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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조용한 거리

作者: 데이지
last update 公開日: 2026-04-03 16:15:11

화요일 아침, 사무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간 하준은 예전처럼 눈을 맞추지도,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의 인사는 짧았고, 미소는 평소보다 1도쯤 낮았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서윤은 머뭇거리며 인사를 받아쳤다.

“응… 잘 잤어요?”

하준은 대답 대신 조용히 웃고 지나갔다.

그 순간, 서윤은 깨달았다. 이건 분명히 거리였다.

바쁘다거나 할 일이 많아서로 감춰지는 종류의 회피가 아니라,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내는 거리감.

서윤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노트북을 켰지만,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을 차지한 건 다른 어떤 문장도 아닌 하준의 무표정한 뒷모습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하준은 그녀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물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아니면 같이 있어줄까요?’

이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더 아팠다.

그녀는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게 사랑이라 믿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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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상사의 비밀 알바   34. 나를 선택한 표정

    그날 밤. 하준은 돌아갔고, 서윤은 다시 조용한 공간에 홀로 남았다.TV를 켜지도 않았고, 음악도 틀지 않았다.그저… 침대에 앉아, 이진이 건넨 책을 다시 펼쳤다.책의 한 챕터를 다 읽었을 즈음 핸드폰이 또 울렸다.[류이진]오늘, 당신 생각이 나서요. 그냥… 괜찮았으면 해서요.그 문장엔 아무런 조건도, 확인도, 요구도 없었다.그저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 그 마음이 서윤의 밤을 감싸안았다.서윤은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마주하기 시작했다.확신을 강요하지 않는 사랑, 나로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감정.그런 관계 안에서 자신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금요일 아침, 서윤은 일찍 눈을 떴다.창밖의 햇살은 눈이 부시지도, 어둡지도 않았다.그저 적당한 온도로 방 안을 채우고 있었고그날의 기분도, 딱 그만큼이었다.어디에도 쏠리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는 조용한 중심의 감각.아침 식탁에 앉아, 서윤은 전날 남겨둔 찬밥을 데워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계란을 익히는 소리,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모든 것이 익숙하게 반복되었지만 그 반복 속에서 처음으로그녀는 혼자인 시간을 마음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혼자인데 고요하고, 고요한데 편안하다.그게 그녀가 요즘 부쩍 자주 느끼는 감정이었다.회사로 향하는 길목, 출근길의 사람들 틈에서 서윤은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어제 밤, 류이진이 추천한 재즈 플레이리스트.멜로디는 말하듯 흘러들어왔고, 그 멜로디 안에 이진의 배려가 숨 쉬고 있었다.그녀는 이따금 문득 궁금해졌다.그는 어떻게 그렇게 ‘건드리지 않고 다가오는 법’을 아는 걸까.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하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는 전날보다 더 피곤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서윤 씨. 잠깐 시간 좀 괜찮아요?”서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녀를 회의실 쪽으로 데려갔다.회의실 안. 둘만의 공간.그러나 예전처럼 편안하지 않았다.공

  • 여상사의 비밀 알바   33. 나는 나로 충분한가요

    서윤은 이틀째 하준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무리하게 다가오지 않았고,그녀 역시 자신이 얼마나 지금을 원하는 사람인지,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오전. 노트북을 덮은 채 서윤은 한참을 거실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어제 밤에 받은 하준의 메시지,그 안에 담긴 확신은 분명 따뜻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질적이었다.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나를 확신했다는 말,그건 왜 이렇게 쓸쓸하게 느껴질까.서윤은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나는 그저 누군가의 비교 끝에 택해질 존재가 아니야…”말이 입술 끝에 걸릴 때마다조금씩 그녀의 내면이 다져지고 있었다.점심 무렵, 서윤은 무작정 집을 나섰다.어디론가 향하는 목적은 없었고, 그저 숨이 막히지 않을 공간을 찾고 싶었다.조용한 골목 끝,예전 작가들 모임을 하던 카페가 떠올랐다.그곳은 아직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카페 문을 열자, 익숙한 향과 함께 의외의 얼굴이 그 안에 앉아 있었다.“…류이진?”그도 서윤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작가님.”그는 여전히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서윤 씨가 아니라, 작가님이라고.그 호칭 하나에 서윤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긴장을 풀었다.“…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제가 자주 오거든요. 여기, 한동안 핑크문 회의할 때도 쓰던 데잖아요.”“그러네요.”서윤은 그의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앉았다.이유 없는 동행이었지만, 왠지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그러다 이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작가님, 요즘… 무슨 글 쓰세요?”“…아직은 다시 시작 못 했어요.”“그래도 언젠가 다시 쓰실 거잖아요. 그걸 아는 게, 저한텐 은근한 위안이에요.”서윤은 그 말에 살짝 웃었다.“왜요? 제가 글을 쓰면 뭐가 그렇게 좋으신데요?”이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그 글을 통해서, 작가님이 얼마나 깊고 솔직한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저는 작가님이라는 사람 자체에 항상 관심

  • 여상사의 비밀 알바   32.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

    밤은 깊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서윤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었다.커서가 반짝이는 화면 앞에 앉은 지 벌써 두 시간이 넘었지만,단 하나의 문장도 입력되지 않았다.그녀의 눈은 커서의 깜빡임을 따라가며 자꾸만 멈춰 섰다.글을 쓰고 싶은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이상했다. 사랑 이야기를 쓰는 작가인데,지금 가장 선명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그 어떤 언어도 입에 붙지 않았다.서윤은 조용히 노트북을 옆으로 밀어두고, 창문을 열었다.밤바람이 얇은 커튼을 흔들며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그 바람 속에서, 자신의 감정도 함께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나는…”그녀는 중얼거렸다.“내가 쓰는 이야기처럼, 사랑이 뚜렷하고 강렬하게 오는 줄 알았어.”“하지만 지금 이 감정은, 뚜렷하기보다는 불안하고, 강렬하기보다는 조심스럽기만 해.”서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사랑이란 감정은 때로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연약하게도 만든다.’그녀는 그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이내 다시 노트북을 펼쳤다.타닥, 타닥.오랜만에, 손가락이 움직였다.그는 매일 그녀를 보며 사랑을 느꼈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함께 느꼈다.그 두려움은 그녀를 잃을까 봐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봐서였다.그녀는 그 두려움을 모른 채 매일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그 확인이 부족해질수록 그녀는 외로워졌고, 그는 더 말이 없어졌다.사랑은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느냐보다, 그 감정을 지켜내는 ‘방식’에 달려 있었다.’서윤은 그 글을 저장하고,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나는 하준 씨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걸까?그가 내 과거를 묻지 않는 만큼, 나도 그의 과거를 존중한다고 생각했는데.사실은… 내 안에 그 여자의 자리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그녀는 자신이 생각보다 더 이기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빠져들었다.박지현의 말처럼, 오랜 시간이라는 건 강

  • 여상사의 비밀 알바   31. 조용한 거리 두기

    토요일 아침. 도시는 느리게 움직였다.창밖의 햇살은 맑고 따스했지만, 서윤은 책상 앞에 앉아 창문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있었다.노트북을 켜고 문서를 열었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대신 떠오르는 건 어젯밤 하준의 표정이었다.“미안한 마음이 남아서 그런 것 같아.”그 말이 이상하게도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미안함. 그건 과거를 향한 감정이어야 하는데,어째서 현재를 향한 주저함이 되는 걸까.서윤은 마우스를 움직여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그녀의 소설 속 남주가 여자 주인공을 향해 망설이는 장면이었다.그 남자는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맞아. 하지만 과거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어.그게 널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나.’소설 속 그 대사는, 마치 하준의 마음을 베껴낸 것만 같았다.그 순간, 서윤은 자신이 얼마나 글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인식했다.점심 무렵. 하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오늘 저녁 괜찮으면 우리 동네에서 커피 한 잔 할래요?그 메시지는 짧았지만 지금의 그녀로선 큰 결심이었다.거리를 두겠다고 마음먹은 동시에, 완전히 도망치진 않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하준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좋아요. 몇 시쯤?-여섯 시. 그 카페 기억하죠? 창가에 앉았던 곳.-기억하죠. 오늘은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저녁 여섯 시. 서윤이 도착했을 땐 하준이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는 창밖을 보고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걸 알아채고 조용히 일어났다.“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카페가 더 포근해 보여요.”그의 말에 서윤은 가볍게 웃었다.“그러네요. 햇살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둘은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다 서윤이 커피를 시키며 물었다.“요즘 지현 씨랑은 자주 이야기해요?”하준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회의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시간이 생기긴 해요. 그런데… 그게 신경 쓰였어요?”“조금은요. 그 사람은 당신에게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

  • 여상사의 비밀 알바   30. 과거를 지운다는 건 가능할까

    비가 내렸다. 하늘은 흐렸고, 출판사 건물 창문은 엷은 물결처럼 흐려져 있었다.회의는 없었지만, 박지현은 기획안 정리를 이유로 일찍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하준도 예상보다 일찍 들어왔다.“안녕하세요.”지현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진한 블렌딩, 예전 하준이 좋아하던 맛.“고마워.”하준은 짧게 인사했지만, 그 커피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요즘… 괜찮아 보여서 좋아.”지현은 모니터를 켜며 말을 이었다.“그때는… 너 참 힘들어했잖아.”그때. 그 말 하나에, 하준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우리, 그런 이야기 이제 굳이 꺼낼 필요 없잖아.”그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지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런가? 그냥 요즘 네가 참 달라 보여서 말이야.그래서 문득 궁금했어. 그 변화가 누군가 덕분이라면… 그 사람은 네가 울던 밤도 알까?”그 말은 부드럽지만 선명한 칼날처럼 가슴을 베어갔다.하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현아.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부정하지 않아.하지만 그건 지나갔고,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 덕분에 웃는 거야.”“그럼 그 사람도, 네 아팠던 부분까지 품어줄 수 있을까?”지현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나는… 그게 참 힘들더라. 네가 그렇게까지 무너져 있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그 순간, 복도 맞은편. 작은 인쇄실 앞 복도에 서 있던 서윤은,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사실, 서윤은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기획팀에 전달할 자료를 출력하러 온 길이었다.하지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그의 이름,그리고 무너졌던 밤이라는 단어들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울던 밤…?’‘그걸 함께한 여자…?’서윤은 단 한 번도 하준이 과거의 고통을 상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그는 항상 서윤의 어둠에만 천천히 귀 기울여주었지, 자신의 어둠을 들춰내는 법은 없었다.그 순간, 그녀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나는 그를 정말 알고 있는 걸까?그가 울었던

  • 여상사의 비밀 알바   29. 조율이라는 이름의 위협

    “차서윤 씨 맞죠?”낯선 여자였다. 출판사 1층 카페, 회의 후 앉아 있던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여자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친근하면서도 낯설었다.“저, 박지현이에요. 정하준 씨랑 대학 동기였고… 지금은 기획팀에서 일해요.”서윤은 일어서는 순간 멈칫했다.그 이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아… 안녕하세요.”“사실,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준이 예전엔 내 얘기 자주 했거든요.”박지현은 태연하게 커피잔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하준이… 요즘 많이 변했죠?”“…좋아진 것 같아요.”“응. 전에는 많이 조심스러웠거든.특히 감정 같은 거엔. 그게 꼭 나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그때는 나도 잘 몰랐던 마음이었으니까.”박지현은 일부러 말을 더듬지 않았다.오히려 자연스러운 말투로 서윤에게서 반응을 끌어내려는 듯했다.서윤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했다.“…전, 하준 씨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몰라요. 그리고 지금 어떤 사람인지만 중요해요.”그 말에 박지현은 살짝 웃었다.“멋지네요. 그런 태도. 괜히… 하준이 당신을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그녀는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나중에 회의 자리에서 또 봐요. 앞으로 종종 겹칠 것 같으니까.”그 말은 인사라기보다 경고처럼 느껴졌다.서윤은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바라보다 천천히 잔을 밀었다.저녁, 하준은 작업실로 돌아오자마자 서윤이 써둔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오늘… 당신의 과거를 만났어요. 괜찮아요.다만 그 과거가 나를 미끄러뜨리지 않게. 오늘은 조금 일찍 잠들게요.’그 메모를 읽으며, 하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날 밤, 박지현은 혼자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엔 감정도, 미련도 담기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손끝이 닿은 서류 위에 문장들 사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차서윤 작가님, 오늘 회의 동석 가능하신가요?”오전 10시, 하준의 메시지는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웠다.서

  • 여상사의 비밀 알바   12. 나를 읽는 두 가지 시선

    류이진. 그가 꺼낸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지금의 너, 그때보다 덜 쓸쓸해 보여.”그 말이… 어쩐지 마음속 깊은 곳을 찔렀다.밤이 오는 시간. 서윤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문장 하나 쓰려다, 손을 멈췄다.‘그녀는 조용히 울었다. 누군가의 마음 때문이 아니라,자신이 그 마음에 다 닿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녀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읽다가 결국 저장하지 않고 꺼버렸다.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하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흔들리고 있었다.며칠 뒤. 회사 근처 북카페.하준은 늦은

  • 여상사의 비밀 알바   11. 다시 문을 두드리는 사람

    한 번 삐걱였던 마음이 다시 다정해지는 데 필요한 건, 크고 특별한 말이나 선물이 아니었다.그저 하루 중 한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서로를 다시 믿게 되곤 한다.서윤은 그걸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화요일. 출근길 아침 공기가 무척 부드러웠다.새벽 내린 봄비가 미세먼지를 씻어낸 듯 도시의 회색은 약간 덜 뿌옇고, 간밤의 감정도 약간 덜 날카로웠다.서윤은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 핸드폰으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정하준] 오늘 아침은 제가 한 발 먼저 다가갈게요. 커피 1+1 쿠폰 생

  • 여상사의 비밀 알바   10. 이야기보다 당신

    금요일 오후. 사무실 창가로 노을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각.하루의 끝, 일주일의 끝,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의 끝자락이 내려앉던 그 시간.하준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걸음으로 서윤의 자리로 향했다.“팀장님.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그는 지난 수십 번처럼, 같은 말투로 물었다.하지만 오늘의 물음엔 다른 감정이 실려 있었다.서윤은 무언가를 직감한 듯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디로 가요?”“팀장님이 아직 안 가보신 데로요.”그녀는 웃음을 삼켰다. 지금껏 수없이 들었던 대사였다.그녀가

  • 여상사의 비밀 알바   9. 덮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늦은 퇴근길. 회사 건물 앞 가로수의 그림자가 인도 위로 길게 누워 있었다.봄의 끝자락, 여름이 오기 직전의 선선한 밤공기 속에서 서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녀의 손엔 노트북 가방이 들려 있었고, 그 속엔 막 마감한 신작 원고가 저장되어 있었다.'핑크문'의 38화.그녀는 이 회차를 유난히 오래 붙들고 있었다.이유는 단 하나. 이번엔, 주인공이 고백을 하는 회차였기 때문이다.그녀는 그 고백이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비틀린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그래서 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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