모가 있어야 그들이 나한테 잘해 줄 거야. 지금 너는 내 유일한 희망이야. 만약 네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만약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았다면, 진미선도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 그녀가 성연의 앞에서 얼마나 강경하게 말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비참한가?진미선의 오기는 왕씨 가문에 의해 일찍이 말끔히 사라졌다.그녀는 이미 두 번째 결혼을 했기에 더 이상 이혼할 수도 없었다.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데 이혼한다는 건, 그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야.’만약 그녀 자신이 아이를 키운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만약 그녀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성연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왕씨 가문이 어떻든 간에, 반드시 여기에 머물러야 해.’그녀도 더 이상 이혼할 용기가 없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성연은 눈썹을 골랐다.진미선은 줄곧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지만, 자신은 결코 그녀를 도울 의무가 없었다.‘애초에 진미선이 망설임 없이 나를 내팽개친 것과 같아.’애초에 그녀는 수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 차 한 대가 천천히 그들의 맞은편에 섰다.차에서 진미선과 성연을 본 무진은, 눈살을 찌푸린 뒤 차에서 내렸다.성연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무진을 본 진미선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우리 시어머니가 다과회를 준비하는데, 지난번에 회장님과 인연을 맺었기에 회장님을 초대하시고 싶어해.”이번에는 진미선이 듣기 좋게 말했다.진정으로 다과회에 초대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이것은 명백하지 않았다.성연이 승낙해야 뭐가 와도 오는 것이니.성연은 자신들 모녀의 일을 진미선이 강씨 집안과 연루시키지 않길 바랬다.그러나 지금 진미선은 거듭 자신의 한계점을 건드려 성연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무진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 “저희 할머니는 내일 출국하셔서 한 달 후에야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아마 참석하실 수 없을 것 같네요.”“그래요?” 진미선의 표정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진미선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본 무진이 계속 말했다.“그럼 다른 일이 없으면, 우리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그래요. 먼저 가봐.” 진미선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성연은 그녀를 상대하기가 귀찮아서, 바로 차에 타고 떠났다.차에 올라탄 성연이 그제서야 물었다.“할머니가 출국하시는 거 난 왜 몰랐지?”성연은 이것이 무진이 자신을 위해 위해서 말한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줄곧 집에서 안금여를 모시고 있었는데, 안금여가 출국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할머니 정말 외국에 나가셔. 고모와 같이 사돈 어르신들 뵈러 가는 거야. 고모부도 같이 가시고. 외국에 나가신 김에 기분 전환을 하시라고 했어. 할머니께서 너에게 아직 얘기할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무진이 설명했다.“할머니가 이번에 나가시니 정말 좋네요. 귀찮은 사람들도 안 보고.” 성연은 진미선과 왕씨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개가죽 고약처럼 아무리 털어도 벗겨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진미선은 시어머니 이숙자에게 사실대로 이 일을 알렸다.하지만 자신이 여는 다과회에 강씨 집안의 안금여 회장이 참석한다는 글을 이미 단톡방에 올리며 잔뜩 자랑을 한 이숙자였다. 한순간에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져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이숙자는 진미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 집안에 들어와 편안히 지낸 지가 얼마인데, 어떻게 이리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야! 매일 호의호식하게 해줬으면, 보답할 줄 알아야지. 이런 것조차 제대로 못하다니, 지금 나더러 속이 터져 죽으라는 게냐?”진미선이 이숙자에게 자신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았다.“어머님, 안금여 회장은 내일 출국한다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이것도 갑자기 듣게 된 소식이에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다과회를 취소하시는 게 좋겠어요.”만약 지금이라도 다과회를 취소한다면, 적어도 남아 있는 체면이라도 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그러나 이숙자는 진미선의 권유를 달갑지 않아 했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강무진이 일부러 거짓말해서 너를 속인 거야, 너는 그것도 못 알아차려? 도대체 네 이 머리는 장식용인 게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우리 왕씨 집안에 들어온 후부터 집안이 완전 망한 게야!”이숙자는 진미선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성연에게서 한 소리 듣고 왔던 진미선은 시어머니 이숙자에게 또 다시 욕을 먹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안금여가 참석하지 않는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자신이 가서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설마 내가 억지로라도 안금여 회장을 참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런 생각을 하니 눈에서 바로 눈물이 흘러내렸다.진미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더 화가 난 이숙자는 바로 진미선의 팔을 꼬집어대기 시작했다.“울어? 네가 울어? 하루 종일 울 줄밖에 모르고? 우는 것 말고 도대체 네가 할 줄 아는
진미선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단톡방에서 이미 큰 소리 뻥뻥 쳐 놓은 이숙자. 만약 안금여가 오지 않는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그래서 해가 지기도 전에 이숙자는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강씨 집안 고택으로 향했다. 안금여를 직접 만나 이 일을 부탁할 생각에.얼마되지 않아 이숙자는 강씨 집안 고택에 도착했다.인터폰으로 이숙자를 확인한 집사는 먼저 안금여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며 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이숙자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 강씨 집안에서 자신이 행패를 부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좀 부드러운 말투로 바꾸어 집사에게 말했다.“지난번에 왔을 때 봤잖아? 아직 기억하고 있지? 그냥 들어가게 해줘.”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집사는 이숙자에게 별다른 색안경을 끼고 대하지 않았다.그저 얼굴에 한결같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그래도 저는 회장님께 먼저 여쭤보아야 합니다.”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이숙자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됐어, 알았으니 빨리 가서 내가 왔다고 알려.”집사가 하인데 아닌데, 이숙자는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듯이 명령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집사는 바로 거실로 들어와서 안금여에게 이숙자가 방문했음을 알렸다.쟈스민 차를 마시고 있던 안금여는 집사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여기엔 왜 왔다는 거야?”“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왔습니다.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집사가 안금여에게 물었다.“혼자 왔다고?” 찻잔을 쓰다듬던 안금여는 잠시 후에 말했다. “됐어. 이왕 왔으니 한 번 만나보지 뭐.”안금여의 허락이 떨어지자, 집사는 바로 현관의 인터폰 앞으로 가서 이숙자를 향해 말했다.“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이숙자는 턱을 들어올린 채 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안금여 회장이 어떻게 날 안 만날 수 있겠어?’이 정도의 체면은 안금여 회장이 봐 줄 거라고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집안으로 들어선 이숙자.지난번에 한 번 와 봤었
고택을 나온 이숙자는 오늘 강씨 고택에 와서 정말 제대로 체면을 구긴 것 같았다.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 왕대관과 진미선이 밥을 먹고 있었다.시어머니 이숙자에게 전례 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진미선은 본래 밥을 먹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또 남편이 괜히 소란 떤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가사 도우미가 식사 준비를 끝낸 후에 방에서 나왔다.시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크게 느껴졌다.그때 고개를 들어 마침 화가 나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시어머니를 본 진미선은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왕대관 또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멀쩡하시던 어머니가 왜 저리 화가 나신 거지?’진미선 앞에 다가가 바로 진미선의 밥그릇과 수저를 반대편으로 밀어버린 이숙자가 진미선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쩜 이렇게 뻔뻔한 지. 지금 우리 왕씨 집안 밥을 먹을 염치가 있어?”진미선은 몸을 움츠린 채 시어머니의 얼굴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왕대관이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곧바로 일어나 어머니를 막아 세웠다.“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밥 다 먹고 나서 얘기해요.”“그래도 먹겠다고? 하루 종일 먹고, 먹고, 또 먹어. 그렇게 많이 먹어대는데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는 거야. 바로 네가 장가간 이 잘난 마누라가 오늘 오후에 네 엄마한테 어떻게 대들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진미선을 비난하던 이숙자의 머릿속에 자신을 대하던 안금여의 표정이 생각났다.강씨 집안에서 당한 일로 난 화를 모두 다 진미선에게 쏟았다.“당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진미선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대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왕대관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진미선이 잘못했다는 생각에 바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미선을 응시했다.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남편을 보며 진미선은 끅끅 울며 낮에 있었던 일을 자백했다.“이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이숙자가 매서운
이전에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쳤던 두 사람은 조직에서의 실력도 막상막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한 차례 맞붙는 모습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주 격렬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부분은 전혀 없었다.“아빠!” 두 사람이 싸우고 있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아이가 온통 눈물 범벅인 얼굴로 무진에게 달려왔다.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무진에게 달려갔다.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무진의 가슴을 뒤흔들었다.무진이 고개를 숙이고 두 아이를 바라보자, 익숙한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아빠, 저 아줌마가 아빠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우리가 싫어요?”작은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흐느끼는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공주의 모습이었다.사무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여동생처럼 펑펑 울지는 않아도 줄곧 눈물이 눈가에 맺혀 있었다.사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빠는 정말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무진은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나를 아버지라고 부른 두 아이가 송성연 씨 아이였어.’ ‘게다가 이번에 송성연 씨를 만났을 때도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며칠 동안 이어진 장면들이 지금 마치 파노라마처럼 무진의 머릿속을 빠르게 맴돌았다.“아빠, 사진이는 아주 말을 잘 들어요. 우리가 말을 잘 들으면, 아빠가 우리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다시 고개를 든 사진의 눈에는 어느새 다시 눈물이 맺혀 있었다.작고 하얀 두 손을 천천히 펼치면서 무진이 안아 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아이의 이런 모습을 본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내밀고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무 말없이.여전히 성연에게 붙잡혀 있던 예민주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다른 한쪽에서 손건호는 여전히 서한기와 뒤엉킨 채 막상막하인 상태였다.
성연은 그저 비웃기만 하면서 핏발선 눈으로 무겁게 무진을 쏘아보았다.“지금 저 여자를 두둔하는 건가요?”미간을 찌푸린 채 성연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는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조용히 남자를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대화로 하자는 거야? 완전히 도발하는 거지!’그러나 지금 완전히 통제불능 상태인 성연에게는 무진의 눈빛이 그렇게만 보였다.심지어 다시 이전의 두통이 반복되었다. ‘아주 뚜렷하고 강렬한 느낌이야.’‘매번 이 여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전에 없던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무진이 멍하니 있을 때, 줄곧 주의하지 않았던 예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진 오빠, 빨리 구해줘요!”무진은 그제서야 비로소 예민주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예민주의 두 볼이 빨갛게 부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손건호, 아직도 거기에 서서 뭐 하는 거야?”남자는 차갑게 지시하면서 셩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네!” 지시를 받았지만 손건호는 여전히 다소 망설였다. 결국 자신이 상대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무도 익숙했던 성연이기 때문이다.지금은 마치 어떤 이유 때문에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했다.이런 느낌에 손건호는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나는 결국 보스의 수하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송성연 씨, 예민주 씨를 놓아주십시오.”성연의 앞에 다가간 손건호는 성연을 직시하지도 못한 채 공허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여전히 예민주의 멱살을 꽉 쥔 채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손건호,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끼어들지 마.”그 말을 듣자, 손건호는 마치 망치에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러나 그저 잠시만 그랬을 뿐. 손건호의 눈빛은 이미 빠르게 수습되었다.“송성연 씨, 죄송합니다만 이게 제 일입니다.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이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손건호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말을 마친 손건호가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