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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차유자
부아가 치밀어 오른 강소연은 헛웃음이 터졌다.

“누가 내 옷을 입어도 된다고 했지?”

수련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왕야께서 왕부 안을 자유롭게 다녀도 좋다고 하셨어요. 여기가 왕비마마 처소인 줄 몰랐어요. 그저 옷이 예뻐서 한번 입어봤을 뿐인데…”

“벗어.”

강소연이 냉랭하게 수련의 말을 잘랐다.

겨우 사흘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수련은 제 집인 양 돌아다녔다. 하인들도 막지 못한 걸 보니 유승헌의 뜻이 분명했다.

수련이 자신의 옷을 입고, 자신의 방에 머물면서, 그 침상에서 유승헌과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당장에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감히 아가씨 옷을 함부로 입다니!”

이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수련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겨 버리려 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한데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웬 소란이냐?”

그때, 뛰어 들어온 유승헌이 이화를 걷어차더니, 바닥에 쓰러진 수련을 일으켜 세우며 품에 안았다.

“왕야, 살려주세요…”

수련이 그의 품에 파묻혀 애처롭게 울먹였다.

“왕비께서 사람들 앞에서 제 옷을 벗기려 하셨어요.”

“강소연, 이게 무슨 짓이야?”

유승헌이 분노에 서린 눈길로 강소연을 노려보았다.

유승헌의 발길질이 워낙 세차서, 이화는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강소연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이화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고개를 들어 유승헌을 노려보았다.

“왕야,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창백하고 고집스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는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져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자리를 비운 지 고작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방 주인이 벌써 바뀌었네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강소연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그럴 거면 화리장이나 써주세요. 괜한 오해 만들지 말고.”

“무슨 헛소리야?”

유승헌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강소연이 화리를 다시 언급하자, 수련이 괴롭힘당한 것을 목격했을 때보다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수련이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무릎을 꿇고 겉옷을 벗어 던졌다.

“왕비마마의 옷인 줄 몰랐어요. 왕야, 저 때문에 왕비마마와 싸우지 마세요.”

유승헌은 하얀 내의 차림의 수련을 흘끗 보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자기 겉옷을 벗어 그녀를 감싸 주었다.

“앞으로 이 안채에는 들어오지 말거라.”

그러고는 강소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막 왕부에 들어온 사람이 뭘 안다고 소란을 피우느냐? 고작 옷 잘못 입은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우다니.”

참 좋은 변명이었다. 막 들어와서 아무것도 몰랐으며, 옷을 잘못 입은 것뿐이라며.

수련의 이런 조잡한 핑계도 그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강소연이 소란을 피운다며 나무라 했다.

강소연은 이것은 분노인지, 아니면 서러움인지 알 수 없었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알 수 없는 감정을 억눌렀다.

“여봐라.”

문밖에서 시녀 한 명이 부들부들 떨며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이 옷을 불태워라.”

강소연은 바닥에 버려진 혼례복을 가리키며 담담히 말했다.

시녀가 옷을 집어 들고 나가려는 순간, 유승헌의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라!”

겁에 질린 시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어쩔 줄 몰랐다.

강소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유승헌을 순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 물건을 처리하는 것도 왕야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저건 우리가 혼인할 때 입었던 옷이다!”

유승헌이 이를 악물었다. 본래 쉽게 화내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최근 강소연의 냉담한 태도 앞에서 그는 자꾸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알고 계셨군요.”

강소연이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죠?”

유승헌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던 강소연은 매사에 온순하고 예의 바른, 전형적인 대갓집 규수였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쳐, 온몸에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언제까지 이럴 작정이냐?”

유승헌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강소연은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혼례복을 든 시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나는 너희를 부릴 자격도 없는 모양이구나.”

그녀는 몸을 일으켜 시녀의 손에서 혼례복을 낚아채더니,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가 마당의 연못에 그 옷을 던졌다.

다시 안으로 돌아온 강소연은 이화를 일으켜 세우더니, 고개를 들어 유승헌에게 미소를 지었다.

“왕야, 제 물건을 별당으로 옮겨 주세요. 앞으로 여기에 살지 않을 겁니다.”

“너…”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유승헌이 막 화를 내려는 찰나, 수련이 갑자기 “아야” 하고 신음하며 그의 발밑으로 쓰러졌다.

그는 점점 멀어지는 강소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강소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그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수련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승헌은 이를 악문 채, 수련을 안아 서쪽 행랑채로 옮겼다.

“태의를 불러라!”

“아가씨, 전 괜찮아요. 이제 안 아파요.”

별당의 온돌방에서 이화가 눈물을 머금은 채 침상에 누워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소연은 조심스레 이화의 옷을 걷어 올렸다. 갈비뼈 쪽에 보라색 멍이 크게 번져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괜히 너까지 힘들게 했어.”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부군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했을뿐더러, 곁에 있는 시녀조차 지키지 못했다.

이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자책하지 마세요. 아가씨 잘못이 아니에요. 왕야께서…”

“그래, 너도 왕야가 나쁘다고 여기는구나?”

강소연이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참아, 곧 우리 친정으로 돌아갈 거야.”

“왕비마마, 태의가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어멈이 큰 소리로 전했다.

“태의를 부르지 않았는데.”

강소연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사람을 보내 의원을 부르라고 했을 뿐, 태의를 부른 적은 없었다.

어멈이 공손히 대답했다.

“왕야의 분부입니다.”

강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라.”

안으로 들어온 태의는 나이가 지긋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그는 이화의 맥을 짚고, 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어혈을 풀어주는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러고는 강소연을 향해 말했다.

“왕비마마께서도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왕야께서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걸린 고뿔이 회복되었는지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태의가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말했다.

“왕비마마, 부디 진맥을 허락하십시오. 그래야 왕야께 회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왕야께서 대체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태의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던 강소연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었다.

“왕비마마의 몸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다만 근래에 고생이 너무 많으셔서 기혈이 부족하십니다. 잘 요양하십시오. 기혈을 보충하는 처방전을 써 드리겠습니다.”

태의가 진맥을 마치고 종이에 처방전을 써 내려갔다.

태의를 돌려보낸 강소연은 사람을 시켜 약을 달이게 했다. 그리고 이화에게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는 시중들지 말고, 푹 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별당의 안채로 들어갔다. 왕부의 처소는 사람이 묶지 않아도 매일 하인들이 청소하여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며칠간의 고단함에 그녀는 겉옷도 대충 벗어 던지고 침상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깔린 뒤였고, 방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유승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깼느냐?”

인기척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가의 평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언제부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검은 옷이 어둠에 스며들어, 그의 윤곽마저 삼켜버린 듯했다.

강소연이 몸을 일으키며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야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방을 다시 정리하게 했어. 돌아가.”

평소의 명령조가 아닌, 다소 누그러진 말투였다.

“돌아가라”가 아니라 “돌아가”였지만, 어조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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