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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두 번째 명령

作者: 에이르
last update 公開日: 2026-08-04 21:44:51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차도현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잘했습니다.”

고작 그 한마디였다.

그런데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침대에 누운 뒤에도 계속 생각났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미쳤어.

돈이 필요해서 계약했을 뿐이다.

열두 번의 명령만 끝나면 다시는 만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후 11시 48분.

도현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했다.

그러다 문득 계약서에 적힌 숫자가 떠올랐다.

1/12.

이제 열한 번 남았다.

그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점심때도, 오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괜히 알림 설정까지 확인했다.

소리도 켜져 있었고, 차단된 번호도 없었다.

“뭘 기다리는 거야.”

혼잣말하며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나는 급히 화면을 켰다.

[차도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오늘 밤 10시.]

[두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짧은 메시지였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17분.

아직 다섯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곧바로 읽음 표시가 떴다.

[어디에도 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 시간에 내 전화를 받으세요.]

그게 끝이었다.

두 번째 명령이 전화받는 거라고?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첫 번째처럼 또 무언가 대단한 걸 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오히려 더 긴장됐다.

내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 9시 50분.

나는 침대 위에 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대충 입고 있었을 텐데, 괜히 샤워까지 하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전화인데도.

그가 볼 수도 없는데도.

9시 58분.

9시 59분.

시간이 바뀌는 순간, 화면에 차도현의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한 번 숨을 고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한서윤 씨.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보다 가까이 느껴졌다.

“네.”

—지금 혼자입니까?

“네. 집이에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세요.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은 이미 닫혀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잠금장치를 걸었다.

철컥.

작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잠갔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부터 두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긴장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

—창문 커튼을 닫으세요.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완전히 닫자 방 안이 어두워졌다.

“닫았어요.”

—조명은 하나만 남기고 모두 끄세요.

침대 옆 작은 스탠드만 남겼다.

은은한 빛 아래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다음은요?”

—재촉하지 마세요.

단호한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지금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그의 지시를 기다리게 됐다.

—거울 앞에 서세요.

방 한쪽에 있는 전신거울 앞으로 이동했다.

거울 속에는 긴장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섰어요.”

—자신을 보세요.

“보고 있어요.”

—지금 어떤 표정입니까?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거울 속 얼굴을 살폈다.

“긴장한 것 같아요.”

—또요?

“조금…… 궁금해하는 것 같고요.”

—무엇이 궁금합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시킬지.

어디까지 내가 따르게 될지.

그리고 왜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말하기 싫어요.”

—좋습니다. 그것도 솔직한 대답이니까.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눈을 감으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사라지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숨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이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네.”

—어제 무릎을 꿇은 게 싫었습니까?

숨을 멈췄다.

어제부터 외면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싫었어요.”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모른다는 말로 피하지 마세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나쁘지 않았어요.”

말하고 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나쁘지 않았습니까?

“그걸 꼭 말해야 해요?”

—거부해도 됩니다.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도망가기 어려워졌다.

정말 싫었다면 끊으면 됐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목소리가 작아졌다.

“잘했다고 말해줘서요.”

통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혹시 그가 웃고 있을까.

내 말을 우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눈을 뜨세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붉어져 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보세요.

도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말하세요.

“뭐라고요?”

—나는 명령받는 것이 싫지 않다고.

입술이 굳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까?

부정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순간.

그가 내 손목을 잡았던 감각.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렸던 나.

“사실이에요.”

—정확히 말하세요.

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나는…… 명령받는 게 싫지 않아요.”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명령받는 게 싫지 않아요.”

—누구에게?

심장이 세게 뛰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에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온몸이 달아올랐다.

도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잘했습니다.

또 그 말이었다.

그 한마디만으로 가슴이 이상하게 조여 왔다.

—두 번째 명령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게 끝이에요?”

아쉬움이 너무 노골적으로 묻어나왔다.

도현이 낮게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더 원했습니까?

“아니에요.”

—거짓말이군요.

“질문에 꼭 다 대답할 필요는 없다면서요.”

—배운 건 기억하고 있군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오늘은 푹 쉬세요.

“다음 명령은 언제인데요?”

또다시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벌써 기다립니까?

“계약 일정이 궁금한 것뿐이에요.”

—그렇게 해두죠.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한동안 검게 변한 화면을 내려다봤다.

잠시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 한 장이었다.

계약서 오른쪽 위에 새로운 숫자가 적혀 있었다.

2/12.

그 아래 짧은 문장이 따라왔다.

[이제 열 번 남았습니다.]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바라봤다.

열 번이나 남았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 번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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