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가마가 궁 담을 끼고 도는 동안 한경은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 놓고 있었다.담이 길었다. 붉은 벽이 창틈으로 끊기지 않고 흘러가는데 그 위로 얹힌 기와가 햇빛을 되쏘아서, 보고 있으면 눈 안쪽이 뻐근해졌다.소하는 중문에서 돌려 보내졌는데, 태후 처소에 드는 데 딸린 사람을 붙이지 못한다는 말을 앞선 상궁이 두 번 되풀이했고, 되풀이하는 목소리가 처음보다 부드러웠다.가마가 멎기 전에 손끝이 먼저 차가워졌다.'…또 이러네.'한경은 그 손을 소매 안에 밀어 넣고, 밀어 넣은 채로 발을 디뎠다.* * *태후는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역광이라 낯이 어두웠고 어깨선만 밝았다.지난 세 번이 다 그랬다.손만 보였고, 손이 무엇을 하는지만 보였고, 그것으로 충분했으므로 한경은 그 얼굴을 한 번도 오래 본 적이 없었다."가까이 오너라."한경이 무릎으로 두 걸음 가자 치맛자락이 자리 위에서 소리 없이 끌렸다."더."두 걸음 더 가자 거기서 얼굴이 역광에서 벗어났다.눈꼬리에서 관자놀이로 올라가는 선.웃지 않는데도 반 푼 올라가 있는 왼쪽 입꼬리.말할 때 아랫입술이 먼저 열리고 윗입술이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한경은 숨을 한 번 쉬고 나서도 그대로 있었다.태후가 손을 뻗어 그 뺨을 감쌌다.금으로 씌운 손톱 덮개가 광대뼈 아래에 닿았는데 살보다 먼저 그것이 닿아서 차가웠고, 차가운 것이 뺨을 따라 턱까지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왔다."…어여쁘구나.""…황공하옵니다.""고개를 들어라. 아니, 그대로 두어라. 그편이 낫다."턱을 받친 손이 얼굴을 조금 옆으로 돌렸다.볕을 받는 쪽으로.'…아, 이거.'이렇게 돌려 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손톱 덮개가 아니라 반지였고, 볕이 아니라 현관 등이었고, 돌려 놓고 하던 말은 어디 좀 보자였다.* * *"네가 내 아들의 약을 끊게 하였다더구나.""…끊게 한 게 아니라, 그거 독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독이라.""예.""어떤 독이더냐."한경이 고개를 들었고,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
문이 열리고 황제가 들어섰다.스무 개의 허리가 한꺼번에 굽었고, 굽은 등 위로 걸음 소리가 지나갔다. 여섯 걸음이었다.문에서 서안까지를 여섯 걸음에 오는 사람은 그 편전에 하나뿐이었다.앉을 때 안석을 쓰지 않았다.열여섯 해 동안 쓴 적이 없었다.편전의 아침 조회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시작되었다.승지가 문서를 올리고, 황제가 붉은 벼루에 붓을 적시고, 신하들은 제자리에서 숨을 낮추었다.열여섯 해 동안 하루도 어긋난 적 없는 순서였다.붓대가 미끄러진 것은 세 번째 문서에서였다.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한 번 돌더니 서안 위로 떨어졌고, 붉은 먹이 문서 한가운데에 손톱만 하게 번졌다.소리는 크지 않았다.다만 그 소리가 난 뒤로 편전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 컸다.승지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종이를 갈려 했다."두어라."황제가 붓을 도로 집었다.집는 데 두 번이 걸렸고, 두 번째에 잡힌 붓대가 평소보다 아래쪽이었다.그대로 문서에 한 자를 쓰는데 획 끝이 흔들려 두 획이 겹쳤으며, 겹친 자리 위에 옥새가 얹혔다.옥새를 드는 손이 내려올 때 소매가 한 번 접혔다.접힌 자리가 도로 펴지는 데 걸린 시간이 평소의 그것과 달랐는데, 그 차이를 잴 수 있는 자는 편전 안에 스무 명이 넘었다.신하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든 것을 옆의 신하가 봤고, 옆의 신하가 고개를 든 것을 뒤에서 또 누가 봤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조회는 끝까지 갔다.얼룩진 문서는 승지가 걷어 갔다.갈지 않고 그대로 걷어 간 것을 문 밖에서 기다리던 서리가 받았으며, 서리는 그것을 편철하면서 얼룩 위에 손가락을 한 번 얹어 보았다. 마르지 않았다.그날 저녁 성 안에 도는 말이 폐하께서 손을 떠셨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폐하께서 붓을 놓으셨다.* * *육정이 돌아온 것은 해가 다 진 뒤였다.관복 그대로 마루에 앉아 신을 벗지 않았고, 벗겨 드리겠다고 나온 소하를 손짓 한 번으로 물렸다.관가의 먼지가 어깨에 얹혀 있어서 등불 아래서 옷이 실제
벽돌 구멍 안쪽, 흙 아래에서 손끝에 걸린 것은 천이었다.남색 조각이 흙을 털며 딸려 나왔다.손바닥만 했고, 은실이 물결처럼 지나간 자리가 아직 살아 있어서 만지면 미끄러지다 한 번씩 걸렸다.여덟 해를 흙 속에 묻혀 있었을 물건인데 새 비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비단 파는 여자가 달빛 아래 마당에 펼쳐 놓았던 그것과 같은 실이었다.한경은 그 천을 소매 안에서 몇 번 더 문질러 보다가, 담에 등을 붙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새벽에 마신 꿀물이 아직 뱃속 어디쯤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고 그 위로 담의 찬 기운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여덟 해 전에 담 아래 앉아 온종일 마당을 보던 아이가 죽고, 그 자리에 온 어른의 물건이 이 흙 속에 있었다.'…그 여자가 여기 있었네.'무릎을 세워 팔을 얹고 그 위에 이마를 묻었더니 흙냄새가 났다.열한 살짜리도 온종일 이 냄새를 맡았을 터였다.* * *소하가 마당을 건너오다 멈춰 서서 부인을 불렀는데, 한경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부인. 어디 아프세요?""아니.""근데 왜 거기 그러고 계세요.""생각 좀 하려고."소하가 옆에 쪼그려 앉았다가, 앉은 김에 저도 담에 등을 댔다.담이 차가운 것을 그제야 알았는지 어깨를 한 번 움츠렸다."소인도 여기 앉아도 돼요?""응."담 위로 참새가 셋 앉았다가 그중 둘이 날아갔고, 남은 하나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마저 날아갔다.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부인. 궁 못 가시니까 심심하세요?""심심하진 않은데.거기 안 가도 되니까 좀 낫기도 해."소하가 부인을 봤다.부인이 궁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부인 궁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요.""안 좋아해.""왜요?"한경은 대답 대신 무릎에 턱을 얹고 담 위를 보다가, 한참 뒤에 다른 것을 물었다."소하야. 태후마마 뵌 적 있어?""소인이요? 어떻게 뵈어요.근데 소문은 들었어요.태후마마께서 열여섯에 궁에 드셨는데 그때 벌써 키가 크셔서 선황제께서 한 번 보시고 그날로 정하셨대요
새벽에 눈이 떠지자마자 손부터 폈다.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데 열 손가락을 쫙 벌렸다가 하나씩 접었다.이 몸으로 깬 첫날부터 넉 달째 하는 짓이었는데, 왜 하는지는 스스로도 잘 몰랐다.안 떨렸다.'…멀쩡하네.'이불을 걷으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육정은 사흘째 관가에서 자고 있었고, 빈자리가 식은 지 오래라 손을 대 보아도 아무 온기가 없었다.창호지가 아직 어두운 것이 잘 시각도 일어날 시각도 아닌 어중간한 때였다.한경은 그 어중간한 때에 부엌으로 갔다.* * *불씨를 살려 물을 데우는 동안 시렁 위의 꿀단지를 올려다봤다.발돋움을 해도 손끝이 단지 배에나 겨우 닿아서, 결국 소반을 끌어다 딛고 올라서서야 내릴 수 있었다.'…이 몸은 왜 이렇게 작아.'꿀을 두 술 떠서 뜨거운 물에 풀고, 저으면서 잔 가장자리에 묻은 것을 손끝으로 훑어 입에 넣었다.후후 불어 한 모금 마셨는데도 뜨거웠다."…아 뜨거."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는데, 웃는 소리가 빈 부엌 안에서 크게 들렸다.전생에 밤일이 길어지면 이렇게 마셨다.그때는 꿀이 아니라 봉지에 든 단 가루였고 종이컵에 타서 계단에 앉아 마셨는데, 계단이 늘 차가워서 한쪽 발을 다른 발 위에 올리고 앉는 버릇이 있었다.여기서는 아궁이 앞이 따뜻해서 발을 포갤 필요가 없었다.'…이건 여기가 낫네.'두 번째 모금은 안 뜨거웠다.* * *부엌에 불이 있는 것을 보고 나온 소하가 아궁이 앞에 앉은 부인을 보고 놀랐다."부인! 이 시각에 여기서 뭐 하세요.""꿀물.""꿀물이요?""응. 너도 마실래?두 술 더 넣으면 돼.""소인이 어떻게."한경이 대답 대신 잔을 하나 더 꺼내 놓자, 소하가 잠깐 망설이다 옆에 앉아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둘이 아궁이 앞에서 나란히 후후 불며 마시는 동안 불씨가 두어 번 튀었다."부인. 어제 강 심약 나리랑 하신 얘기요.""응.""그 사람, 진짜 죽어요?"한경이 잔을 무릎에 내려놓았는데, 내려놓고 나서 한참을 들지 않았다."…모르지. 근데 소
강목이 육가에 돌아온 것은 자시였는데, 들어오자마자 서하당 문을 두드렸다.이 집에 든 뒤로 처음이었다.한경이 문을 열었는데, 자다 깬 얼굴이었고 머리를 하나로 대충 묶은 채였다."강 나리? 이 시각에.""부인. 지금 아뢸 것이 있습니다."강목이 들어와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말했다.주묵과 인주와 붓끝과 네 해를.한경이 그 말을 다 들은 다음 문지방에 슬며시 앉아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나 지금 좀 앉을게요.""부인. 앉아 계십니다.""그러네요."* * *소하가 등을 들고 나왔는데, 등불이 흔들리는 바람에 마루 기둥의 그림자가 한 번 길어졌다가 이내 줄었다."부인, 무슨 일—""소하야. 잘 왔어.너 이리 앉아 봐."소하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 앞에 앉았고, 앉으면서 들고 온 등을 제 무릎 옆에 가만히 내려놓았다.한경이 손바닥을 펴서 소하 앞으로 내밀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이었다."자, 봐. 여기 붉은 가루가 있어. 이게 독이야. 먹으면 죽어.근데 한 번에 안 죽고, 몇 해 걸려서 손 떨리고 잠 못 자고 그러다 죽어.""예.""그 붉은 가루를 약이라고 속여서 먹였어.그건 우리가 알았고, 그래서 끊게 했어.여기까지 알겠어?""예.""그런데 그 사람이 안 나아."소하가 눈을 크게 떴는데, 뜨고 나서 등을 짚고 있던 손이 저도 모르게 슬며시 오므라들었다."왜냐면 그 붉은 가루가 약에만 있는 게 아니었거든.먹으로도 만들고 도장밥으로도 만들어. 같은 가루야.갈아서 아교에 개면 먹, 기름에 개면 도장밥.""그럼.""그 사람 하루에 문서를 서른 장씩 봐.붉은 먹으로 쓰고, 붉은 도장밥으로 찍고, 붓끝 갈라지면 입에 대서 모으고.그걸 네 해 했어."소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이 등불 아래서도 보였다."그럼 그 사람은.""응."한경이 손을 접었고, 접은 주먹을 무릎 위에 놓고 거기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그러니까 그 사람, 일을 하면 할수록 죽는 거예요."강목이 그 자리에 그대
황제가 편전에서 붓을 들었다.어필(御筆)은 붉은 먹으로 쓰는 것이라 신하의 먹은 검고 임금의 먹은 붉다.올라온 문서에 가부를 적을 때, 사람을 올리고 내릴 때, 죄를 정할 때 다 그 붉은 붓이다.벼루가 둘 놓여 있었다.검은 것과 붉은 것.황제가 붉은 벼루에 붓을 적셔 한 자를 쓰자 획 끝이 갈라졌고, 갈라진 붓끝을 입술에 슬며시 대고 한 번 다듬었다.오래된 버릇이었다.열한 살에 보위에 앉아 붓을 처음 잡을 적에 늙은 사부가, 붓끝이 갈라지거든 침으로 모으라고 그리 가르쳤다.그날도 문서가 서른 장이 넘었고, 붓끝을 여러 번 다듬었다.* * *강목이 그 버릇을 본 것은 사흘 뒤였는데, 어공 문책 문서를 올리러 편전 밖에서 대기하던 참에 문이 열리고 승지가 나오는 사이 안쪽이 반쯤 보였다.황제가 붓을 입에 대고 있었다.강목이 그 자리에 섰고, 승지가 무어라 말을 걸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문이 닫혔다.강목이 회랑을 걸어 나오면서 소매 안에서 종이를 꺼냈는데, 한경이 준 처방 목록이었고 거기 넉 줄이 적혀 있었다.향, 그릇, 사람, 식혀서.넉 줄을 다 지켰는데 나빠졌다.강목이 걸음을 멈추자 회랑 끝에서 바람이 들어와 종이가 손안에서 떨렸다.넉 줄에 없는 것이 있었다.* * *태의원으로 가지 않고 내섬시로 갔다.붉은 먹을 대는 데가 어디냐고 묻자 서리가, 어필에 쓰는 주묵(朱墨)은 내섬시에서 만들어 올린다고 대답했다.무엇으로 만드느냐고 묻자 서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주사(朱砂)를 곱게 갈아 아교에 개어 굳힙니다."강목이 선 자리에서 발을 옮기지 못했고, 다음 물음이 저절로 나왔다."인주(印朱)는.""그것도 주사이지요.기름에 개어 쓰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옥새는 하루에 몇 번이나 찍습니까."서리가 웃었는데, 웃어도 되는 자리라고 여긴 사람의 웃음이었다."심약 나리. 그건 세는 것이 아닙니다.문서가 오는 대로 찍으시니까요."강목이 물러 나와 회랑 기둥을 짚었는데, 짚은 손이 한참 떨어지지 않았다.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