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
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
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
“다행이다.”
“너 이거 주작이지?”
“…….”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진짜라고.”
“카메라 어디 있어?”
“없어.”
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
“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유튜버야.”
“요즘은 다 찍잖아.”
“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걸 왜 찍어.”
“콘텐츠가 없으니까?”
“죽는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현우는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조금 진지해졌다.
“……진짜야?”
“진짜.”
“진짜로?”
“응.”
“그럼.” 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남자가 진짜로 너 좋아하는 거라고?”
“응.”
“왜?”
나는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할게.”
“아니, 아니.” 현우가 손을 저었다. “그건 들었어.”
“그럼 왜 물어?”
“이해가 안 가서.”
“나도 안 가.”
“너 게이 아니지?”
“아니.”
“근데 남자가 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쳤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둘 중 하나는 게이여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둘 중 하나가 꼭 게이야?”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잖아.”
“능력 때문이라고!”
“아.”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게이인 건 아니고?”
“아니라고!”
“근데 왜 남자를 꼬시는 능력이 생겼어?”
“나도 그걸 모르겠다고!”
“꿈에서 받은 거라며.”
“응.”
“그럼 꿈속의 너는 게이였던 거네.”
“아니!”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속의 나는 그냥 아무나 다 꼬시고 싶다고 했다고!”
“근데 왜 남자만?”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대!”
“누가?”
“그 남자가!”
“어떤 남자?”
“꿈속 남자!”
“아.” 현우가 잠시 생각했다. “그럼 네가 꿈에서 게이 남자를 만난 거네.”
“김현우.”
“왜.”
“입 다물어.”
“알았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현우도 술을 마셨다.
“근데.”
“또 뭐.”
“꿈에서 계약서 쓴 게 현실이 된다는 게 말이 돼?”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걸 묻는 거야?”
“응.”
“그게 말이 되겠냐?”
“그러니까 주작이지.”
“아니라고!”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봐 봐.” 현우가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네 말대로라면.”
“응.”
“어젯밤에 꿈을 꿨어.”
“응.”
“거기서 이상한 남자가 나왔어.”
“응.”
“계약서를 줬어.”
“응.”
“너는 안 읽고 사인했어.”
“……응.”
“그리고 잠에서 깼는데.”
“응.”
“그 계약이 현실이 됐어.”
“응.”
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말이 돼?”
“안 돼.”
“그럼?”
“근데 됐어!”
“어떻게?”
“나도 모르지!”
“그럼 주작이네.”
“으아아아악!” 나는 소파에 쓰러졌다. “왜 아무도 나를 믿지 않는 거야!”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잖아.”
“너라도 믿어줘야지!”
“근데 말이 안 되잖아.”
“나도 알아!”
“그럼 나보고 어떻게 믿어.”
“그냥 친구니까 믿어!”
“친구면 말도 안 되는 걸 믿어줘야 해?”
“응!”
“그건 사이비야.”
“…….” 나는 말문이 막혔다.
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 능력이 정확히 뭐라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어.”
“한 번에?”
“아니.”
“그럼 어떻게?”
“한 명당 일주일.”
“일주일 동안?”
“응.”
“그럼.” 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일주일 지나면?”
“능력이 풀려.”
“그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그런 것 같아.”
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네.”
“뭐가?”
“일주일짜리 남자친구.”
“…….” 나는 현우를 노려봤다. “웃기지 마.”
“아니, 능력 좋잖아.”
“어디가 좋아?”
“술 마실 친구도 생기고.”
“내가 술친구가 필요해서 남자를 꼬신 게 아니야.”
“외로울 때도 좋겠네.”
“안 외로워.”
“심부름도 시키고.”
“사람을 왜 심부름시키냐.”
“네 말대로라면 널 좋아한다며.”
“그래도.”
“그럼 데이트도 하고.”
“야.”
“밥도 얻어먹고.”
“김현우.”
“여행도 가고.”
“야!”
현우가 나를 바라봤다.
“아니, 생각보다 좋은 능력 같은데?”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봤다.
“……너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네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뭘?”
“여자한테 100번 차인 놈이.” 현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는 반대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게 됐잖아.”
“…….”
“드디어 성공률 100퍼센트야.”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우가 씨익 웃었다.
“축하한다.”
“뭘.”
“인생 첫 연애 성공.”
“남자잖아.”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지.”
“내가 원한 성공이 아니라고!”
“백 번 차인 것보단 낫지.”
“차라리 차이는 게 낫겠다!”
“진심으로?”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아흔아홉 번 차인 뒤, 어제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백 번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남자 한 명이 나를 좋아하게 됐다.
“……이게 내 인생 첫 성공인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현우가 즉시 대답했다.
“응.”
“아니야.”
“맞아.”
“아니라고.”
“강시우.”
“왜.”
“첫 번째로 너한테 반한 사람이잖아.”
“…….”
“축하해.”
나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하.”
인생 첫 성공. 그것도 남자였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김현우는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띠링.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무심코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대상 001에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현우가 물었다.
“뭔데?”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뒤집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누군데?”
“아무도 아니야.”
“여자야?”
“아니.”
“그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옆집 남자.”
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나는 소파에 다시 쓰러졌다. 이 이야기는 당분간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근데.”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이 남자 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
현우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네가 알려줬나 보지.”
“절대 아니야.”
“그럼 누가 알려줬는데?”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혹시 네가 알려줬어?”
“내가 왜?”
“……그러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분명 처음 보는 번호였다. 그런데 옆집 남자였다. 이름도 몰랐던 남자가 지금 내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옆집 남자] 무사히 들어가셨어요?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다음 문자가 도착했다.
[옆집 남자] 아까 같이 있던 분은 친구분이세요?
“어?”
현우가 내 표정을 봤다.
“왜.”
“잠깐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남자.”
“응.”
“왜 네 얘기를 물어보지?”
“내가 잘생겼으니까?”
“아니, 씨발.”
“농담이야.”
띠링. 또 문자가 왔다.
[옆집 남자] 혹시 그분 집에서 주무시는 건 아니죠?
…….
나는 그대로 굳었다.
현우가 물었다.
“뭐라고 왔는데?”
나는 휴대폰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왜.”
“아무것도 아니야.”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여 줘.”
“싫어.”
“왜?”
“싫으니까.”
“아까는 문자까지 보여주면서 능력이라고 설명했잖아.”
“지금은 상황이 달라.”
“뭐가 달라?”
“…….”
현우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야!”
“잠깐만.”
“보지 마!”
“이미 봤는데?”
현우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천천히 나를 바라봤다.
“강시우.”
“왜.”
“얘.”
“응.”
“질투하는 것 같은데?”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현우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친구 집에서 재울 건 아니죠?”
나는 얼굴을 감쌌다.
“으아아아아아악!”
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웃지 마!”
“너 진짜 남자한테 질투받는 거냐?”
“나도 모르겠어!”
“와.” 현우가 감탄했다. “강시우.”
“왜.”
“너 연애 성공했다.”
“남자라고!”
“그래도 상대가 질투까지 하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말했다.
“첫째.”
“응.”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응.”
“둘째.”
“응.”
“저 남자는 원래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응.”
“셋째.”
“응.”
“지금 나를 좋아하는 건 능력 때문이다.”
“응.”
“넷째.” 나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하필 옆집이냐고!”
현우가 잠시 생각했다.
“그건 좀 불쌍하네.”
“그렇지?”
“응.”
“드디어 이해했어?”
“응.” 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회사 동료였으면 그냥 피해 다녔을 텐데.”
“…….”
“옆집은 매일 마주치잖아.”
“…….”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야 하고.”
“…….”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
“택배 받으러 나가다가도 마주칠 수 있고.”
“그만해.”
“주차장에서……”
“차 없어!”
“아.”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자주 마주치겠네.”
“왜!”
“차가 있으면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가는데.”
나는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
“……죽고 싶다.”
“고작 일주일인데.”
“일주일이 짧아?” 나는 벌떡 일어났다. “너 연애 일주일 해 봤어?”
“해봤지.”
“그럼 첫날부터 상대가 너를 좋아 죽으려고 하는데.”
“응.”
“네가 도망치면 따라오고.”
“응.”
“네 친구를 질투하고.”
“응.”
“근데 그 상대가 네 옆집에 살아.”
“…….”
현우가 잠시 생각했다.
“재밌겠다.”
“죽인다.”
띠링.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나는 현우와 동시에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자를 확인했다.
[옆집 남자] 혹시 제가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어?”
현우가 옆에서 말했다.
“생각보다 정상적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한 걸 수도 있었다. 남자가 갑자기 나를 좋아하게 됐다고 해서 무조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다음 문자가 도착했다.
[옆집 남자] 그런데 그분이랑 둘이 있는 게 계속 신경 쓰여서요.
“…….”
현우가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 맞네.”
“…….”
띠링.
[옆집 남자] 혹시 오늘은 제가 시우 씨랑 술 마시면 안 될까요?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도 나를 바라봤다.
“시우야.”
“왜.”
“나 집에 갈까?”
나는 현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안 돼.”
“왜?”
“가지 마.”
“얘가 나 질투한다며.”
“그러니까!”
“그럼 내가 있으면 더 안 좋은 거 아니야?”
“그래도 있어.”
“왜?”
나는 잠시 생각하다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혼자 있기 싫어.”
현우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알았다.”
나는 안도했다.
“진짜?”
“오늘만.”
“내일도.”
“야.”
“모레도.”
“강시우.”
“일주일만.”
“내가 왜?”
나는 조용히 말했다.
“치킨.”
현우의 표정이 변했다.
“매일?”
“…….” 나는 잠시 계산했다.
일주일 동안 치킨. 생각보다 비쌌다. 하지만 옆집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보다는 쌌다. 아마도.
“……그래.”
“진짜?”
“대신 메뉴는 내가 고른다.”
“미친놈아.”
“계약 성립?”
나는 한참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성립.”
현우가 내 손을 내밀었다.
“사인해.”
“왜?”
“계약서.”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현우가 웃었다.
“왜?”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 이제 계약 안 해.”
“꿈도 아니고.”
“더더욱 안 해!”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계약서라는 단어는, 적어도 내 인생에서, 다시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되는 단어라는 것을.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