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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죄

나는 무죄

By:  바다별Kumpleto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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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으로 입양인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친부모가 나를 법정에 세웠다. 재판장은 최신 컴퓨터 기술로 우리의 기억을 추출해 100명의 배심원이 판결을 내리게 했다. 재판에서 승소하면 내 장기는 부모의 소유가 된다. 부모는 내가 법정에 나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들에게 나는 천하의 악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법정에 서고 기억이 재생되자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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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nata 1

제1화

“사모님, 암 말기입니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뭐라고요?”

의사는 진단서 위에 팔을 올려놓고 또박또박 말했다.

“사모님, 2년 전 유산했을 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후에 감염까지 된 바람에 자궁에 암 덩어리가...”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그럼 얼마나 남았나요?”

“암세포가 퍼져서 길어야 석 달 정도...”

그 후로 의사가 더 뭐라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윙 했다. 머릿속에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맴돌았다...

...

그날 저녁, 고씨 가문 별장.

조금 전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바로 나의 남편 고현성이다.

결혼 3년 동안 그는 매번 별장으로 돌아와 나와 관계를 가진 후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마치 더러운 뭔가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매정하게 나가버렸다.

별장으로 들어와서부터 나갈 때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후 양복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가려고 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고현성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자 고현성이 입술을 깨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무관심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 막혀 결국 이 한마디만 했다.

“조심해서 가요.”

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내려다보면서 고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현성이 전화를 받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와 고현성은 올해로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 여자의 목숨으로 고현성을 협박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강요했다.

고현성은 반항도 해봤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

3년 동안 나를 대하는 고현성의 태도는 늘 차가웠고 잔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나와 잠자리를 할 때도 그 여자의 이름 임지혜를 부르곤 했다.

고현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모욕을 줬었다.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게 됐을 때 고작 14살이었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고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두곤 했었다. 그리고 고현성은 그때 옆 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나보다 일곱 여덟 살이나 많은 낯선 남자를 좋아하게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얼굴이 잘생겨서, 말하는 말투가 다정해서, 또 혹은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처음 들었을 때 연주곡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주해줬던 곡이라서 좋아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해 나는 고현성이 피아노 수업을 끝마치고 다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달간 뒤를 쫓아다녔다. 심지어 이름조차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피아노 치던 그 남자를 계속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씨 가문의 회장이 연씨 가문으로 찾아와서 날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했다...

연씨 가문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재산이 어마어마한 재벌이었고 운성시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가문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연씨 가문의 딸이었다. 고현성을 만나기 전에 나의 부모님은 항공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난 하루아침에 운성시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외롭고 슬픔에 잠긴 그 시기에 따뜻했던 고현성을 만났다.

사실 우린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고현성은 내가 따라다닌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일반 학생이라 생각하여 나의 존재를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기에 내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간이 늦어 하늘이 어둑해졌을 무렵 다정하게 당부하곤 했다.

“얼른 집에 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

그 생각만 하면 난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때의 고현성은 참으로 다정했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3년 전 고현성 아버지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하찮게 여겼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 연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가문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현성의 아버지가 사진을 꺼내고 익숙한 얼굴을 봤을 때 난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동시에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내가 맨날 그리워하던 남자였으니까.

결국 나는 큰 모험을 하기로 했다.

고현성이 기꺼이 나와 결혼할 것이라고 기대했었고 우리의 결혼이 사랑은 없어도 서로 존경하면서 행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집 남편들처럼 날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모욕을 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2년 전에 배 속의 아이까지 지우라고 했다.

고현성은 의사 앞에서도 나의 체면과 마음속의 기대 따위는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연수아, 넌 내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어.”

고현성은 나를 무척이나 증오했다. 자신의 아이까지 지우게 할 정도로.

예전에 밤낮없이 따라다니던 어린 소녀를 이미 잊은 듯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연씨 가문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에 앉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쫓은 그런 여자였다. 고현성에게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옛날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마. 너도 알잖아. 너한테 아무 인내심이 없는 거.”

나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씁쓸함을 참으면서 가볍게 웃었다.

“현성 씨, 우리 거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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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Kabanata
제1화
재판대에 서고 몇 미터에 이르는 큰 화면에 실시간으로 댓글이 뜨기 시작했다.[재판대에 서는 첫 번째 사람이다.][범인은 증거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겠지.][재미있는 일이 곧 시작되겠군.]재판이 시작되기 전 판사가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피고, 재판 절차와 결과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재판을 받을 의향이 변함없는가요?”재판에서 내가 유죄로 판결되면 나는 즉시 안락사 당하게 된다. 내 몸의 장기들은 부모의 소유가 되고, 내 심장은 이민주를 살리는 데 쓰이게 된다.원고석에 앉은 친부모는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들은 자신들이 이길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친딸인데 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고 미워하며 상처를 주었는지.결국 내 심장까지 빼앗으려 하는 이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나는 그들 옆에 앉은 이민주가 그들의 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그리고 판사를 똑바로 바라봤다.“재판을 시작해 주세요.”판사가 원고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원고, 재판 절차와 결과에 대해...”그러나 판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우리는 그녀의 부모입니다. 우리가 질 리가 없어요!”“빨리 재판을 시작해요! 민주가 오래 기다릴 수 없단 말이에요!”재판이 시작되었다.피고의 첫 번째 죄목: 부모를 부양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외면하며 밖에서 자기만을 위해 즐겼다.화면 속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이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다.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가운데 아버지는 나를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고생하셨다.하지만 아버지가 병상에 누웠을 때 나는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의료비도 제때 보내지 않아 아버지는 결국 왼쪽 다리에 평생 장애를 얻게 되었다.[정말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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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나를 무시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인맥을 이용해 공장에서 일할 자리를 알아봐 줬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일 열심히 하고, 돈은 집에 꼬박꼬박 보내. 민주가 고등학교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어머니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이민주를 언급했다. 하지만 내 얼굴이 창백하고, 막 초경이 시작되어 바지에 붉은 얼룩이 번져 있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공장 일은 힘들었지만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엔 찢어지고 훼손된 교재와 버려진 책들이 가득했다.쉬는 시간마다 나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공장에 다니던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내 어린 나이를 보고, 공부하려는 내 의지를 기특하게 여겼는지 여러모로 도와줬다. 그들은 나를 지도해주고, 심지어 고등학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힘써주기도 했다.나는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보내고, 조금씩 남겨 모으면서 학교에 갈 날을 꿈꿨다.그러던 어느 날, 열이 심하게 나서 송금을 제때 하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장으로 찾아와 나를 매질하기 시작했다.동료들이 말렸지만 그 와중에 내 책들과 책 속에 숨겨둔 돈이 바닥으로 쏟아졌다.아버지는 내 배를 세게 걷어찼다.“감히 돈을 숨겨? 이 배은망덕한 놈! 오늘 제대로 혼내줄 테다.”어머니는 내 책을 잡아찢으며 소리쳤다.“이게 네가 할 짓이야? 네 주제에 공부는 무슨 공부!”나는 땅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애원했다.“엄마,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 책들은 제 것도 아니고, 겨우겨우 빌린 건데요...”하지만 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얼굴에 날아들었다.“입 다물어! 네 엄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돈을 바르게 써야지, 헛짓거리만 하고 말이야!”그들은 내 책을 찢어 물에 던진 뒤 발로 밟아 망가뜨렸다.그리고 기숙사를 뒤져 내 모든 돈을 가져갔다. 남은 건 단 한 푼도 없었다.떠나기 전 어머니는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그렇게 한가하면 또 다른 일을 해서 돈 벌어. 민주의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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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했다. 화면에 뜨는 실시간 채팅만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이건 사람이 아니야! 재판대에 올라가야 할 사람은 저 부모들이지!][저게 진짜 친딸이야? 원수한테도 저렇게는 안 하겠다.]판사가 입을 열었다.[배심원 여러분, 결과를 내려주십시오. 무죄를 선택하실 수도 있고, 이 혐의만 따로 심판할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혐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피고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33표. 모두 무죄로 결정했다.“음... 원래 가족 상황이 불쌍하긴 한데, 나중에 더 큰 복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맞아. 계속 이렇게 순하고 착하게만 살 것 같진 않아. 뭔가 다른 일을 저지르긴 했겠지.”이어서 부모님이 내게 제기한 두 번째 혐의가 발표됐다.[결혼 예물로 받은 4천만 원을 들고 도망가 연락을 끊었다. 그로 인해 부모에게 막대한 빚을 지게 했다.]실시간 채팅이 다시 요동쳤다.[역시나 뭔가 더 심한 짓을 했네!][4천만 원이면 가족이 아니라면 사기로 감옥에 갈 금액 아니야?]채팅 반응이 부모님 쪽으로 기울자 아버지는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나는 이민주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그녀의 마음이 결코 평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다.화면에 과거의 장면이 떠올랐다.“삼촌이 큰일 났대. 빨리 와서 봐!”이민주의 전화를 받은 나는 급히 사장님께 휴가를 요청하고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본 것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와 옆에서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는 엄마였다. 그리고 새 옷을 입고 웃고 있는 이민주가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내가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가 소리쳤다.“정말 내가 죽어야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했냐!”나는 속은 기분에 화가 났다.“그럼 나 지금 바로 나가도 돼요?”아버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근처에 있던 재떨이를 들어 나에게 던졌다. 나는 피할 틈도 없이 이마에 맞았고,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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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4천만 원.갑자기 전화해서 집에 들어오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문득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말없이 앉아 있는 이민주를 가리키며 그 삼촌에게 웃으며 말했다.“저 사람 어때요? 예쁘고, 학벌도 좋고, 삼촌이랑 딱 어울리잖아요.”“퍽!”엄마가 갑자기 내 뺨을 세게 때렸다. 긴 손톱이 내 뺨을 긁어 피가 가늘게 흘러내렸다.“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이 배은망덕한 년!”엄마의 목소리는 쉰 채로 날카로웠고, 마치 내가 딸을 파는 사람이기라도 한 듯했다.결국, 그들도 이 결혼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휘청거리며 집 밖으로 나가 울부짖었다.더 이상 이 집에 내 미련은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은 전화와 문자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4천만 원의 결혼비용을 갚으라며, 갚지 않으면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그럼 죽이든지요.”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가 돈을 요구하는 일은 점점 변질되어 성희롱으로 이어졌다. 결국 나는 직장을 바꾸고, 이사를 가고, 전화번호까지 바꿔서야 겨우 삼촌과 가족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새로운 삶이 이제 막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쳇, 뻔뻔하긴. 딸을 파는 부모는 다 죽어야 돼.][그래, 그렇게 좋으면 네가 직접 시집가든가.]온라인 실시간 댓글은 부모를 향한 분노로 가득했다.아버지는 변명을 시도했다.“결혼은 원래 부모가 결정하는...”“헛소리하지 마. 너 그냥 돈 때문이잖아.”“네가 무슨 아버지 자격이 있어!”배심원 중 누군가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비비며 엄마를 힐끗 보았다.“두 번째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판사가 발표했다.무죄 표는 78표였다.하지만 이 숫자로는 무죄를 선고받을 수 없었다. 95표 이상이 되어야 내가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다.아버지는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고, 엄마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이민주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옆으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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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난 가끔 그들이 정말 내 부모가 맞는지 의심했다.이민주를 두 번째로 만난 건 내가 열 살 되던 해였다.설날을 맞아 이민주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왔고, 양가 부모님은 유명한 A시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하지만 부모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민주의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차 안에서 이민주의 부모님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고, 곧 냉전 상태에 들어가 서로 말조차 하지 않았다.나는 이민주와 함께 뒷자리에 앉아 차 안의 무거운 분위기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이민주가 갑자기 손을 뻗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 했다.“엄마, 화 풀어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하지만 이민주의 어머니는 화가 난 상태에서 그녀의 손을 세게 뿌리쳤고, 이민주는 놀라 손을 재빨리 뒤로 뺐다.그러는 사이 이민주 어머니의 손이 운전 중이던 이민주 아버지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이민주 아버지는 갑자기 화를 내며, 사자처럼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이민주 어머니의 뺨을 세게 때렸다.이민주 아버지가 핸들에서 손을 뗀 순간, 산비탈에서 큰 바위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이민주 아버지가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고, 본능적으로 핸들을 급히 돌렸지만 바위는 조수석을 강타했고, 차는 충격을 받아 산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의식을 잃고 깨어났을 때, 나는 부모님을 찾아 울며 떼를 썼다.그 덕분에 이민주의 아버지가 정신이 분산되어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사고로 이민주의 부모님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나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하지만 그때 나는 겨우 열 살이었다. 진실을 말할 용기도, 말할 수 있는 지혜도 없었다.“말도 안 돼!”“쟤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아버지는 격분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입술을 떨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이민주는 어느새 원고석을 떠났다. 그녀의 가방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었다.“기억은 조작할 수 없습니다.”판사가 차갑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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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모든 게 내 거야. 왜 살아 있어? 왜 죽지 않는 거야.”이민주의 독기가 점점 더 분명해졌다.나는 가족을 멀리하기로 했다. 부모님 때문만이 아니라 이민주와 다투기 싫어서였다.친부모의 사랑조차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람인데, 이민주가 못 빼앗아 갈 게 없다.나는 애초부터 알았다. 그래서 진흙탕에서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내가 이민주를 찾지 않아도 그녀는 계속 나를 찾아왔다.이민주는 첫 번째 맞선은 실패했지만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래서 두 번째를 계획했다고 했다.“이번에는 또 늙고 못생긴 데다 술집과 도박을 좋아하는 남자야. 그런데 말이야, 상견례 때는 6천만 원의 혼수를 제안했어. 아들을 낳기만 하면 2만 원을 더 준다고 하더라.”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민주는 나를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건지.우리는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내가 그녀에게 따졌다.“이민주, 너 진짜 미쳤어?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거야? 네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내 부모님은 너 때문에 죽었어!”이민주는 감정이 격해져 소리쳤다.“넌 죽어야 해!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그녀는 나를 때리려고 덤벼들었다.나는 재빠르게 피했고, 그녀가 손에 반쪽짜리 컴퍼스를 쥐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끝이 뾰족한 그것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나는 그녀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그리고 아마도 하늘이 보고 있었는지, 그녀가 나를 찌르려고 할 때 발목을 삐끗하며 넘어졌다.그녀는 땅에 쓰러졌고, 눈이 길가 계단의 뾰족한 곳에 부딪혔다.그녀의 얼굴에는 상처가 생겼고, 눈도 크게 다쳤다.각막 이식을 하지 않으면 점점 시력을 잃게 될 상황이었다.이번 사건은 예상대로 아빠의 귀에 들어가서 내가 이민주를 해쳤다는 이야기가 되었다.더 이상 변명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배은망덕한 놈!”아빠는 화가 나서 내게 발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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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아버지가 갑자기 크게 외쳤다.“어서 저 위선적이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을 끌어내세요.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저 여자예요.”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판사님, 이민주의 기억을 추출할 것을 요청합니다.”법정은 이미 혼란스러워졌고, 배심원들은 수군거리며 웅성거렸다. 화면 아래로 흐르는 댓글은 너무 많아 내용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판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이민주는 몸부림치며 거부했지만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결국 기억 추출 기계를 강제로 착용해야 했다.화면이 스크린에 떠오르기 시작했다.변호사가 한 계약서를 이민주 앞에 놓았다.“이민주 양 부모님께서 각각 생명보험에 가입했는데요. 이민주 양이 수혜자이고, 보상금은 몇 억 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민주 양은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이 돈은 새로운 보호자가 관리하게 됩니다.”“단, 그들에게는 보관할 권리만 있으며, 사용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민주 양이 성인이 된 후에야 이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화면이 전환되고, 문이 열리자 부모님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문밖에서 이미 꽤 오랫동안 듣고 있었음이 분명했다.화면이 한 번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이민주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가방 끈을 꽉 쥔 채 망설이는 모습이었다.아버지는 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그녀가 여전히 망설이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눈짓을 보냈다.어머니는 곧 상황을 알아채고, 억지로 이민주의 손을 잡아 안으로 끌어들이며 최대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이민주는 금방 경계를 풀고, 마치 친딸처럼 어머니에게 기대었다.어머니는 잠시 굳어 있었지만 이내 그녀를 안아주었다.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는 정말 웃음이 나왔다.이제껏 나는 줄곧 생각해왔다.도대체 무엇이 부모님의 이런 극단적인 변화를 만들었는지.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그것이 돈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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