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
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오늘도 오는 거지?”
“…….”
셋째 날.
“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넷째 날.
“치킨?”
“어제도 먹었는데.”
“피자?”
“그제 먹었는데.”
“한우?”
“……몇 시까지 갈까?”
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
띠링.
[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
현우가 옆에서 물었다.
“뭐래?”
“아무것도.”
“그 남자지?”
“아니.”
띠링.
[옆집 남자] 오늘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을까요?
“…….”
“그 남자네.”
“왜 자꾸 맞히냐.”
“표정이 존나 똑같아.” 매번 똑같은 표정으로 굳는 나를 현우는 이제 안면인식이 아니라 표정인식으로 잡아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답장을 보냈다.
[시우] 오늘은 좀 바빠요.
바로 답장이 왔다.
[옆집 남자] 친구분이랑요?
거의 형사 취조 수준의 반응 속도였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현우야.”
“왜.”
“너 내 친구 맞지?”
“응.”
“우리 오늘부터 남남 할까?”
“미친놈아.”
문제는 밤에도 계속됐다. 나는 집 안에서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문을 열면 옆집이었으니까. 복도에서 소리가 나면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치 우리 집 벽 하나 너머에 곰이 사는 것 같았다. 사람보다 무서운 곰.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즉시 현우를 찾았다.
“현우야.”
“왜.”
“방금 밖에서 소리 안 났어?”
“났겠지.”
“누구야?”
“내가 어떻게 알아.”
“확인해 봐.”
“네가 해.”
“난 못 해.”
“왜?”
“무서워.”
현우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강시우.”
“응.”
“너 원래 좀비 영화 보면 제일 먼저 죽는 스타일이지?”
“아니.”
“문 열어 보는 놈.”
“…….” 생각해 보니 정확한 프로파일링이었다.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주말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야, 우리 계속 집에만 있을 거야?”
“응.”
“미쳤냐?”
“밖이 위험해.”
“무슨 전쟁 났어?”
“비슷해.” 정확히는 전쟁이 아니라 옆집 국지전이었다.
“그 남자 하나 때문에?”
“하나가 무서운 거야.”
결국 현우는 나를 끌고 여행을 갔다. 나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옆집이 없다. 지구상에 옆집이 없는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현우야.”
“왜.”
“너 진짜 좋은 친구다.”
“갑자기?”
“우리 앞으로 매주 여행 갈까?”
“네 돈으로?”
“……그건 좀.” 우정에도 한도가 있었다.
여행 내내 나는 행복했다. 문자가 오기 전까지는.
띠링.
[옆집 남자] 어디 가셨어요?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현우야.”
“왜.”
“우리 여행 사진 올린 적 있냐?”
“없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지?”
“뭐래?”
나는 휴대폰을 보여줬다. 현우가 피식 웃었다.
“그냥 물어본 거잖아.”
“그런가?” 나는 반쯤 안심했다. 반쯤만.
띠링.
[옆집 남자] 집에 안 계신 것 같아서요.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현우야.”
“응.”
“우리 언제 돌아가?”
“내일.”
“오늘 돌아가면 안 돼?”
“왜?”
“아니.”
나는 다시 문자를 봤다.
[옆집 남자] 현관 앞에 갔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으아아아아아악!”
“왜 또!”
“얘가 우리 집 앞에 갔대!”
현우가 휴대폰을 뺏어 확인했다.
“…….”
“왜.”
“얘.”
“응.”
“조금 무섭다.”
“그렇지?”
“응.” 우리 둘의 의견이 일치한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현우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오늘도 같이 자.”
“야.”
“부탁할게.”
“너 여행 와서까지?”
“여기는 숙소잖아.”
“그럼 혼자 자.”
“아니, 내일 돌아가면 다시 옆집이잖아!”
“…….” 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한우 사.”
“또?”
“최고급.”
“알았어.” 그렇게 내 통장은 매일 조금씩, 아주 성실하게 죽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나는 아침부터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마치 수능 성적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몇 시야?”
“아홉 시.”
“진짜?”
“응.”
“정확해?”
“네가 직접 봐.”
시계는 오후 9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우야.”
“왜.”
“시간 빨리 안 가냐?”
“안 가.”
“왜?”
“시간은 원래 그렇게 가.”
“오늘은 좀 빨리 가면 안 되나?”
“시계한테 물어봐.”
나는 진지하게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빨리 가라.” 시간에게 협상을 시도하는 남자, 그게 나였다.
점심.
“몇 시야?”
“1시.”
“왜 아직 1시야?”
“아까 12시였으니까.”
“시간이 너무 느려.”
“너 회사에서는 시간 빨리 간다고 했잖아.”
“오늘은 유통기한이 끝나는 날이잖아!”
“무슨 우유냐?”
“능력이!” 정확히는 남자용 요구르트 정도의 유통기한이었다.
새벽 5시. 나는 거의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대상 001】
【남은 유효기간 : 2시간 14분】
“두 시간.”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 두 시간만 버티면 돼.”
“그래서 두 시간 동안 뭐 할 건데?”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왜?”
“사고 칠까 봐.”
나는 소파에 가만히 앉았다. 명상하는 스님처럼, 다만 마음속엔 평화 대신 공포가 가득했다.
“화장실은?”
“참아.”
“물은?”
“안 마셔.”
“배달 음식은?”
“안 시켜.”
“왜?”
“밖에 나가기 싫어.”
“누가 밖에 나가래.”
“문 여는 것도 싫어.”
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대단하다.”
“이번에는 절대 사고 안 친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뭐야!”
“문자!”
“그 남자?”
떨리는 손으로 확인했다.
[옆집 남자]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 나는 휴대폰을 던질 뻔했다.
“뭐래?”
“오늘 저녁에 보재.”
“보지 마.”
“당연하지!”
[시우] 죄송한데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잠시 후.
[옆집 남자] 내일은요?
나는 손을 멈췄다. 내일. 내일이면 끝난다. 능력이 끝난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갈까?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르는 느낌이었다.
[시우] 내일은 괜찮을 것 같아요.
현우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너 미쳤냐?”
“내일이면 끝나잖아.”
“그래도 만나겠다고?”
“확인해야지.”
“뭘?”
“진짜 능력이 풀리는지.”
현우가 잠시 생각했다.
“……그건 좀 궁금하네.” 우리 둘 다 이 상황을 하나의 실험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나는 숨을 멈췄다. 천천히 화면을 확인했다.
【대상 001 유효기간 종료】
“…….”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다시 확인했다.
【대상 001 유효기간 종료】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끝났다.”
“끝났어?”
“응.”
“진짜?”
“응.”
“그럼 이제 집에 가도 돼?”
“…….” 나는 현우를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일주일 동안 이 인간이 내 집에서 살았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치킨은 네 번, 피자는 두 번, 한우는 세 번. 여행까지 다녀왔다. 사실상 현우는 나한테서 독립할 필요가 없는 수준의 생활을 누렸다.
“현우야.”
“왜?”
“이제 집에 가.”
현우가 웃었다.
“그래.”
나는 현관까지 배웅했다. 현우가 문을 열며 말했다.
“축하한다.”
“응.”
“이제 자유네.”
“그래.”
문이 닫혔다. 나는 혼자가 됐다. 조용했다. 평화로웠다. 태어나서 이렇게 조용한 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그 순간 복도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나는 그대로 굳었다. 천천히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능력은 끝났다. 이제 그 남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옆집 주민이다. 그러니까 무서울 게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마주쳤다.
“…….”
“…….”
옆집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의 표정은 완전히 무표정했다. 마치 어제까지의 열정이 클라우드 저장 없이 통째로 날아간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끝이었다. 정말 그게 끝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철컥. 문이 닫혔다.
나는 한참 동안 복도에 서서 실감했다.
“……끝났네.” 나는 천천히 웃었다. “진짜 끝났어.”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아무 생각 없이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대상 002를 지정하시겠습니까?】
“…….”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실 창문 밖, 세상에는 남자가 너무 많았다. 지구 인구의 절반이 갑자기 잠재적 리스크로 보이기 시작했다.
“…….”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 능력은 끝난 게 아니었다. 첫 번째 남자의 유효기간만 끝났을 뿐이었다.
【대상 002를 지정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휴대폰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절대 안 속는다. 애초에 내가 지정만 안 하면 된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현우를 일주일 동안 집에 재웠다. 치킨을 네 번 샀다. 한우도 샀다. 여행까지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한테 쫓겼다. 이건 웬만한 재난영화 시나리오였다.
“다시는 안 해.” 휴대폰을 소파 위에 던졌다.
그러자 띠링. 나는 그대로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새로운 대상 지정 시간 : 48시간】
【지정하지 않을 경우 : 영원히 연애 불가】
“…….” 나는 눈을 깜빡였다. 다시 읽었다.
【영원히 연애 불가】
“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휴대폰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 다시 읽었다. 영원히. 연애. 불가. 세 단어가 마치 사형선고문처럼 또박또박 박혔다.
나는 천천히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 말이 안 됐다. 이건 협박이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인 협박.
“야.” 나는 휴대폰을 향해 말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야, 이 미친 시스템아.”
여전히 조용했다.
“선택권을 주는 척하지 마.” 나는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어디가 선택이야?”
생각해 보자. 48시간 안에 남자를 한 명 지정한다. 그러면 또 일주일 동안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 문자 온다. 질투한다. 집 앞에 나타난다. 나는 또 현우를 부른다. 현우는 또 치킨을 요구한다. 그러다 한우를 요구한다. 이번엔 아마 해외여행을 요구할 것이다. 다음엔 뭘 요구할까. 내 장기라도 요구할 기세였다.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그럼 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영원히 연애 불가.
“…….” 나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여자에게 백 번 차였다. 여기서 영원히 연애를 못 한다고? 냉정하게 따지면 이미 진행 중인 상태를 확정하는 것뿐이었다.
“잠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아니지.”
지금까지는 차인 거였다. 앞으로는 시도조차 못 한다. 고백하려고 입을 열면 시스템이 막는 건가? 소개팅을 하면 상대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건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면 【이용 불가】 이런 메시지가 뜨는 건가?
나는 몸을 떨었다.
“그건 좀 너무한데.”
하지만 남자를 또 꼬시는 것도 싫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애를 포기할까?”
그러자 머릿속에 아름다운 여자와 손을 잡고 걷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싫어.”
다음 장면. 남자와 손을 잡고 걷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건 더 싫어!”
나는 머리를 감쌌다.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거지? 인생 최초로 양자택일 문제가 둘 다 오답인 상황을 마주했다.
그때 띠링. 또 문자가 왔다.
【남은 시간 : 47시간 59분 59초】
“시작했어?” 나는 비명을 질렀다. “벌써 시작했다고?!”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방 안을 빙빙 돌았다.
“침착하자.”
아직 48시간이나 남았다. 무려 이틀이다. 이틀 동안 생각하면 된다. 좋은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분명히.
그런데 잠시 후 또 생각했다. '……좋은 방법이 있나?' 없었다.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바라봤다. 48시간. 남자 한 명. 일주일. 아니면 평생 연애 불가. 삼지선다인데 셋 다 지뢰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휴대폰을 뒤집었다.
“……안 해.”
그래, 일단은 지정하지 않는다. 48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혹시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었다. 혹은 꿈에서 그 이상한 남자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었다.
“다시 만나면 계약서부터 찢어버린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일단 자자.”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머릿속에 숫자가 떠올랐다.
47:58:12
“아, 진짜!”
나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새로운 대상 지정까지 남은 시간 : 47시간 58분 11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강시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마.”
그렇게 나는 또다시 시작된 48시간의 선택 앞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지금은.
띠링. 마지막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내】
【대상 지정은 철회할 수 없습니다.】
【신중한 선택을 권장합니다.】
【남은 시간 : 47시간 57분 03초】
“…….” 나는 휴대폰을 바라보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그냥 여자한테 능력을 쓰게 해주면 안 되냐?”
잠시 후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불가능합니다.】
“대답은 왜 해?” 협상 테이블에는 앉아주면서 요구는 하나도 안 들어주는 최악의 갑을관계였다.
나는 그날 밤, 시스템과 처음으로 말싸움을 시작했다. 지는 게 뻔한 싸움이었지만.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