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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돌아온 앙투안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7 08:35:17

앙투안의 공식 직무는 정지됐다.

르노아 그룹은 채권 매입을 중단했고, 파리 합작법인 설립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모든 일이 정리된 줄 알았다.

하지만 프라하로 돌아온 첫날, 회사 로비에서 앙투안을 다시 마주쳤다.

그는 혼자였다.

“어떻게 들어왔죠?”

“방문 신청을 했습니다.”

“승인한 적 없습니다.”

비서가 곧바로 보안팀을 불렀다.

앙투안은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사과하러 왔습니다.”

“공식 사과는 이미 받았어요.”

“그룹이 쓴 사과문 말고, 제가 직접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들을 생각 없습니다.”

나는 지나치려 했다.

그가 한 걸음 막아섰다.

“당신을 이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몸이 굳었다.

“처음에는 회사가 목적이었습니다. 프라하 법인의 성장 가능성을 봤고, 대표님이 계약에 가장 강한 연결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감정을 섞었습니까?”

“반대입니다.”

앙투안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가까이 접근하다 실제로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 말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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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도현의 팔 위에서 눈을 떴다.밤새 같은 자세로 있었는지 그의 오른팔은 내 목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도현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팔 저리죠?”“괜찮습니다.”“거짓말.”나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주물렀다. 손끝이 차갑고 굳어 있었다.“이렇게까지 안 움직여도 됐잖아요.”“당신이 기대고 있었습니다.”“제가 자고 있는데 살짝 빼도 몰랐어요.”도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놓았다가 깨어났을 때 당신이 없는 것이 싫었습니다.”어젯밤 열려 있던 손 위에 스스로 손을 올린 건 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선택이 사라질까 봐 잠든 뒤에도 움직이지 못했다.“저 안 없어져요.”“알고 있습니다.”“또 말만 알죠?”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마치자 재단에서 긴급 연락이 왔다.박미라에게 지원금을 준 뒤 다른 지원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전과가 있는 지원자에게 더 관대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주장이었다.재단 앞에는 기자들까지 모여 있었다.“제가 먼저 갈게요.”가방을 들자 도현도 재킷을 집었다.“함께 갑니다.”“오늘 이사회 있잖아요.”“오후로 미뤘습니다.”“저한테 말도 없이요?”그의 손이 멈췄다.“당신이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도 제 일정에 맞춰 도현 씨 일정 바꾸는 건 미리 말해야죠.”“미안합니다.”그는 재킷을 다시 내려놓지 않았다.“그래도 가고 싶습니다.”이번에는 결정이 아니라 요청이었다.“재단 안에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요.”“받아들이겠습니다.”재단 회의실에는 지원 탈락자 세 명이 와 있었다.그중 한 사람이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범죄를 저지르면 오히려 사연이 생겨서 유리한 겁니까?”“박미라 지원자는 범죄 이력 때문에 가산점을 받지 않았습니다.”“이사장님 개인 피해자라 관심을 더 받은 건 사실이잖아요.”그 말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이름을 확인한 순간 심사 절차를 더 엄격하게 바꿨고, 결과적으로 다른 지원자보다 더 많은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210화. 열려 있는 손

    재단 사건이 정리된 밤, 집 안은 오랜만에 조용했다.나는 침실에 들어가기 전 보관함 앞에 섰다.도현이 뒤에서 물었다.“오늘 원합니까?”“모르겠어요.”“그럼 열지 마십시오.”“도현 씨는요?”“원합니다.”솔직한 대답이었다.“왜요?”“며칠 동안 당신이 흔들리는 것을 보기만 했습니다.”그의 시선이 내 손목에 머물렀다.“잡고 싶었지만, 제 방식으로 붙잡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나는 보관함을 열지 않고 돌아섰다.“오늘은 도구 없이 해요.”“주도권은?”“도현 씨.”“범위를 말하십시오.”“손목은 잡아도 돼요. 묶지는 말고.”“자세 통제는?”“괜찮아요.”“강도는?”잠시 생각했다.“중간.”“색깔은 기존대로.”“네.”도현은 바로 다가오지 않았다.“지금도 선택합니까?”“네.”그제야 손이 내 손목을 감쌌다.힘은 분명했지만 손가락 사이에는 작은 틈이 남아 있었다.“왜 완전히 안 잡아요?”“당신이 빼고 싶을 때 뺄 수 있도록.”나는 시험하듯 손을 당겼다.쉽게 빠져나왔다.도현의 표정이 흔들렸지만 다시 잡지 않았다.“놓쳤어요.”“놓은 겁니다.”“제가 가면요?”그의 턱이 굳었다.하지만 명령하지 않았다.“붙잡아 달라고 말해야 합니까?”“열두 번째 명령 기억해요?”“기억합니다.”그는 한동안 침묵하다 손을 다시 내밀었다.“오늘은 제 곁에 있어 주십시오.”나는 손을 올리지 않고 물었다.“왜요?”“당신이 다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면서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봤습니다.”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런데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옆에 있었잖아요.”“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나는 그의 열린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충분했어요.”손가락이 천천히 닫혔다.이번에는 내가 힘을 빼지 않았다.도현은 나를 거울 앞에 세웠지만 눈을 가리지 않았다.“오늘의 명령입니다.”“말해요.”“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숨이 멎었다.“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209화. 지켜보는 사람

    박미라의 선정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기사 제목은 자극적이었다.[사생활 유출 가해자에게 지원금 준 한서윤.]일부는 관용이라고 평가했지만, 일부는 피해 사실을 홍보에 이용한다고 비판했다.더 나쁜 반응도 있었다.“둘이 뒤에서 합의한 것 아니냐.”“유출 사건 자체가 홍보용이었던 것 아니냐.”도현은 즉시 법무팀을 불렀다.“허위사실 계정을 전부 고소하겠습니다.”“공식 입장부터 내요.”“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도현 씨.”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당신이 피해자인데도 다시 의심받고 있습니다.”“알아요.”“왜 계속 참아야 합니까?”“참자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하자는 거예요.”나는 재단의 익명 심사 절차와 외부위원 명단, 내 개인적 개입이 없었다는 기록을 공개하기로 했다.박미라에게도 언론 접촉 금지 조건을 다시 통보했다.그런데 그날 오후 박미라가 개인 채널에 영상을 올렸다.“한서윤 대표님은 저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지원도 직접 결정하지 않았습니다.”그녀는 과거 범행과 처벌 과정을 스스로 밝혔다.영상은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다.여론은 뒤집혔지만 문제가 생겼다.지원 조건에 포함된 ‘과거 사건을 홍보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재단 이사회는 지원 취소를 검토했다.“본인을 변호하려 한 행동입니다.”한 위원이 말했다.“동시에 한 이사장을 보호한 행동이기도 합니다.”“그래도 규정 위반입니다.”나는 표결에서 빠졌다.결과는 지원 유지 네 표, 취소 네 표.최종 결정권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도현은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왜 조용해요?”“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개인적인 감정이 섞였다고 평가받을 겁니다.”“그럼 어떡해요?”“결정 이유를 문서로 남기십시오.”나는 영상의 목적과 결과를 분리해 판단했다.박미라는 사건을 이용해 사업을 홍보하지 않았다.자신의 잘못을 밝히고 허위 의혹을 정정했다.다만 사전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은 규정 위반이었다.지원금은 유지하되 공식 경고와 추가 윤리교육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208화. 다시 마주친 사람

    지원 대상자 오리엔테이션 날, 박미라는 가장 뒤쪽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가오지는 않았다.행사가 끝난 뒤 직원이 작은 봉투를 가져왔다.“박미라 지원자가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받지 않을게요.”봉투 안에 사과문이나 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그녀와 개인적인 관계를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직원이 돌아가려는 순간 박미라가 멀리서 말했다.“대표님.”도현이 즉시 내 앞을 막지는 않았다.다만 반걸음 가까이 왔다.박미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직접 드리려던 건 아닙니다.”“그럼 왜 가져왔죠?”“지원받으면 다시는 대표님 이름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인서입니다.”“재단 조건에 이미 들어 있어요.”“제가 직접 쓴 것도 남기고 싶었습니다.”나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저한테 사과받을 기회를 요구하지 마세요.”박미라의 얼굴이 굳었다.“네.”“지원금은 재단 기준으로 받은 거예요. 제가 용서해서 준 게 아니고요.”“알고 있습니다.”“앞으로 저한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마세요.”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지키겠습니다.”박미라가 돌아간 뒤 손이 떨렸다.도현이 바로 잡으려다 멈췄다.“만져도 됩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왜 탈락시키지 않았는지 후회합니까?”“조금.”“결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안 바꿀 거예요.”“왜?”“그 사람을 계속 벌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재단을 만든 건 아니니까.”도현의 턱이 굳었다.“저는 아직 벌주고 싶습니다.”“알아요.”“그 감정이 잘못됐습니까?”“아니요.”나는 그의 손가락을 맞잡았다.“도현 씨는 용서 안 해도 돼요.”“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응.”그날 밤 나는 보관함을 열지 않았다.대신 현관과 서랍의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했다.도현은 그것을 과민반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내가 집 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조용히 따라왔다.“오늘은 문 잠가도 돼요.”내가 말하자 그가 물었다.“모든 문을?”“현관만.”“서재는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207화. 지원자의 이름

    지원기금 첫 모집에 예상보다 많은 신청서가 들어왔다.그중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걸렸다.박미라.과거 우리 집에서 비공개 합의서를 훔쳐 판매했던 청소 노동자와 같은 이름이었다.사진과 생년을 확인하자 동일인이 맞았다.그녀는 사건 이후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을 받았고, 지금은 소규모 청소업체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지원서에는 과거 범죄 사실도 직접 적혀 있었다.[잘못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심사위원이 물었다.“자동 탈락 처리할까요?”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개인적인 피해자와 재단 이사장의 위치가 충돌했다.도현에게 말하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탈락시키십시오.”“심사는 독립적으로 하기로 했어요.”“당신의 사생활을 팔아넘긴 사람입니다.”“알아요.”“그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줄 이유가 있습니까?”목소리에 오래전 분노가 살아났다.“제가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에요.”“지원금을 받으면 당신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그래서 더 제가 결정하면 안 돼요.”나는 박미라의 지원서를 익명 심사로 넘기기로 했다.범죄 이력은 법률·윤리 심사위원만 확인하고, 사업 심사위원에게는 이름과 과거를 가렸다.도현은 동의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이 선정되면요?”“결과를 받아들여야죠.”“당신은 정말 괜찮습니까?”“안 괜찮아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지원서 보는 순간 그때 생각났어요. 집 안 서랍도, 기사도, 조사받던 것도.”“그럼 하지 마십시오.”“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심사 기준을 바꾸면 재단이 제 감정대로 움직이는 거잖아요.”도현은 더 반박하지 못했다.대신 말했다.“결과 발표 때는 제가 함께 있겠습니다.”“왜요?”“그 사람이 당신 앞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경호 때문이에요?”“아닙니다.”도현의 손이 내 손등 위에 놓였다.“당신이 괜찮지 않을 때 옆에 있고 싶어서.”박미라는 사업성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하지만 최종 윤리심사 결과는 조건부 통과였다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206화. 오래된 브로치

    재단 출범식 날, 나는 차명희가 준 브로치를 재킷에 달았다.작은 검은 보석을 은색 테두리가 감싼 디자인이었다.도현은 준비를 마친 나를 한참 바라봤다.“왜 그래요?”“어머니의 브로치를 할 줄 몰랐습니다.”“한 번 해 본다고 했잖아요.”“불편하지 않습니까?”“조금.”“그럼 빼도 됩니다.”그가 직접 손을 대지 않고 기다렸다.나는 거울을 봤다.브로치가 내 이름을 지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명희와 협상해 얻은 자리를 기억하게 했다.“그냥 할게요.”출범식 보도자료의 첫 문장은 합의대로 나갔다.[한서윤 유럽 총괄 겸 차도현 의장 배우자, 여성 경영인 지원기금 초대 이사장 취임.]기자들은 배우자 호칭에 더 관심을 보였다.“차씨 집안의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것입니까?”“아닙니다.”“차명희 회장님의 후계자로 거론될 가능성은요?”“지원기금과 무관한 질문입니다.”도현이 대답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멈췄다.차명희는 의외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한서윤 이사장은 제 후계자가 아닙니다.”기자들의 카메라가 한꺼번에 움직였다.“자기 자리가 있는 사람에게 남의 자리를 물려줄 이유가 없어요.”그녀의 대답은 차가웠지만 정확했다.행사가 끝난 뒤 내가 말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그래도요.”차명희의 시선이 브로치에 닿았다.“불편하면 다음에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오늘은 괜찮았어요.”“다행이군요.”그녀는 먼저 돌아섰다.도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어머니와 가까워진 것 같아 묘합니다.”“질투해요?”“조금.”“어머니한테도요?”“당신의 시간을 가져가는 모든 대상에게 그렇습니다.”“재단 일도 회사만큼 바쁠 수 있어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그 부분은 듣지 못했습니다.”“지금 말하잖아요.”“얼마나 자주입니까?”나는 웃었다.“또 일정 확인부터 하네요.”그가 숨을 고르고 질문을 고쳤다.“제가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을 미리 말해도 됩니까?”“그건 돼요.”도현은 달력에 매달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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