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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검은 단추의 실패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7 20:16:10

카렐이 여전히 제일 먼저 손을 드는 건 얄미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게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도현에게는 조금 다른 종류의 ‘신호’가 사라졌다.

행사 준비를 하던 저녁이었다.

도현은 셔츠 소매를 정리하다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왜요?”

나는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끼다가 그를 봤다.

도현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작은 검은 단추 하나.

익숙한 숫자.

[0.]

“떨어졌네.”

내가 먼저 주워 들었다.

도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언제 느슨해졌지.”

“그냥 단추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단추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돌려봤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장치였다.

도현이 질투나 불편함을 느낄 때 바로 행동하지 않고 한 번 멈추기 위해 만든 것.

질문하기 전.

끼어들기 전.

상대의 선택을 줄이기 전.

한 번 누르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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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26화. 카렐의 휴가

    카렐이 갑자기 휴가 신청서를 냈다.일주일.나는 화면을 한참 봤다.“무슨 일 있어요?”카렐이 담담하게 말했다.“없습니다.”“그런데 일주일?”“신혼여행 이후 제대로 쉰 적이 없습니다.”“아.”그제야 생각났다.결혼한 뒤 카렐은 오히려 더 바쁘게 일했다.새로운 물류 조정.도시 간 인력 통합.파리 일정.내가 물었다.“신부랑 가요?”카렐의 눈썹이 올라갔다.“그건 휴가 승인에 필요한 정보입니까?”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니.”“그럼 비공개로 하겠습니다.”“알겠어요.”신청서에 승인 버튼을 눌렀다.카렐이 조금 놀랐다.“질문 더 안 하십니까?”“왜?”“평소에는 업무 인수인계 계획부터 묻습니다.”나는 화면을 봤다.이미 인수인계 문서가 첨부돼 있었다.“있잖아요.”“네.”“그럼 됐죠.”카렐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그가 나가고.한예린이 들어왔다.“카렐 일주일 쉬어?”“응.”“세상 좋아졌네.”나는 웃었다.“내가 그렇게 못 쉬게 했어?”“직접은 아닌데.”“그럼?”“총괄이 일하니까 다들 따라 일했지.”그 말에 조금 찔렸다.회사가 확장을 멈추고.성장 목표를 낮추고.퇴사율도 줄었지만.리더가 쉬지 않으면 아래도 진짜 쉬기 어려웠다.그날 나는 내 일정도 다시 봤다.다음 달.비어 있는 이틀.예전 같으면 회의를 넣었을 자리.이번에는 그대로 뒀다.도현에게 말하자 그가 물었다.“어디 갈 겁니까?”“안 정했어요.”“저와?”나는 웃었다.“벌써?”도현이 잠시 멈췄다.“또 제 습관이 나왔군요.”“응.”“그럼.”그가 고쳐 말했다.“당신이 정하면 알려주십시오.”“도현 씨랑 갈 수도 있고.”“네.”“혼자 있을 수도 있고.”“네.”이번에는 표정이 아주 조금만 굳었다.나는 바로 알아챘다.“불편하죠?”“조금.”“그래도?”“휴가를 제 감정에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도현은 이제 그 말을 힘들지 않게 했다.완전히 편한 건 아니어도.행동으로 바꾸지 않았다.카렐의 일주일 휴가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25화. 의장실의 문이 닫힌 뒤

    회사는 평범했다.오전 회의.점심 미팅.오후 검토.그런데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자 본사 층이 빠르게 비었다.나는 마지막 자료를 전달하러 도현의 의장실에 들어갔다.“여기.”도현이 자료를 받았다.“끝났습니까?”“네.”“오늘 바로 집에 갑니까?”“그럴 건데.”도현은 시계를 봤다.“십 분만.”“왜?”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을 잠근 건 아니었다.그저 닫았다.“회사에서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나는 바로 말했다.도현이 멈췄다.“플레이를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럼?”“앉으십시오.”나는 의아했지만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도현은 책상 의자가 아니라 내 앞에 섰다.“오늘 집에 가면.”“네.”“제가 정합니다.”심장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지금부터?”“아닙니다.”“그럼 왜 여기서 말해요?”“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맡길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나는 그를 올려다봤다.“뭘 할지는?”“말하지 않습니다.”“강도?”“당신이 정합니다.”“높음.”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확실합니까?”“네.”“오늘 피곤하지 않습니까?”“괜찮아요.”“좋습니다.”그는 그대로 한 걸음 물러났다.“이제 업무 끝.”“그게 다?”“네.”“여기서 아무것도 안 해요?”“안 합니다.”나는 웃었다.“괜히 긴장했네.”도현은 아주 태연했다.“그 긴장을 집까지 가져가십시오.”나는 그대로 굳었다.도현이 먼저 문을 열었다.“갑시다.”“주인님.”그가 돌아봤다.“네.”“일부러죠?”“무엇을?”“이러는 거.”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네.” 차 안에서도 아무것도 없었다.도현은 회사 얘기만 했다.카렐 보고서.다음 주 일정.새로운 인력 배치.나는 괜히 더 신경 쓰였다.집에 도착했다.현관문이 닫혔다.도현은 재킷을 벗었다.나는 기다렸다.그가 물었다.“왜 거기 서 있습니까?”“주인님이 정한다며.”“그렇습니다.”“그럼.”“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나는 어이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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