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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심계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13:27:01

타박타박― 맨발이 마룻바닥을 딛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씻겠다던 강은택이었다. 축축하고 시커먼 정장 대신에 편안하고 깨끗한 반팔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입은 채였다. 

심우주는 그의 얼굴을 보더니 제 손에 들린 신분증을 하찮은 물건 다루듯 잘잘 흔들어 보였다.

“완전 그지.”

“그게 다야?”

“어. 가출 청소년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성인이긴 하네.”

“다행은 무슨.”

강은택은 성큼성큼 다가와 심우주의 손에 들린 운전면허증을 가로채듯 집어 갔다. 거기에 쓰여 있는 ‘도복희’라는 이름을 빤히 보더니, 그녀의 신분증을 그대로 제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얻다 쓰게?”

심우주가 물었으나 강은택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왜 저러냐.”

심우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그리고 최지호의 보호를 받으며 자고 있는 도복희의 머리맡으로 와 어슬렁거렸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도복희의 얼굴을 빤히 보던 심우주의 눈이 호기심과 흥미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손을 뻗어 그녀의 도톰한 입술 아래에 콕 박힌 점을 엄지로 거칠게 문질렀다.

“아, 보다 보니까 예쁜데. 턱에 박힌 초코칩도 귀엽고.”

심우주가 킬킬거렸다. 그러자 도복희의 손을 소중하게 쥐고 있던 최지호가 번뜩 고개를 들더니 재빠르게 심우주의 손목을 잡아챘다.

“하지 마.”

그녀에게 ‘여깄어, 괜찮아’ 말하던 물기 어린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차가운 음성이었다. 그러나 그 날이 선 경고에도 심우주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떠날 줄 몰랐다.

“왜. 만지면 닳나? 네 거냐?”

심우주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최지호에게 잡힌 손목을 부드럽게 비틀어 빼냈다. 최지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팽팽한 긴장감이 방안에 감돌았다.

그때, 쿵- 쿵- 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잠들었을지 모르는 야심한 시각임에도 그 발걸음에는 조심하려는 기색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내 인기척이 문턱까지 다가왔다. 거대한 그림자가 방문을 꽉 채우다시피 했다. 그 몸에 걸쳐진 부드러운 실크 잠옷이 역광으로 조금 번들거렸다.

“…여자가 아니라 애잖아.”

내용과 다르게 낮은 목소리는 무심했다. 목소리의 주인인 탁유환이 잠든 도복희를 내려다 보았다. 까만 눈동자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더욱 차가운 인상으로 느껴지게 했다.

“갖다 묻을 건가.”

탁유환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무감하게 내뱉으며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저 새까만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최지호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얼른 회복 시켜서 내보내. 귀찮게…. 쯧.”

탁유환은 잠든 여자애를 단지 귀찮은 사건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혀를 차며 방밖으로 나가버렸다. 최지호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도복희는 다음날 오전에 잠이 깼다. 여전히 열기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지난 밤처럼 눈도 못 뜨고 끙끙 앓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목까지 덮여 있던 이불이 힘없이 떨어지며 낯설고 서늘한 공기가 맨살에 닿았다.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고 얼른 이불을 끌어다 제 몸을 가렸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던 최지호가 눈을 떴다. 밤새 그녀를 돌보다 지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당혹으로 물든 도복희의 눈이 최지호의 잠이 덜 깬 눈과 마주쳤다. 최지호는 그녀의 허연 어깨를 보고 흠짓 놀라며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미안…. 어제 옷이 다 젖어서, 어쩔 수 없이, 형이….”

변명하듯 횡설수설 설명하는 그의 귓바퀴가 어느새 붉게 달아올랐다.

도복희는 심히 당황했다. 그러나 굶어 죽든, 얼어 죽든, 아무튼 길바닥에서 죽기 직전인 자신을 주워다 살려 놓은 사람에게 ‘왜 내 옷을 마음대로 벗겼냐’ 따져들 염치 없는 부류는 아니었다.

“옷…, 옷 입어. 죽 데워 줄게.”

최지호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의 커다란 손이 발치에 곱게 개켜진 채 놓여 있던 옷가지를 집어 도복희의 무릎 쯤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쾅.

방문이 닫히고 어렴풋이 우당탕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복희는 조심스럽게 그가 준 하얀색 반팔 티셔츠를 머리에 꿰었다. 천천히 이불을 헤치고 나와 커다란 바지에도 다리를 넣었다. 누구 것인지 모를 티셔츠는 너무 커서, 옷자락이 무릎까지 내려와 아빠 옷을 훔쳐 입은 듯 우스꽝스러운 꼴로 보이게 했다. 트레이닝복 바지는 아무리 허리끈을 졸라 매도 골반에 걸쳐지지도 않아서 결국 입기를 포기했다. 

잠시 후, 죽 그릇을 쟁반에 받쳐든 최지호가 방으로 돌아왔다. 짧은 노크와 함께 들어온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도복희를 보고 크게 당황했다. 길게 내려온 티셔츠는 충분히 허벅지를 가려 주었으나, 최지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바지를 입지 않았다는 정보만 입력되었다.

“아, 바지가 너무 커서요.”

“아….”

그녀의 해명에 최지호의 시선이 뒤늦게 옆에 놓여 있는 옷가지로 향했다. 바지는 분명 개켜져 있었으나 그가 처음 가져다 둘 때처럼 반듯하게 접힌 상태는 아니었다.

“이불 덮어.”

그의 말은 배려이자 걱정이었다. 도복희는 얌전히 이불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최지호는 그녀가 이불을 완전히 덮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최지호가 쟁반을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죽이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미친듯이 허기가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죽 그릇을 들고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도복희는 숟가락으로 휘적거리며 죽이 식기를 기다려야 했다.

따뜻할 때 얼른 먹지 않는 그녀를 보고 최지호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왜? 맛없어 보여? 아니면 속 안 좋아?”

최지호는 금방이라도 새로 죽을 끓여올 기세였다.

“뜨거워서….”

도복희는 죄인이 된 듯 고개를 푹 떨군 채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난히 뜨거운 것을 못 먹는 편이었다. 그 말에 안절부절 못하던 최지호가 순간 멈칫했다.

“아….”

알아차렸다는 작은 탄식. 한 박자 늦게 이해한 그의 얼굴에 짙게 내려앉았던 걱정이 아주 조금은 걷혔다.

최지호는 죽 그릇을 가져가 크게 휘저으며 후- 후- 불어 온도를 낮췄다. 생면부지인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이 미안하고도 고마워서, 도복희는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때, 옆방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와 이미 문이 열려 있는 게스트룸의 문간에 삐딱하게 기대어 섰다.

“네가 낳았냐?”

심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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