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월요일 저녁.퇴근하고 현관문을 연 서윤은 문 앞에 놓인 납작한 상자를 발견했다.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발신자부터 확인했다.“도현 씨.”뒤따라 들어오던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네.”“사진 왔어.”“벌써요?”“응. 근데…….”서윤은 상자에 적힌 주문번호를 확인했다.“웨딩사진이네.”도현이 옆으로 다가왔다.“처음 찍은 사진은요?”“아직인가 봐.”커플사진을 먼저 촬영했고 웨딩사진은 나중에 찍었다.그런데 순서는 반대였다.서윤은 상자를 품에 안았다.“나중에 찍은 게 먼저 왔네.”“제작 일정이 달랐나 보죠.”“일단 열어보자.”서윤은 그대로 거실로 향했다.“옷은?”“사진 먼저.”도현이 웃었다.“예상했습니다.”상자를 열자 가장 위에 두꺼운 보호지가 놓여 있었다.서윤은 조심스럽게 걷어냈다.그 아래로 첫 번째 웨딩사진이 나타났다.“와.”손이 그대로 멈췄다.흰 드레스를 입은 서윤.차콜 턱시도를 입은 도현.둘은 손을 잡고 걷다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정면을 향한 사람은 없었다.서윤이 사진을 들어 올렸다.“이거다.”“《사이》에 두기로 한 사진.”“응.”휴대폰 화면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서윤은 사진 속 자신의 얼굴보다 먼저 도현의 얼굴을 살폈다.“봐봐.”“뭘요.”“도현 씨 진짜 나만 보고 있어.”“그때도 당신만 봤으니까요.”“카메라 좀 보지.”“후회 안 합니다.”서윤이 웃었다.“나도 안 봤네.”“그러니까요.”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시선이 가 있었다.서윤은 한참 보다가 사진을 가슴 앞에 안았다.“이거 액자 오면 바로 걸자.”“네.”“소파에서 잘 보이게.”“위치는 이미 정했잖습니까.”“그래도 실제 사진 보니까 다시 맞춰보고 싶어.”“그럴 줄 알았습니다.”다음 사진.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서윤이 도현의 어깨에 기대 있었고, 도현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이것도 좋다.”세 번째는 베일을 쓴 사진.네 번째는 부케를 들고 이마를 가까
입맞춤이 끝난 뒤에도 서윤은 도현의 품에서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오 년 뒤.”서윤이 그의 어깨에 턱을 얹은 채 말했다.“생각보다 금방 올 것 같지 않아요?”“벌써 다음 촬영이 기다려집니까.”“조금.”“오늘 찍은 것도 아직 안 나왔는데.”“그건 그거고.”서윤은 몸을 일으켰다.“오 년 뒤에는 지금이랑 또 다를 거잖아.”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까.”“음.”서윤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봤다.“집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고.”“집?”“도현 씨가 설계하고 싶다던 집.”도현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서윤은 그걸 보고 웃었다.“왜. 잊은 줄 알았어요?”“아니요.”“나 기억하고 있어요.”큰 주방.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창.서윤의 작업실.도현의 작업 공간.그리고 《사이》처럼 둘이 함께 쓰는 방.예전에 가볍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어느새 제법 구체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오 년이면 가능하려나.”“원하면요.”“진짜 설계하게?”“당신이 계속 원한다면.”서윤이 바로 말했다.“원해.”도현이 웃었다.“그럼 생각해보죠.”“생각만?”“집은 사진보다 준비할 게 많습니다.”“또 현실적인 얘기.”“그래야 실제로 만들죠.”그 말에 서윤이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입꼬리가 올라갔다.“그 말은 마음에 든다.”저녁이 되기 전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촬영 때문에 늦게 먹었던 점심 탓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그래서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걸었다.서윤은 오늘 찍은 사진으로 바꾼 휴대폰 잠금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도현이 결국 말했다.“배터리 닳겠습니다.”“사진 보는데 얼마나 닳는다고.”“아까부터 계속 켜잖습니까.”“좋으니까.”서윤은 화면을 도현에게 내밀었다.“봐봐.”“아까 봤습니다.”“또 봐요.”도현은 순순히 화면을 봤다.웨딩드레스를 입은 서윤과 턱시도를 입은 도현.손을 잡고 걷다가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서윤이 물었다.“어때요?”“좋습니다.”“아까랑 똑같이 말하네.”“
오 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카메라도 내려가 있었고 촬영 스태프들도 다음 준비를 하고 있었다.서윤과 도현은 스튜디오 한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서윤은 아직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였다.“도현 씨.”“네.”“오 분 끝났어요.”“벌써요?”“내가 봐준 거야.”“누가 시간을 쟀습니까.”서윤이 웃었다.“그럼 더 있을래요?”도현은 대답 대신 그녀를 한번 천천히 바라봤다.그 시선이 머리끝에서 드레스 자락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그러고 싶긴 합니다.”“진짜 드레스 좋아하네.”“당신이 입은 드레스가 좋은 겁니다.”“그게 그거 아니야?”“다릅니다.”도현의 대답이 너무 단호해서 서윤이 웃었다.“어떻게 다른데요.”“드레스만 걸려 있으면 제가 이렇게 오래 볼 이유가 없잖습니까.”서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또 그런 말 하지.”“사실인데요.”“알았어요.”서윤이 그의 턱시도 깃을 손끝으로 정리했다.“나도 좋아요.”“뭐가.”“도현 씨가 이거 입은 거.”손끝이 넥타이 쪽으로 내려갔다.“회사에서 정장 입은 건 많이 보는데 이건 느낌이 다르네.”“어떻게 다릅니까.”서윤은 잠깐 생각했다.“내 남편 같아.”도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원래 남편입니다.”“알아.”서윤이 웃었다.“그런데 오늘은 유난히.”그녀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나 도현을 봤다.“결혼식 날 데려온 남편 같다고.”“그날도 제가 당신을 데려온 겁니까.”“그럼 내가 데려왔나?”“서로 데려온 걸로 하죠.”“그게 낫겠다.”결국 서윤은 드레스를 갈아입었다.탈의실에서 나온 그녀는 촬영 전 입고 왔던 네이비 원피스로 돌아와 있었다.도현도 턱시도를 벗고 평소 옷으로 갈아입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거울 앞에 섰다.서윤이 말했다.“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아쉽습니까.”“조금.”“드레스를?”서윤이 고개를 저었다.“오늘이 끝나는 게.”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사진 나오면 다시 보죠.”“사진 말고.”서윤은 그의 손을 잡았다.“오늘 기분이
찰칵.촬영음이 멈춘 뒤에도 서윤과 도현은 손을 놓지 않았다.“좋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편하게 가볼게요.”안내에 따라 서윤이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소파에 앉았다.도현이 옆에 앉으려 하자 서윤이 손짓했다.“더 가까이.”“이 정도?”“아니.”서윤이 직접 그의 팔을 당겼다.어깨가 붙었다.그제야 만족했다.“이 정도.”도현이 웃었다.“촬영 지시는 제가 아니라 당신한테 받아야겠네요.”“우리 사진이잖아요.”“그건 맞습니다.”서윤은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처음 웨딩사진을 찍었을 때는 자세 하나를 취할 때마다 어색했다.손을 어디에 둘지.어느 정도 가까이 붙어야 자연스러울지.웃으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웃어야 할지.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평소 소파에서 하던 것처럼 기대면 됐다.도현 역시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두 분 평소에도 이렇게 자주 앉아 계세요?”서윤이 바로 대답했다.“네.”도현이 덧붙였다.“이 사람은 보통 여기서 더 눕습니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그것까지 말해요?”“사실이잖습니까.”“내가 언제.”“제 허벅지 베고 누워서 안 일어나잖아요.”서윤이 그의 팔을 꼬집으려는 순간 촬영음이 연달아 울렸다.찰칵.찰칵.“지금 표정 좋아요.”서윤은 결국 웃어버렸다.“도현 씨 때문에 이상한 사진 찍혔잖아.”“자연스러운 사진 원했다면서요.”“그래도 웨딩드레스 입고 남편 꼬집는 사진은 생각 안 했거든.”“그것도 우리답죠.”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서윤은 베일을 벗었다.이번에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내렸다.도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계속 그녀를 보고 있었다.서윤이 거울을 통해 그 시선을 발견했다.“왜 계속 봐요?”“보려고 온 건데요.”“사진 찍으러 온 거지.”“둘 다입니다.”서윤이 돌아섰다.“그렇게 드레스가 좋아요?”“드레스도 좋은데.”도현이 가까이 왔다.“당신이 입고 있는 게 좋습니다.”서윤이 입술을 눌러 웃음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서윤의 손은 도현의 셔츠 위에 남아 있었다.도현이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말했다.“서윤.”“응.”“오늘 사진 찍으면서 생각난 게 있습니다.”“뭔데요.”“우리 웨딩사진.”서윤이 눈을 깜빡였다.“우리 웨딩사진이 왜?”“한 번 더 찍고 싶습니다.”“갑자기?”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당신이 카메라 앞에서 웃는 걸 보니까요.”서윤은 조금 전 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떠올렸다.둘이 나란히 서 있던 사진.서로를 보다가 웃었던 사진.도현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던 순간까지.“이미 결혼했는데 웨딩사진을 또 찍자고?”“결혼했으니까 또 찍는 거죠.”서윤이 웃었다.“그게 무슨 논리야.”“처음 찍었을 때랑 지금은 다르잖습니까.”그 말에 서윤의 웃음이 조금 잦아들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지금의 두 사람은 그때보다 서로의 생활에 훨씬 깊이 들어와 있었다.같은 집에서 눈을 뜨고.냉장고에 함께 장 볼 것을 적고.서로의 옷이 같은 세탁기 안에서 섞이고.각자의 공간과 둘만의 공간까지 생겼다.이제는 상대가 자신의 삶에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그럼.”서윤이 물었다.“리마인드 웨딩 같은 거?”“꼭 이름 붙여야 합니까.”“그래도 웨딩드레스 입을 거잖아.”“입어주면 좋겠습니다.”서윤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도현 씨가 보고 싶은 거네.”“네.”이번에는 부정하지도 않았다.“웨딩드레스 입은 당신을 지금 다시 보고 싶습니다.”서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그럼 찍어요.”“정말?”“응.”그녀가 그의 셔츠를 잡아당겼다.“대신 내 드레스는 촬영 당일까지 비밀.”“또요?”“도현 씨 반응 봐야 하니까.”“이미 한 번 봤는데.”“지금의 내가 입는 건 처음이잖아요.”도현은 결국 웃었다.“그건 그렇네요.”“그리고 도현 씨 턱시도는 내가 골라요.”“그러십시오.”“이번에는 진짜 내가 다 고를 거야.”“그것도 좋습니다.”서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공방을 나온 뒤에도 서윤은 도현의 손을 놓지 않았다.“밥 먹으러 가기엔 조금 이른데.”도현이 시간을 확인했다.“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배고파요?”“조금.”“나도.”서윤은 주변을 둘러봤다.카페도 있었고 작은 서점도 있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미리 정한 곳에 억지로 시간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그냥 걸을래요?”“좋습니다.”“오늘 많이 걷네.”“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날이니까요.”서윤이 웃었다.“힘들어요?”“아직은.”“아직은?”“밤까지 있다면서요.”그 말에 서윤이 잠깐 멈췄다.노트에 남겨둔 마지막 칸.밤 — 비워두기.“그건 나도 몰라.”“정말 아무것도 안 정했습니까.”“응.”“의외네요.”“왜.”“낮부터 저녁까지는 전부 준비했잖아요.”서윤은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그래서 밤까지 계획하면 내가 피곤하잖아.”“그 이유였습니까.”“그것도 있고.”잠시 걷던 서윤이 덧붙였다.“밤에는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예요.”도현이 그녀를 봤다.“뭐든?”“내가 하고 싶은 거.”“알겠습니다.”“왜 또 그렇게 바로 대답해.”“오늘 하루가 당신 거라면서요.”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 말 취소하면 안 돼요.”둘은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책을 사려던 건 아니었다.그저 시간이 남아서 들어왔을 뿐이었다.도현은 자연스럽게 건축 코너로 향했다.서윤이 뒤따라갔다.“데이트 중에도 건축책?”“보기만 하는 겁니다.”“하나 사도 돼요.”“오늘은 안 삽니다.”“왜.”도현이 책장에서 한 권을 꺼내 펼쳤다.“짐 늘어나잖습니까.”“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데.”“오늘은 당신이 고른 것만 들고 가죠.”서윤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말 예쁘게 하네.”“책 안 산다는 얘기인데.”“알아요.”서윤은 옆에 있던 인테리어 책을 펼쳤다.주택 사진이 가득했다.한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큰 창이 있는 거실.창가에는 긴 소파가 놓여 있었다.“도현 씨.”“네.”“이거 봐요.”도현이 가까이 왔다.“좋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