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주인공이 돼야 할 결혼식의 신부가 박형식의 파트너로 바뀐 순간 엄마는 숨이 멎어 들었고 그렇게 내 결혼식은 엄마의 장례식이 되어버렸다. 박형식은 그럼에도 결혼식을 강행했고 아예 나더러 강지연 손에 반지를 끼워주라고 했다. “얼른 끼워줘, 식 끝나면 내가 다 설명할게.” 나는 그런 박형식을 무시하며 엄마의 시체를 안고 호텔을 나왔다. 저녁 8시가 되자 신부가 바뀐 결혼식도 원만히 끝났는지 강지연이 인스타에 피드를 하나 올렸는데 거기에 좋아요가 수십만 개나 달려있었다. “오늘 드디어 원하던 사람과 결혼했어요, 다들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 또 본인 주제를 알고 알아서 비켜주신 그분한테도 고맙네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사랑해주지 말아야지.” 그 피드 아래에 달린 박형식의 댓글을 본 나는 차디찬 영안실에서 둘을 위해 '좋아요'를 눌러주며 “오래도록 행복하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는 엄마의 유골함을 안고 짐을 정리하러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하필 내가 산 소파에 앉아 서로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있는 박형식과 강지연을 보게 되었다.
Узнайте больше하지만 박형식의 요구는 처참히 묵살당했다.“미연이가 다시는 너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모든 걸 빼앗겼을 때도 멀쩡하던 박형식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성을 잃어버렸고 내 시체가 누워있는 불당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막은 탓에 그는 그저 밖에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임미연! 너 안 죽었지? 네가 죽을 리가 없잖아!”“죽으라는 말도 안 했는데 네가 왜 죽어! 네가 어떻게 죽어!”그 순간 할머니가 박형식의 뺨을 세게 내려치고는 이를 악문 채 말했다.“어떻게라니! 미연이는 사람이야, 네 말에 따라 움직이는 너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인간이라고!”“그렇게 싫은 걸 전에는 잘도 참았네. 한울을 물려받기 위해 미연이를 사랑하는 척 연기하는 너한테 미연이는 그저 속아 넘어간 거야.”“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미쳐가는 것도 다 참아줬고 네가 자기한테만 야박한 것도 다 넘어가 준거야.”“경찰은 이미 불렀으니까 내가 한 말은 안에 들어가서 잘 생각해봐.”할머니의 차가운 말에 박형식이 빨개진 눈을 한 채 고개를 들었고 강지연은 할머니에게로 달려가며 세차게 고개를 저어댔다.“할머니, 안돼요! 형식 씨는 할머니 친손자잖아요!”그녀는 또 박형식의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형식 씨, 얼른 할머니한테 잘못했다고 해요. 그래도 가족인데 용서...”“X발, 꺼져! 어디다 더러운 손을 대!”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오자 강지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박형식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 자신을 대하리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을 텐데, 아마도 충격이 큰 것 같았다.강지연이 입을 틀어막고 울먹이고 있을 때 할머니는 마침내 그녀를 보며 말했다.“너는 형식이가 정말 너를 사랑해서 잘해준다고 생각했겠지.”“그런데 쟤한테 너는 그냥 도구일 뿐이었어. 너를 곁에 두는 것으로 우리 집안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던 거야. 본인의 능력을 의심하고 인생을 대신 결정하는 것에 대한 불만.”할머니는 비틀거리
“그게 무슨 소리예요?”두 눈을 크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던 박형식은 갑자기 입을 틀어막더니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마치 폐 전체를 다 토해낼 듯이 거세지는 기침에 강지연은 다급히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할머니를 향해 울면서 말했다.“할머님, 형식 씨는 할머니 친손자잖아요. 가뜩이나 폐도 안 좋아서 흥분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강지연은 말을 하며 박형식 옆에 꿇어앉았다.“미연 씨한테 나오라고 하세요. 정말 질투 나서 그런 거라면 제가 떠날게요.”“형식 씨만 괜찮을 수 있다면 저는 뭐든 다 상관없어요.”강지연은 이 와중에도 가증스럽게 눈물을 흘려대며 박형식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마치 이 세상에서 박형식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건 자신뿐이라는 듯 가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하지만 정화영은 그런데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더니 바로 박형식의 뺨을 때렸다.“기침해, 그냥 그렇게 계속 기침하다가 죽어. 네가 폐병이 왜 생겼는데, 다 그날 그 화재 때문이잖아. 그때 미연이 엄마가 너 안 구했으면 넌 진작에 그 안에서 죽었어.”박형식은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정화영이 휘두른 손에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형식 씨!”그걸 본 강지연이 다급히 박형식에게로 다가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자비 없이 강지연도 발로 차버리며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너 같은 건 때리고도 싶지 않아, 오히려 내 손이 더러워질 것 같거든.”말을 마친 할머니는 곧바로 불당을 향해 외쳤다.“다들 나와!”그 소리에 박형식도 고개를 들었는데 한울 그룹의 이사진들과 집안의 친인척들이 불당 뒤에서부터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한울의 핵심인 주주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빠르게 알아챈 강지연은 깜짝 놀라며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할머니는 그런 그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주주들을 향해 손을 높게 들며 말했다.“이사진들도 어차피 다 모여있으니까 그냥 여기서 말하지. 오늘부터 박형식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내가 그에게 줬던
정신이 반쯤 나간 박형식이 차를 몰고 박씨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불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나와 엄마를 위해 불경을 외우고 계셨다.나의 시체와 엄마의 유골은 그 관세음보살 불상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다시 말하건대, 지장보살이여, 미래 세상에서 하늘과 인간이 모두 각자의 업보에 따라 응보 받을 것이라...”“임미연, 당장 나와!”박형식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미친개처럼 소리치며 불당을 차로 들이받았다.에어백이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강한 충돌이었다.그 소란에 정화영은 외우던 불경을 잠시 멈췄지만 이내 다시 염주를 돌리며 진심을 다해 나의 극락을 빌어주었다.한편 박형식을 따라 차에서 내린 강지연은 내릴 때부터 할머니께 애원하고 있었다.“할머님, 형식 씨 잘못 아니에요!”그 순간 할머니 손에 들렸던 염주가 끊어져 버렸고 떨어진 구슬이 사방으로 굴러가 버렸다.“꿇어.”“당장 무릎 안 꿇어?!”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며 호통쳤지만 박형식은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에 강지연은 서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할머니, 그건 진짜 형식 씨 잘못이 아니에요. 다 미연 씨가 일부러 형식 씨를 피해서 그런 거라니까요. 임신 같은 대사는 당연히 말을 해야 하는 건데 그걸 비밀로 하니까 형식 씨도 화가 난 거죠. 그러니까...”“네가 뭐라고 감히 우리 집안일에 끼어들어!”할머니는 손에 들려있던 몇 알 남은 염주를 강지연의 얼굴을 향해 뿌리며 욕설을 내뱉었다.“네가 뭔데! 넌 그냥 상간녀고 꽃뱀일 뿐인 천한 년이야!”그 매정한 말과 기세에 놀란 강지연이 눈물을 보였지만 할머니는 멈추지 않았다.“내 앞에서까지 연기할 작정이냐? 넌 육칠십 년 전 백악문의 그 계집애들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내가 성해 본가에 있을 때 네 엄마도 그 백악문에 있었는지 알 게 뭐야!”할머니의 험한 말에 깜짝 놀란 강지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기만 고
하지만 나는 바로 떠나지 않고 영혼이 되어 공중을 떠돌며 할머니가 실수로 통화버튼을 누르는 걸 보았다.할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핸드폰에서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임미연, 너 지금 어디야? 네가 개처럼 숨어있는 게 나한테 협박이 될 거라고 생각해?”“너 할머니 찾아갔지?”“네가 할머니 찾아가면 내가 무서워한 줄 알았어?”“똑똑히 들어 임미연, 그 집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이야.”박형식의 말에 화가 치밀어올라 호흡이 가빠진 할머니가 가슴을 부여잡느라 핸드폰을 떨어트렸는데 박형식은 그 소리를 듣고 언성을 한층 더 높이며 물었다.“왜 대답이 없어, 뭐 죽기라도 한 거야?”그 말을 들은 나는 당장이라도 대답해주고 싶었다, 네 바람대로 나는 죽었으니 강지연이랑 오래도록 행복하라고.“말 좀 해 임미연!”박형식은 또 이를 악물며 분노에 차 말했다.“죽더라도 애는 낳고 죽어, 안 그럼 너 죽게 안 놔둬 내가.”아이라는 말에 할머니가 바로 의사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뱃속에서 아이를 발견하긴 했는데...”“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태아가 이미 강한 힘에 의해 다 부서져 있었어요. 그리고 시체에서 발자국도 발견됐고요.”“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의사의 말이 끝나자 할머니는 휘청거리며 눈물을 쏟아냈다.“발자국이라니, 설마...”“무슨 소리야 이건. 임미연, 너 대체 어딨는 거야?”박형식이 아까부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파르르 떨며 손으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내 배를 어루만졌다.그곳에 박씨 집안의 후손이 있었다는 사실을 할머니도 이젠 알아버리신 것 같았다.“안돼!”내 배를 어루만지던 할머니는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빠르게 손을 거둬들이더니 다른 손으로 그 손을 잡으며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마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박형식은 계속 핸드폰에 대고 화풀이하듯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임
나는 병원에 이송되자마자 숨을 거두었다.내 숨이 다하기 전까지 할머니는 내 옆에서 계속 말씀을 멈추지 않고 계셨다.“미연아,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그는 빨개진 눈시울을 한 채 내 손을 꼭 잡으며 애원했다.“조금만 더 버텨줘, 이제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하지만 나는 내가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박형식이 나를 찰 때 부러진 갈비뼈 두 개가 내 폐를 찔러버려 숨 쉴 때마다 거친 소리가 들려왔고 또 갑작스러운 유산 때문에 출혈도 심해져 나는 거의 살 가망이 없었다.내가 응급실 복도를 지나가니 바닥에는 빨간 피로 곧은 선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솔직히 지금까지 버틴 게 더 기적일 것이다.결국 의사는 나를 응급실에서 데리고 나오며 한숨을 내뱉었고 곧바로 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아요.”숨을 고르는 시간과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지만 나는 애써 말을 내뱉었다.내 말을 듣고 잠시 당황하던 할머니는 무언가 눈치챈 듯 내 손을 잡더니 내 볼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셨다.“설마... 형식이가 널 이렇게 만든 거니?”주름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그걸 닦아줄 힘도, 고개를 끄덕일 힘도 없었기에 그저 눈만 깜빡였다.그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다급하게 물었다.“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형식이가 널 이 지경으로 만들 때까지 네 엄마도 가만있었던 거야?”“엄마... 오늘 돌아가셨어요.”“네 엄마가 어떻게...”내 말이 끝나자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시더니 바로 울음을 토해내셨다.“그렇게 좋은 사람이 천지신명의 보호를 받지는 못할망정 이 젊은 나이에 무슨 일이야.”우리 엄마가 박형식을 아끼듯 그의 할머니도 친손자보다 나를 더 아껴주셨다.하지만 할머니가 나를 아껴주시는 건 다 우리 엄마 때문이었다.그날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한 손으론 할머니를 업고 다른 손으론 박형식을 안고 나오면서 불에 달궈진 나무 위
내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으니 박형식은 또다시 내 뺨을 때리며 내 턱을 잡아내려 억지로 입을 벌리려고 했다.세차게 뛰는 그의 심장과 집 전체를 울리는 고함이 그의 분노를 곧이곧대로 전해주고 있었다.“벌려, 못 먹겠으면 강지연한테 사과하든지 뭐라고 하란 말이야. 그리고 나한테 빌어. 다신 헤어지자는 말도 안 하고 그저 박씨 집안 안주인으로 살고 싶다고.”그의 손에 잡혀 억지로 벌려지고 있는 입가도 아팠고 머리는 이제 아래 우로 갈라질 것만 같았지만 나는 충혈된 눈으로 박형식을 노려볼 뿐 절대 그의 뜻에는 따라주지 않았다.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지 눈에 안광이 다시 돌기 시작한 박형식은 나를 그만 놓아주었고 나는 그 틈을 타 바닥에 떨어진 가루들을 다시 유골함에 담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강지연이 창문을 열며 말했다.“형식 씨, 여기 너무 더워요. 당신 폐도 안 좋은데 환기 좀 시켜야겠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또 에어컨의 바람까지 키워버렸다.“안돼!”나는 부서질 듯한 몸을 이끌고 달려나갔지만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과 강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엄마의 유골은 순식간에 공중에 흩뿌려졌다.얼마 남지 않은 뼛조각들이 바람에 따라 바닥에서 나부끼고 있었다.“어머, 미안해요. 형식 씨 폐 안 좋은 것만 생각해서 창문 연 건데, 아주머니 유골이...”그녀는 기어이 내 엄마의 뼛조각을 밟고 서서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미안해요, 아주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것도 이렇게 사라져버려서 어떡해요.”그 가증스러운 얼굴을 본 나는 빨개진 눈을 번뜩이며 그녀의 목을 졸랐다.“내가 너부터 죽일 거야!”나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나도 같이 죽어버리려고 했지만 강지연을 끔찍이 아끼는 박형식은 바로 나를 떼어내서 피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다.“임미연, 너 대체 언제까지 망가질 거야? 박씨 집안 안주인이 될 생각은 진짜 없는 거야?”그는 갈기를 세운 사자마냥 인상을 쓰며 횡포를 부려댔다.“필요 없으면 그냥 꺼져.”“말은 네가 못 알아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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