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
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
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
"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
"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
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
"오늘은 어디 가?"
"아빠 보러요. 요양원."
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
"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
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
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
"살 빠졌네."
그게 첫마디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엄마는 내 손에서 귤 봉지를 빼앗아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시장 거 맞네. 껍질이 얇아."
엄마는 울지 않았다. 나도 울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 옆에 의자 두 개를 끌어다 앉았다. 아빠는 볕을 향해 눈을 감고 있다가, 귤 냄새에 눈을 떴다. 엄마가 귤을 까서 한 조각씩 아빠 입에 넣어 드렸다. 아빠는 오물오물 씹으며 나를 보았다.
"누구요."
"지우야, 여보." 엄마가 말했다. "당신 딸."
"지우는 중학생인데."
"응, 그래. 중학생이야."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귤을 한 조각 더 떼었다. 1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이 대화를 해 온 사람의 손놀림이었다. 창턱의 보온병 옆에 가계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에 검은 매직으로, 웃은 날. 엄마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나도 꺼내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아빠가 잠들었다. 엄마와 나는 복도 끝 자판기 앞으로 나왔다. 엄마가 보온병 뚜껑에 둥굴레차를 따라 내게 건넸다.
"요양보호사 선생한테 들었다. 너 그거 반대한다며. 안식."
"응."
"나 안 했다. 네 말대로." 엄마가 자판기 불빛을 보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모르겠다. 저 양반이 밤에 우는 거 보면."
"아빠가 울어?"
"새벽에. 선생들이 그러더라. 두 시, 세 시쯤 깨서 앉아서 운대. 잘못했다고.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도 모르고." 엄마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걸 몇십 년 하게 된다며, 마지막에. 텔레비전에서 그러던데. 그럼 그게 무슨 짓인가 싶어. 남의 거라도 편한 거 보여 주는 게 낫지 않나 싶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린세영의 질문이 엄마의 입을 빌려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근데 네가 싫다니까." 엄마가 뚜껑을 받아 들고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네가 그 사람 딸이니까. 나보다 네가 더 그 사람 거니까. 그래서 안 했다."
"엄마."
"밥은 먹고 다니냐."
"……응."
"거짓말." 엄마가 처음으로 웃었다. "너 거짓말할 때 코 만지는 거, 아직도 그러네."
나는 코에서 손을 내렸다.
헤어질 때 엄마는 요양원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게시판의 안식 포스터 앞에서 엄마는 잠깐 멈췄다가, 손가락으로 포스터 모서리를 꾹 눌러 떨어지지 않게 붙였다. 떼려는 줄 알았던 나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집은 다른 집 사정이 있지. 그러고는 다음 주 목요일에도 오라고, 이번엔 귤 말고 떡을 사 오라고 했다.
요양원을 나와 서울로 돌아오니 네 시 반이었다. 714호에 들어선 건 다섯 시가 조금 안 되어서였다. 창밖은 이미 어둑했다. 12월의 해는 짧았다. 나는 남은 귤 몇 개를 협탁에 내려놓고 창문을 한 뼘 열었다.
"늦었죠. 미안해요. 오늘 엄마 만났어요."
나는 의자에 앉아 한결 씨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눌렀다.
"엄마가 나 때렸어요. 팔뚝. 하나도 안 아팠어요. 그러고 살 빠졌대요. 1년 만에 만났는데 그게 첫마디예요. 웃기죠."
모니터의 초록 선이 흘렀다. 카트 아래의 초록 불이 넷, 그리고 길게 하나 깜박였다.
"그리고 문순자 할머니 봤어요. 얼음 깨고 계셨어요. 그거 안 깨면 그 하얀 게 생각난대요."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한결 씨는 거기서 뭘 깨요? 뭘 해야 거기가 한결 씨 데인 줄 알아요?"
대답은 없었다. 나는 귤 하나를 까기 시작했다.
"철웅 아저씨 어머님은 요즘 많이 주무신대요. 봉숭아물 거의 다 자라 나갔대요. 첫눈까지 못 버틸 것 같대요, 손톱이. 아저씨가 매일 그 손톱 사진을 찍는대요. 얼마나 남았나 보려고."
껍질이 벗겨지며 방에 냄새가 번졌다.
"그리고 재민 씨. 사인 끝까지 안 했대요. 안식 사람이 두 번 더 왔는데 엄마가 쫓아냈대요. 재민 씨 엄마가요. 아들이 섬망 아니라고 하니까, 믿어 보기로 했대요."
나는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았다.
"그리고 나비 핀 할머니요."
그 말을 하자 목이 막혔다. 나는 귤을 삼키고 숨을 골랐다.
"한결 씨 골목에 있대요. 전봇대 밑에 앉아서 울고 계신대요. 한결 씨 전봇대요. 한결 씨가 1분만 있다 가자고 했던 거기." 나는 한결 씨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한결 씨, 거기 누가 있는 거 알아요? 그 할머니 보여요? 한결 씨는 거기서, 그 할머니 옆에…"
그때 소리가 달라졌다.
아주 작은 차이였다. 1년 동안 매일 들어서 이제는 들리지도 않던 냉각팬 소리와, 모니터의 낮은 전자음. 그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삑, 하고. 모니터가 짧게 한 번 울렸다. 경고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표시했다는 알림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초록 선이 흐르고 있었다. 같은 잔물결, 같은 간격. 그런데 화면 오른쪽 끝, 선이 막 새로 그려지는 자리에서, 물결 하나가 달랐다.
작았다. 원래의 물결 위에 얹힌 아주 작은 봉우리. 바늘 끝으로 찌른 것 같은 뾰족한 모양이 하나, 원래 선의 리듬과 어긋나게 솟아 있었다. 그리고 화면이 흘러가며 그 봉우리가 왼쪽으로 밀려갔다.
나는 숨을 멈추고 화면을 보았다. 선이 다시 원래대로 흘렀다. 하나, 둘, 셋. 착각이었나. 1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선을 너무 오래 보다 보니 눈이 속은 건가.
다시 솟았다. 같은 모양. 작고 뾰족한 봉우리 하나. 원래 물결 위에 얹혀서. 모니터가 또 짧게 울렸다. 삑.
나는 한결 씨의 손을 놓고 일어섰다. 무릎이 협탁에 부딪혀 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그걸 줍지 않았다.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한결 씨. 한결 씨."
선이 흘렀다. 봉우리가 한 번 더 솟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컸다.
간호조무사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다, 내가 모니터를 가리키는 손을 보고 멈췄다. 그녀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간호사실로 뛰어나갔다. 복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714호요. 714호 뇌파가요.
주치의가 올라오는 데 십 분이 걸렸다. 퇴근하려다 돌아온 모양이었다. 가운 대신 패딩을 입고 있었고, 가방을 어깨에 멘 채였다. 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모니터 앞으로 갔다. 몸을 숙여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볼펜은 주머니에 꽂힌 채로 있었다. 그걸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봉우리가 솟았다. 삑.
주치의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모니터 옆 패널을 조작해 기록 화면을 불러냈다. 지난 한 시간의 선이 좁게 압축되어 나타났다. 같은 물결이 빽빽하게 이어지는 띠. 그리고 그 띠의 맨 끝, 최근 몇 분 사이에만, 작은 가시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처음 나온 시각이." 그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네 시 오십이 분입니다. 이십 분 전."
이십 분 전.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귤을 까고 있었다. 한결 씨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 얘기, 문순자 할머니 얘기, 철웅 아저씨 어머니의 봉숭아물 얘기.
"그 전에는요?"
주치의가 기록을 뒤로 넘겼다. 어제, 그저께, 지난주, 지난달.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같은 띠가 나왔다. 가시는 없었다.
"없습니다. 1년 동안 한 번도." 그가 몸을 폈다. 얼굴이 하얬다. "정하윤 씨, 이게 무슨 뜻인지 제가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는 말을 고르느라 한참을 멈췄다.
"이건 원래 있던 파형이 변한 게 아닙니다. 원래 파형은 그대로 있어요. 그 위에 다른 게 하나 더 생긴 겁니다. 모양이 전혀 달라요. 원래 선하고 박자도 안 맞고요. 이건…"
"새것이에요?"
주치의가 나를 보았다.
"네. 새것입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냉각팬이 돌았다. 봉우리가 솟았다. 삑.
"그 안에서는 새 생각을 못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틈 안에서는. 본 것만, 산 것만 되풀이한다고. 문순자 할머니도, 재민 씨도, 자기 엄마 얼굴 하나 새로 떠올리지 못했다고."
"네.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자료가 그렇게 말합니다." 주치의가 모니터를 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1년 동안 한 번도 없던 무언가를 하고 있어요."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한결 씨는 여전히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가슴은 같은 속도로 오르내렸다. 얼굴 어디에도 변화는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맡의 초록 선 위에서, 작은 가시 하나가 또 솟았다.
"한결 씨."
나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떨어진 귤이 발끝에 채였다.
"한결 씨, 들려요?"
선이 흘렀다. 원래의 물결. 원래의 물결. 원래의 물결.
그리고 솟았다.
주치의가 등 뒤에서 작게 말했다. 방금도요, 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주치의는 기록을 저장하고, 모니터 화면을 휴대전화로 몇 장 찍었다. 그리고 간호조무사에게 오늘 밤 한 시간마다 714호 모니터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에게 내일 아침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결국 나가지 않고 의자 하나를 끌어와 벽 쪽에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모니터를 보았다. 가시는 불규칙하게 솟았다. 삼십 초 만에 솟기도 하고, 삼 분 넘게 없다가 솟기도 했다.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모니터의 짧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주치의는 수첩에 시각을 적었다.
여섯 시 반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단정한 소리. 그 소리는 714호 앞에서 멈췄다. 노크 두 번.
문이 열리고 남색 패딩이 들어왔다. 가슴 왼쪽의 작은 흰 로고. 빗은 머리. 손에 공구 가방. 오늘은 빵 봉지가 없었다.
"정기 점검 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숨이 조금 가빴다. 계단으로 뛰어 올라온 사람의 숨이었다.
주치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기 점검은 지난주에 하셨잖습니까."
"장비에서 이상 신호가 들어와서요. 확인만 하고 가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카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회색 상자의 초록 불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보았다. 한참 동안. 봉우리가 솟았다. 삑. 그의 눈이 그 봉우리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모니터를 찍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그리고 일어서서 병실 구석으로 가, 등을 돌리고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병실은 작았다.
"네. 지금 714호입니다. 확인했습니다. 네, 실제로 있습니다. 모니터에도 뜹니다." 잠깐 침묵. "네. 보호자분도 계시고, 주치의 선생님도 계십니다." 또 침묵. 그리고 아주 작게.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는 전화를 끊고 돌아섰다. 표정은 다시 단정했다.
"점검 끝났습니다. 편히 계세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이번에는 간호사실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주치의가 나를 보았다. 나는 모니터를 보았다.
1년 동안 끝나지 않던 소절 위에, 처음으로 음표 하나가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사람은 이 방의 우리 둘만이 아니었다.
안식도 그 음표를 들었다.
첫눈은 12월 22일 밤에 왔다.자정이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웅이었다. 문자 대신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병실 창가,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를 비스듬히 내리는 눈. 그리고 사진 앞쪽에 누군가의 손. 앙상한 손가락, 누런 피부.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주황색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는 초승달. 거의 다 자라 나가서, 손톱깎이로 한 번만 깎으면 없어질 만큼.사진 아래 한 줄이 따라왔다.남았다.나는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눈이 빨랫줄 위에 얇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소원 뭐래요.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안 알려 준대.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나는 그날 밤 무전을 켜지 않고 잤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그 뒤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세상은 빠르게 움직였다.연말 뉴스는 올해의 말을 뽑았다. 1위는 마지막 1분이었다. 보험사 네 곳이 실손 보험에 라스트 미닛 특약을 기본으로 끼워 넣었다. 새로 보험에 드는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패치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대형 병원 스무 곳이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도입했다. 요양 시설 단체 가입이 줄을 이었다. 1월 첫 주, 안식은 가입자 이백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 11월에 삼십만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였다.지하철 광고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약국 계산대 옆 전단지에서 하얀 바탕의 노인의 손이 나를 따라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계산대 아르바이트생의 귀 뒤에 흰 동그라미가 붙어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 필요하세요, 하고 두 번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나오다가 돌아서서 물었다. 그거, 왜 붙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귀 뒤를 만지며 웃었다. 보험 들었더니 그냥 왔어요. 떼기 귀찮아서요. 그리고 이거 있으면 좀 덜 무섭잖아요, 오토바이 탈 때. 나는 고개를 끄덕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이송 병원은 성진대학병원이었다.무전에서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사십 분, 서울까지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어폰 속 무전은 이미 다른 출동으로 넘어가 있었다.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속도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안식의 남자는 패치가 작동하면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도 머리를 빗고 봉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패치는 지퍼 백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비공개 동의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망입니다. 흔한 일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그가 받았다."왜.""아저씨 지금 병원이에요?""어. 엄마 옆에.""성진대 응급실에 방금 소생자가 들어왔어요. 라스트 미닛. 스물네 살이래요. 오토바이."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병실의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래서.""제가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해요. 그 전에 안식 사람들이 먼저 올 거예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지는지만이라도 알아봐 줄 수 있어요?"철웅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귀 뒤에는 그 패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이 자기 어머니의 하늘보다 낫다고 말한 사람이었다."구급 7이면 서교 쪽 애들이네." 그가 말했다. "알았어."전화가 끊겼다.아홉 시 반, 나는 성진대학병원 본관 로비에 도착했다. 철웅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스웨터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지팡이가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구급 7 반장이 내 후배야." 그가 먼저 말했다. "애 이름은 오재민. 배달하다가 합정 사거리에서 혼
마을버스는 정류장 앞에 섰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문을 닫았다.기사가 창밖으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손만 들었다. 괜찮다는 뜻인지, 가라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버스가 짧게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사라졌다.이어폰 속에서 무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송 준비. 들것. 잡음. 산속이라 신호가 자꾸 끊겼다. 스물넷. 그 숫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들어야 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 가까이 들었다. 지지직. 목소리의 반쯤만 들어왔다가 흩어졌다.정류장 기둥의 시간표를 보았다. 다음 버스는 사십 분 뒤였다.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주황색이던 하늘이 잿빛으로 식어 갔다. 정류장 지붕 밑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끝이 시렸다. 벤치 끝에 누가 두고 간 목장갑 한 짝이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 쪽 빨간 고무가 반쯤 닳아 있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버스를 타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한참 보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십 분쯤 지났을 때 산길 위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내려왔다. 흰 승합차였다. 옆구리에 초록 글씨로 솔밭요양원. 차가 정류장 앞에 서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분홍 조끼가 보였다."따님! 아직 계셨네. 버스 놓쳤어요?"면회 신청서를 받던 요양보호사였다. 그녀는 비상등을 켜 두고 차에서 내렸다. 한 손에 종이컵 두 개를 포개 들고, 겨드랑이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병원 가는 어르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라서요. 원장님 차 빌렸어요. 저녁 배식 전에 올라가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거예요. 율무차."나는 컵을 받았다. 손바닥이 녹았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아까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어요. 따님 오셨다고." 그녀가 자기 컵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