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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백일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8 08:03:17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 후원 정원. 맑은 가을 햇살 아래, 도윤과 서아의 생후 백일을 축하하는 성대한 ‘100일 잔치’가 열렸다. 고운 옥빛 한복을 맞춰 입은 은서와 시후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있었다.

은서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 하객용 그늘막부터 둘러봤다. 본관 박물관 공사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길을 나누고, 아이들이 피곤하면 바로 쉴 수 있게 별채 방을 비워두었다. 긴 연설 순서를 줄이자는 말에 사회자가 원고 한 장을 덜어냈다.

시후는 도윤을 안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가 옷깃을 잡아 구겼지만 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은서가 서아의 등을 받쳐 안자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같이 안 보네.”

“사진 찍을 때는 잠깐 보겠죠.”

은서는 서아의 모자를 조금 올려줬다.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자 곧바로 손을 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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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8화. 백일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 후원 정원. 맑은 가을 햇살 아래, 도윤과 서아의 생후 백일을 축하하는 성대한 ‘100일 잔치’가 열렸다. 고운 옥빛 한복을 맞춰 입은 은서와 시후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있었다.은서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 하객용 그늘막부터 둘러봤다. 본관 박물관 공사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길을 나누고, 아이들이 피곤하면 바로 쉴 수 있게 별채 방을 비워두었다. 긴 연설 순서를 줄이자는 말에 사회자가 원고 한 장을 덜어냈다.시후는 도윤을 안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가 옷깃을 잡아 구겼지만 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은서가 서아의 등을 받쳐 안자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오늘도 같이 안 보네.”“사진 찍을 때는 잠깐 보겠죠.”은서는 서아의 모자를 조금 올려줬다.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자 곧바로 손을 뗐다. 몇 초 뒤에는 다시 편안해졌다. 그 작은 표정 하나에 온 신경을 쓰는 자신이 신기했다.시후는 도윤의 등을 받친 손을 바꿨다. 서로 같은 자세를 취하라는 사진가의 부탁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이 편한 쪽으로 안고 찍자고 은서가 먼저 말했다.사진작가가 장난감을 흔들었다. 도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안 서아는 입을 벌리고 하품했다. 완벽한 가족사진을 기다리던 시후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은서는 그때 찍어 달라고 손짓했다.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흠잡히지 않아야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오늘의 사진에는 구겨진 옷과 하품하는 아기가 그대로 남아도 괜찮았다.순금과 에메랄드로 세공된 아기 팔찌가 두 아이의 통통한 손목에서 찰랑거렸다. 어린 시절, 16살의 은서가 피눈물을 흘리며 갇혀 있던 성북동 저택. 그러나 오늘, 그 저택은 두 아이의 까르르 웃는 맑은 웃음소리와 수백 명 하객들의 따스한 축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7화. 그랑프리

    수상 통보를 받은 뒤 은서는 곧바로 비행기 표부터 잡지 않았다. 몸 상태와 아이들을 돌볼 일정을 먼저 상의했고, 파리 본부에는 짧게 머물 계획을 보냈다.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하루에 모두 넣어둔 일정표는 두 번 돌려보냈다.“상 받으러 갔다가 쓰러져서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시후는 그 말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본부에서 보낸 드레스 치수를 들여다보다가 은서의 눈치를 살폈다.“다시 맞추라고 할까?”“제가 입어보고 말할게요.”피팅을 마친 뒤 은서는 허리 안쪽의 여유를 조금 늘려 달라고 했다. 예전 치수에 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았다. 재단사가 새 표시를 하는 동안 시후는 아이들의 사진을 확인했다. 은서가 돌아보자 화면을 보여주었다. 아기들은 자신들이 빠진 며칠을 무사히 보내고 있었다.그걸 알고도 보고 싶었다. 은서는 그리운 마음을 가방 속에 넣어두듯 사진을 저장하고, 무대에 오를 원고를 다시 펼쳤다.***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 인근, 리츠 파리 호텔(Hôtel Ritz Paris) 그랜드 살롱. 해외 5대 명품 하우스의 총수들과 유럽 황실 귀빈 500여 명이 숨을 죽인 가운데, 2026 프랑스 명품 협회(Comité Colbert) 최고 권위의 ‘그랑프리 럭셔리 대상’ 시상식이 장엄하게 거행되었다.“영예의 대상, ‘EUN 글로벌’ 한은서 회장!”사회자의 발표와 함께 기립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지금의 몸에 맞춘 에메랄드빛 실크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은서가 단상에 올랐다.그녀의 목에는 故 서혜진 여사의 숨결이 깃든 200캐럿 마터호른 에메랄드가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마이크 높이를 낮추는 직원에게 감사를 전한 뒤 은서는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6화. 산후

    출산 6주 후, 서울 한남동 펜트하우스 45층 마스터 스위트.전면 특수 통유리창으로 한강의 잔잔한 푸른 물결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45층의 공간은 이제 은서의 편안한 산후조리와 아기들을 위한 무균·청정 중심의 산후조리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순백의 실크 로브를 걸친 은서가 아기 침대 곁에서 곤히 잠든 도윤과 서아의 통통한 뺨을 가만히 쓸어내리고 있었다.출산 후 한층 더 부드럽고 풍만해진 실루엣과, 복숭앗빛 홍조가 감도는 뽀얀 살결.거울 속 얼굴이 환해 보이는 날도 있었지만, 눈 밑이 푹 꺼져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 하나가 잠들면 다른 아이가 깼다. 은서는 방금 접어놓은 수건을 찾지 못해 방 안을 한 바퀴 돌고서야 제 팔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시후가 수건을 받아 들자 그녀는 이유 없이 웃다가 눈물이 났다.“왜 우는지도 모르겠어요.”“잠깐 앉아.”그는 이유를 캐묻지 않고 물컵부터 건넸다. 아이들이 곁에 있는 것이 기쁜 마음과, 한 시간만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같이 드는 것이 은서는 미안했다.“나쁜 엄마 같아요.”시후가 물컵을 내려다보았다.“나는 오늘 회의 중에 계속 졸았다. 나쁜 아버지인가?”“그거하고는…….”“네가 더 못 잤는데 너만 그러면 안 되는 이유는 없지.”은서는 반박하려다 웃고 말았다. 시후의 피곤한 얼굴을 보니 자신만 잠을 설친 것도 아니었다. 물컵을 비우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됐다. 두 사람은 유모에게 맡길 시간과 직접 돌볼 시간을 다시 나누었다. 일을 전부 혼자 해내겠다는 계획을 지우자, 낮잠을 잘 빈칸이 생겼다.***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5화. 호적

    출산 일주일 후, 서울 용산구청 종합민원실 가족관계등록 창구.시후는 대기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윤 실장이 대신 처리할 서류를 분류해 주었지만 이름을 처음 적는 일만큼은 직접 하고 싶었다.앞자리의 아이가 신발을 벗고 의자 밑으로 발을 뻗었다. 보호자가 신발을 주워 신기는 동안 시후는 그 짧은 소동을 지켜보았다. 도윤과 서아도 곧 저렇게 발을 내밀게 될 것이다. 멀리 느껴지던 미래가 한 켤레의 작은 운동화 모양으로 눈앞에 놓였다.휴대폰으로 은서가 보내온 사진이 도착했다. 두 강보 사이에 날짜를 적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표정은 비슷했지만 은서는 도윤이 잠들 때 손을 꼭 쥐고, 서아는 손가락을 조금 편다고 적었다. 시후는 사진을 확대하다가 제 번호를 부르는 소리를 뒤늦게 들었다.펜 뚜껑을 벗기기 전, 전날 은서와 함께 확인한 이름 표기를 다시 열었다. 두 이름을 번갈아 확인했다. 아이들이 앞으로 수없이 듣고 돌아볼 이름이었다. 잘못 옮겨 적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옆에 놓았다.시후는 이름을 소리 없이 한 번씩 불러봤다. 아이들이 돌아볼 날은 아직 멀었지만 입에 익히고 싶었다. 업무 문서라면 서명만 했을 자리에서 글씨를 고르고 있었다.창구 직원이 누락된 칸을 짚어주자 시후는 고맙다고 하고 펜을 들었다. 설명이 끝날 때마다 해당 칸을 채웠다. 작성한 서류를 다시 내밀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휴대폰의 아기 사진을 꺼내보려던 손을 거뒀다. 혹시 더 고칠 곳이 있는지 직원의 손끝을 살폈다. 은서에게 돌아가 함께 읽을 서류부터 마쳐야 했다.블랙 수트를 차려입은 강시후가 창구 앞에 섰다. 남자의 단단한 손가락이 만년필을 쥐고 출생신고서 양식을 한 자 한 자 정갈하게 써 내려갔다.[부(父): 강시후 / 모(母): 한은서 / 자녀 1: 강도윤(남) / 자녀 2: 강서아(여)]철컥.구청 직원이 접수인을 찍고, 공식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4화. 탄생

    새벽 1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VIP 특수 분만실.소독 냄새와 긴박한 의료진의 목소리가 뒤엉키는 분만실 안. 의료진이 건넨 보호복을 입은 강시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은서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떨리는 손을 꽉 쥐고 있었다.은서는 그가 고개를 너무 깊이 숙이자 손가락으로 턱을 밀어 올렸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얼굴이 보였으면 했다. 시후는 입가가 바짝 마른 채 그녀를 보았다.“아까 부탁한 거, 기억해요?”“네 옆에 있는 것.”“울더라도…… 겁먹은 얼굴은 조금만.”은서가 그의 손을 당겼다. 시후는 더 가까이 몸을 낮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녀가 쥐고 있는 손만 놓지 않으면 됐다.시후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어설픈 표정이 오히려 눈물 나게 익숙했다. 은서는 숨을 고르는 사이에 잠깐 웃었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연습했던 수많은 말 가운데 남은 것은 그의 이름뿐이었다.켈러가 은서의 상태를 확인하고 짧게 말을 걸었다. 의료진의 움직임이 빨라질 때마다 시후는 어깨에 들어가는 힘을 눌렀다. 그들이 지나갈 공간을 막지 않으면서 손을 놓지 않으려면 몸을 조금 비틀어야 했다. 무릎이 저려왔지만 자세를 바꿀 생각은 들지 않았다.“사모님! 힘주세요! 첫째 아이 머리가 보입니다!”닥터 켈러의 외침과 함께 은서가 입술을 깨물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아아아악-!”“은서야, 힘내라. 내가 여기 있다. 널 영원히 지킬 내가 여기 있어……!”시후의 눈물이 은서의 뺨 위로 쏟아져 내렸다.그때.으아앙-! 으아앙-!새벽 1시 20분. 의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13화. 진통

    6주 뒤, 임신 36주 차.입원 가방은 현관 옆에 놓여 있었다. 전날 검진에서 상의한 일정도 휴대폰에 저장돼 있었다. 은서는 소파에 앉아 아이들 이름이 적힌 작은 천 주머니를 만지다가 하나를 뒤집었다. 직접 만든 펜던트는 아이들이 자란 뒤 주기로 하고, 지금은 그 주머니만 가방 안에 넣어둘 참이었다.시후는 밤 회의를 취소한 뒤 같은 방의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자꾸 일어나 은서 쪽을 살피기에 그녀는 웃으며 펜을 다시 쥐여주었다.“아프면 제일 먼저 부를게요. 지금은 정말 괜찮아요.”그는 문을 끝까지 닫지 않았다. 은서는 그 틈으로 보이는 셔츠 소매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창밖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유리에 작은 점을 만들었다. 잠을 자려다 세공대에 두고 온 주머니가 생각났다.두 아이를 품은 은서의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시후는 모든 대외 일정을 취소하고, 45층 펜트하우스에 상주하며 은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었다. 은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세공 테이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싸아아-다리 사이로 따스한 액체가 왈칵 쏟아져 내려 은서의 얇은 실크 잠옷을 흠뻑 적셨다. 동시에 아랫배를 쥐어짜는 듯한 격렬한 진통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읏……! 하아…… 시, 시후 씨……!”은서가 세공대 모서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으로 무너지려 했다. 서재에서 서류를 보던 시후가 0.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남자의 긴 두 팔이 은서의 무너지는 몸을 부서져라 낚아챘다.“은서야! 왜 그러나, 어디가 아픈가!”시후는 은서의 얼굴과 젖은 잠옷을 번갈아 봤다. 입을 열었지만 다음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손이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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