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첫눈은 12월 22일 밤에 왔다.
자정이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웅이었다. 문자 대신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병실 창가,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를 비스듬히 내리는 눈. 그리고 사진 앞쪽에 누군가의 손. 앙상한 손가락, 누런 피부.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주황색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는 초승달. 거의 다 자라 나가서, 손톱깎이로 한 번만 깎으면 없어질 만큼.
사진 아래 한 줄이 따라왔다.
남았다.
나는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눈이 빨랫줄 위에 얇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소원 뭐래요.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안 알려 준대.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
나는 그날 밤 무전을 켜지 않고 잤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 뒤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세상은 빠르게 움직였다.
연말 뉴스는 올해의 말을 뽑았다. 1위는 마지막 1분이었다. 보험사 네 곳이 실손 보험에 라스트 미닛 특약을 기본으로 끼워 넣었다. 새로 보험에 드는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패치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대형 병원 스무 곳이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도입했다. 요양 시설 단체 가입이 줄을 이었다. 1월 첫 주, 안식은 가입자 이백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 11월에 삼십만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였다.
지하철 광고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약국 계산대 옆 전단지에서 하얀 바탕의 노인의 손이 나를 따라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계산대 아르바이트생의 귀 뒤에 흰 동그라미가 붙어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 필요하세요, 하고 두 번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나오다가 돌아서서 물었다. 그거, 왜 붙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귀 뒤를 만지며 웃었다. 보험 들었더니 그냥 왔어요. 떼기 귀찮아서요. 그리고 이거 있으면 좀 덜 무섭잖아요, 오토바이 탈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재민도 스물넷이었다.
이백만 명. 그중 누군가는 오늘 밤 떠날 것이다. 딱, 하고 계단이 한 칸 오를 것이다.
그 2주 동안 나는 주치의와 세 번 만났다.
그는 모니터 기록 파일을 USB에 옮겨 두었다. 안식이 새 장비를 설치한 다음 날, 병원 전산실에서 714호 모니터의 분석 기능에 비밀번호가 걸렸기 때문이다. 연구 협약에 따른 보안 조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그 전날 밤에 이미 파일을 복사해 두었다. 그 USB가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제 이름으로 낼 수는 있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병원 근처 국밥집에서 그가 말했다. 김이 오르는 뚝배기를 앞에 두고 숟가락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저는 병원에서 나가게 될 거고, 714호 연구 병상 담당이 바뀔 겁니다. 안식이 고른 사람으로요. 그리고 강한결 씨를 매일 보는 의사가 없어집니다."
"……"
"그리고 이 파일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 못 합니다. 파형이 겹친다는 것까지는 보여 줄 수 있어요. 그게 사람이라는 건, 제 수첩에 적은 시각하고 무전 기록 몇 개를 맞춘 것뿐입니다. 안식이 의학 자문단을 세우면 반나절이면 반박할 겁니다. 측정 오류, 장비 잡음, 우연의 일치." 그가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겁쟁이면 이 파일도 없었어요."
그는 대답 대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뜨거웠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제보를 보냈다. 방송사 세 곳, 신문사 두 곳, 인터넷 매체 네 곳. 가명으로. 소생자들의 증언 요약, 모니터 기록의 일부, 협약 체결일. 이름과 병원은 지웠다. 답장은 거의 오지 않았다. 한 방송사에서 한 줄짜리 회신이 왔다. 소생 후 섬망 관련 보도는 의료계 자문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검토가 어렵습니다. 한 신문사 기자는 전화를 걸어 왔다가, 내가 증언자 연락처를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럼 기사가 안 된다며 끊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금쯤 그 방송사의 메일함에 들어가 누가 내 제보를 휴지통에 넣었는지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714호에 갔다. 귤을 까며 한결 씨에게 오늘도 아무도 안 믿어 줬다고 말했다. 가시는 솟지 않았다. 12월 10일 그날 이후로 한 번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간호조무사가 714호 창틀에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트리를 올려 두었다. 전구가 세 가지 색으로 깜박였다. 빨강, 초록, 노랑. 그 불빛이 한결 씨의 뺨 위에서 번갈아 바뀌었다. 나는 그날 밤 여덟 시까지 있었다. 병실 불을 끄고 트리 불빛만 켜 두었다.
그때 안식이 달아 놓은 검은 거치대의 작은 모니터에서, 겹의 두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딱, 하고 한 칸 올라갔다.
소리는 없었다. 그냥 선 하나가 아주 조금 높아졌다. 그리고 내려오지 않았다. 저녁 일곱 시 사십이 분이었다. 어딘가의 병실에서, 누군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떠났다. 누군가의 가족이 그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행복하게 가시라고, 귀 뒤의 흰 패치를 한 번 쓰다듬었을 것이다.
나는 트리 불빛 아래에서 그 그래프를 보았다. 이십 분쯤 뒤에 또 한 칸이 올라갔다. 여덟 시 전에 한 칸 더.
사람이 떠나는 것을 그렇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한 칸씩.
해가 바뀌기 전 철웅의 어머니를 한 번 더 뵈었다. 어머니는 거의 깨어 있지 않았다. 깨어나도 몇 분뿐이었고, 그 몇 분 동안 철웅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잠들었다. 귀 뒤의 흰 패치는 그대로였다. 철웅은 떼지 않았다. 떼겠다고도, 안 떼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병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어머니의 새끼손톱만 들여다보았다. 주황색 초승달은 아직 붙어 있었다. 손톱깎이를 대면 없어질 만큼. 철웅은 간호사가 손톱을 깎아 드리겠다는 것을 두 번 말렸다고 했다.
"첫눈은 봤잖아요. 소원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안 깎는 거야." 철웅이 말했다. "이루어질 때까지."
1월 5일 밤, 공영방송에서 심야 토론이 있었다. 주제는 임종 시술, 건강보험으로. 법안은 봄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었다.
나는 그 토론을 문순자 할머니의 방에서 보았다. 할머니가 불렀다. 아가씨, 오늘 그 여자 텔레비전 나온대. 같이 보자. 혼자 보면 열 받아서 못 봐.
전기장판 위에 할머니와 나와 며느리가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는 귤을 까고, 며느리는 뜨개질을 하고,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벽의 영정 사진 속 영감님이 굳은 얼굴로 텔레비전을 내려다보았다. 방 안에는 여전히 비린내가 났다.
토론자는 넷이었다. 찬성 쪽에 린세영과,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 쉰 중반의 여자 의원이었다. 반대 쪽에 생명윤리를 가르친다는 대학 교수와, 종교 단체 대표. 사회자가 가운데 앉았다.
린세영은 여전히 흰 셔츠였다. 조명 때문인지 얼굴이 더 말라 보였다. 볼이 꺼져 있었다.
"저 여자 아프네." 할머니가 귤을 까다 말고 말했다.
"네?"
"얼굴 봐. 저거 아픈 얼굴이야. 내가 병원 다녀 봐서 알아. 화장으로 덮었는데 눈이 안 덮여."
나는 화면을 보았다. 계단참에서 알약을 삼키던 손을 떠올렸다.
토론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었다. 발의한 의원이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작년 가을, 치매로 오 년을 앓다 라스트 미닛을 받고 떠났다고. 어머니는 마지막 몇 년 동안 밤마다 전쟁 때 피난길 꿈을 꾸며 울었다고. 떠나실 때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았다고. 그녀는 말하다 목이 메었고, 사회자가 잠깐 기다려 주었다.
교수는 죽음의 존엄성과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했다. 인간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자기 것으로 맞을 권리가 있다고. 옳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어딘가 멀었다. 강의실에서 하는 말 같았다. 종교 단체 대표는 영혼의 문제를 기업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린세영은 설명회 때와 똑같이 답했다. 저희는 영혼을 다루지 않습니다. 1분을 다룹니다.
교수가 한 번 더 물었다. 그 행복한 1분의 원본은 누구의 것이냐고. 수천 명의 기증자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라도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느냐고. 나는 무릎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린세영은 잠깐 교수를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기증자분들의 사생활은 저희가 지켜 드려야 할 약속입니다. 그분들은 자기 가장 좋은 순간을 이름 없이 나누기로 하셨습니다. 이름을 요구하는 건 그 선의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방청석에서 작은 박수가 나왔다. 교수는 더 묻지 않았다.
"거짓말." 내가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나를 흘끗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저 여자는 말을 참 잘해." 할머니가 투덜거렸다. "우리 시장에 있었으면 생선 다 팔았겠어."
며느리가 뜨개질을 하다 웃었다.
토론 중반에 사회자가 종이를 한 장 들었다.
"최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라스트 미닛 시술 후 소생한 분들이 이상한 경험을 호소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 장소에 오래 갇혀 있었다는. 린세영 대표님, 이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죠."
할머니의 손이 멈췄다.
린세영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사회자를 보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시술 후 소생하시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 일부가 일시적인 낯섦을 호소하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는 그분들 모두를 개별적으로 찾아뵙고 사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심정지 후 소생 환자의 섬망은 흔한 현상이고, 대부분 며칠 안에 회복됩니다."
"낯섦?"
할머니가 귤을 전기장판 위에 내려놓았다.
"낯섦이래. 얘, 들었어? 내가 몇십 년을 남의 집 안방에 신발 신고 앉아 있었는데, 저 여자가 그걸 낯섦이래."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후 관리? 누가 날 찾아왔어? 봉투 들고 온 놈 하나밖에 없었어! 그놈도 우리 상철이만 붙잡고, 나한테는 말 한마디 안 걸었어!"
"어머님, 혈압." 며느리가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혈압이고 뭐고."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손가락 마디의 하얀 칼자국들이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야, 이 여편네야! 너 거기 가 봤어? 가 봤냐고! 가 보지도 않고 뭘 안다고 떠들어!"
화면 속의 린세영은 들을 리 없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다음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토론 막바지에 시청자 전화 연결이 있었다. 첫 번째 전화는 부산의 한 남자였다. 아버지를 지난달 보냈다고 했다. 평생 뱃일하다 바다에서 동생을 잃은 분이었다고. 마지막 1분이 그 바다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자기는 이 서비스에 감사한다고. 두 번째 전화도 비슷했다. 세 번째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토론이 끝났다. 광고가 나왔다. 하얀 바탕. 노인의 손. 할머니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래층 가게 셔터가 바람에 덜컹거렸다.
"아가씨."
할머니가 까다 만 귤을 다시 집었다.
"저 여자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야."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 부산 사람 말도 맞고. 저 국회의원 엄마 얘기도 맞고. 평생 험하게 산 사람한테 마지막이라도 편한 거 주자는 거. 그게 왜 나빠. 나도 알아. 나도 우리 영감 가는 거 봤으면, 그런 거 해 주고 싶었을지도 몰라." 할머니는 귤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었다. "근데 쟤들은 물어보지를 않아."
"……"
"거기 가 본 사람한테. 나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 오토바이 총각한테도 안 물어보고. 섬망이래, 낯섦이래, 하고 끝이야. 가 보지도 않고, 가 본 사람 말은 안 듣고." 할머니가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골목 주인. 그 사람한테는 누가 물어봤어? 당신 하늘 좀 빌려도 되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며느리의 뜨개바늘이 멈췄다.
"아무도 안 물어봤지." 할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 누워 있다며. 말도 못 하고. 그러니까 편하게 가져다 쓰는 거야. 물어볼 필요가 없으니까."
할머니는 귤 껍질을 손바닥에 모아 쥐었다.
"우리 시장에서는 남의 좌판에 물건 올려놓으려면 주인한테 물어봐. 자리 좀 써도 되냐고. 주인이 자리에 없으면 기다려. 그게 장사꾼 도리야."
나는 옥탑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제보용으로 만든 메일함에 새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보낸 시각은 토론이 끝나고 십 분 뒤였다. 보낸 사람 이름은 하도경. 제목은 없었다.
제보하신 분 맞죠. 소생자 이야기요. 보름 전에 방송국에 보내신 거, 제가 그때 거기 있었어요. 휴지통에서 꺼내 놓고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방송국 나와서 작은 데서 일해요.
저도 한 명 알아요. 택시 기사예요. 그 사람도 골목 얘기를 해요. 전봇대랑, 하얀 하늘이랑.
그리고 그 사람이 한 가지 더 말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거기 사람이 너무 많았대요. 발 디딜 데가 없었대요.
내일 만날 수 있어요?
첫눈은 12월 22일 밤에 왔다.자정이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웅이었다. 문자 대신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병실 창가,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를 비스듬히 내리는 눈. 그리고 사진 앞쪽에 누군가의 손. 앙상한 손가락, 누런 피부.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주황색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는 초승달. 거의 다 자라 나가서, 손톱깎이로 한 번만 깎으면 없어질 만큼.사진 아래 한 줄이 따라왔다.남았다.나는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눈이 빨랫줄 위에 얇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소원 뭐래요.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안 알려 준대.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나는 그날 밤 무전을 켜지 않고 잤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그 뒤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세상은 빠르게 움직였다.연말 뉴스는 올해의 말을 뽑았다. 1위는 마지막 1분이었다. 보험사 네 곳이 실손 보험에 라스트 미닛 특약을 기본으로 끼워 넣었다. 새로 보험에 드는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패치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대형 병원 스무 곳이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도입했다. 요양 시설 단체 가입이 줄을 이었다. 1월 첫 주, 안식은 가입자 이백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 11월에 삼십만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였다.지하철 광고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약국 계산대 옆 전단지에서 하얀 바탕의 노인의 손이 나를 따라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계산대 아르바이트생의 귀 뒤에 흰 동그라미가 붙어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 필요하세요, 하고 두 번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나오다가 돌아서서 물었다. 그거, 왜 붙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귀 뒤를 만지며 웃었다. 보험 들었더니 그냥 왔어요. 떼기 귀찮아서요. 그리고 이거 있으면 좀 덜 무섭잖아요, 오토바이 탈 때. 나는 고개를 끄덕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이송 병원은 성진대학병원이었다.무전에서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사십 분, 서울까지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어폰 속 무전은 이미 다른 출동으로 넘어가 있었다.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속도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안식의 남자는 패치가 작동하면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도 머리를 빗고 봉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패치는 지퍼 백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비공개 동의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망입니다. 흔한 일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그가 받았다."왜.""아저씨 지금 병원이에요?""어. 엄마 옆에.""성진대 응급실에 방금 소생자가 들어왔어요. 라스트 미닛. 스물네 살이래요. 오토바이."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병실의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래서.""제가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해요. 그 전에 안식 사람들이 먼저 올 거예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지는지만이라도 알아봐 줄 수 있어요?"철웅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귀 뒤에는 그 패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이 자기 어머니의 하늘보다 낫다고 말한 사람이었다."구급 7이면 서교 쪽 애들이네." 그가 말했다. "알았어."전화가 끊겼다.아홉 시 반, 나는 성진대학병원 본관 로비에 도착했다. 철웅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스웨터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지팡이가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구급 7 반장이 내 후배야." 그가 먼저 말했다. "애 이름은 오재민. 배달하다가 합정 사거리에서 혼
마을버스는 정류장 앞에 섰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문을 닫았다.기사가 창밖으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손만 들었다. 괜찮다는 뜻인지, 가라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버스가 짧게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사라졌다.이어폰 속에서 무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송 준비. 들것. 잡음. 산속이라 신호가 자꾸 끊겼다. 스물넷. 그 숫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들어야 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 가까이 들었다. 지지직. 목소리의 반쯤만 들어왔다가 흩어졌다.정류장 기둥의 시간표를 보았다. 다음 버스는 사십 분 뒤였다.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주황색이던 하늘이 잿빛으로 식어 갔다. 정류장 지붕 밑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끝이 시렸다. 벤치 끝에 누가 두고 간 목장갑 한 짝이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 쪽 빨간 고무가 반쯤 닳아 있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버스를 타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한참 보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십 분쯤 지났을 때 산길 위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내려왔다. 흰 승합차였다. 옆구리에 초록 글씨로 솔밭요양원. 차가 정류장 앞에 서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분홍 조끼가 보였다."따님! 아직 계셨네. 버스 놓쳤어요?"면회 신청서를 받던 요양보호사였다. 그녀는 비상등을 켜 두고 차에서 내렸다. 한 손에 종이컵 두 개를 포개 들고, 겨드랑이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병원 가는 어르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라서요. 원장님 차 빌렸어요. 저녁 배식 전에 올라가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거예요. 율무차."나는 컵을 받았다. 손바닥이 녹았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아까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어요. 따님 오셨다고." 그녀가 자기 컵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