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
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우] 어디쯤이야?
잠시 후 답장이 왔다.
[현우] 거의 다 왔어.
[시우] 몇 정거장?
[현우] 두 정거장.
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우] 빨리 와.
[현우] 왜?
[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
잠시 후.
[현우] 미친 놈.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
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현우야!”
현우가 걸음을 멈췄다.
“……왜?”
나는 그대로 현우에게 달려갔다.
“왔어?”
“……어.”
“진짜 왔네?”
“내가 온다고 했잖아.”
“다행이다.” 나는 현우의 어깨를 꽉 잡았다. 현우가 내 손을 내려다보고, 나를 바라봤다.
“너 오늘 왜 그래?”
“반가워서 그러지.”
“우리가 헤어진 지 하루도 안 됐는데?”
“그래도.”
“뭐가 그래도야.”
현우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재빨리 다시 붙었다.
“야.”
“왜.”
“오늘은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뭐?”
“아니.” 나는 얼른 말을 바꿨다. “우리 우정이 그렇잖아.”
“우리 우정이 뭐?”
“끈끈하다고.”
“너 술 또 마셨냐?”
“아니.”
“근데 왜 이래?”
“원래 이랬어.”
“아니거든?”
현우는 아주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었다. '미안한데 옆집 남자가 나를 좋아하게 돼서 오늘 하루 동안 경호 좀 해줘.'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나는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어딜?”
“집.”
“왜 잡고 가는데?”
“길 잃을까 봐.”
“우리 동네인데?”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
“여기서 30년 살았는데?”
“오늘부터 흉흉해졌어.”
“…….”
현우가 나를 바라봤다.
“강시우.”
“응?”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
“진짜?”
“응.”
“그럼 내 팔 놔.”
“그건 안 돼.”
“왜?”
“…….”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현우의 팔을 붙잡은 채 아파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파트 입구가 보이는 순간 내 걸음이 멈췄다.
“왜?” 현우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 그곳에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침에 나를 쫓아다녔던 바로 그 남자였다.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나는 즉시 현우 뒤로 숨었다.
“…….”
“…….”
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오늘 왜 그러냐 진짜?”
“쉿.”
“뭐?”
“가만히 있어 봐.”
“왜?”
“저쪽 보지 마.”
“어디?”
“보지 말라고.”
“뭔데?”
현우가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나는 현우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앞만 봐.”
“뭐 하는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놈이 왜 내 얼굴을 잡아!”
“목 스트레칭.”
“미친놈아!”
나는 다시 아파트 입구를 힐끗 바라봤다. 아직 그 남자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좋아.' 아직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대략 삼십 미터. 아파트 공동현관까지 십오 미터. 공동현관을 통과하면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를 타면 우리 집. 완벽했다. 문제는 그 남자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현우의 뒤에 바짝 붙었다.
“현우야.”
“왜.”
“조금만 빨리.”
“왜?”
“그냥.”
“또 그냥?”
“빨리.”
현우가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그렇게 우리는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걸었다. 현우는 걸었다. 나는 현우를 방패 삼아 이동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런데 문제는 내가 현우의 등 뒤에 완전히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현우가 멈추면 나도 멈췄다. 현우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나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현우가 고개를 돌리면 나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야.”
“왜.”
“너 지금 내 그림자냐?”
“아니.”
“그럼 왜 내 발을 밟아?”
“미안.”
“세 번째야.”
“조용히 해.”
“왜 조용히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크면 들릴 수도 있어.”
“누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시우 씨……?”
'헉.' 내 몸이 굳었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현우의 등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남자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
“…….”
나는 다시 현우 뒤로 숨었다. 현우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야.”
“응.”
“방금 네 이름 부른 거 같은데?”
“그런가?”
“너 아는 사람이야?”
“몰라.”
“근데 왜 숨어?”
“그냥.”
“또 그냥?”
“응.”
“오늘 네 ‘그냥’만 열 번 들었어.”
그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현우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현우야.”
“왜.”
“우리 그냥 돌아갈까?”
“왜?”
“갑자기 오늘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 것 같아서.”
“네가 언제 봤는데?”
“방금 생각났어.”
“생각났다고 바퀴벌레가 나와?”
“나올 수도 있지.”
“미친놈아.”
그때 그 남자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시우 씨.”
'아, 씨발.' 끝났다. 된통 걸렸다. 나는 천천히 현우의 뒤에서 나왔다. 마치 경찰서에서 자수하러 나온 범죄자처럼.
“……네?”
“맞네요.”
남자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저 미소는 아침보다 훨씬 밝아졌다. 왜. 왜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저기.” 나는 최대한 침착한 척 물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아.”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우편함에서 봤어요.”
…….
나는 그대로 굳었다. '아, 씨발.' 우리 아파트 우편함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 옆집이었다. 즉, 내 이름을 확인할 방법이 너무 많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웃고 있었다. 현우는 내 옆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
“몰랐어.”
“뭘?”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
“……?”
현우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나는 현우에게 작게 속삭였다.
“현우야.”
“왜.”
“우리 빨리 집에 가자.”
“왜?”
“설명은 나중에.”
“누군데?”
“남자.”
“그건 나도 보여.”
“아니.”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작게 말했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
현우의 표정이 멈췄다.
“……뭐?”
“쉿!”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저기, 시우 씨.”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안 괜찮습니다.” 대답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남자가 당황했다.
“아.”
“바쁩니다.”
“오늘은?”
“바쁩니다.”
“내일은요?”
“바쁩니다.”
“모레는요?”
“바쁩니다.”
남자가 잠시 생각했다.
“언제 안 바쁘세요?”
“일주일 후요.” 나는 대답하고, 그 순간 내가 말한 걸 깨달았다.
“…….”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일주일 후에 만나요.”
“아니.” 나는 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
“알겠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기다리지 마세요!” 나는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어?”
“빨리!”
“야, 신발!”
“신발 신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뛰어!”
“뛰어!”
그렇게 나는 현우를 끌고 아파트 안으로 도망쳤다.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시우 씨!”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왜 안 와!”
“엘리베이터가 네가 누른다고 빨리 오냐?”
“그럼 네가 눌러!”
“똑같아!”
띵. 문이 열렸다. 나는 현우를 밀어 넣고 곧바로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야!”
“조용히!”
“네가 더 시끄러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아…….”
살았다. 일단, 오늘은. 현우가 옆에 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현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시우.”
“응.”
“설명해.”
“…….”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꿈에서 남자를 꼬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는데.”
“응.”
“오늘 아침 옆집 남자한테 실수로 써버렸어.”
“응.”
“그래서 지금 나를 좋아해.”
“응.”
“일주일 동안.”
“응.”
나는 안도했다. 역시 현우는 내 절친이었다. 이해가 빠르다.
“고맙다.”
“뭐가?”
“믿어줘서.”
현우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안 믿어.”
“…….”
“술 끊어라.”
엘리베이터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안 믿고 싶어.”
그런데 문제는, 아직 유효기간이 6일 14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