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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심계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13:26:57

“미안하다.”

강은택은 낮게 읊조렸다. 사과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는 여자를 덮고 있는 이불과 담요를 거칠게 걷어냈다. 그리고 강은택의 커다란 손이 마침내 젖은 원피스 어깨선에 닿았다. 그의 손은 서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젖은 천이 피부에 달라붙어 잘 벗겨지지 않았다. 그는 조금 인상을 쓰며 원피스를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축축한 천이 쓸려 내려가며 하얗고 뜨거운 어깨와 쇄골이 드러났다. 그의 시선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 씨발.”

그는 허공에 욕설을 뱉으며 애써 외면한 채 옷을 마저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조심스럽던 손길은 어느새 거칠고 빨라졌다. 이 불편한 행위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다는 듯이.

마침내 축축한 옷가지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강은택은 마치 오물이라도 만진 듯 손을 털고서 서둘러 이불을 끌어올려 그녀의 목 끝까지 덮었다. 그리고 그는 어쩐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짧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강은택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최지호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김이 나는 죽 그릇과 생수병, 그리고 작은 약병이 놓여 있었다.

“해열제 찾았어.”

최지호는 커다란 몸을 접어 그녀의 옆, 침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마치 어린 아이를 먹이듯 후- 후- 불어 적당히 식힌 죽을 여자의 입가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바싹 마른 입을 더욱 고집스럽게 다물며 최지호의 손길을 피했다.

강은택은 제 몸뚱이 반만한 여자에게 죽 하나 못 먹여 쩔쩔 매는 최지호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뭐 하냐?”

그는 최지호를 밀어내고 침대헤드에 등을 기대며 앉았다. 그리고 작은 어깨를 잡아 반쯤 일으켜 제 몸에 기대게 했다. 그런 다음 그녀의 턱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붙잡아 고정시켰다.

“여기서 죽지 마라. 아저씨 곤란하다.”

농담처럼 들리는 진담이었다. 강은택은 최지호가 들고 있던 죽 그릇을 빼앗아 들고는, 숟가락을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짐승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는 조련사 같은 모습이었다.

몇 숟갈 넘어가지 못한 죽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여자의 몸이 작게 뒤척거렸다. 끙끙대는 신음은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꼭 감은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려 땀과 뒤섞였다.

“…오빠…, 흑…….”

애타게 누군가를 부르는 울음 섞인 목소리. 그 처절한 부름은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입가에 묻은 죽을 닦으려고 티슈를 뽑던 강은택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었다. 그의 품에 안긴 작은 몸이 서럽게 떨려오는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강은택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작은 몸이 그의 품속으로 더욱 기울었다. 누군지도 모를 이 여자애가 안쓰러워졌다.

옆에 서 있던 최지호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 까무잡잡한 그의 피부가 순간 핏기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처절하게 부르는 ‘오빠’라는 말은 최지호의 어떤 기억 속의 편린을 건드렸다. 

최지호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는 몸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응, 여깄어. 괜찮아….”

최지호는 저도 모르게 속삭였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하얀 손을 찾아서 꼭 쥐고 제 뺨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줄게.”

최지호의 목소리는 물에 잠긴 듯 먹먹하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은택은 말리지도 부추기지도 못한 채 그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한숨만 내쉬었다. 담배가 절실해졌지만 참았다.

강은택의 단단한 품 덕분일까, 아니면 최지호의 간절함 때문일까. 여자의 격렬했던 흐느낌이 점차 잦아들고 가쁜 숨결은 이내 고른 색색거림으로 바뀌었다. 지독한 열병과 악몽으로 기진맥진한 그녀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이틀이나 굶었다고 했다. 강은택은 최소한의 인류애로 이 가여운 것에게 죽을 조금 더 먹이고 싶었으나 이미 그는 지쳐 있었다. 결국 숟가락을 드는 것은 포기하고 그녀의 입에 해열제를 흘려 넣었다.

강은택은 조심스럽게 제 품에 기댄 여자를 침대에 다시 눕혔다. 그는 이젠 정말 이 끈적거리는 몸을 씻어내리고 좀 쉬고 싶었다.

“나 씻는다.”

강은택은 게스트룸을 빠져나갔다.

덩그러니 남은 최지호는 가만히 잠든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 뒤척거리자 황급히 침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손을 찾아 쥐었다. 하얀 손이 투박하고 까무잡잡한 최지호의 손에 완전히 가려졌다. 최지호는 마치 작은 새를 두 손에 감싼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쥐고서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응, 괜찮아. 괜찮아….”

언제 왔는지 문가에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심우주가 팔짱을 낀 채 빈정거렸다.

“얼씨구. 신파 찍고 앉았네.”

심우주는 입꼬리를 삐딱하게 끌어올려 최지호를 비웃었다.

“…….”

최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졌는지 심우주는 그를 조롱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 심우주의 시선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여자의 옷가지에 꽂혔다. 시커먼 아스팔트 먼지와 흙 따위로 본래 무슨 색상이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꾀죄죄한 젖은 뭉텅이. 더러운 것을 본 듯 인상을 찌푸리던 심우주의 얼굴에 순간 흥미로움이 스쳤다. 옷가지와 뒤섞여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웠을, 초라한 백팩을 발견한 것이다.

심우주는 몸을 낮춰 가방을 잡았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지퍼를 열고 뒤집어 털었다.

후두둑― 짤랑. 

작은 소음과 함께 내용물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최지호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신원 확인은 해야 할 거 아니냐.”

심우주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고는 손끝으로 내용물을 샅샅이 훑었다. 

가방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손거울, 양말이나 속옷 따위가 언뜻 보이는 메쉬 파우치, 물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지폐 몇 장과 동전들, 그리고 낡고 해진 작은 카드지갑 하나가 전부였다.

심우주는 그 지갑을 집어 들었다. 먼저 보인 것은 웬 낯선 이름의 시골 읍내 도서관 대출증이었다. 바코드 아래에는 ‘도복희’라는 이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물기를 머금어 그것과 딱 붙어 있던 운전면허증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같은 이름이 쓰여 있다.

“도복희? 이야― 이름 한번 끝내주게 촌빨 날리네.”

심우주는 운전면허증에 박힌 사진과 잠든 여자의 얼굴을 대조하듯 번갈아 보며 킬킬거렸다.

“복희….”

최지호는 나직하게 그 이름을 읊조려 보았다. 촌스럽다는 심우주의 생각엔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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