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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차유자
“그게… 몸이 안 좋아, 진맥 좀 하려고요.”

강소연이 황급히 변명했다.

문 앞이라 보는 눈이 많았던 그녀는 차마 회임을 피하는 약을 보내지 않아 직접 먹으려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정말로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여봐라, 사람을 보내 태의원의 장 원판을 불러라.”

유승헌이 뒤에 있던 호위에게 명하고는, 그녀의 앞으로 두 걸음 다가서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있는데, 윤지후를 왜 찾는 거냐?”

강소연은 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수상쩍었다. 아침에 왕부에서 보인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손을 뺄 수 없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젯밤 그 문지기는 곤장형에 처했다.”

유승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일을 숨긴 거니, 죽어 마땅하지.”

“그랬군요.”

“수련은 몸이 워낙 허약하여 자주 앓아누웠다. 어젯밤 너무 긴박하여 태의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강소연의 손등을 살짝 스쳤다. 화해의 손길 같았다.

그러나 강소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러자 그녀의 손에 가해지는 압력이 갑자기 세졌다. 유승헌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자신 앞으로 끌어당겼다. 눈에는 분노가 스쳤다.

“이미 설명을 다 했거늘, 어찌 이러느냐?”

그녀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여기서 왕야랑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동안 강소연이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만 했기에, 유승헌은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면 그녀가 금방 받아들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늘따라 자꾸 반박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유난히 화가 났다.

“그 밀고 당기기 놀이는 언제까지 할 작정이냐?”

유승헌이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냉담함을 되찾았고, 화해하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소연이 힘껏 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찢어지며 통증을 가져왔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두 사람은 말없이, 조금 떨어진 채로, 영당으로 향했다.

유승헌이 향을 세 번 올린 후, 강소연의 곁에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 조문객을 맞이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태의를 청하러 갔던 호위가 난처한 얼굴로 돌아와 유승헌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련 낭자가 몸이 불편하다고 하여, 장 원판께서 왕부로 불려 가셨습니다. 당직 중인 태의는 윤 대인뿐입니다.”

소리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강소연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왕야, 가셔도 됩니다.”

유승헌은 짐짓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호위에게 명했다.

“윤 대인을 불러 왕비 진찰을 보게 해라.”

강소연도 살짝 놀랐다.

‘평소 같으면 바로 수련에게 달려갔을 사람이, 웬일로 자리를 지키는 건가?’

두 사람은 별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승헌은 손을 놓고,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곧이어 안으로 들어온 윤지후가 예를 올리고, 맥을 짚기 위해 강소연의 손목 아래에 베개를 받쳤다. 잠시 눈을 감고 맥을 짚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했다.

“왕야, 왕비께서는 간밤에 비를 맞아 고뿔에 걸리셨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처방전대로 사흘 정도 복용하시면 나으실 겁니다.”

윤지후가 말을 잠시 멈추더니 유승헌을 바라보았다.

“다만…”

유승헌이 턱을 치켜들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윤지후를 바라보았다.

“돌려 말하지 마라.”

“왕비께서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키우시어, 기혈이 많이 뭉쳤습니다. 심신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윤지후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부인의 병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파?”

유승헌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픈 척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구나. 하지만 정작 마음 아파할 사람은 네가 아니지”

윤지후가 무어라 반박하려 하자, 강소연이 한발 빠르게 말을 가로챘다.

“예, 왕야의 말씀이 다 맞아요.”

유승헌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평소처럼 반박하면, 그걸 빌미로 화낼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강소연은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초점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비스듬히 내린 햇살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 창백한 얼굴에 금빛이 내려앉았고, 그 모습은 도자기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안에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듯했다.

유승헌은 그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할 말이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바로 그때, 하인이 황급히 달려와 수련이 그를 찾는다는 말을 전했고, 유승헌은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멀어지는 유승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소연이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곁에 앉은 윤지후가 약통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지후야.”

강소연이 나직이 말했다.

“회임을 피하는 약 처방전도 써줘.”

윤지후의 손이 떨렸다. 먹물 한 방울이 글씨를 더럽혔다.

그는 반쯤 쓴 처방전을 구겨 버리고, 새 종이를 펼쳐 두 장의 처방전을 써서 그녀에게 건넸다.

“태의원의 약재는 기록이 남아. 고뿔약은 사람을 시켜 보낼게.”

윤지후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회임을 피하는 약은 처방전대로 의원에 가서 지어. 열두 시진이 지나면 효과가 없으니, 빨리 복용할수록 좋아.”

윤지후는 항상 그랬다. 이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그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흔쾌히 들어주었다.

윤지후는 강소연의 어릴 적 소꿉동무였고, 남매처럼 가까웠다. 주변에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떠났지만, 다행히 그는 끝까지 그녀의 곁에 남아 있었다.

강소연이 처방전을 꼭 쥐며, 수없이 했던 그 말을 내뱉었다.

“고마워.”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 없어.”

윤지후가 약통을 닫으며 공손히 예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화야.”

강소연은 문밖에서 기다리던 시녀를 불러 처방전을 건넸다.

“이 처방전을 들고 성 남쪽 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 와. 왕부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예.”

이화가 약을 달여왔을 때는, 이미 정오가 훨씬 지난 뒤였다.

강소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약을 받아 한 번에 삼켰다. 혀끝에 퍼지는 익숙한 쓴맛, 삼 년간 마셔온 것과 같은 맛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마셨다.

다행히 아직 열두 시진을 넘지 않아, 효과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유승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 혼자 영전에서 사흘 밤낮을 지켰다. 어머니를 안장하는 순간까지.

“아가씨, 왕야와 다투신 건가요?”

조 어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셈이죠.”

이렇게 큰일을 왕야도 없이 혼자 처리하고 있으니, 남들이 오해하는 게 당연했다.

“왕야께서는…”

“제가 크는 걸 곁에서 지켜본 어멈에게까지 숨기지 않을게요.”

강소연이 약을 바른 손가락을 바라보며 사심에 잠겼다.

“조만간 왕야와 화리할 거예요.”

조 어멈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아가씨! 안 됩니다! 지금 집안에는 아가씨를 지지해 줄 분도 없어요. 화리하시면 정말 혼자가 됩니다!”

강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멈,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말리지 마세요.”

허울뿐인 왕비 자리를 지키며 억울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홀로 자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겠는가.

조 어멈이 한숨을 내쉬며 더는 말리지 않았다.

집안일을 모두 정리한 후, 강소연은 왕부로 돌아갔다.

유승헌과 수련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직 화리하지 않았으니 계속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피했다간 더 많은 잡담이 나올 터였다.

“왕비마마…”

왕부의 하인들이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모두 놀란 표정으로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안채 앞에 도착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시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귀신을 본 것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방자하다, 감히 왕비마마를 막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화가 강소연의 팔을 부축하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강소연은 겁에 질린 시녀들을 내려다보며 담담히 물었다.

“왕야께서 안에 계신 거냐?”

“아, 아닙니다…”

이화가 앞으로 나가 무릎 꿇은 사람들을 헤치며 길을 열었다.

곧이어 문이 열렸고, 한 여인이 안방에서 허둥지둥 나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자세히 보니, 수련이 붉은 혼례복을 입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강소연은 순간 머리가 ‘쿵’ 울리면서 욱신거렸다.

수련이 입고 있는 옷은 그녀가 유승헌과 혼인할 때 입었던 것이다. 그녀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수놓은 것이었다.

유승헌을 깊이 사랑했던 그녀는 혼례복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을까 싶어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였고, 완성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 그 옷이 수련의 몸에 걸쳐져 있었다.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그녀 앞에서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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