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내일 저녁 7시. 지난번 그 집으로 오세요.]
메시지를 읽은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세 번째 명령인가요?] 답장은 곧바로 왔다. [아닙니다.] [세 번째 명령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명령보다 더 긴장되는 말이었다. 무슨 자격을 확인한다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입력창 위에서 멈췄다. 답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조급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의 연락을 기다렸고, 다음 명령이 언제인지 먼저 물었다. 차도현은 아마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계약을 단순히 돈 때문에 계속하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 --- 다음 날 저녁 6시 42분. 나는 검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십팔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일찍 오라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 집에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은 끝에 검은색 원피스를 골랐다.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아무렇게나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옷. 화장도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썼다. 그가 알아볼지조차 모르면서. 나는 초인종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문 앞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올까. 그때 검은 대문이 먼저 열렸다. 차도현이 안쪽에 서 있었다. 오늘도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고, 한 손에는 얇은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살폈다. “일찍 왔군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 “거짓말.” 너무 즉각적인 대답에 눈을 피했다. “일찍 오면 안 돼요?” “안 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가 몸을 옆으로 비켰다. “들어오세요.” 지난번과 같은 거실이었다. 검은 소파와 유리 테이블. 정돈된 공간에는 여전히 생활감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번보다 덜 낯설었다. 오히려 내가 이곳에 다시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차도현은 테이블 위에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앉으세요.” 나는 소파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가 맞은편에 앉을 줄 알았지만, 차도현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그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향은 분명히 닿았다. 차갑고 깨끗한 향. 전화를 통해 들었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긴장했습니까?” “조금요.” “왜요?” “자격을 확인한다고 했잖아요.” “탈락할까 봐 걱정됩니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을 알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계약을 계속하고 싶었다. 다음 명령을 받고 싶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내 선택이 돈 때문이라는 변명이 사라질 것 같았다. 차도현이 서류철을 펼쳤다. 안에는 첫날 작성했던 계약서와 규칙표가 들어 있었다. 오른쪽 위에는 두 개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1/12. 2/12. 두 번의 명령이 끝났다는 흔적이었다. “오늘은 계약을 계속하기 전에 몇 가지를 확인할 겁니다.” “검사라도 해요?” “비슷합니다.” 그가 규칙표를 내 앞에 놓았다. “첫 번째 규칙.” 나는 적힌 문장을 읽었다. 질문에는 솔직하게 답할 것. “질문을 할 테니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싫은 질문이면요?” “말하기 싫다고 답해도 됩니다.” “그럼 자격 확인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솔직하게 거절하는 것도 대답입니다.” 여전히 이상한 남자였다.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열어두면서도, 결국은 스스로 더 깊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가 나를 바라봤다. “계약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가 돈뿐입니까?” 예상했던 질문인데도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 계약서에 서명한 이유는 분명 돈이었다. 오백만 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은 이미 받았다.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이유는 위약금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차도현은 첫 번째 명령을 거부해도 계약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때 나는 계속하겠다고 선택했다.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나는 손가락 끝을 내려다봤다. “잘 모르겠어요.” “그건 솔직한 답입니까, 피하기 위한 답입니까?”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도망칠 틈이 없었다.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다음이 궁금해요.” “무엇이?” “당신이 어떤 명령을 할지.” 그의 시선이 조금 깊어졌다. “명령받는 상황이 궁금한 겁니까, 내가 궁금한 겁니까?” 이번에는 정말 대답하기 어려웠다.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 명령이 궁금한 건지. 차도현이라는 사람이 궁금한 건지. 혹은 그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궁금한 건지. “둘 다인 것 같아요.” 그가 잠시 침묵했다. 표정만으로는 만족했는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질문.” 차도현은 내 손을 바라봤다. “계약 중 나를 무서워한 적이 있습니까?” “처음에는요.” “지금은?” 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조금 무서워요.” “무엇이?” “당신이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그가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는데도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변할지요.” 그 말을 꺼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전에는 누가 저한테 뭘 시키면 싫었어요. 간섭받는 것도 싫었고요.” “지금도 싫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시키는 건…….”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계속 기다리게 돼요.” 고백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차도현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내 손목을 잡지 않았다. 다만 손등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올렸다. 닿을 듯 말 듯한 접촉이었다. 그런데도 맥박이 빨라졌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가 내 손등을 천천히 눌렀다. “지금 내가 세 번째 명령을 내리길 원합니까?” 이번에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네.” “명확하게 대답하세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차도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원해요.” 그의 손가락이 내 손에서 떨어졌다. 접촉은 짧았는데, 사라진 자리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좋습니다.” 차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작하죠.” 나는 긴장한 채 그를 따라 일어났다. 그는 거실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지난번 내가 무릎을 꿇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차가운 바닥. 내려다보던 시선. 잘했다는 목소리. “한서윤 씨.” “네.” “지금부터는 계약 시간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말투는 여전히 존댓말이었지만, 목소리는 더 낮고 단호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계약 중에는 나를 어떻게 부르기로 했죠?”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주인님.” “다시.” “주인님.” 그의 시선이 얼굴에 머물렀다. “오늘 세 번째 명령은 간단합니다.” 그가 테이블 위에 작은 검은 상자를 올려놓았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상자를 열자 검은색 천이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눈가리개였다. 손끝이 조금 굳었다. 차도현은 물건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상자만 열어둔 채 물었다. “사용해 본 적 있습니까?” “없어요.” “불편합니까?” 나는 눈가리개를 바라봤다. 시야를 가린다는 건 내 통제권을 일부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슨 표정을 짓는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두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이 있었다. 궁금했다. “조금 긴장돼요.” “싫습니까?” “아니요.” “확실합니까?” “네.” 차도현이 상자에서 눈가리개를 꺼냈다. 부드러운 천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늘어졌다. “세 번째 명령입니다.” 그가 내 뒤로 천천히 걸어왔다. 등 뒤에서 그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걸 착용하고, 내가 벗어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눈을 뜨지 마세요.” 그의 손이 내 관자놀이 근처에서 멈췄다. 아직 닿지는 않았다. “동의합니까?” 나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동의해요.” “계약 중에는?” 그가 낮게 되물었다. 나는 입술을 열었다. “네, 주인님.” 그제야 부드러운 천이 눈앞을 덮었다. 시야가 완전히 사라졌다. 매듭이 머리 뒤에서 조심스럽게 묶였다. 차도현의 손끝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목덜미를 스쳤다. 아주 짧은 접촉이었다. 그런데도 어깨가 움찔했다. “너무 조입니까?” “아니요.” “불편하면 바로 말하세요.” “네.” 어둠 속에서 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침묵. “주인님?”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가 정말 방 안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손을 뻗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움직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오른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합니까?” 생각보다 가까웠다.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네.” “나를 보고 싶습니까?” “네.” “왜요?” 또다시 대답을 요구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 표정이 궁금해서요.” “무슨 표정일 것 같습니까?” “저를 보고 있을 것 같아요.” “보고 있습니다.” 짧은 대답에 온몸이 긴장했다. 시야가 없다는 사실보다 그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서 있는지.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끝이 떨리는지. 모든 걸 그만 보고 있었다. “손을 앞으로 내미세요.” 나는 천천히 양손을 내밀었다. 곧 그의 손바닥이 내 손 아래에 닿았다. 그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뺄 수 있도록 받치고만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는 그의 손에 의지해 발을 옮겼다. “다시.” 한 걸음 더. “멈추세요.” 그가 가까이 있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어디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섭습니까?” “조금요.” “세이프워드는?” “빨간불.” “말하고 싶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긴장 속에서 그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요.” 차도현이 내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가 턱 끝에 닿았다. 고개가 아주 조금 들렸다. “잘하고 있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그 한마디에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가 느슨해졌다. 그는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이 나를 안심시키고, 어떤 침묵이 나를 기다리게 하는지. “세 번째 명령의 목적이 뭔지 압니까?” “모르겠어요.”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를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격을 확인한 거예요?” “네.” “제가 못 믿는다고 했으면요?” “오늘 명령은 하지 않았겠죠.” 그의 손가락이 턱에서 떨어졌다. “계약은 계속됐을 수도 있고요.” “왜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라고 강요하는 건 계약이 아니니까.” 그의 말은 늘 단순했다. 거부할 수 있다. 멈출 수 있다. 준비되지 않으면 기다린다. 그런데 그 단순한 규칙들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한서윤 씨.” “네.” “이제 선택하세요.” “뭘요?” “여기서 끝낼지, 조금 더 계속할지.” 어둠 속에서 숨을 삼켰다. 그가 명령을 내렸지만, 끝을 결정할 기회를 내게 주고 있었다. 나는 원하면 지금 눈가리개를 벗을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계속할래요.” “계약 중에는?”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계속하고 싶어요, 주인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그의 손이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손가락 사이로 깊이 들어왔다. 단단하지만 아프지 않은 힘이었다. “그럼 나를 믿고 따라오세요.”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 채 따라갔다. 몇 걸음 뒤, 무릎 뒤쪽에 무언가 닿았다. 소파인 것 같았다. “앉으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낮췄다. 푹신한 가죽 소파가 몸을 받쳤다. 차도현의 손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눈가리개를 벗기겠습니다.” 그의 손이 머리 뒤로 향했다. 매듭이 풀리고, 천이 천천히 내려왔다. 빛이 들어오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차도현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위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눈높이보다 조금 낮았다. 그 모습이 예상 밖이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봅니까?” “항상 위에서 내려다볼 줄 알았어요.” “그게 더 좋습니까?” “그런 뜻은 아니에요.”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차도현은 눈가리개를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 계약서를 가져왔다. 오른쪽 위에 새로운 숫자를 적었다. 3/12.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세 번째 명령이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아홉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 “오늘 명령은 여기까지입니다.” 그가 말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차도현이 나를 바라봤다. “왜요?”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말하세요.” “오늘 자격을 확인했잖아요.” “그랬죠.” “저, 통과한 거예요?”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내 앞에 섰다. 다시 익숙한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봤다. “오늘 명령을 끝까지 수행했으니 당연히 통과했습니다.” 나는 괜히 안도했다. 그런데 차도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그가 내 턱 아래로 손을 뻗었다. 닿기 직전 멈춘 손끝이 시선을 붙잡았다. “한서윤 씨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나를 믿는다는 것.” 심장이 세게 뛰었다. “그게 왜 문제예요?” “믿음과 의존은 아주 가까우니까.” 그가 손을 거두었다. “나를 믿되, 나 없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어요.” 즉시 대답했지만 차도현은 믿지 않는 눈이었다. “그 말, 기억하겠습니다.” 그는 현관까지 나를 배웅했다. 문이 열리기 전, 나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 명령은 언제예요?” 차도현이 문고리를 잡은 채 나를 돌아봤다. “방금 내가 했던 말은 듣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냥 일정이 궁금한 거예요.” “벌써 세 번째로 같은 변명을 하는군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차도현은 문을 열어주며 낮게 말했다. “다음에는 기다리지 마세요.” “네?” “내가 연락하기 전에 먼저 연락해도 됩니다.” 대문 밖으로 나온 뒤에도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저 연락해도 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의 채팅창을 여러 번 열었다. 무슨 말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잘 들어왔다고 할까. 오늘은 고마웠다고 할까. 아니면 다음 명령이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도현이었다. [오늘 잘했습니다.] 그 아래 새로운 메시지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 명령은 오늘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답장을 썼다. [저도 쉽게 끝낼 생각 없어요.] 보내고 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읽음 표시가 떴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좋습니다.] [그 말, 네 번째 명령 때 확인하죠.] 나는 어두운 현관에 선 채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아홉 번. 이제 그의 명령은 아홉 번 남았다. 그런데 나는 벌써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검은 리본과 짧은 가죽 리드.도현은 둘 사이에서 고르라고 했지만, 나는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왜 두 개예요?”“하나는 보지 못한 채 제 목소리를 따라오는 것.”그가 검은 리본을 손끝으로 밀었다.“다른 하나는 전부 보면서 제 손을 따라오는 겁니다.”“어느 쪽이 더 어려워요?”“당신에게는?”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아마 두 번째.”정답이었다.눈을 가리면 오히려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나는 결국 가죽 리드를 집었다.“이거요.”“확실합니까?”“네.”“왜?”“보고 싶으니까.”“무엇을?”그 질문이 또 나왔다.나는 리드를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주인님 얼굴.”도현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고리를 들었다.“목에는 연결하지 않습니다.”“그럼 어디에요?”그는 내 손목에 얇은 가죽 밴드를 채웠다.손가락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느슨했다.짧은 리드가 연결됐다.“아홉 번째 명령.”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당기기 전에 따라오십시오.”“당기지도 않을 건데 이건 왜 해요?”“제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라는 뜻입니다.”도현이 뒤로 한 걸음 걸었다.리드는 아직 느슨했다.나는 가만히 있었다.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안 와요?”“당기기 전에 따라오라면서요.”“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리드는 끝까지 팽팽해지지 않았다.도현이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나도 따라갔다.다시 왼쪽.이번에는 일부러 반 박자 늦었다.가죽이 손목에 아주 살짝 닿았다.그 즉시 도현이 멈췄다.“불편합니까?”“아니요.”“색깔.”“초록색.”그는 다시 움직였다.침대 앞.창가.거울 앞.한 번도 세게 당기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시선은 계속 그의 손에 묶여 있었다.“이게 뭐가 야해요?”내가 투덜거리자 도현이 가까이 왔다.“당신은 지금 제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고 있습니다.”숨이 순간 막혔다.“그걸 알고도?”리드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계속 저를 보고 있고요.”나는 괜히
“그럼 여덟 번째는 지금부터 생각하겠습니다.” 도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저 사람은 이미 정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울 속에서 마주친 눈빛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당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 내가 먼저 흔들리기를. “이미 생각했죠?” 도현이 낮게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여덟 번째.” “궁금합니까?” “…조금.” “조금?”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도현의 손가락이 손목을 한 번 천천히 감쌌다가 힘을 풀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 목소리 때문에 괜히 심장이 빨라졌다. “궁금합니까?” “네.” “호칭.” “궁금해요, 주인님.” 그제야 손목이 풀렸다. 갑작스럽게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어색했다. 도현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침대 끝에 앉으십시오.” 이번에는 바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따라왔다. “손은?” “허벅지 위에.” 나는 손을 올렸다. “등.” 자세를 바로 세웠다. “좋습니다.” 그 한마디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칭찬.” “싫습니까?” “아니요.” “그럼 받아들이십시오.” 도현은 내 앞에 서서 넥타이를 천천히 풀었다. 그러나 벗어 던지지 않았다. 손에 한 번 감더니 내 앞에 보여 줬다. “이건 뭐 하려고요?” “여덟 번째에 필요합니다.” “손목 묶는 거?” “아닙니다.” “그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넥타이를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잡으십시오.” 나는 양손으로 넥타이 끝을 잡았다. “세게요?”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게 명령이에요?” “아직 아닙니다.” 또 시작이었다. 나는 결국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진짜 사람 애태우는 거 좋아하죠?” “특히 당신이 기다리지 못할 때.” “못됐다.” “그 말은 오늘 두 번째입니다.” “횟수도 세고 있었어요?” “당신이 숫자를 원했으니까.” 도현의 손이 턱 아래에 닿았
“일곱 번째를 원한다는 뜻으로 듣겠습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나는 그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지 않았다. “제가 언제 원한다고 했어요?” “조금 전 직접 말했습니다.” “제대로 하라고 했지, 일곱 번째 하라고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아까까지 일부러 남겨 두었던 틈이 사라졌다. 몸이 단숨에 가까워졌고,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한서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으로 등이 긴장했다. “후회합니까?” “…아니요.” “색깔.” “초록색.” 도현은 그제야 손을 움직였다. 손목을 잡아 등 뒤로 모았다. 커프는 없었다. 그런데 맨손으로 붙들린 감각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일곱 번째 명령.” 그가 내 귓가에 낮게 말했다.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손을 풀지 마십시오.” “주인님이 잡고 있잖아요.” “지금 놓겠습니다.” 손이 정말 떨어졌다. 나는 등 뒤로 모은 손을 그대로 유지했다.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은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그렇게 봐요?” “보고 싶어서.” “뭘요?” “제가 손대지 않아도 제 말을 지키는 모습.” 목이 말랐다. 그는 천천히 내 주위를 돌았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손끝 하나 닿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그쪽으로 긴장했다. “앞을 보십시오.”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도현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다리 조금 벌리십시오.” 숨이 짧아졌다. 그래도 따랐다. 그의 눈빛이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훑었다. “조금 더.” “주인님.” “싫습니까?” “…아니요.” “그럼 말이 아니라 움직이십시오.” 나는 아주 조금 자세를 바꿨다. 그 순간 도현이 가까이 왔다. 허리에 손이 닿았다.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이미 허용한 범위 안이었다. 대신 힘이 달라질 때마다
다섯 번째 명령이 끝났는데도 도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놓아주지 않는 척하고 있었다. 내 손목을 감싼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조금만 비틀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이 낮게 물었다. “왜 안 빠져나옵니까?” “나가라고 안 했잖아요.” “제가 잡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제가 있고 싶어서요.” 그제야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커프도 없었다. 검은 장갑도, 안대도, 익숙한 가죽 리드도 꺼내지 않았다. 도현은 처음부터 말했다. 오늘은 숫자로만 하겠다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조금 전 다섯 번째까지. 무엇을 할지 미리 알려 주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내 색깔을 확인했다. “다섯 번째 명령.” 도현이 내 손목을 한 손으로 모아 머리 위에 올렸다. “그대로 있으십시오.” “이게 끝이에요?” “불만입니까?” “조금요.” 그의 눈빛이 즉시 짙어졌다. “원하는 걸 말하십시오.” “주인님이 알아서 해야죠.” “한서윤.”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주도권을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또 맞는 말만 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좀 더 강하게 해도 돼요.” “어디까지?” “손목 잡는 거. 자세 잡아 주는 거.” “그 이상은?”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거기까지.” “좋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허리를 감싼 팔이 나를 끌어당겼다. 숨이 짧게 끊겼다.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도현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데도 입술은 닿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안 해요?” “무엇을?” “알면서.” “말하십시오.” 정말 얄미웠다. “키스해 줘요.” 도현의 시선이 입술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부탁입니까?” “네.” “색깔.” “초록색.” 그제야 입술이 닿았다. 처음에는 느렸다.
서윤은 서재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도현은 책상이 아니라 창가에 서 있었다. 등을 보인 채였다. "부르셨다면서요." 그가 돌아섰다. 눈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질문이 있습니다." "명령이 아니고요?" "오늘은 아닙니다." 서윤은 문가에 기댔다.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물어봐요." 도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녀와 문 사이의 거리까지 좁혔다. "한예린 대표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업 때문이에요." "압니다." "그런데요?" 그의 손이 그녀의 옆, 문틀에 닿았다. 가두는 자세였지만 몸은 닿지 않았다. "불편합니까, 제가 물어보는 것이." "아니요. 물어봐서 다행이에요." 도현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저는 여전히 그게 잘 안 됩니다." "지금은 됐잖아요." "오늘만입니다." "그럼 내일은요?" 침묵이 길어졌다. 서윤은 그 시간을 세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세고 있었다. 셋. 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먼저 닿았다. "내일은 또 물어보겠습니다." 숨이 섞였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로 내려와 조금 세게 당겼다. "이게 첫 번째예요, 도현 씨." "무엇의." "물어보지 말고요." 그가 낮게 웃었다. 웃음이 끝나기 전에 입술이 닿았다. 문에 등이 닿는 감각과 동시에, 서윤은 그의 넥타이를 손끝으로 감았다. 두 번째 질문은 말로 오지 않았다.창밖이 밝아 있었다. 서윤은 눈을 뜨자마자 옆자리부터 확인했다. 비어 있었다. 대신 협탁 위에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숫자는 없었다. 대신 짧은 글씨. 두 번째 질문, 답을 기다립니다. 서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에 남은 감각이 아직 선명했다. 서재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통화 중인 듯했다. 평소보다 말이 짧고, 문장 사이 간격이 길었다. 그녀는 카드를 손에 쥔 채 문가로 걸어갔다. 도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자리였다. 통화를
도현은 침실 중앙에 의자 하나만 놓았다.커프도 리드도 없었다.“앉으십시오.”첫 번째 지시였다.나는 팔짱을 꼈다.“싫어요.”도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예고했어도 실제 거절을 들으면 긴장하는 얼굴이었다.“이유를 물어도 됩니까?”“서 있고 싶어요.”그는 강요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기분 어때요?”“좋지는 않습니다.”“그래도요?”“당신이 떠난 것은 아니니까.”도현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저를 보십시오.”이번에는 따랐다.그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반대해도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려는 겁니까?”“도현 씨도, 저도요.”“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네.”“오늘 제가 재단에서 반대한 것이 당신의 능력을 믿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까?”“조금은 그렇게 느꼈어요.”“사실은 아닙니다.”“알아요.”“알면서 왜 서운합니까?”“남편이 제 편이었으면 했으니까.”도현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저는 당신 편입니다.”“안건에서는 아니었잖아요.”“당신 편이라는 말이 항상 같은 표를 던진다는 뜻은 아닙니다.”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도현은 손을 내밀었다.“잡아도 됩니까?”“네.”그는 손목이 아니라 손바닥을 잡았다.“오늘의 명령입니다.”“말해요.”“제가 반대할 때 저를 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숨이 짧게 막혔다.그 명령은 나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도현 씨도요.”“네.”“제가 거절해도 사랑이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노력하겠습니다.”“약속 못 해요?”도현은 쉽게 말하지 않았다.“두려움이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그럼 올라온 뒤에요?”“당신을 통제하지 않고 말하겠습니다.”“뭐라고요?”그는 내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거절당해서 불안하다고.”“좋아요.”나는 의자를 바라봤다.“이제 앉으라고 다시 말해 봐요.”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앉으십시오.”이번에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왜 이번에는 따릅니까?”“제가 선택했으니까.”“색깔.”“초록색.”그가 내 앞에 무릎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