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월요일 오전 9시 30분.한서윤은 출근하자마자 주말에 찾아본 대관 공간의 자료를 정리했다.토요일에 방문하기로 한 곳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작은 전시 공간이었다. 1층에는 전시실과 작은 휴게 공간이 있었고, 2층에는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있었다.서윤은 사진을 넘겨 보다가 정하린 대리를 불렀다.“하린 씨,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네, 총괄님.”“회사 업무와는 별개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런 공간에서 책이랑 그림을 함께 전시하면 어떨 것 같아요?”정하린은 사진을 살폈다.“분위기는 좋은데요? 다만 책을 판매할 거라면 동선이 조금 좁아 보여요.”“저도 그게 걸려요.”“작업실을 2층에 두면 괜찮지 않을까요?”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생각해 봐야겠네요. 고마워요.”정하린이 돌아가자 서윤은 자료를 개인 가방에 넣었다.아직 회사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과는 분리해야 할 개인적인 계획이었다.오전 11시.차도현의 집무실.윤석재 본부장이 다음 주 사업 일정표를 보고하고 있었다.도현은 한 페이지를 펼친 채 물었다.“사전 조사 대상 상점은 확정됐습니까?”“아직입니다. 한 총괄 측에서 선정 기준에 맞춰 후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후보 선정 과정은 기록으로 남기십시오.”“네, 의장님.”“특정 상점에 유리하도록 기준을 바꾸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윤석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부분까지 확인하겠습니다.”도현은 보고서를 덮었다.“한 총괄의 개인적인 공간 운영 계획과 이 사업은 별개입니다. 회사 인력이나 예산이 섞이지 않도록 하십시오.”“알겠습니다.”“필요한 자료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각자 업무에 집중하게 하십시오.”윤석재가 나간 뒤 도현은 다음 결재 서류를 펼쳤다.오후 12시 40분.서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도현과 마주쳤다.그는 윤석재와 함께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서윤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의장님.”도현은 걸음을 멈췄다.“한 총괄.”“네.”“오후 3시까지 조사 대상 선정표를 제출하
일요일 오전 9시 30분.한서윤은 주방에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차도현은 식탁에 앉아 태블릿으로 다음 주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도현 씨.”“네, 아내.”“오늘은 회사 일 안 해?”“오전 중에 확인할 자료만 있습니다.”“그럼 오후에는?”“특별한 일정은 없습니다.”서윤은 사과 한 조각을 접시에 올려 그의 앞으로 밀었다.“그럼 오늘은 나랑 어디 좀 가자.”도현은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어디를 말씀하십니까?”“동네에 오래된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대. 한번 가 보고 싶어.”“사업 조사 때문입니까?”“그것도 있지만 그냥 구경하고 싶어서.”도현은 사과를 집어 들었다.“좋습니다. 오후 2시에 출발하시죠.”서윤이 웃었다.“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시간 정하네?”“오전에 끝낼 일이 있으니까요.”“알았어. 오후 2시.”오후 2시 20분.두 사람은 오래된 주택과 상점이 이어진 골목에 도착했다.서윤은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연한 분홍색 니트와 검은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도현은 짙은 남색 코트 차림이었다.골목 입구에는 오래된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다.서윤은 작은 문구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여기 봐. 이런 가게 아직도 있네.”유리창 안쪽에는 색연필과 공책, 오래된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도현은 가게의 출입문과 진열대를 살폈다.“오래 운영한 흔적이 있군요.”“당신은 이런 골목 좋아해?”“특별히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그럼 왜 같이 왔어?”도현은 서윤을 내려다봤다.“아내께서 가고 싶다고 하셨으니까요.”서윤은 웃었다.“그 말은 좋네.”“그렇다면 들어가 보시죠.”오후 3시.서윤은 문구점에서 작은 색연필 세트를 구입했다.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도현이 물었다.“집에도 색연필이 있지 않습니까?”“있지.”“그런데 또 구입하셨군요.”“이건 색감이 달라.”도현은 포장된 색연필을 살폈다.“사용하실 계획은 있으십니까?”서윤은 그를 흘겨봤다.“당연하지.”“그렇다면 됐습니다.”서윤은 웃으며 그의 팔짱을
토요일 오전 9시 20분.한서윤은 거실에서 여행 가방만 한 크기의 상자를 열고 있었다.안에는 오래된 사진첩과 그림 도구, 대학 시절 사용했던 작은 소품들이 들어 있었다.차도현은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녀를 발견했다.“아내, 아침부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옛날 물건 정리하고 있어.”“어제는 주말에 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이건 일이 아니라 정리잖아.”도현은 상자 안을 살폈다.“버릴 물건과 보관할 물건을 구분하십시오.”서윤은 그를 올려다봤다.“당신은 뭐든 분류부터 하라고 하네.”“그래야 정리가 끝납니다.”“알았어. 그럼 당신도 도와줘.”도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30분은 가능합니다.”“왜? 어디 가?”“오전 11시에 약속이 있습니다.”“누구랑?”“업무 관계자입니다.”서윤은 입술을 삐죽였다.“주말에도 일해?”“필요한 일정입니다.”도현은 그녀 옆에 앉아 상자 하나를 끌어왔다.“시작하시죠.”오전 10시.서윤은 오래된 사진첩을 펼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도현 씨, 이것 좀 봐.”도현이 고개를 돌렸다.사진 속 서윤은 대학 시절 축제에서 직접 만든 간판을 들고 있었다.간판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오늘만 여는 서점’이라고 적혀 있었다.“이때 친구들이랑 하루짜리 서점을 열었거든.”“책을 판매하셨습니까?”“응. 중고책이랑 직접 만든 책갈피도 팔았어.”도현은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매출은 얼마나 나왔습니까?”서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추억 이야기하는데 매출부터 물어봐?”“운영하셨다기에 궁금했습니다.”“정확히는 기억 안 나. 그래도 적자는 아니었어.”도현은 사진첩을 덮지 않고 다음 장을 넘겼다.“이런 활동을 좋아하셨군요.”“응. 사람들이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게 좋았어.”서윤은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그래서 이번 사업도 하고 싶은가 봐.”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그렇다면 그 경험을 기획에 활용하십시오.”“또 일 이야기야?”“아내께서 먼저 연결하셨습니다.”서윤은 웃으며
금요일 오전 8시 40분.한서윤은 출근하자마자 수정한 제안서를 출력했다.지난 3일 동안 참여 상점 선정 기준부터 운영 예산, 개인정보 동의 절차까지 전부 다시 정리한 자료였다.마지막 페이지에는 사업 종료 후 평가 방식도 추가했다.“이번에는 빠진 거 없겠지.”서윤이 혼잣말하자 이수현 대리가 다가왔다.“한 총괄님, 최종본 나오셨어요?”“네. 오전 중에 한 번 더 검토하려고요.”“제가 확인한 예산표는 문제없었습니다.”“고마워요. 정하린 대리님께는 참여자 모집 절차만 다시 확인해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알겠습니다.”서윤은 제안서 표지를 바라봤다.‘오래된 가게의 새로운 하루.’이번에는 단순히 차도현에게 인정받기 위한 자료가 아니었다.자신이 직접 시작하고 싶은 사업이었다.오전 10시 20분.차도현의 집무실.윤석재 본부장이 결재 서류를 내려놓았다.“의장님, 문화사업 외부 제안사에서 수정본을 보내왔습니다.”도현은 자료를 펼쳤다.“한 총괄 이름은 삭제됐습니까?”“네. 참여 작가 명단 전체를 미확정으로 변경했습니다.”“당사자 동의 없이 이름을 사용한 경위는요?”“제안사 실무자가 과거 전시 자료를 참고하면서 참여 가능성을 확정으로 잘못 기재했다고 합니다.”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가능성과 확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곳에 사업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윤석재가 고개를 숙였다.“추가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해당 제안은 보류하십시오. 다른 사업과 섞어서 판단하지 마시고요.”“알겠습니다.”도현은 서류를 덮었다.“오후 3시에는 한 총괄의 별도 기획안을 검토합니다.”“심사 자료를 준비하겠습니다.”“제가 지적했던 부분이 실제로 보완됐는지만 확인하십시오. 개인적인 평가는 필요 없습니다.”“네, 의장님.”오후 2시 50분.서윤은 회의실 앞에서 자료를 정리했다.남기준 과장이 다가왔다.“한 총괄님, 준비되셨습니까?”“네.”“의장님께서 직접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서윤은 웃었다.“질문 안 하시면 오히려 이상하죠.”회
화요일 오전 9시 20분.한서윤은 전날 작성한 제안서를 출력해 회의실로 향했다.‘오래된 가게의 새로운 하루.’기존 문화사업 제안서에 없었던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추가한 기획안이었다.회의실에는 남기준 과장과 이수현 대리, 정하린 대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한 총괄님, 이게 새로 작성하신 자료인가요?”이수현이 물었다.“네. 기존 사업과는 별도로 검토받을 생각이에요.”남기준이 자료를 넘겼다.“오래된 상점의 물건과 이야기를 전시한다는 거군요.”“맞아요. 다만 단순히 추억을 전시하는 데서 끝내고 싶지는 않아요.”서윤은 첫 페이지를 가리켰다.“지금도 영업하는 가게라면 실제 손님이 늘어나는 방향까지 연결하고 싶어요.”정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상인들의 참여 의사가 중요하겠네요.”“그래서 사전 조사부터 하려고요.”남기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의장님께 보고하시기 전에 예산을 조금 더 구체화하시는 게 좋겠습니다.”서윤은 웃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은 먼저 의견을 듣고 싶어서 가져왔어요.”오전 11시.차도현은 집무실에서 윤석재 본부장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외부 제안사에 정정 요청을 전달했습니다. 한 총괄님 이름도 확정 명단에서 삭제했습니다.”“수정본은 받았습니까?”“오늘 오후에 전달받기로 했습니다.”도현은 서류를 덮었다.“받는 즉시 법무 검토부터 진행하십시오.”“네, 의장님.”윤석재가 나가려던 순간 도현이 다시 불렀다.“윤 본부장.”“네.”“기획 단계에서 실무자의 이름을 허락 없이 사용한 경위도 확인하십시오.”“그 부분까지 조사하겠습니다.”“단순한 오기였다는 설명으로 끝내지 마십시오.”윤석재는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오후 2시.서윤은 정식 검토를 요청하기 위해 도현의 집무실을 찾았다.도현은 그녀가 가져온 자료를 받아 들었다.“새 제안서입니까?”“네. 기존 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안하려고 합니다.”“앉으십시오.”서윤은 맞은편에 앉았다.도현은 10분 동안 아무
월요일 오전 9시 15분.한서윤은 회의실에 들어서다 낯선 서류가 놓인 것을 발견했다.표지에는 ‘신규 문화사업 협력 제안서’라고 적혀 있었다.서윤은 자리에 앉으며 남기준 과장을 바라봤다.“이건 어떤 자료인가요?”“지난주에 접수된 외부 제안입니다. 기존 문화사업과 연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검토 중입니다.”서윤은 첫 장을 넘겼다.제안서에는 지역의 오래된 상점들을 문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사업이 담겨 있었다.문제는 사업 참여 작가 명단이었다.그 안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한서윤.서윤의 손이 멈췄다.“남 과장님.”“네, 총괄님.”“이 명단은 누가 작성했습니까?”“외부 제안사에서 보내온 자료입니다.”“제 참여가 확정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는데요.”남기준은 당황한 얼굴로 자료를 확인했다.“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닙니다.”“그렇다면 이렇게 작성되어 있으면 안 됩니다.”서윤은 제안서를 덮었다.“제 이름을 넣은 경위부터 확인해 주세요.”오전 10시 40분.차도현의 집무실.윤석재 본부장은 문화사업 제안서를 보고하고 있었다.도현은 참여 작가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한서윤 총괄이 참여하기로 했습니까?”“아직 본인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협의 중인데 확정 명단에 들어가 있군요.”윤석재의 표정이 굳었다.“제안사 측에서 작성한 자료입니다.”“누가 작성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도현은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보고한 게 문제입니다.”“죄송합니다.”“당사자 동의 없이 이름을 사용하는 사업은 검토할 가치가 없습니다.”도현은 빨간 펜으로 해당 부분에 선을 그었다.“제안사에 정정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참여 여부는 한 총괄 본인이 결정합니다.”“알겠습니다, 의장님.”“오늘 중으로 처리하십시오.”윤석재가 나간 뒤 도현은 서류를 다시 펼쳤다.사업 자체의 방향은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절차가 잘못됐다.도현에게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오후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