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날이 밝자 장터 담벼락 세 곳에 같은 종이가 붙었다.[ 오늘 밤 들어간 사내의 이름은 돌쇠. ]글 아래에는 작은 짚신 자국까지 찍혀 있었다.복례가 종이를 떼어 와 별당 마루에 펼쳤다.“돌쇠가 몰래 들었다고들 합니다.”해원은 종이를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몰래 든 게 아니라 내가 문을 열었다고 해.”“그 말을 퍼뜨리면 소문이 더 커집니다.”“거짓말보다 내 선택이 먼저 퍼지는 게 나아.”복례가 장터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생원이 대문 밖에 섰다.그의 손에는 묵직한 비단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장터의 험담을 잠재울 방도가 있습니다.”해원은 주머니를 받지 않았다.“글이 마르기도 전에 오셨네요.”“소문이라는 것이 원래 발이 빠르지요.”“아니면 나리 귀가 내 담장 가까이에 있거나.”이생원의 부채 끝이 멈췄다.“저를 의심하십니까?”“아직은 돈의 조건부터 의심하고 있어요.”이생원은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를 줄였다.“사람 없는 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해원은 가장 사람이 많은 주막으로 향했다.장옷도 쓰지 않았다.그녀가 가장 밝은 상에 앉자 만복은 빈 잔 둘을 내려놓았다.이생원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맞은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이제 말하세요.”그가 비단 주머니를 상 위에 올렸다.“이 돈을 풀면 돌쇠와 허담의 이름을 소문에서 지울 수 있습니다.”“대신?”“열녀문 심사가 끝날 때까지만 밤길을 삼가십시오.”“밤길만요?”“만날 사람이 있다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만나셔야 합니다.”“누구를?”“상민이나 의원은 피하는 편이 좋겠지요.”해원은 주머니를 그의 무릎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은전 하나가 굴러 발치에 멎었다.“내 소문을 없애려는 게 아니네요.”주막 안의 말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다른 사내 이름은 지우고, 나리 이름만 아무도 모르게 남기고 싶은 거죠.”“터무니없는 말씀입니다.”“그럼 돌아가세요.”이생원은 일어나지 못했다.해원이 발끝으로 은전을 그에게 밀었다.“돈도 주워 가
순라패의 딱따기 소리가 골목 끝에서 울렸다.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해원 앞에 짝 잃은 짚신을 던진 채 담장 쪽으로 물러났다.해원은 손에 감춘 옥비녀 끝을 그의 목에서 떼지 않았다.“내가 문을 열게 하려고 짚신을 남겼어요?”“나올 줄 알았으니까.”사내가 담장 밑에 숨겨 둔 널빤지를 발로 걷어찼다.판자 끝이 담 위에 걸리자 그는 헝겊으로 감은 오른발을 끌어 몸을 올렸다.돌쇠가 대문 안에서 한 걸음 나섰다.“그 자리에 있어.”해원의 말이 떨어지자 돌쇠의 발이 멎었다.허담도 복례 앞을 지킨 채 손을 뻗지 않았다.사내가 담 위에서 두 남자를 내려다봤다.“잘도 멈추는군.”“내 말을 존중하기로 한 사람들이니까.”“그럼 오늘 누가 안으로 들어갈지도 네가 정하겠네.”“당신에게 알려 줄 이름은 없어요.”사내가 담 너머로 사라졌다.그 직후 짧은 휘파람이 들렸고, 더 먼 곳에서 같은 소리가 한 번 되돌아왔다.혼자가 아니었다.널빤지가 담 너머로 끌려가며 돌을 긁었다.순라꾼 둘이 골목 어귀로 들어선 것은 그다음이었다.한 사람이 해원과 열린 대문 안의 두 남자를 번갈아 보며 비웃었다.“장터에서 떠드는 색귀가 이 댁 과부였군.”돌쇠의 손이 접혔으나 해원이 돌아보자 곧 펴졌다.허담도 복례 곁을 벗어나지 않았다.해원은 장옷 자락을 걷어 얼굴을 드러냈다.“똑똑히 보고 가세요.”순라꾼의 웃음이 멎었다.“내 길을 막은 건 저 두 사람이 아니라 방금 담을 넘은 자예요.”“사내가 어디 있느냐?”해원은 흙바닥에 끌린 오른발 자국과 담 위의 긁힌 흔적을 가리켰다.“과부를 구경하다 침입자를 놓쳤다는 소문까지 듣고 싶지 않으면 쫓아가세요.”순라꾼들은 서로를 보다가 담장 끝으로 달려갔다.해원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돌쇠가 물었다.“쫓아가도 됩니까?”“안 돼.”돌쇠의 턱이 굳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허담은 해원의 소매에 묻은 흙을 보고 손을 들었다가 멈췄다.“살펴봐도 되겠습니까?”해원이 손목을 내밀었다.허담은 손바닥과 팔목에
복례는 뒤엉킨 발자국 위로 등잔을 더 낮췄다.넓은 짚신 자국 위에 긴 앞코가 겹쳤고,두 걸음 뒤에는 반대로 긴 자국 위를 넓은 뒤꿈치가 눌렀다.“한 분이 먼저 왔다가 돌아간 흔적은 아닙니다.”해원은 문턱 왼쪽의 나무 조각과 오른쪽의 약향 밴 종이끈을 집었다.나무 조각에는 돌쇠가 칼끝으로 새긴 매듭무늬가 있었고,종이끈에는 허담의 약갑에서만 나는 씁쓸한 향이 배어 있었다.“같이 서 있었네.”“서로 문 앞을 내주지 않은 모양입니다.”해원은 두 흔적을 마루 한가운데 내려놓았다.“둘 다 불러.”돌쇠와 허담은 오래지 않아 마당 양쪽에서 나타났다.두 사람은 상대가 불린 것을 보고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해원은 문턱 안에 선 채 물었다.“누가 먼저 왔어요?”“접니다.”돌쇠가 먼저 답했다.허담도 곧장 입을 열었다.“문 앞에 먼저 선 사람은 접니다.”해원은 나무 조각을 돌쇠 쪽으로 밀었다.“이걸 놓을 때 허담이 있었어?”“없었습니다.”허담은 종이끈을 집어 들었다.“제가 왔을 때 저자는 담장 가까이 물러나 있었습니다.”“나리가 오니 비켜 준 겁니다.”“문 앞을 내준 사람이 먼저 왔다고 할 수 있나?”돌쇠의 어깨가 굳었다.“나리는 제 뒤꿈치를 밟고서야 문 앞으로 갔습니다.”해원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섰다.“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얌전한 척하지 마.”두 남자의 입이 동시에 다물렸다.“너희는 문턱을 넘지 않고도 내 밤에 제 자리를 남겼어.”돌쇠의 손이 천천히 펴졌다.“제가 왔다는 걸 아셨으면 했습니다.”“내가 부르지 않은 밤에도?”그의 손이 다시 내려갔다.허담이 종이끈을 곧게 펴며 말했다.“위험한 자가 마님의 움직임을 사고 있습니다. 아무도 살피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그래서 나보다 먼저 내 문 앞의 자리를 정했어요?”허담은 답하지 못했다.해원은 나무 조각과 종이끈을 각자의 발 앞에 놓았다.“먼저 왔다는 말은 서로 가지려 하면서, 오지 말라는 내 말은 둘 다 버렸네요.”돌쇠가 숨을 내쉬었다.“문턱은 넘
해원은 협박장을 작은 짚신 위에 올려 두었다.먹이 마른 뒤에도 마지막 문장은 눈에 박혀 있었다.[ 다음에는 그 과부가 혼자 걷는 길을 알려 달라. ]복례가 창을 닫으며 말했다.“오늘은 나가지 마십시오.”“그러면 저자가 원하는 길만 더 오래 들여다보겠지.”해원은 짚신의 끊어진 옆끈을 손끝으로 당겼다.“내놓을 건 내가 아니야. 저자가 사고 싶어 하는 길을 가짜로 하나 만들어 주는 거지.”그날 낮 복례는 채소전과 비단전, 우물가에 같은 말을 흘렸다.해원이 밤에 주막을 나와 동쪽 우물길로 혼자 돌아간다는 말이었다.해가 지자 해원은 정반대인 서쪽 골목을 돌아 주막 뒷문에 닿았다.만복이 안에서 문을 열었다.그의 손바닥에는 엽전 네 닢이 놓여 있었다.“어제 말씀대로 길값 두 닢의 두 배를 불렀습니다.”“그래도 냈어요?”“예. 네 닢을 내면서 답은 뒷방에서 듣겠다고 했습니다.”“직접 왔고요?”“주막 아이에게 돈만 쥐여 보냈습니다. 얼굴은 가렸고 말도 하지 않았다더군요.”해원은 뒷방 안쪽에 앉았다.“문은 열어 둬요.”“밖에서 다 들을 수 있습니다.”“누가 듣는지 알아야 잡을 수 있죠.”만복은 등잔 심지를 줄이고 맞은편에 빈 잔을 놓았다.열린 문 너머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이 얇게 흘러들었다.해원은 상 위에 놓인 네 닢 가운데 하나를 집어 만복의 손등에 올렸다.“돈을 냈다고 내 길을 산 건 아니에요.”“산 것은 거짓 길이지요.”“그 말을 잊지 마요.”만복이 손을 거두려 하자 해원이 그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나를 값으로 세우는 순간 거래는 끝나요.”만복은 붙잡힌 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제가 값을 잘못 붙였습니다.”“어떻게 고칠 건데요?”“미끼는 마님이 아니라 동쪽 우물길입니다.”해원은 그제야 소매를 놓았다.“가까이 앉아요.”“어디까지입니까?”해원이 엽전 하나를 상 위로 굴렸다.동전은 둥글게 돌다가 해원의 손목 앞에서 쓰러졌다.만복은 그 거리만큼만 몸을 옮겼다.그가 술을 따르다 해원의 소매 끝에 한
해원은 해가 기울기 전부터 장옷을 꺼내 두었다.복례가 옷고름을 매어 주며 물었다.“오늘도 주막에 가십니까?”“사람을 고르러 가는 건 아니야.”해원은 거울 속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내 이름을 판 값부터 받아야지.”작업장에서는 망치 소리가 이어졌고 의원방에서는 약 찧는 소리가 들렸다.돌쇠도 허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해원은 누구도 부르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주막의 가장 밝은 상에는 두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해원이 쓰던 잔과 맞은편의 빈 잔이었다.전날 잔 밑에 있던 푸른 실 묶인 엽전은 보이지 않았다.“돈은 어디 갔어요?”만복이 술병을 내려놓았다.“말을 살 돈은 오래 드러내 두지 않습니다.”“돈을 낸 자는요?”“아직 오지 않았습니다.”해원은 맞은편을 가리켰다.“앉아요.”만복은 곧장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오늘도 마님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제 자리입니까?”“오늘은 자리를 사러 온 게 아니에요.”해원은 엽전 세 닢을 상 위에 놓았다.“나리가 감춘 말을 사러 왔어요.”만복의 시선이 엽전에 머물렀다.“한 가지 말에 한 닢입니다.”“좋아요.”“무엇부터 들으시겠습니까?”“푸른 실을 묶은 자가 무엇을 샀는지.”만복이 첫 번째 엽전을 집었다.“마님 맞은편에 누가 앉는지.”두 번째 엽전도 손안으로 들어갔다.“그 사내가 마님 잔이나 소매에 손을 대는지.”그의 손이 마지막 엽전 앞에서 멈췄다.“하나가 더 있습니다.”“무엇인데요?”“세 번째 값을 주셔야지요.”해원은 마지막 엽전을 손바닥으로 덮었다.“내 밤을 세 조각으로 잘라 샀군요.”“마님의 밤이 아니라 주막 안에서 누구나 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그 말을 넘겼어요?”“아직은 아무것도 팔지 않았습니다.”“돈은 받았으면서?”만복은 빈 잔을 해원 쪽으로 돌렸다.“저자는 마님이 누구와 앉고, 어디에 손을 허락하고,누구와 돌아가는지 살펴 기억해 두라 했습니다.”“입을 다물라는 값도 냈어요?”“그 값은 내지 않았습니다.”해원의 손이 마지막 엽
다음 날 아침, 주막의 어린 심부름꾼이 별당 대문 앞에 술잔 하나를 놓고 갔다.복례가 잔 밑에 접힌 종이를 펼쳤다.먹물로 찍은 둥근 자국 하나뿐이었다.“아무 말도 없습니까?”해원은 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어젯밤 제 입술이 닿았던 잔이었다.“맞은편 잔은 그대로 두고, 내 잔만 보냈네.”작업장에서 나온 돌쇠가 잔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주막에서 온 겁니까?”“돌려주고 와.”돌쇠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제가 가져가야 합니까?”“싫어?”“그자가 마님께 보낸 것을 들고 가기 싫습니다.”해원은 잔을 그의 손바닥에 올렸다.“내가 받은 걸 돌려주는 거야.”돌쇠의 손가락이 잔을 감쌌다.“오늘 밤에도 가십니까?”“가면?”“비워 둔 자리에 제가 앉고 싶습니다.”“오늘은 안 돼.”돌쇠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지만 잔을 내려놓지는 않았다.“만복을 고르신 겁니까?”“아직은 사람보다 자리를 보는 중이야.”“무슨 차이입니까?”“사람을 먼저 고르면 그 사람이 내 자리를 제 것이라 착각하잖아.”해원은 대문 쪽을 가리켰다.“잔을 돌려주고, 오늘 밤에는 주막 문밖에서 기다려.”“들어가지는 말라는 뜻입니까?”“내가 부르기 전에는.”돌쇠는 잔을 품에 넣고 대문을 나섰다.해가 지자 해원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복례가 뒤따르며 몇 번이나 골목을 돌아봤지만, 해원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주막은 전날보다 붐볐다.해원이 문턱을 넘자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가장 밝은 상에는 어젯밤의 빈 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돌쇠가 돌려준 잔은 해원이 앉았던 자리에 놓여 있었다.만복은 다른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가도 서둘러 오지 않았다.해원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약속을 지켰네요.”“세 사람이 저 자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얼마를 냈대요?”“가장 많이 부른 자보다 먼저 값을 정한 분이 계셨지요.”“내가 정한 값이 뭐죠?”“다시 오시는 것.”만복은 맞은편 잔을 비운 채 두었다.해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